보고싶은 권정생 선생님

이걸 어떻게 하지요? '감자꽃'도 다 잃어버리게 됐으니...(이오덕 권정생)

야야선미 2006. 2. 10. 20:00

이걸 어떻게 하지요? '감자꽃'도 다 잃어버리게 됐으니...


* 다음은 경북 안동 일직에서 권정생 선생님이 전화로 들려 준 말로, 우리 문학의 유산을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하기에 그 때 적어 놓은 것을 그대로 싣습니다. 때는 1998년 11월 10일 밤 10시. 묶음표 안의 말은 제가 대답한 것입니다. (이오덕)

- 선생님, 큰일났어요. 권태응의 '감자꽃'동요도 이제는 버려지게 됐어요. 얼마 전에 철수가 말하는데, 흰 감자에 자주꽃이 핀다고 하잖아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더니 감자밭에 가서 파 보았다고 해서 저도 이 마을에 있는 감자밭에 가서 자주꽃 핀 감자를 파보았지요. 그랬더니 흰 감자가 나와요. 감자고 고구마고 배고 사과고 밤이고 모든 곡식, 과실이 달라졌어요. 그래 이걸 어쩌지요? 우리 동요 우리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줄 수 없으니...

창작과비평사에서 이상권 선생이 낸 동화책에 온갖 들꽃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거 읽어 보셨습니까? (못 읽었어요.) 그 들꽃 이야기가 많이 잘못되었기에 창비사에 전화로 말해 주었더니 한번은 이상권 선생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자기는 실제로 본 것을 그대로 썼다고 하잖아요. 자연이고 사람이고 세상 모든 것이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이상권 씨 글은 안 읽어서 모르겠습니다. 들꽃, 들풀, 나무, 동물 죄다 그 생태가 많이 달라진 줄 압니다. 그런데 달라졌으면 달라진 대로 작가 시인들이 올바로 보고 듣고 해서 쓰면 좋은데, 방안에서 앉아 머리로 생각해서 제멋대로 쓰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책만 읽고 방안에서 공부만 하고 자라난 작가들이 이런 태도로 글을 쓰니 문학이 엉터리가 되지요.)

선생님, 엉겅퀴도 가시가 없는 게 생겨났어요. (저도 가시 없는 엉겅퀴를 봤는데, 이게 엉겅퀴가 아니고 엉겅퀴 비슷한 풀이 또 있는 것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생각했지요.) 선생님도 봤어요? 그렇다니까요. 솔구차리도 괴상한 게 생겨나고, 냉이도 엄청나게 큰 것이 생겼어요. 이렇게 되면 동요고 동화고 자연을 어떻게 쓰지요? 지난날의 문학을 어떻게 하지요?

××씨가 와서 말하는데 유전자를 조작해서 만든 농산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해요. 과실이고 곡식이고 동물이고 빨리 크고 자라는 약을 주어 가꾸고 길러서 그걸 먹도록 하는데, 그래 요즘 아이들 그런 것만 먹으니 키도 크고 몸집도 크고 그 마음도 아이가 아니고 어른이에요. 무서운 세상이 됐어요. 딸기 같은 거 절대로 먹으면 안 돼요.

(저는 감자나 고구마 같은 걸 좋아해서 오늘도 감자를 쪄서 먹고는 '감자를 먹으면서'란 제목으로 시를 한 편 썼습니다. 세상 일은 어디 한 구석도 제대로 되는 게 없고 무엇을 해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 이제는 죽기 전에 시라도 몇 편 쓰고 싶어요.)

감자나 고구마는 그래도 괜찮아요. (좀 덜하겠지만 아까 얘기 난 대로 감자도 옛날 감자가 아니지요. 이걸 먹다가 나도 병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래도 감자와 고구마는 먹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약을 마구 뿌린 과실이나 채소나 인공사료 먹이고 약 먹인 소. 돼지. 닭 고기를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먹지요. (사람들 모두 돌았어요. 죽기로 환장했어요. 입으로는 아주 깨끗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내가 잘 아는 사람들 가운데도 소고기나 달걀 같은 걸 먹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알 수 없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어요. 신문에 별의별 사건이 보도되지만 여기서도 일전에 참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났어요. 어느 젊은 어머니가 다섯 살쯤 되는 아들아이와 마주 앉아 같이 재미있게 놀았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어머니가 그 어린 아이 목을 졸라서 죽였다고 해요. 경찰에서 그 어머니가 한 말이 "왜 그랬는지 갑자기 죽이고 싶어졌다."고  하더라니 기가 막히지요. 까닭도 없이 갑자기 그런 발작이 일어나다니요! 이래서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는지 알 수 없어요. (신문에 보니 어디서 고래들이 떼를 지어 바닷가로 나와 육지에 올라와 죽었답니다. 사람들이 그 고래들을 살릴라고 바닷물 속에 끌고 가서 넣어 주었지만 조금 뒤 다시 땅에 올라와 기어이 죽었다지요. 두 군데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요. 사람도 짐승도 물고기도 다 돌았지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것, 온갖 더러운 것이 죄다 바다로 가지요. 또 핵 실험을 바다에서 하지요. 그러니 바닷물 속에 사는 것들이 병들지 않을 수 없어요. (그 물고기를 사람들이 또 잡아먹고..) 사람은 모든 것을 죽이고 저도 죽자고 작정했어요.

선생님, 지금 교육부에서 정년을 60세로 해서 나이 많은 사람들 모두 내보낼라 하는데, 학부모회에서, 여기 안동서도 이걸 찬성하는 것 보고 기가 막혔어요. 동양이고 서양이고 옛날부터 훌륭한 교육자들 모두 나이 많은 사람들 아닙니까. 60세를 넘어 70세 80세 되는 사람들이었지요. 나이 많은 교장 선생들 월급 많이 줘야 한다지만, 젊은 의사들의 수입에 대면 반도 안돼요. 교육자를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고 무슨 교육이 됩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 교육의 실상을 보면 나이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좋은 교육을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잘못된 교육을 해서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나라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 나이 많은 교육자, 교육 행정가, 학자들이 한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교육재정도 학교 돈을 교장들이 옳지 못하게 써서 교육계가 병이 들대로 들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사람부터 아주 싹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그대로 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나이 많은 사람을 다 보내고 젊은 사람을 앉혀 놓는다고 더 잘 될까? 이것도 그다지 믿기지 않습니다. 어쩌면 더 나쁘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나라 꼴이 이렇고 지금까지 해 온 교육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어찌 되든지 한번 크게 혁신을 하는 수밖에 없지요.)

아이고, 젊은 사람들 못 믿어요. 아무리 그대로 나이 든 사람이 나아요. 학부모회가 그러는 것 보고 그 사람들 모두 교육 걱정한다더니 사실은 엉터리구나 가짜구나 생각했어요...

(밤이 늦었네요. 날씨가 추워졌으니 감기 조심하이소.)

네, 선생님도 건강하시고요..▣(《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제 44호, 1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