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권정생 선생님

정축년 어느 날 일기 / 권정생

야야선미 2010. 1. 24. 21:56

정축년 어느 날 일기

 

그 집엔
십 년이 넘은 늙은 개 한 마리와
늙은 인간 하나가 살고 있었다.

늙은 개는 늙은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감시자가 되어 있었다.

늙은 인간은 오래 전부터
어디가 탈이 나서 그런지
자주 몸에 열이 나서 눕는 날이 많다.

늙은 개가 쯧쯧 혀를 차면서
―이 인간아
전생에 무슨 못할 짓을 했기에
날이면 날마다 아파쌌는거야?

자존심 상한 늙은 인간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디 아파서 열이 나는줄 아냐?
이 똥개야!

이래 봬도
평생 정의에 불타는 가슴으로 살다보니 그런 거다!

늙은 개가 또 혀를 차면서
―저 인간이 이젠 머리까지 돌았군
한다.
(계간 《사람의 문학》, 1997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