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산마을고등학교 이야기 "까무잡잡 반들반들한 고삐리 집에 오던 날"

야야선미 2011. 5. 5. 17:39

 

 

 

서인이가 왔다. 제 몸통보다 훨씬 큰 여행 가방을 끌고 등에는 엄청난 배낭을 멨다. 목공 조각칼과 이런 저런 공구가 든 손가방 하나를 더 들고 어깨에 기타까지 걸었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제 오빠는 “이민 가냐?” 면서 가방을 받아 준다. 얼굴이 까무잡잡 반들반들.

“아이고 우리 딸! 이기 얼마만이고? 한번 안아보자, 꼭 두 달만에 집에 돌아왔네. 근데, 우리 딸 마이 탔네!”

등도 쓸어내리고 엉덩이도 툭툭 쳐 본다. 제법 탱글탱글한 엉덩이, 임마가 이리 컸구나. 한참 끌어안고 얼굴도 부벼 본다. 서인이는 온몸을 맡긴 채로 종알거린다. 이건 두 달 전이나 똑같다. 종알종알 재잘재잘 맑고고운 새소리. 아 얼마만에 들어보는 새소리인지.

“엄마, 나 촌년 다 됐지요?”

“뭘, 건강미 넘치구마는. 광합성 작용 아주 확실히 했네?”


광합성 작용, 그렇다. 지지난해 일반 고등학교 3학년이던 친정 조카를 만났을 때 서인이가 감탄했다.

“언니, 얼굴 진짜 하얗다. 아, 나도 언니처럼 얼굴 좀 하얬으면”

하얀 얼굴과는 거리가 먼 서인이. 늘 하얀 얼굴만 보면 부러워서 한 마디씩 하곤 했다.

“광합성 작용을 못 해서 그렇다. 걱정마라, 니도 고삐리 되면 저절로 하얗게 된다. 햇빛 볼 시간이 있어야지.”

웃으면서 하는 얘긴데도 가슴이 저려왔다. 햇빛 볼 시간이 없어서 광합성을 못한다는 열아홉 살. 한창 꽃 필 나이, 이팔청춘. 저 아이들이 ‘햇빛 볼 시간이 있어야지’ 자조하며 이따위 현실 앞에 저희들을 내맡기고 그 빛나는 시기를 보내야하나. ‘광합성 못하는 고삐리’ 조카를 보면서 고등학교 다니며 자신감도 잃고 말도 없어지고 점점 빛을 잃어가던 큰 아이 생각이 났더랬다.

“선생님이 우리들 이름이나 아는가 몰라요. 아마 모를 걸요. 공부 잘하는 몇 명이야 알겠지, 뭐”

“이름도 잘 모를 건데, 우리가 뭔 생각하는지 뭐 하고 돌아다니는지 관심이나 있겠어요? 어디 가서 안 걸리면 다행이다 싶겠지, 뭐.”

서른명이 넘는 아이들, 펄펄 살아 뛰는 이팔청춘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우겨넣고 똑같은 판에 박아내는 학교. 제대로 따라오지 못 하면 영락없이 부진아 취급을 받아야 하는 현실.

그것도 그렇다. 제 아무리 열심히 따라한다고 해도 교실에는 일등이 있고 꼴찌가 있을 테니. 교과시험 성적만으로 아이들 한 줄로 세우는 현실에서는 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앞서는 아이가 있고 뒤쳐져서 눈 밖에 나는 아이가 생길 수밖에. 그 시험 성적만으로 아이를 평가하니 끝에 서는 아이는 눈 밖에 날 수 밖에 없겠지.

하물며 그 성적으로 교사도 평가되고 학교도 평가되는 세상이니. 성적이 나쁜 아이는 제 성적 나쁜 것에만 끝나지 않는다. 저를 가르친 교사들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제가 다니는 학교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선생님이나 교장의 눈으로 보면 성적이 나쁜 아이는 자기들 평가를 갉아먹는 아이고, 그래서 나쁜 아이고 그리하여 눈 밖에 날 수 밖에 없다.

교과부 정책이 그렇게 만들고,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속에서 아이들이 교과 공부 말고 또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애틋하게 마음 주고 아이들 보듬어 줄 여유가 있을까? 선생님들에게.

‘우리 선생님 내 이름이나 알란가?’ 하는 아이는 그 선생님에게 무엇을 털어놓고 싶고 무엇을 의논하고 싶을까? 큰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고, 그래도 아직까지 늘 목말라했던 학교생활. 따뜻하지도 아름답지도 치열하지도 않았던 학교생활을 서인이에게도 똑같이 되풀이 하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서인이가 고등학교 들어갈 때 마음을 썼던 것 중에 하나다.


‘교과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기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것저것 여러 가지 부딪혀보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 해 보면서 자기를 찾는데 도움이 되겠지.’

‘저희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다면, 함께 떠들어댈 시간이 많다면, 그 가운데서 서로를 바라보고 마음을 나누고 그러면서 다른 세상에도 눈길 줄 수 있겠지.’

‘아이들이 제 결을 지키면서 결대로 키울 수 있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학교, 그 다양함 속에서 제 삶을 추스르고 살아갈 방향을 찾으면 좋겠다.’

‘그래, 그러려면 아이들에게 시간이 넉넉하게 필요하다고.’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바램뿐이었지, 어떤 확신도 대안 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나 소신도 없으면서 일반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를 찾았고 길고 긴 여행 끝에 산마을을 만났다.

그리고 두 달, 서인이는 광합성을 확실히 해서 까무잡잡 반들반들 빛나는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다 제쳐두고 그저 이것 하나만으로도 기쁘다. 햇빛도 못 보는 고삐리가 아니어서 기쁘다.

풋살을 너무 못해서 <시밝>에서 그저 골대 언저리나 지키는 데코레이션 역할을 맡고 있으면 어떠냐고.

‘산마을 동무들은 뭐 하나는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정말 멋진데 나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 또 어때,

우리 서인이한테는 그런 산마을 동무들이 있잖아. 그런 동무들 틈에서 구김없이 어울려 지내는 것 같아서 또 기쁘다.

“아, 침대다. 두 달만에 누워보네”

밥 먹고 조잘대다가 침대에 날아들 듯 눕는다. 두 팔 두 다리 쭉 벋고 누운 모습이 얼마나 편안해 보이는지.

 “서인이 벌써 자나?”

제 오빠가 문 열고 들여다본다.

“어이 공주, 오늘은 우리하고 자자.”

아바이가 문 열고 들어가더니 한참 있다 나온다.

“우리 딸, 안 더워?”

아직도 겨울 이불 그대로인 게 마음이 쓰여서 들어갔더니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면서 외친다.

“잠 좀 자자고요, 아아 식구들이 잠을 안 재우네.”

두 달동안 비었던 방이 서인이 하나로 환하게 빛이 난다. (2011.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