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이야기

나만 아니면 된다고?

야야선미 2011. 7. 23. 22:06

 

<나만 아니면 된다고?>

 

방학이라고 아이들이 놀러 왔다. 이 방 저 방 쿠당탕 후다다닥 한참을 뛰다 지쳤는지 소파에 앉는다. 땀을 닦는가 싶더니 웬걸, 금세 또 난리가 났다. 바닥에 하나를 눕혀놓고 다섯이 들러붙어 간지럼을 태우면서 깔깔깔 크크큭. 누운 아이는 두 손 두 발 펄쩍거리면서 우당탕 버둥버둥.

“얌마, 3층에 미안해서 안 되겠다. 그만하고, 미숫가루 먹자.”

“야, 우리 복불복으로 먹자. 쌤, 괜찮죠?”

묻기는 왜 물었는지,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부엌으로 달려간다. 소금을 찾고, 컵을 찾고 까나리액젓 있느냐고 여기저기 뒤진다.

미숫가루, 매실효소, 소금물, 멸치액젓, 식초를 탄 컵이 나란히 놓였다. 맹물도 한 잔 놓아 여섯 잔이 되었다. 왁자하게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효천이가 2번을, 정명이가 5번을, 남은 아이들도 모두 하나씩 집었다.

“나만 아니면 돼애애애!” 정명이가 한 입 먹더니 크게 외친다.

“오예, 나만 아니면 돼애애애애애애!” 현우가 더 크게 외치면서 펄쩍거린다. 효천이 얼굴이 찌그러지더니 화장실로 달려가서 웩웩거린다. 멸치액젓이 걸렸다. 입을 왈칵왈칵 헹구고 나오면서도 얼굴은 아직 찡그려진 그대로다. 아이들은 그때까지 배를 잡고 낄낄거린다.

아차! 가슴이 뜨끔 한다. 아, 저걸 내가 보고 있었구나.

“나만 아니면 된다고?” 짜고 냄새나는 젓갈을 마시고 괴로워하는 동무를 보고 깔깔대는 아이들이나, 그렇게 될 걸 알만한데도 손 놓고 있는 나나.

주말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치는 “나만 아니면 돼애애애애”를 들으면서 참 못마땅했다. 온 식구들이 함께 보는 시간에 온 세상에 대고 외치는 그 뻔뻔한 소리. 하루아침에 일자리 잃고 쫓겨난 사람들, 물난리 만나 막막한 이웃들, 이야기 좀 하자고 반년 넘게 높은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한 여인, 등록금 때문에 멍들어가는 젊은이들…. 세상 모든 아픔에 얼굴 돌리고 나만 별 탈 없으면 된다는 우리들의 목소리 같아서 부끄럽고 아팠던 그 외침. 아이들하고 토론이라도 해야겠다 마음먹고도 그냥저냥 흘려버렸던 그 어이없는 장면.

지금 우리 아이들이 그러고 있다. 뜨거운 햇살 때문이 아니라, 그 낯뜨겁고 몰염치한 외침이 온몸을 화끈거리게 만든다.(2011.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