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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시평-어린이 문학은 사기다 / 이현

야야선미 2012. 5. 14. 11:31

 

어린이 문학은 사기다 / 이현

 

 

어린이날이 올해로 90주년을 맞았다. 기다렸다는 듯 ‘어린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터져나왔다. 폭죽이 본디 그러하듯 잠깐의 뜨거운 관심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어쨌거나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서도 어린이책에 대한 특집 기사를 기획했다. 그런데 필자들은 어린이 문학을 희망, 사랑, 자연, 어머니, 교감, 성장 그리고 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필자 이계삼은 ‘어린이책은 사기다’라고 일갈했다. “허위의 악순환, 어린이 문학을 찢어라!”

자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인 제목에 이어지는 첫 문장은 “나는 어린이 문학을 잘 모른다”는 것. 과연 잘 모르는 듯하다. 어릴 때 이원수 선생의 동화 몇 권을 읽었고 20대에 권정생 선생의 동화에 감탄한 게 전부라고 한다. 그렇게 달랑 책 몇 권 읽고서 어린이 문학의 존재 자체를 회의하며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결론 내린다. 더불어 “출판사는 어린이 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상을 만들어서 주고 그 이름값으로 책을 팔며” 그것이 때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이 되는 현실을 비판하기도 한다. 어린이 문학 역시 상업주의에 휩쓸리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어린이들이 그런 문학책을 읽으며 꿈을 키우고 위로를 받고 있기는 한 것”인지 회의적이라고 단정짓다니. 이쯤 되면 일반화 정도가 아니라 ‘매도’다.

대체 어린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독서를 강요하는 어른들 때문에 넌더리가 나는 어린이도 있고, 공부만 하라는 잔소리를 들어가며 도서관을 드나드는 어린이도 있다. 책이라면 질색이지만 단 한 권의 책에서 위로받을 수도 있고, 만 권의 책이 오직 괴로움일 수도 있다. 개개인이 다를 뿐이다. 이계삼은 “어린이를 양육과 보호의 대상으로 특화시킨 근대적 아동 교육의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린이를 일반화시켜 쉽게 논평하는 태도야말로 어린이를 대상화하는 것이다. 책 몇 권으로 어린이 문학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오만한 태도에서 어린이를 ‘쉬운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껏 다섯 편의 동화를 출간한 나조차 아직도 어린이 문학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문학도 어렵거니와 어린이는 더 어렵다. 그래서, 잘 몰라서, 쉽게 단정짓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나아가고 있다. 어설픈 지도를 들고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너무도 사랑하는, 그러나 아직 서로 잘 몰라서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어디로? 어린이에게로.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본격적인 시기로 잡자면 우리 어린이 문학의 역사는 고작 20~30년이다. 근대적 아동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애쓰고 있지만 안갯속이다. 어린이 문학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거듭하지만 아직도 해답은 아득해 보인다. 외적인 환경은 또 어떠한가. 좋은 독서 환경이란, 책을 ‘반드시 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일진대, 이 땅의 독서 환경은 가파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학교 도서실만 보더라도 얼마나 한심한 지경인가. 사서 교사가 없는 학교가 태반이고, 그나마 있는 사서 교사는 대개 박봉의 비정규직이다. 하긴, 갈수록 극악스러워지는 자본의 세상에서 애초에 문학이 가당키나 한가.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글 작가, 그림 작가, 편집자, 도서관 활동가, 평론가 그리고 어린이책 운동에 발벗고 나선 활동가들…. 그런데 열악한 현실에 대한 해법이라는 게 고작 “어린이 문학을 찢어버리자”는 것이라고? 분노를 넘어 지극한 슬픔을 느낀다.

그래도 괜찮다. 세상이 어린이 문학을 찢어버린다고 해도, 그렇게 어린이 문학이 너덜너덜해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여기 남아 있을 것이므로. 문학으로 어린이와 소통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므로. 오늘도 어딘가, 찢어진 책장을 넘기며 눈빛을 반짝이는 단 한 명의 어린이가 있을 것이므로. 이것이 사기라면 그래, 어린이 문학은 사기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507205522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