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들 공부는 안하고
(부산글쓰기회)
지난 4월 22, 23일 부산글쓰기 식구들이 밀양 이승희 선생님 집에 모였습니다. 부산서 기차를 타고 상동역에서 내렸습니다. 이승희 선생님이 트럭을 몰고 마중 나왔지요. 모두 트럭 짐칸에 타고 문종길 선생님이 사 놓은 집터에 들렀다 반디네집으로 갔습니다. 마당에 장작불을 피워 놓고 다 함께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지요. 낮에 이승희 선생님 언니가 뜯어 놓은 취나물에 돼지고기를 싸서 서로 먹여 주기도 했지요. 저녁 먹고 사랑에 모여 앉아, 이승희 선생이 가르친 아이들 글을 엮은 책 ≪할매, 나도 어른이 된 거 같다≫(도서출판 굴렁쇠)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끝내고 나니 밤이 아주 깊었지만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앞산 옥교봉에 걸린 달에 취한 이상석 선생님이 재워 주지 않았지요. (옮겨적은이:이혜숙)
이승희 선생은 아이들과 한 식구로 살아요
문종길: 지난해 가을에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이가 이승희 선생 글 가지고 이야기했는데, 요번에 또 일하려고, 우리가 내일 일하려고 모였습니다만, 좋은 기회가 돼 가지고, 이승희 선생이 엮은 ≪할매, 나도 이제 어른이 된 거 같다≫ 이 책을 우리가 읽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먼저 느낀 것부터 좀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홉 분 모였는데 이래 많이 모이기도 어렵다 아입니까.
이상석: 회장부터 이야기하소.
문종길: 저는 이런 글을 엮어 낼 수 있다는 게 참 부러웠습니다. 저로서는 이런 학급문집도 내 보지 못했고, 글쓰기 지도도 제대로 못 한 그런 형편인데, 아이들하고 생활하면서 이런 결과물로 글을 엮어 낸다는 것 자체가 참 부러웠습니다
이상석: 그게 느낌이가?(모두 웃음)
이상석: 느낀 사람은? 아! 참, 엮은 사람은?
이승희: 뭐 특별한 그런 건 없고, 저도 이런 책을 한번 엮어 놔야 한다든지, 책으로 언젠간 안 엮어지겠나 이런 생각 전혀 없었어요. 지난번에 우리 부산 모임 갔을 때 문집 드리니까, 이상석 선생님이 ‘이제 책으로 한 번 엮어 봐도 되겠네’ 했을 때, 전혀 엮을 생각을 안 했는데, 문집을 굴렁쇠 신문사에 보냈더니, 신문에 아이들 글이 실리면서 신문사에 전화로 좋은 반응이 와 가지고, 신문사에서 정말 좋으니까 한번 해 보자 그런데다가, 굴렁쇠 사람들 일하는 거 보고, 또 편집장을 몇 번 만나 보니까 참 진지하고 참 성실한 거 같고, 그래서 엮게 된 거지, 정말 저도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이상석: 촌에 와서 이렇게 삶의 터전을 바꾸고 난 뒤에 열매가 하나 이래 열린 거라. 연지초등학교 십 년 있어도…. 그래, 그 때도 글이 참 좋았거든, 글이 참 좋았는데, 책으로 골라 엮을 수도 얼마든지 있지, 있지만 그런데 이거는 사람이 일을 하면 열매가 맺히는구나, 그런 면에서 열매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내 이야기할 차례 아인데 씨. 마, 말을 한 거다. 그냥.
이승희: 그럼 다른 사람은 말 안 하고 머 하는데?
이상석: 인자 말 안 한다. 지금부터 말 안 한다.
이미경: 빨리 말하는 게 낫겠네. 삶이 있고, 그 삶을 인제 자세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잖아예. 그런 글을 쓰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데예. 글을 보니까 애들 가정 분위기나 집안 환경 이런 것도 좀 읽히데예. 그라고 애들이 참 부끄러운 것도 솔직하게 자세하게 썼더라고예. 저는 자세히 쓰기가 참 안 되는데, 여기 애들이 익어 있다는 생각도 들고.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뭐랄까 생명 하나하나 소중함, 이런 것들에 대해서 참 몸으로 경험으로 느끼게 하는 걸 참 잘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예. 또 환경이 도시랑 시골이랑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 쉽겠지만, 우리는 또 이렇게 못하는 게 도시와 농촌의 차이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 아무튼 참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봤어예.
박선미: 저는 이승희 선생이나 또 문종길 선생님이나 전에부터 시골에 들어간다고 이라면, 문종길 선생님보고도 꿈꾸지 말라고, 그런 얘기 가끔 하고, 환상을 가지지 마라고 그랬거든예. 이승희 선생님 갈 때도 이승희 선생님이 그냥 환상만 가지고 갈 사람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래도 참 걱정 많이 했거든. 왜냐면 내가 촌에서 어려운 거 참 많이 보고 자랐으니까 가서 잘 할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 문집을 받고 보면서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 선생님은 이렇게 농촌에 가서 잘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거든예. 그래 이 책을 보니까, 내가 걱정하면서 선생님 가서 잘 할까 했던 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를 알겠데. 여기 나오는 재기처럼 이렇게 우리 반에도 엄마가 집을 나갔거나 이런 애들이 있는데, 걔들하고 얘들하고 이렇게 보면 우리 반에 있는, 가까이서 보는 애들은 어둡고 좀 우울하고 이런 분위기, 글을 써도 그렇고 애의 생활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글로 써 놔서 그런지, 하이튼 여기 얘들은 안 그런 것 같아서. 가려지거나 어둡고 좀 그런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선생님이 잘 가르쳐서 같이 식구처럼 사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아니면 농촌이라서 그런지 그래 좀 많이 좀 다르데.
박미애: 저는 지난해에 그거(문집) 볼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요번에도 저는 참 머라 하노, 이승희 샘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예. 왜냐하면 애들이 지금 박선미 선생님 얘기처럼 이렇게 자기 사는 환경과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점이 참 고마운 거 같애요. 자기 사는 거에 대해서, 요만한 아이들한테는 왠지 도시 아이들한테는 떨어지는 거 같고, 뭔가 모자라는 것 같고, 엄마 없는 것도 서럽고, 왠지 구지리해서 사는 것도 내보이기 싫은데, 그런 게 없다는 거, 그런 게 참 없는 것 같애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 이 점을 심어 줬다는 게 참 고맙고. 또 그 다음에 수세미 일이라든가 머 일한 거를, 일한 거가 많잖아예.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에는 애들이 ‘우리 선생님은 이런 걸 왜 시키노?’ 아니면 선생님이 시키니까 할 수 없이 이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애들은 이런 일, 선생님하고 같이 하는 일, 거기서 나아가 가지고 엄마 아빠가 하고 있는 그런 일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 일에 소중함 같은 것도 깨우쳐나가게 해줬다는 데 대해서, 전 그런 점에 대해서 참 고맙더라구예.
이상석 : 약 닳는다 빨리 해라. (모두 웃지요)
구자행 : 저는 이 책을 읽고 느낀 거는 아이들이 생명을 참 소중히 여기구나, 또 지가 사는 저거 마을을 참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지 삶을 떳떳하게 당당하게 드러내는구나, 글에서 그런 걸 느꼈는데, 이게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앞에서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게 얘기했지만, 이건 순전히 선생님이 삶의 터전을 바꾸어 가지고, 그렇게 아이들에게 몸으로 보여 주었을 거다. 거기서 나온 걸 거다.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혜숙 : 저도 비슷한 거 같애요. 아이들이 열한 명, 열두 명이라고 그랬잖아요. 그 아이들이 다 한 식구같이 느껴졌거든요. 글을 보면서 남같이 느껴지지 않고 한 식구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참 많이 받았어요. 그게 너무 아름답고 참 소중하게 보였고 좋았고, 그게 다른 게 아니고 제가 보기엔 이승희 선생님 보면 특별히 막 어떻게 하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애요. 그냥 스스로 즐거우니까, 스스로 삶을 즐기니까 그게 아이들한테 자연스럽게, 정말 자연스럽게 묻어난다는 생각이 들거든예. 그게 참 큰 힘이 되는 것 같애요. 아이들한테는 억지로 어떻게 가르친다거나 억지로 이렇게 해 본다거나 그런 것 없이 그냥 이렇게 묻혀 가지고 지나가는 게,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 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예. 이 책을 보면서 참 그 일년, 이년 그 세월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런 게 참 좋았습니다.
김재숙 : 제가 말씀을 드린다면, 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이 거의 다 나온 것 같거든요. 저도 글쓰기 지도하면서 가끔 회의를 느낄 때가 있어요. 글 따로 마음 따로 그런 기분을 더러 느꼈거든요. 이거 보면서 ‘글이 하나다’라는 거, 그게 가장 와 닿았구요. 그 다음 두 번째는 이런 것들이 결국은 이제 지도자의 몫이 아닐까, 동시에 어떤 능력이 아닌가 그런 생각 많이 했거든요.
이상석: 아까 나는 혜숙이 말이 굉장히 공감이 되는데, 멀 안 했다는 건 아니고, 안 핸(한) 기 아니고 온 몸으로 핸 거야. 그게 안 한 거지.
이혜숙: 예 그게 안 한 거지요.
이상석: 그게 안 한 거지. 억지로 안 한 거지. 그래서 이승희 선생이 글쓰기 지도 사례를 한 번…, ‘우째가 요 글이 나오노?’ 이라면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또 없다 했거든. 나는 그래서 진짜 우리가 근본으로 생각해야 될 거는, 제일 중요한 것은 학생 수가 적어야 된다, 그 다음에 아이들이 자연 속에 놀 수 있어야 된다, 그 다음에 교사가 온몸으로 삶을 던져야 된다. 이 세 개야. 그런데 이 세 개를 어떻게 바래. 세 개 다 바랄 수가 없는 거야. 바랄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은 귀하게 되고, 그라면서 우리는 안 하는 게 되고 있더라고. 내가 오십 명 아이들을 데리고 글쓰기 지도하고 있단 말이야. 맘 묵고 지도안을 쓰고 있다고. 날마다 일지를 쓰는데, 지도 일지를 쓰다가 이 책을 딱 보니까 지도일지 이거 소용이 없다, 아무 소용이 없다 이거야. 정말 무슨 지도 일지가 필요한가? ‘지도 일지 이거 꼼꼼히 써 가지고, 이거 내처럼 한다고 무슨 아이들 글이 나오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참 회의가 오더라고. 내가 그래서 ‘아, 이거는 아인 것 같다. 우리가 근본을 하나도 고치지 아니하고, 뭔가 딴 거를 이래 바랄라 하는 이게, 열매를 바랄라는 거는 참 우스운 일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
이미경: 저번에 이승희 선생이 그 말 안 했습니까. 자기 하는 일이 농사꾼이니까, 농사를 지으면서 선생님을 하니까, 애들이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부모님 하시는 일, 그냥 인정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하셨거든예. 저번에 가을 모임에 그 이야기 들으면서 ‘아,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 여기서 보면 그냥 자기 사는 모습, 엄마 아빠가 하시는 일에 대해서 좀 그냥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 그라고 이렇게 수세미 씨앗 받아서 키우는 모습을 그냥 자연스럽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잖아예. 선생님이 그렇게 사시니까, 그렇게 사는 모습 자체가 온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예. 교육에 온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 줄임)
이상석: 말이 나온 김에…, 내가 말이 많아서 미안한데, 이거는 녹음에서 지우기로 하고. 아이들 글에서 선생의 냄새가 난다는 게, 정언이 글을 보면서 그런 생각 또 했어. 우리 반 아이들 글 보면 내 냄새가 난다고 많이 그랬잖아. 그건 내 당연하다고 보는데, 동철이 반 아이들 글을 보면 동철이 냄새가 확 나면서도, 그 반 아이 글에는 뭐라 그럴까, 솔직히 여기 이 단산초등, 이 학교 아이들보다 글이 더 좋아요. 자연을 보는 눈이 그렇게 부드럽고 그래. 그런데 여기는 좀 달라. 여기는 보면 장사하는 동네 냄새가 나고, 도시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냄새가 좀 나. 그런데 오색 걔들은 정말 그냥 그 산골 아이의 딱 트인 눈이 있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하아 우째 그런가.
구자행: 그 차이는 제 느낌으로 이야기하면 이승희 선생님 아이들 글은, 좀 뭐라고 할까, 선생님의 지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애들이 가꿔진 글이라면 탁 선생님 아이들 글은 그냥 그 손길이 닿지 않은, 때묻지 않은 그대로 나온 글, 그런 느낌을 받아요.
이상석: 그러니까 아주 참 그대로의 모습이야. 그냥 딱 풀 포기를 보듯이. 우리가 왜 풀 포기를 하나 딱 보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커다란 힘, 도사가 한 마디 하는 그런 모습, 그런 느낌이 올 때가 있잖아. 이오덕 선생님 말씀 들을 때도 그렇고. 가르치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냥 우리한테 속삭이는 이야기, 진짜 말씀이 들릴 때가 있잖아. 이 애들은 그 말씀을 다 듣고 있구나 싶어. 탁동철 아이들 글은 보면 그래. 애들이 자연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하는 생각이 팍 들 때가 있더라고. 그래서 하! 어째 이럴까? 그거는 동철이 지는 고백을 했더라고. 할머니가 똥오줌 줄 때, 나는 리모콘 켜고 비스듬히 누버 있다고. 지 반성을…. 선생은 그런 반성밖에 할 줄을 모르는 거야. 그런 반성밖에 할 줄 모르는데, 아이들은 보는 거야. 그거를 딱 보는 거야. 그 본 거를 쓰게 한 선생은 훌륭하지. 그러나 아이들만큼 훌륭하지를 못하더라고.
이승희: 장사하는 집도 있고, 완전 시골 같은 맛은 안 나요.
이상석: 그래. 동네 마을 그려놓은 거 보니까 전부 다 슈퍼, 가든, 불고기 집, 머 이런…
이승희: 그런 여관 이런 게 많고, 거기가 학교가 좀 그래요. 거기 강이 있고 그래 놓으니까 강에 놀러오고. 그러니까 고런 영향이 좀 있을 거예요. (잠시 모두들 조용합니다)
바람이 흐물흐물거리네
문종길: 그 뭐고, 읽은 글 가운데 자기가 좀 좋게 본 글, 그걸로 한 편 정해 가지고…
이상석: 그럼 우리가 정언이 글을 가지고 한번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떨까요?
박선미: 정언이 글이 눈에 좀 많이 띄긴 띄데. 일부러 뽑아서 읽지는 않았지만, 좀 남데. 문집 보면서 이렇게 정언이를 생각해서 그랬는지, 이 책 읽을 때 유난히 정언이를 생각하게 되더라고.
문종길: 그래 제 경우에는 전에 어디 다른 모임에서도 이야기했는데, 그 <바람> 이 시가…
이상석: 몇 쪽?
문종길: 155쪽에. 다른 거는 머 기억에 남는 게 없고예. 155쪽에 보면 <바람>이란 시가 석 줄밖에 안 되지만, ‘바람이 물에 닿아서 흐물흐물거리네’ 이게 참 순간의 느낌이랄까, 자기가 느낀 걸 본 대로 느낀 대로 너무 잘 쓴 것 같더라구예. 군더더기가 없이. 그런데 우리 고등학교 일학년한테도 이 글을 읽어 주면서 자기가 정말로 본 걸, 느낀 걸 이런 식으로 써야 안 되나? 괜히 억지로 꾸며 써 가지고, 온갖 어려운 한자말을 동원해 가지고, 그렇게 써야 되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함 해 봤습니다. 그런데 애들은 ‘그게 답니까?’ ‘그게 무슨 글입니까?’ 그러더라고예.
바람
바람이
물에 닿아서
흐물흐물거리네! (1999.3.10. 이정언)
박미애: 제가 보기에는 시인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아무나 이래 보이겠습니까? 아무나 물가에 탁 앉아 있는데, ‘바람이 부네, 물에 바람이 지나가네’ 그렇게만 해도 눈에 들어올지 말진데, ‘흐물흐물거리네’ 라는 표현을 지가 할 수 있다는 거는, 그 참 아무리 이야기를 많이 듣고 해도 이래 될 것 같지를 않아요.
이상석: 나는 더 놀라운 건, 내가 이 글에서 다른 말을 안 하는 것이 놀라운 거야. 또 한편은 글 지도 과정에서 어쩌면 다른 거를 빼라 하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좀 들고.
이승희: 기억이 안 나네. 뒤에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상석: ‘아, 이거는 군더더길 것 같다. 이거 한번 빼는 게 더 좋겠다.’ 머 그런…
이승희: 그런데 요 문장은 하나도 손을 안 댔어요.
이상석: 그렇지, 요 말은 고대로…
이승희: 요 부분은 고대론데, 요 뒤에 돌이 어쩌고 했던가, 하는 건 내가 기억이 나요. 강에 갔다왔거든요. 또, 그 때 아이들이 조금 영향을 받았을 거야. 오색 애들 글 가운데 <빗방울>인가 그걸 읽어 준 적이 있거든. 그랬더니 고 짧은 데 대한 고 맛을, 아들이 좀 고거 읽고 나서부터 한 순간 시가, 어느 기간 동안 시가 짧아졌어요. 해서 고런 것들에 좀 강한 인상을 받았나 봐.
이상석: 하. 고것도 참 중요한 거지. 중요한 건데.
이승희: 아이고 난 야들이 그거 읽고 또 흉내냈는가 보네. 내 속으로 그런 느낌을 좀…
이상석: 그런데 요거는 탁 보니까, 나는 선생님이 줄여 주거나, 아니면 보기글이 좀 있었거나, 애들이 절대 처음부터 이래는 안 쓰지 싶어요. 요 말만 하고 싶지 않은 거야. 애들 마음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막 설명을 붙이고 싶고 이렇지. 이걸 딱 쳐낼 수 있는 게 (박선미: 맞아) 저절로는 되지 않지.
이승희: 그런데 정말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건데, 정언이는 이렇게 쓸 수 있거든. 이 뒤에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우째 보면 요대로만 쓴 거 같기도 하고. 글쓰기 공책 보면 아는데, 우째 보면 뒤에 있은 것 같기도 하고. 진짜 감이 안 잡히네. 정언이는 요거 말고도 요기 안 실렸지만, 일기장에 보면, 요렇게 썩 와닿지는 않지만, 몇 줄 탁 써 놓은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역시 그런 거 보면 ‘아, 야가 글쓰는 게 다른 아하고 좀 다르구나! 어떤 땐 참 길게 자세하게 쓰면서, 어떤 땐 요래 탁 쓰구나!’ 이런 느낌 가진 적 있거든예. (모두들 차 한 잔 하고 잠시 쉽니다)
나무한테, 산한테 이야기한 게 관념인가?
박미애: <아침 조회 때> 그건데 앞 부분은 조회하는 모습이랄까, 눈에 보이는 대로고, 그 다음은 지가 생각하는 교장 선생님에 대한 거고, 그 다음은 지는 그거 다 떼버리고 앞산 보면서 말한 건데, 저는 뒷부분이 참 인상깊어서 뽑았는데, 글이 다 보이는 것 같애요. 이 글에는 지 생각하고, 그 자세히 보는 눈하고, 또 그런 것들이 다 보이는 것 같애요.
아침 조회 때
아침 조회 하러 운동장에 나가서 줄섰다. 집에서 나올 때는 입김이 나오고 춥더만 별로 안 추웠다. 교장 선생님이 교단에 올라가서 말하신다. 다른 학교도 그렇겠지만 쪼까 지겹다. 선생님들도 별로 안 듣는 것 같다. 아이들도 듣기는 듣는 거 같아도 오래 기억 못 한다. 교장 선생님이 “이야기 하나만 더 해 주겠습니다.” 하니 지윤이는 뒤로 돌아보면서 “아” 하며 찌뿌린다. 나도 코를 찌뿌리면서 “흐음” 하며 그냥 웃었다.
우리 교장 선생님은 뭐라 할까? 좀 지식으로 일을 하고 그 틀에 얽매여 사시는 것 같다. 이야기가 꼭 교과서를 읽는 것 같다. 약속 잘 지키자, 한글에 대해서 알아 보자, 독서 많이 하자. 그래도 나쁜 마음을 가진 분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앞산을 한번 쳐다봤다. 교장 선생님 눈치를 보며 앞산을 자꾸 쳐다봤다. 단풍이 멋지다. 한두 가지 색깔이 아니라 제각기 다르다. 산 맨 꼭대기에 있는 나무가 눈에 잡힌다. 그 나무보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좋나?’ 하고 한 마디 했다. 그 나무 바로 위에서 구름이 동쪽으로 조금씩 움직인다.
집에 오면서 앞산을 쓰윽 봤다. 그런데 건물 옆에서 바라보니 학교 지붕밖에 안 보인다. 그래서 뒷산보고, ‘앞산보고 내 간다고 전해 도. 내 간데이’ 하고 왔다. 기분이 좋다. (1999.11.15. 이정언)
김재숙: 저도 이 글을 보면서 공감을 좀 했거든요. 한번은 학교를 가는데 공교롭게 방송조회를 하고 있더라구요. 잠깐인데 교장 선생님 하는 얘기가 제가 듣기도 하나도 재미없더라구요. 저도 처음 조금 듣다가 무시해 버렸거든요. 그러고 나서 이 글 보면서, 같은 어른인 나도 그런데 애들은 오죽할까 싶더라고요.
박미애: 샘은 학교 다닐 때 안 이랬어예?
김재숙: 물론 그랬는데, 그러니까 이거하고는 조금 어긋난 얘기가 될 지 모르겠는데,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고런 부분이 아쉬웠지요.
이혜숙: 어째 정언이는 자연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이승희: 소풍 가거나 이랬을 때, 우리도 책가방 없는 날 해 가지고, 트럭에다 다 꾸깃꾸깃 태워 가지고 숲이나 냇가에 가기도 하고, 학교 뒷산 뻔덕에 가서 기체조도 몇 가지 해 보고, 이런 경험이 있거든예. 그럴 때 나무하고 이야기 주고받고 이런 거 많이 했는데, 다른 애들은 특별하게 이렇게 사람이 아닌 사물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런 글이 별로 없는데, 정언이는 또 있어요. 달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있고.
구자행: 그런 글이 지난번에 있었지요. ‘나는 인제는 풀보고도 이야기하고, 나무보고도 이야기하고, 달보고 별보고도 이야기한다.’ 그런데 요 글 하나만 보면 ‘야가 좀 멋을 부렸네’ 이래 싶지는 않아요?
이상석: 그래. 으, 으.
이승희: 그래요? 나는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이상석: 어. 그래 요거만 딱 보면은 그럴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거는 모르면 그래 되는 거야. 얘 전체 글을 딱 보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얘는 이미 자연을 지 속에 딱 가지고 있는 애야.
박미애: 여기서 그런 걸 다 보여 주는 것 같애요. 이 <아침 조회 때> 여기서, 어른도 이렇게 보기 싫은 거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거 탁 봤을 때, 그거를 삭 좋게 느끼기가 쉽지 않을 텐데 야는 그까지 갔잖아예. 단풍을 탁 보면서, 이내 보기 싫고 이런 걸 제쳐놓고 거기에 마음 탁 줄 줄 아는 거. 저는 거기서 감동을 많이 받았거든예.
구자행: ‘아! 야는 정말 솔직한 마음이야.’ 이래 싶단 말이지요?
박미애: 저는 그걸 자연스럽게 느꼈어요. 얘가 그냥 조회 때 일을 썼는데, 아침 조회 때 교장 선생님에 대한 지 생각, ‘우리 교장 선생님은 이런 식이다.’는 것 말하기 위해서 썼다기보다 그냥 아침 조회 때 이런 모습이었고, 지는 단풍 보니까 좋더라. 저는 조금 자연스럽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놀랜 거는, 어째 그 아침 조회 때 단풍을 보고 이렇게 또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앞산보고 내 간다고 전해도 이렇게 말까지 할 줄 알고. (가운데 줄임)
구자행: 요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서 해 보면, 아까 정언이 글 가운데, 출판사 쪽에서 관념이라고 뺐다는 게 몇 개 있다 했잖아.
이승희: 출판사에서 뺀 게 아이고, 의논해 가지고.
구자행: 그래서 그러는데, 요게 인자 우리가 어떻게 볼 거냐 하는 쪽인데, 나무보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좋나 이래 물은 거하고, 또 앞산보고 ‘내 간다고 전해도. 내 간데이’ 이런 말들이 정말로 마음에서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인가, 그러니까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인가, 아니면 그걸 좀 머리로 썼을까, 요런 것 한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
박미애: 그러니까 여기 보면 ‘나무가 눈에 잡힌다.' 이런 말을 쓴 것은 좀 애 같지 않지만, 야는 역시 표현을 좀 남다르게 하는 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 ‘위에서 내려다보면 좋나? 앞산 보고 내 간다고 전해도' 이런 말이 설마 어디 선생님한테 들은 말이거나 관념으로 했을까예? ‘위에서 내려다보면 좋나?' 특히 이 말, 산보고 지가 정말 이래 자연물을 보고서 그지예?
구자행: 선생님은 저절로 터져나온 말이다 이렇게 느낀 거지요?
박미애: 예. 이걸 보면 관념은 아니다 싶어요. 인디언 글(≪인디언의 지혜≫)도 읽었다 하니까, 얘가 이런 감성까지도 길러졌거나…. 저는 설마 이거야 관념이겠나 생각이 듭니다.
구자행: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낍니까?
이미경: 난 그냥 박미애 선생님 말에 동감해예. 애들 보면 그냥 참 철없고 아무 생각 없는 거 같은데, 순간순간 탁 내뱉을 때, 놀랠 때가 참 많거든예. 그 애 감정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예.
이승희: 관념일 수도 있겠다. 내일 오면 함 물어봐야 되겠다. 듣고 보니까 관념일 수도 있겠다.
이상석: 그런데 이게 탁 튀어나온 말, 정말 지가 절실하게 느낀 말 같으면, 여기에 아무리 활자화 됐고 글자로 써 놔도, 누워서 읽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게 돼.
이승희: 아, 그래 이런 게 있었는데, 이거는 읽으면서 ‘참 말 잘 했네’ 하고 나도 밑줄은 꼬불꼬불 끗기는 끗지만, 머 그게 벌떡 일어나 앉지는 않았어요. 솔직히.
박미애: 저는 여기서 제일 놀랬어요. 나무를 보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했잖아요. 그것도 그냥 우리가 ‘잘 보이나. 니 참 너무 좋다. 나는 차라리 니한테 가고 싶다.’ 이게 아이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좋나?’ 어떻게 이래…
이상석: 나무가 거기에, 산 위에 있으니까.
구자행: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걸 ‘몸으로 붙잡은 빛나는 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 그러니까 저절로 터져나온 말이란 거지요. 예를 들면 애기를 한참 업고 다니다가 내라 놓으니까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 또 우리 회보에 보면 일본 애가 쓴 시에, ‘철봉하는데 내가 한 바퀴 빙글 도니까 바람도 빙 돈다.’ 요래 쓴 거. 그거하고 이래 견주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이혜숙: 이승희 선생님 보기에 어때요? 선생님도 고추나무보고 이야기할 때도 있고 그렇지요?
이승희: 늘 절실한 건 아니지만 달보고 달이 너무 예뻐서 절도 하고, 이랄 때 너무 절실해서 하는 것보다 그냥 머 무심하게 이래 할 수 있거든요.
이상석: 일부러 지어낸 말이 아니란 말이지.
이혜숙: 예, 이럴 수 있겠다 싶어요. 우리는 도시에 사니까 얘 마음을 모를 수도 있어요. 얘는 이게 정말로 터져나올 수 있지요.
박미애: 이걸 일기로 썼는가 글감을 잡아가 썼는가 모르겠지만, 아침 조회 때 있었던 거하고, 본 거하고 생각한 것을 쓰면서, 나무한테 ‘위에서 내려다보면 좋나?’ 그랬잖아예. 이거를 지가 일기를 쓰면서 지어 썼다면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되거든예. 진짜 교장 선생님이 얘기하고 있을 때, 지는 산보고 이런 생각했을 거 같애요.
박선미: 그 글 보면서, 지는 교장 선생님이 조회대 위에서 막 얘기할 때 지겨워서, 듣다가 먼 산도 보다가 하늘도 보다가 그런 장면이 막 눈에 떠오르데. 그라면서 저 멀리 앞산에 나무가 이렇게 있으니까, 나무보고 지는 밑에서 이래 들으니 지겨워 죽겠는데, 니는 위에서 그래 좋나 이거까지는 자연스럽게 충분히 글이 넘어가던데, 끝에 가 가지고 인제 ‘앞산한테 내 간다고 전해도' 이게 읽으니까 이거는 조금 기교를 부렸나 싶기도 하고. 지 나름대로 조금 멋을 내서 끝냈나? 이런 생각은 좀 들데예.
박미애: 저도 오히려 ‘앞산보고 내 간대이’ 이게 더…
박선미: 그러니까 그 앞에까지는 잘 읽어지던데…
이승희: 그래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런데 뒤에 보면 ‘학교 지붕밖에 안 보인다' 하는 거는 실제로 겪었으니까 그래 쓰지 않겠어요.
박선미: 그래 그렇지요. 아니 그러니까 나도 그걸 완전 지어 냈다는 느낌은 안 드는데, 앞에까지 운동장 조회 이야기하다가 이래 내려오면서 그렇게 끝을 내니까, 좀 글의 멋을 살리기 위해서 덧붙였나. 이런 생각은 드네.
이승희: 아침에 조회할 때 산을 보고, 그거 말고는 산 볼 기회가 별로 없지. 교실 안에서 생활하니까. 그러다 보니까 산이 보이니까…. 그래 머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생각했는데, 선생님들 말 들어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진짜.
박미애: 참 산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거 같애요.
이상석: 모든 자연을 다 그래 얘는.
박선미: 옆에 다 친구처럼 그냥 하나로. 늘 이래 하더라고. (가운데 줄임)
늙은 소는 필요 없고 경운기가 필요하다
박미애: 이야기를 이래 넘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정언이 글 가운데 참 자연스러웠던 글이 <소 팔리는 날>이거든예.
소 팔리는 날
우리 개 맡겨 놓는 집 소가
어제 팔려 나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개밥 주러 가면
음매음매 울었는데.
송아지도 여러 마리 낳고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와
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
주인 아줌마가
팔지 말자고
그렇게 매달렸는데
주인 아저씨는
이제 저 늙은 소는 필요 없고
경운기가 필요하단다.
소는 자기가
팔려 가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 아저씨 말대로
고분고분 트럭에 올라탔다.
소가
차에 타고
가만히 기다리는 동안
주인 아저씨는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나는 봤다.
그렇게 냉정하고 인정 없다는
주인 아저씨가 울다니
소가
팔려 갈 때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구경했다. (1998.4.22. 이정언)
이상석: 음 좋제. 그제.
박미애: 눈물이 날 정도로. 이렇게 본 거는 누구나 다 봤을 건데, 어째 이래 썼을까?
박선미: 그래 그러면서 왜, 아니 나는 전체보다는 그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는 거.
구자행: 정언이 시 가운데 이게 참 좋데.
박미애: 예, 참 자연스럽고.
이승희: ‘이제는 늙은 소는 필요 없고 경운기가 필요하단다’ 요런 것은 나는 좀 걸리던데.
박선미: 그래 이런 부분은 나도 좀 그렇던데.
이상석: 왜? 그런 부분이 어떻다고?
박선미: 그 부분은 좀 그렇더라. 걸리더라.
이상석: 들었겠지. ‘소 그거 머 필요하노. 경운기가 인자 필요하지. 일도 못 하고’ 이랬겠지.
이승희: 선생님 그거는 맞는데. 이 전체에서 요 부분이 뭔가 거슬리지 않아요. 나는 좀 그렇던데.
구자행: 그렇네.
박선미: 그래. 요 좀 걸리더라.
박미애: 걸리긴 걸리는데, 그래도 이거는 들은 말을 쓴 거니까.
이상석: 아니 이 말이 있어서 나중에 주인 아저씨가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눈물 흘리는 것을 봤단 말이 살잖아.
이승희: 내 물었거든. 나는 설마 울었겠나 싶어 가지고. ‘너 지어 낸 거 아니가, 진짜 봤나? 그 아저씨 진짜 울더나?’ 몇 번 물었어. 그런데 지가 봤대요.
구자행: 주인 아저씨가 한 말도 물어 보지. ‘경운기가 필요하단다.’ 이 말도 했는가.
이승희: 그거는 내 물어 본 기억이…. 물어봤을 건데, 기억이 안 나는데.
박미애: ‘정언아, 인자 경운기가 필요하다.’ 이래 말한 거 아이잖아예. 지는 들은 거니까. ‘필요하단다.’ 이래 썼지.
이승희: 그렇지 들은 거지. 그런데 모르겠어요.
박선미: 요새 사실 시골에도 소 갖고 일은 안 하거든.
이상석: 촌에서 사니까 얘가 알지. 그라고 또 그런 얘기 들었겠지. ‘소 저거 있어 봤자 쓸모 없다.’ 뭐 이런 얘기.
박미애: 예. 전체 흐름을 보면, 거기가 읽을 때 조금 걸리기는 걸리는데. 저는 그런 거보다 이렇게 본 대로 시를 썼는 게 자연스럽고, 아무 기교도 없이.
이상석: 그래, ‘소가 팔려갈 때 온 동네 사람이 나와 구경했다.’ 이라니까 동네 사람들이 우루 나와 있는 모습이 바로 떠오르더라.
이승희: 그기 나는 더 기교 같더라.
이상석: 그렇더나?
이승희: 그것도 물었어. 이거 내 기억이 나요. ‘진짜 소 팔리는데 동네 사람이 다 나왔나?’
박미애: 당연하지예. 선생님 얼마나 큰 재산 아입니꺼.
이승희: 그건 그런데, 어쨌든 나는 먼가 좀 지는 싹 비끼고, 우리 왜 무슨 카메라 앵글 비치는 것처럼, 뭔가 그래 써서 재주 부린 거 같지. 난 이 시가 썩 마음에 안 들더라.
박미애: 저는 참 자연스럽고 기교도 안 부렸고 본 대로 썼다고 생각되던데. 진짜 이랬을 거다 싶고.
이미경: 그런데 맨 마지막에 이것도 동네 사람들이 막 기뻐하면서 구경한 거는 아니잖아예. ‘서운해하면서 이래 보냈을 건데’ 하는 그 마음이지. 그 마음이라는 거 아닙니까?
이혜숙: 그게 좀 억수로 세련돼 보여요.
이승희; 오학년 때 사월에 썼거든요. 글쓰기도 별로 안 했을 때거든요.
박미애: 그러니까 더 자연스럽다.
박선미: 몰라. 나는 이거 처음 볼 때 기교다 아니다 그런 생각은 안 하고 그냥 요 조금 걸리데. 그기 머 ‘늙은 소는 필요 없고' 그 부분은 걸린다 생각했고…
이승희: 진짜 늙은 소라 한 것도 좀 그렇고. 그냥 그런 소리 안 하고 팔았을 것 같은데.
박선미: 그래. 그 부분은 걸리던데, 전체로 볼 때는 진짜 소 한 마리 팔려나가면 이렇거든.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던데.
이승희: 아저씨를 참 냉정하게 만들어놨거든요. 그런 뒤에 아저씨가 운다 했거든.
구자행: 요 말은 지가 그 옆에서 들은 말이 아니잖아. 옆에서 직접 들었으면 따옴표를 했을 텐데.
이승희: 그래요. 맞아요.
구자행: ‘하단다’ 이 말은 한 다리 거쳐 들었단 말이지.
이승희: 그렇지.
구자행: 그러면 안 걸리지. 이게 평소 어른들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이승희: 그래 그건 맞는데, 글쎄 왠지 지가 표현을 할 때 머 나는 좀 그래요. ‘걸린다’ 이런 뜻이 아니라 나는 어색하더라고, 전체로 좀.
박미애: 그런데 어디 그런 시 있었다 아입니까? 소 팔리는 거 ‘엄마의 런닝구'에 나왔는가. 안 끌리갈라꼬…
구자행: ‘팔려가는 소’
박미애: 안 끌리갈라고, 안 팔릴라고 막 하는 그런 장면도 있었는데, 이기 더 자연스럽더라구예.
이승희: 이 시 써놨을 때 내 자꾸 물었어요. ‘진짜 소가 지가 올라 타더나, 안 올라 탈라고 밀고 이란다던데 그렇더나?’ 이래 물어봤고.
이상석: 어떤 소는 풀쩍 뛰어올라가 그냥 타기도 한데. 타는 거 봤어 나도.
이승희: 눈물 흘리는 거 봤냐? 동네 사람들 다 나왔더나? 사실인가 내가 막 물었는데…
박미애: 아저씨도 소가 팔리는 게 불쌍해서 울었는지 소를 팔아야 된다는 자기 처지가 불쌍해서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울었을 것 같고.
이상석: 이승희 선생 말 들어보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맞아 이게 카메라 앵글이 빠지는 것처럼…
구자행: 그렇기는 해도 지 마음이 많이 묻어 있는 곳이 있는데, 그 세 번째 연에 보면 ‘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 하는 그기에 보면, 지 마음이 묻어 있잖아요.
이승희: 그렇지. 그런 거는 그렇지. 전체가 다 그렇다는 거는 아니고, 요 몇 군데가 나는 좀…
구자행: 마음에 안 들더라?
이승희: 예!
이상석: 얘는 하이튼 감성이 살아 있기 때문에 끝에 가서 한 마디씩 차악착 하는 게, 하아 그 눈이, 마음의 눈이 환하게 열려 있는 애야.
미친년들 공부는 안 하고…
이상석: 나는 이 세상에 평화가 어떤 것이냐, ‘평화’라는 추상어를 설명해라 이라면, <전화기로 들은 소쩍새 소리> 이거야. 함 읽어 보겠습니다.
전화기로 들은 소쩍새 소리
저녁밥을 먹으려고 상 차리고 있는데 진주한테서 전화가 왔다.
“정언아 내 진주다.”
“어, 왜.”
“정언이 니 소쩍새 소리 들어 봤나?”
“뭐 들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정언아, 내 지금 소쩍새 소리 들려 주께. 잘 들어래이.”
“어? 소쩍소쩍거린다.”
“한 번 더 들어 봐!”
“여자 목소리같이 예쁘네.”
“나는 맨날 듣는다.”
“나는 오늘 처음 들었다. 고맙다. 진주야!”
진주를 통해서 소쩍새 소리 들을 줄 누가 알았겠노? 전화기로 소쩍새 소리를 듣다니!
소쩍새 소리가 조용하니 좋았다. 평화로운 마음이다. 진주가 고맙다. 지가 소쩍새 소리 듣고 있다고, 내한테 들려 주고. (1999.5.15 이정언)
이상석: ‘소쩍새 소리가 조용하니 좋았다. 평화로운 마음이다.’ 전화기로 우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어떨까. 야! 참 소쩍새 소리를 듣고 평화로운 마음이다. 우째 요 말이 톡 튀어나올까 싶어. 참 얼마나 평화롭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박미애: 전에 이거 회보에 실렸습니까?
이승희: 문집에.
박미애: 문집에서 봤는가? 이거 보고, 우와! 소쩍새 소리를 어떻게 전화기로 들었을까, 아무리 조용해도 그렇지. 그라고 지가 소쩍새 소리를 촌에 살면서 얼마든지 들어 봤을 텐데 싶기도 하고.
이상석: 도시에서 나도 듣긴 듣는데.
박미애: 예. 들어 봤을 텐테?
이승희: 애들 모르데요.
구자행: 소쩍새 소린지 모르지요?
박선미: 우리 반 애들 지난해 육학년 할 때 보여 주니까, 그냥 한 번씩 이승희 선생님 문집하고 학년이 같으니까 잘 읽어 주는데, 우리 반 애들은 녹음기로 들려 준 줄 알더라.
이상석: 그런데 전화기로 들으면 들릴까?
이승희: 가까이서 들으면 굉장히 커요. 요즘 계속 들리던데, 지금 들릴 건데.
이상석: 문 열어 뿌라.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한번 들어 보자. 풍경소리만 들리네.
이승희: 요즘 자주 들려요. 얼마 전부터 들렸어요. 내가 일기장에 제일 처음 들은 날짜 적어놨는데, 오늘은 안 들리네.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몰랐나. 주로 초저녁으로 많이 들리고.
박미애: 저는 이 글에서 좀 놀랬는 게 그 소쩍새 소리를 들려 줬다고 지 친구보고 참 고맙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구자행: 그것도 그렇지만, 얘들이 그걸 전화로…
박미애: 숙제로 내줬다고 했잖아예.
박선미: 나는 이 전체요. 요 두 사람의 그 장면이 진짜…
이상석: 그것도 평화롭고.
박선미: 예.
구자행: 이걸 숙제로 내준 거라고?
이승희: 아니 숙제가 아니고, 애들이 소쩍새 소리를 몰라 가지고, 하루는 저녁에 내가 들리길래 비상연락을 돌렸어요. 소쩍새 소리 들리니까 들어 봐라. 그런데 그 때는 이 아들이 못 들은 애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에…
이상석: 비상연락망으로 소쩍새 소리 들어라는 선생은…
이승희: 내가 한 번 그러고 나서 그 뒤에 저거가 소리에 관심을 가진 거예요.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진주가 먼저 듣고 정언이한테 전화한 거지.
구자행: 그래, 그기 놀랍지요. 그게 어쨌거나 선생님이 그렇게 했으니까 그래 한 건데. 애들이 그 소리 하나를 가지고 지 혼자 듣기 아까워서 친구한테 들려 줄려고 전화로 ‘한 번 들어 봐라.’ 하는 그 마음이나…
박선미: 난 그 장면이 너무 좋데.
구자행: 또 받아주는 그게 참 놀라운 거지요.
박미애: 예, 맞아요.
이상석: 미친년들 공부는 안 하고… (나머지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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