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아빠 / 이승희

야야선미 2009. 9. 15. 11:18

아빠

 

/산외초등학교 2학년 김양현

 

우리 아빠는 늘 부지런하시다.

일이 많아서 쉴 틈이 없다.

하우스도 산 위에 지으시고

농작물도 많고 일하는 사람도 많다.

아빠는 정신없이 일하셔서

날마다 늦게 들어오신다.

머리도 아프시겠다.

나라면

몸이 다섯 개라도 모자라겠다.

(10.9)

 

  한글날 백일장에 나온 시다. 우리 반 아이 동생인데 이 집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고추, 깻잎, 파프리카, 호박, 상추 따위를 하우스에서 기르는데 일 년 내내 농사가 끊기지 않는다. 2학년 아이가 봐도 몸이 다섯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아이가 쓴 글을 보면 높임말을 많이 쓴 게 먼저 눈에 띈다. 요즈음 높임말 많이 쓰는 게 참 문제다. 사회 전체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가게나 음식점, 물건 고치는 곳들을 가보면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 높이고 있다. “아침 9시쯤 되셔서 오시면 되십니다.” 이런 말투가 보통이다. 거기다 교과서도 한몫 한다. 어른이면 무조건 ‘시’를 붙이고 ‘께서’를 붙인다.

이런 판이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높임말에 절여 사는 꼴이다. 이 시에서도 높임말이 지나치다. 높임말을 모두 빼면 시가 훨씬 살아나겠다.

  그 다음, 이 시에서 짚고 싶은 것은 아버지가 하는 일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점이다. 농작물이 많다,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는 아버지가 하는 일이 뚜렷하지 못하다. 고추면 고추, 깻잎이면 깻잎, 일하는 사람도 물어보니 할머니들이란다. 실제 상황을 또렷하게 짚어 표현하지 못했다. ‘머리도 아프시겠다’고 했는데 왜 하필 머리가 아픈건지 모르겠다. 일이 많아 골치가 아프다 할 때 말하는 머리인가? 아이한테 물어봐야겠다.

그나마 맨 마지막 줄 ‘나라면 몸이 다섯 개라도 모자라겠다’는 말이 있어 이 시가 조금 살아난다. 이 아이만의 표현이다.

  이 시를 쓴 아이는 글쓰기 지도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이 반 담임은 임신을 하여 잠깐 휴직도 하고 지금은 또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담임이 여러 번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 형편에 ‘글짓기’에 빠지지 않고 실제 삶에서 자기 아버지를 그려낸 것만 해도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