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아이들 글보기 / 이승희

야야선미 2009. 9. 15. 11:15

수학

 

/밀양 산외초등 5학년 최승광

 

수학시간에

‘도형의 대칭’ 하는데

도형은 조금 할 수 있어서

해보니 잘 풀어진다.

이런 것만 나오면

천국이겠다.

선생님이 내준

도형 그리기 종이도

내가 좋아하는 그리기, 자르기.

수학시간이

내가 좋아하는

사회시간 같았다.

(11.16)

 

 

● 승광이는 다른 건 잘하는데 수학은 조금 못한다. 또 수학을 싫어한다. 이 시를 읽어보면 수학을 싫어한다는 표현이 없어도 느껴진다. 내가 승광이를 몰라도 ‘아, 이 아이는 수학을 싫어하구나.’하고 알 것 같다.

또 ‘이때까지 하던 계산 문제는 어려웠는데 그리는 문제는 쉽고 잘 풀어진다’는 것을 승광이 만의 표현으로 ‘도형은 조금 할 수 있어서 해보니 잘 풀어진다. 이런 것만 나오면 천국이겠다’ 이렇게 나타내었다.(김창현)

 

● 승광이는 수학 시간에 다른 동무보다 속도가 느리고 선생님한테 다시 물어보고, 머리를 만지고,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한숨 쉬고 한다. 나도 수학 시간이 힘들다. 요즘에는 도형의 대칭을 배우면서 점점 수학이 재미있어진다. 나는 그리기, 자르기 하면 미술이 생각나는데 승광이는 사회시간이 생각나나 보다.

‘이런 것만 나오면 천국이겠다’ 이 부분에서 그동안 수학이 얼마나 어렵고, 도형의 대칭이 얼마나 쉬웠으면 천국이라고 말했을까? 앞으로 또 힘 드는 것이 나오면 승광이가 지금같은 재미가 없어지겠다.(나현정)

● 승광이는 수학 시간을 싫어했는데 도형의 대칭이 얼마나 쉽고 재미있었으면 천국이겠다고 했을까? 도형의 대칭 말고 딴 게 나오면 승광이는 어떻게 할까? 괴로워하면서 할까, 아니면 방법을 찾아가면서 재미있게 할까?(김명섭)

 

 

주인없는 개1

/ 밀양 산외초등 5학년 김상민

 

우리 집 옆 콩밭에 사는 개

우유를 주면 바로 와서 먹는다.

뭐든지 잘 먹는 개

우유는 잘 먹는데

물은 안 먹는다.

자식,

우유 맛을 안다.

우유 맨날 조야겠다.

(11.13)

 

● 상민이가 주인없는 개한테 우유를 줬다. 거기에서 상민이가 착하는 걸 느낄 수 있다. 또, ‘자식, 우유 맛을 안다’ 이 표현이 상민이 만의 표현이다. 마지막에 ‘조야겠다’도 상민이 입말이다.(김창현)

 

별로 재미없는 심부름꾼

/ 밀양 산외초등 5학년 박상언

 

처음에는 심부름을

효도로 생각하고 했다.

그러다가 누나가 끼어들었다.

“물 좀.”

“휴지 좀.”

“전화 받아라.”

그러면서 여섯 달쯤 지나

나는 심부름꾼이 되었고

지금

심부름꾼을 삼 년 동안

지겨울만큼 했지만

누나는 계속 시키기만 한다.

전화는 자동으로 내가 받고

이것저것 달라하면

마음속으로만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짜증을 낸다.

(10.17)

 

● 상언아,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이 표현이 너무 재미있다. 이제 너희 누나가 시키면 ‘돈 주면 해줄게’, 아니면 ‘내가 무슨 기계가? 말하면 척척 해야되게.’라고 말해라. 나도 우리 누나가 시키면 막 인정사정 없이 싸운다. 상언아, 니는 너무 착하다. 학교에서 얘들이 다 니보고 착하다 한다.(이건호)

 

● 상언아, 나도 우리 누나가 나한테 시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쌓인다. 그럴 때 우리 엄마가 그러셨다. 누나 시집 가고 나면 괜찮다고. 그때까지 참자.(장민규)

 

● 3년이나 했다니 대단하다. 상언이가 막내라서 그런 거다. 나도 전화는 뛰어가서 자동으로 받고, 밥 준비도 한다. ‘나는 심부름꾼이 되었고’ 이 부분이 나한테는 와 닿는다. 상언이가 막내라서 어쩔 수 없는 거 같다.(최승광)

 

들꽃

/산외초등 5학년 최승광

 

걸어서 집에 가는 길에

고속도로 밑에 낮은 언덕에

코스모스랑 들꽃이 피어있다.

공사하는 곳 옆에 피어 있어서

시끄럽겠다.

살 곳을 좋은 곳으로 잡지.

하지만 공사 끝나면 되니까

그때까지만 참어.

(10.17)

 

● 승광이는 일기랑 시를 자기 삶에서 끌어오는 것이 잘 되나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김명섭)

● 승광이한테 이렇게 따사로운 마음이 있는 지 난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 이때까지 난 승광이가 얘들을 때리고, 놀리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시를 읽고 승광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장태진)

● 그런 곳에 마음이 가는 것이 부럽다. 나는 집으로 걸어갈 때 아무 곳에 마음없이 집에 빨리 가려고 하는데. 승광이 시를 읽고 내가 잘못된 것 같다.(나현정)

 

* 막상 정리를 하고 보니 그동안 해오던 시 맛보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들 글보기가 결국 시 맛보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좀더 깊이 맛보고 좀더 길게 쓰면 더 좋겠는데. 나는 시쓰기 시간에 두 세편 글을 보여주고 '글보기'를 한 다음 바로 시를 쓰도록 했거든. 그러니까 '글보기'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줄 수 없기도 했고, 또 아이들이 어른처럼 길게 쓰는 걸 어려워하기도 하고, 아직 글을 보는 눈이 충분하지 못하기도 해서 짤막짤막한 글이 많았다. 하지만 때로 핵심을 보는 아이가 있어 그런 글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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