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짜리 기간제 하면서 하나 전학 보내고, 둘 전학 받고,
소풍도 갔다오고, 동학년 한 사람 승진시키고.
그 뒤로 금방 발령받은 신규쌤 데리고 목하 신입교육중^^
왜냐? 우리 학년에 두 반 밖에 없거든.
나? 한 달짜리 기간제.
옆반쌤, 그저께 금요일에 갑자기 교감 승진발령 나서 떠났지.
월요일부터 신규가 발령나서 왔거든.
한 달짜리 기간제 날더러 남은 일주일 동안 부장하면서 신입교육 좀 시키래.
나? 이 학교 온 지 한 달도 안됐거든. 그리고 일주일 뒤에 잘리거든.
뭐 어떡하라고!
좋게 생각해서 쌩쌩한 이 쌤을 예쁜 물로 곱게 들이고 나가면 되겠다 그러고 있지.
오늘은 발령난 지 사흘된 이 신삐 쌤하고 내하고 둘이서 아그덜 데리고 소풍을 갔어.
인자 뭐 하까예? 어째야 됩니꺼만 자꾸 묻는 쌤 데리고,
얼라들 두 반 합쳐 마흔 두명 데리고 오만때만 달리기란 달리기는 다 했어.
가까운 뒷산에 가서 시간이 엄청 많았거든.
얼라들 몇 안되니까 달리기 하나가 너무 금방금방 끝나잖아.
한 사람은 탬버린 흔들고 짝은 눈 묶어서 따라 달리기,
발목 묶어서 둘이 함께 달리기,
그냥 쌩 달리기,
풍선 가슴에 끼우고 달리기,
보자기에 풍선 올려 달리기,
깽깽이로 돌기,
둘이 등 맞대고 달리기,
가위바위보 해서 지면 돌아오기
시간이 남을 때 마다 달리기 종류 지어내느라 진땀났다.
아그들이 무슨 달리기에 그리 목을 매던지^^
두 반에 점수 팍팍 줘서 동점 만들어 줬다가,
한 반이 쪼매 이기게 해 줬다가
애가 타게 했다가 또 동점 만들어주고^^
그렇게 농간 부리는 것도 인자 머리가 딸려서 너무 어려워.
중간에 점수 준 걸 잊어버려서 자꾸 계산을 해야되는 거라.
내려 오면서 집 가까운 애들부터 보내주고
인자 막 학교 왔어.
산비탈에 옹기종기 붙은 집들을 보면서
부산시내에 아직도 그렇게 조그만 집들이 있다는 게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숨 좀 돌리고, 일기장 내 놓고 간 걸 보다가 웃음이 터져나와서 안 올릴 수가 엄따.
<영해의 복권> 2009년 4월 21일 김화영
쓰기 시간에 건미가 영해한테 부탁하는 글을 썼다. 다 쓰고 발표할 차례인데 건미가 발표할 차례가 되었는데 건미가 소리가 너무 작아서 선생님이 한번 더 읽어주었다. 영해한테 복권을 보여달라고 부탁하는 글을 썼는데 너무 웃겼다. 영해는 자기 자리에 서서 들었는데 얼굴이 좀 빨갛게 되었다. 선생님이 영해 니 건미 부탁 들어줄꺼가 했는데 영해가 좀 생각해보고요 했다.
점심 먹고 교실에 왔을 때 아이들이 많이 없어서 그래서 영해가 건미한테 부탁 들어준다고 했다. 영해가 배가 불러서 잘 안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옷을 올리고 배에 힘을 주어서 우리는 봤다. 배에 줄이 조금 생기지만 아이들이 그게 복권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우와 하면서 그랬는데 그런데 나는 그게 뭐 별로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아이들은 그게 뭐가 그래 대단하다고 우와 하는지 모르겠다. 건미도 그냥그냥 했다. 마음속으로는 실망했을 수도 있다. 건미는 부탁을 그렇게 써 버려서 좀 서운하겠다.
이 일기를 쓰기 전에, 어제 우리반 부탁하는 글을 쓰는 시간에 건미가 썼던 글이야.
<보끈 좀 보여줘> (2학년 김건미)
영해야 나는 꼭 부탁하고 싶어. 어제 주노하고 지훈이하고 정건이하고 보끈 보여준다고 화장실에 갔잖아. 나느 보끈이 너무 궁금해서 가고 싶었는데 남자화장실에 들어가서 나는 그래서 남자화장실 앞에서 기다렸서. 좀 많이 기다리도 안나오고 그래서 종이 쳐서 교실에 왔서. 그런데 한참 있다가 영해하고 준노하고 정건이하고 교실에 왔더지? 내가 보끈 봤나 하니까 지훈이가 어 진짤로 보끈 생기더라 해서 나는 또 그래서 너무너무 궁금했서. 영해는 보끈이 어떻게 생기는지 궁긍했써. 영해야, 부탁할게. 나도 보끈 좀 보여줘. 남자 화장실에 가지 말고 교실에서 보여줘. 왜냐하면 나는 여자니까 남자 화장실에 못 들어가서 그래. 교실에서 꼭 좀 보여 줘. 영해야 부탁해. 꼭이다. 나는 내 부탁 한번을 영해한테 썼다. 그러니까 꼭 들어줘. 2009년 4월 21일 김건미드림
정말 간절한 부탁 글 아니가^^ (2009. 4. 22. 부산글쓰기회 카페)
김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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