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주원이가 본 저거 선생은?

야야선미 2009. 4. 3. 13:21

잊어묵기 전에 빨리 쓴다.

점심시간. 아이들 밥 다 받고 맨 마지막에 받고 보니 아이들 옆에 빈 자리가 없어.

아주 안쪽에 고학년 먹고 나간 자리에 빈 자리가 띄어서 혼자 가 앉았지.

아는 아이도 없고, 아는 선생도 별로 없고 혼자 조용히 밥을 먹어.

식당은 언제나 어느 학교나 다 이렇게 분주하고 시끌시끌하지.

시끄러우니까 나도 모르게 밥을 빨리 먹어치우는 거 같아.

좀 먹다가 이러다 체하겠다 싶어 고개 들고 허리도 펴고 좀 천천히 씹으면서 우리반 아이들 있는 데를 찾아봐.

주원이가  식판을 들고 어느 선생님하고 얘길 하고 있어.

잘 안들리는지 선생님은 허리를 조금 굽혀서 주원이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듣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그래.

제법 뭐라뭐라 길게 말하는 것 같더니 선생님이 자꾸 피식피식 웃어.

뭔 말을 하나 싶어 둘을 바라보고 있는데 주원이가 날 봤어.

얼굴이 활짝 피는가 싶더니 바로 쫓아와서 밥그릇을 보여주고 휙 나간다.

밥을 다 먹고 나가려는데 아까 그 선생님이 웃으면서 붙잡는다.

"아까 글마가 어찌나 우스운지요."

주원이 말이지 싶다.

저거 선생님 어디있는지 물어서 너거 선생님이 누고 그랬다네.

"우리 선생님요? 눈이 쫌 큰데요 짝짝이예요. 가만히 있으면 좀 무섭고요. 나이는 백살이라했는데 몇살인지는 몰라요."

이까지만 들어도 하도 웃겨서 자꾸 듣고 싶더라네.

"머리카락 색깔이 억수로 여러가지고요." 

"또?"

"밥 먹을 때 국을 젓가락으로 먹어요. 목소리 작게 하다가 한번씩 억수로 크게 할 때도 있고요."

"잘 모르겠다야."

"아아, 머리를 묶을 때도 있고 길 때도 있고 머리카락 색깔도 여러 가지고 나이는 백살인지 아닌지 모르겠고요 국을 젓가락으로 먹고요 눈 좀 큰 데 짝짝이고요 그래도 모르겠어요?"

"어."

" 안경도 한번씩 끼는데 알이 보라색이예요. 딱 보면 아는데에. 진짜 모르겠어요?"

그러고 있다가 내하고 눈이 마주친 거란다.   (2009. 4. 3. 부산글쓰기회 카페)

 

이래 써 놓고 보니까, 주원이 말대로 그려보면 내 괴물겉다 그자? 09.04.03 13:25
 
난 신데렐란 줄 알았다^^ 09.04.03 13:34
 
끼끼끼, 괴물 맞네. 백살묵은 신데렐라 괴물. 주원이가 야물딱지구나. 머리색도 여러가지고요... 09.04.03 14:44
 
그 백살 묵은 신데렐라 괴물은 젓가락으로도 국을 먹을 줄 아는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는구먼. 09.04.03 14:59
 
주원이는 우리반에서 덩치가 제일 큰 남자아이야. 첫날인가 둘째날에 집에가서 뭐뭐 해 보라고 말을 하는데, 그렇게 긴 말은 못 외운다고 말해서 처음에 좀 얼띠게 봤거든. 그런 녀석이 어느새 내를 이렇게 확실하게 파악했다는 거지.... 09.04.04 12:13
 
하하하하! 주원이 함 만나보고 싶네요^^ 09.04.04 14:06
 
아, 너무 웃겨요. 크크크크크 09.04.05 00:11
 
그래 말해도 몬 알아듣는 선생이 잘못이네 딱 알겠구마는, 참말 웃긴다. 09.04.05 14:45

'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끈 좀 보여줘  (0) 2009.04.22
두 번 물어봐도 화내지 마세요  (0) 2009.04.16
오늘 우리교실  (0) 2009.04.01
아이들이 쓴 수업일기  (0) 2009.02.11
이제 토요일 수업은 안한다  (0) 2009.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