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묵기 전에 빨리 쓴다.
점심시간. 아이들 밥 다 받고 맨 마지막에 받고 보니 아이들 옆에 빈 자리가 없어.
아주 안쪽에 고학년 먹고 나간 자리에 빈 자리가 띄어서 혼자 가 앉았지.
아는 아이도 없고, 아는 선생도 별로 없고 혼자 조용히 밥을 먹어.
식당은 언제나 어느 학교나 다 이렇게 분주하고 시끌시끌하지.
시끄러우니까 나도 모르게 밥을 빨리 먹어치우는 거 같아.
좀 먹다가 이러다 체하겠다 싶어 고개 들고 허리도 펴고 좀 천천히 씹으면서 우리반 아이들 있는 데를 찾아봐.
주원이가 식판을 들고 어느 선생님하고 얘길 하고 있어.
잘 안들리는지 선생님은 허리를 조금 굽혀서 주원이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듣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그래.
제법 뭐라뭐라 길게 말하는 것 같더니 선생님이 자꾸 피식피식 웃어.
뭔 말을 하나 싶어 둘을 바라보고 있는데 주원이가 날 봤어.
얼굴이 활짝 피는가 싶더니 바로 쫓아와서 밥그릇을 보여주고 휙 나간다.
밥을 다 먹고 나가려는데 아까 그 선생님이 웃으면서 붙잡는다.
"아까 글마가 어찌나 우스운지요."
주원이 말이지 싶다.
저거 선생님 어디있는지 물어서 너거 선생님이 누고 그랬다네.
"우리 선생님요? 눈이 쫌 큰데요 짝짝이예요. 가만히 있으면 좀 무섭고요. 나이는 백살이라했는데 몇살인지는 몰라요."
이까지만 들어도 하도 웃겨서 자꾸 듣고 싶더라네.
"머리카락 색깔이 억수로 여러가지고요."
"또?"
"밥 먹을 때 국을 젓가락으로 먹어요. 목소리 작게 하다가 한번씩 억수로 크게 할 때도 있고요."
"잘 모르겠다야."
"아아, 머리를 묶을 때도 있고 길 때도 있고 머리카락 색깔도 여러 가지고 나이는 백살인지 아닌지 모르겠고요 국을 젓가락으로 먹고요 눈 좀 큰 데 짝짝이고요 그래도 모르겠어요?"
"어."
" 안경도 한번씩 끼는데 알이 보라색이예요. 딱 보면 아는데에. 진짜 모르겠어요?"
그러고 있다가 내하고 눈이 마주친 거란다. (2009. 4. 3. 부산글쓰기회 카페)
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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