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아이들이 쓴 수업일기

야야선미 2009. 2. 11. 13:22

<야구 방망이 놀이>  한소영

과학시간에 야구방망이 놀이를 했다. 짝하고 둘이서 하는 놀이다. 첫팜에 내가 이겼다. 꿀밤을 먹였다. 처음에는 시시했는데 자꾸 하니까 재미있었다. 짝지가 노려보더니 2차전 하자고 했다. 또 내가 이겼다. 꼴밤을 때렸다. 진짜 재미있다. 짝지가 이마를 만지더니 화를 냈다. 야구방망이 놀이는 진짜 재미있다. 집에서 동생하고 해야겠다. 아 또 하고 싶다. 재미있는 야구 방망이 놀이.


<야구방망이 놀이와 축바퀴> 최지선

오늘 과학시간에는 빗면과 축바퀴 공부를 했다. 준비물은 야구 방망이 달랑 하나다. 달랑 하나는 아니다. 모둠 마다 한 개씩이다.

처음에는 야구방망이 놀이부터 했다. 짝하고 둘이서 하는데 한쪽 끝을 각각 나누어 잡는다. 여학생이 굵은 쪽을 잡고 남자가 손잡이 즉 가는 쪽을 잡는다. 그리고 둘 다 자기 오른쪽으로 돌린다. 마주 보고 하니까 반대쪽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돌려서 상대편이 돌리는 쪽으로 딸려 가면 지는 것이다.

첫판에 내가 이겼다. 꿀밤 때리기를 했는데 살살하고 봐 줬다. 두 번째에도 내가 이겼다. 나는 그렇게 세게 힘주지 않고 돌렸는데 짝지는 이겨 볼려고 손에 힘을 꽉 주고 용썼다. 그래도 내가 이겼다. 세 번째도 내가 이겼다.

짝지는 슬슬 열을 받기 시작했다. 쉬지도 않고 자꾸 하자고 하더니 화를 냈다. “야, 인자 바꾸자메.” 다섯판 때는 짝지가 굵은 쪽하고 내가 손잡이를 잡았다. 어, 그런데 내가 힘을 주는데도 금방 따라 가 버렸다. 손에 잡고 있는데도 짝지가 돌리는 대로 자꾸 딸려갔다. 짝지가 아싸 하면서 꿀밤을 때렸다. 또 해서 또 내가 졌다. “이제까지 맞은 거 복수다.” 하면서 세게 때렸다. 남자가 쪼잔하기는.

여섯 번째 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해보고 뭐 알아낸 거 없어요?” 잠잠. 우리 반 특기다. 물으면 조용해지는 거.

“그럼 많이 여러 번 이긴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나도 들었다.

“이겼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자기가 이겼을 때 어느 쪽을 잡고 있었는지. 어느 쪽을 잡았을 때 힘 안들이고 이겼지?”

“굵은 쪽요”

“그렇지, 그렇지”

축바퀴 원리를 공부하는데 이런 재미있는 놀이를 하다니. 오늘 공부는 최고다. 공부하는 줄도 모르게 공부했다.

다음 시간에는 축바퀴를 이용한 다른 여러 가지를 공부한다고 했다.


과학 전담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 처음에는 참 허전하고 쓸쓸했다. 수업만 하고 나면 아이들은 물 빠지듯이 단숨에 빠져나가버리고 나는 나대로 부랴부랴 다음 반 맞을 준비하고, 어떻게 조용히 이야기 몇 마디 할 틈도 없다.  아이들은 그럴 마음도 주지 않았다. ‘과학쌤’은 그저 ‘과학쌤’일 뿐 도무지 곁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쯤 지나고 수업일기를 써 보자고 했다. 여학생 두엇이 눈길을 주고 귀담아 들을 뿐 다들 아무런 관심도 없다. 삼학년 때 우리 반 했던 녀석 하나가 궁시렁거린다.

쌤, 또 글쓰기 시킬라고요? 쌤은 글쓰기 밖에 모른대이.

뭐? 내가 글쓰기 밖에 모르노?

옛날에 우리 반에서 쓰다말다 한 수업일기를 골라 읽어준다. 좀 재미있는 걸로 골라서.

이래도 내가 글쓰기 밖에 모르나? 봐라 축구도 하고 노는 것도 마이 했다 아이가?

웃는 녀석들도 있고 아예 듣지도 않는 녀석들도 있다. 내친 김에 다시 분위기를 가다듬고 몇 마디 더 해 본다.

그냥, 너거들하고 좀 통하고 싶어서. 과학 공부만 하고 보내고 나면 내가 너무 쓸쓸해서. 이야기할 시간도 없고. 우짜노? 수업 일기라도 쓰면 너거들하고 내가 여기 과학실에서 사는 모습을 담을 수 있겠다 싶어서. 그거 쓰면 내가 너거들한테 어째하는지, 너거들은 공부 어떻게 하는지 거울처럼 보여줄 거 같다 아이가?

반 넘어가 딴 짓 하는데 이야기도 잘 되지 않고, 어차피 모두를 설득해서 끌고 가기도 어렵겠고, 큰 기대를 안 하겠다 마음먹고 이쯤에서 접는다. 그래도 꺼낸 말이니 모둠별로 돌아가면서 쓰는데, 정말 안하고 싶은 사람은 빼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쓰자 하고 끝냈다. 과학 전담에다, 중간에 나만 끼어들었지, 참 산만하고 선생 안도와주는 이 아이들. 그래도 해 보고 싶었다. 괜히 시작해서 아이들한테 실망하고 기운 빠져 하고 속상해 할까봐 자꾸만 마음을 다진다. 한 둘이라도 소통할 수 있으면 그걸로 고맙지. 한 둘이라도 써서 가져오면 그것 읽고 이야기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면 그걸로 뿌듯하지. 가물에 콩 나듯 가져 오면 어때, 이 모든 아이들이 다 수업일기를 써야 하는 건 아니지.

그렇게 시작했건만 참 어렵긴 어렵다. 써 오긴 써 오는데 서너 줄을 겨우 휘갈기듯 썼다. 마음이 담긴 글이라곤 하나도 없고 써라하니까 쓰는 글이다. 그래도 써오는 게 어디냐, 그것도 고맙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면서 저거들이 쓴 글 몇 줄이라도 읽어주고, 다른 반 글도 읽어주고. 가끔 내가 쓴 수업일기도 읽어준다. 그러다 삼학년 때 우리 반 했던 아이 차례가 오면 은근히 압박을 준다.

너거들은 내 맘 알제? 이거 왜 쓰라는지. 난 너거하고는 마음이 통할 거라 믿는대이.

글쓰기 공부하던 그 때를 생각해봐라. 한 번씩 써 줘야 녹슬지 않지.

그래도 지금까지 받아둔 걸 보면 제대로 쓴 글은 몇 편 안 된다. 넉달 동안 50시간 넘게 수업했는데. 거기다 모두 다섯 반이니 모두 몇 시간이냐.

이 글은 어제 공부한 걸 쓴 따끈따끈한 글이다. 오늘 아침에 와서 슬며시 두고 갔다.

지선이는 삼학년 때 우리 반이다. 요번에 두 번째 차례가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마음먹고 썼단다. 삼학년 때는 꾸준히 쓰고 뭐든 잘 따라와 줘서 이쁘더니. 이번에도 수업일기 쓸 때 들어갈 내용 알려준 걸 참 잘 짚어가면서 써 줬다. 공부 주제, 활동, 준비물, 다음시간 공부할 것 까지. 정말로 반가운 글이라서 당장에 올려본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 정리해 보니까 뭐 때문에 이 아이들한테 과학 수업일기를 쓰라고 했는지, 이 아이들한테 뭐 짜다리 도움이 됐겠나 싶다. (2009.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