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관에서 만나는 아이들 1)
여원이
여기 어린이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은 엄마 아버지가 보내서 오는 아이들이 많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부부가 다 일하러 다니느라 오후에 아이들 돌볼 틈이 없으니 어린이 도서관에 맡기는 집이 많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니까 도서관에 보내는 사람도 있고, 하도 책을 안 읽어서 도서관에서 놀다 보면 책도 좀 읽겠지 하고 보내는 사람도 많이 있다. 유료 도서관이고, 회비도 만만치 않지만 부모 생각에는 책이 있는데서 지내면, 놀더라도 한번쯤은 책을 보지 않겠느냐 싶은 모양이다. 책을 안 읽어도 옆에 책이 많으니까 언젠가는 보겠지요 뭐. 다른 아이들 책 읽고 있으면 지도 한번쯤은 들여다보겠지요. 다른데서 노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엄마도 여럿 있다.
여원이도 그런 아이 가운데 하나다. 엄마 아버지 모두 일하러 나가고, 할머니가 돌봐 주신다고 한다. 여기 도서관 이야기를 듣고, 글쓰기 공부 좀 시켜 달라고 엄마가 ‘혼자 와서’ 접수했단다. 여원이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는 것 보다는 자전거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방과후 축구교실에 가입해서 축구를 하는데, 남학생들하고 어울려서 해도 별로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아이를 엄마가 책 좀 읽고 글쓰기 좀 하라고 시켜놓았으니. 첫날 만났을 때 ‘엄마가 혼자 와서 접수 했다’는 걸 아주 강조하고 강조했다. 겪어보니까 글쓰기며 책읽기를 안 해서 그렇지 아주 하기 싫어하는 건 아니다. 혼자서 틈틈이 책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지, 함께 읽고 이야기하자고 한 것은 꼭꼭 읽고 온다. 글 쓸 때도 못하겠다고 하지 않고 곧잘 쓴다.
그런데 글을 더 잘 쓰게 하고, 책을 많이 읽게 하는 것 보다 더 걱정스러운 점이 자꾸 보인다. 처음부터 반듯하고 제대로 잘 자란 아이만 만나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여원이는 조금 더 걱정스러운 아이라는 말이다. 나하고 글쓰기 공부를 제대로 해보자, 책도 가려 읽으면서 조금씩 생각을 바꾸도록 해보자. 하고 마음먹지만 쉽지 않다. 이야기할 때 마다 자꾸 벽에 부딪힌다. 학교 담임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 만나면서 어떻게 해 나갈지 좀 걱정은 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처음 만나면서 내가 풀어갈 숙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학교에서도 잘 못했던 삶 가꾸기를 이제 학교 밖에서 시작한다. 여원이와 또 몇몇 걱정스런 아이들이 그 공부를 더욱 탄탄하게 해 줄 동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전거 (남문초등학교, 5학년, 여)
자전거는 이번 생일날 생일파티도 안하고 받게 된 선물이다. 1) 처음에는 동생과 같이 써야한다고 했지만 나중에 닌텐도 게임 시켜주면 이 자전거를 나보고 가지라는 말에 알겠다는 말과 함께 자전거가 내 것이 되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학원이며 놀러다니니 걷기가 귀찮게 되었다. 내 자전거는 삼천리고 22인치이며 검은색이다.
할로인 데이때 은혜가 자전거를 넘어뜨려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적이 있었다. 2) 산지 얼마 안된 날이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친한친구였지만 왕따를 시켜 이때까지 왕따가 되고 있다. 그리고 도서실 선생님 미행할 때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 바퀴에 동그라미 모양으로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천천히 가면 ,탁탁,소리가 난다. 버려진 어린이 자전거에서 하나하나 빼서 친구와 이건 우리만의 표시다. 이러면서 달았는데 미행할 때 천천히 가니까 계속 소리가 나서 들킬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또 한번은 사직운동장에 자전거 타러 갔는데 내가 내 자전거를 안탈려고 하니 아빠가 ‘니는 니자전거를 사놓고 쓰지도 않나. 니물건을 사랑해야지.“ 이러셨다.
이제 쓰면서 생각해보니 비록 생명이 있는 생물은 아니지만 자전거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제일 아끼는 보물 1호다. 이제는 더욱 나의 보물1호 나이키 자전거를 사랑할 것이다.
여원이는 5학년이지만, 책 읽는 것도 더디고 글쓰는 것도 문장이 잘 안될 때가 많다. 논술 선생들이 흔히 하는 말로 ‘비문’이 많다. 워낙 자주 안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머리가 나쁜 아이도 아니고, 공부능력이 뒤지는 아이도 아니다. 이 정도 문장 바로 쓰기 공부는 해도 될 것 같아서 글쓰기 할 때마다 한 두 문장씩은 고쳐보기로 마음먹고 있다.
1) 처음에는 동생과 같이 써야한다고 했지만 나중에 닌텐도 게임 시켜주면 이 자전거를 나보고 가지라는 말에 알겠다는 말과 함께 자전거가 내 것이 되었다.
이 문장을 읽으면 하고 싶은 말이 여러 가지가 들어있다. 동생이 같이 써야한다는 말은 아마도 자전거를 사 주면서 부모님이 말한 것 같다. 닌텐도 게임 시켜주면 자전거를 여원이 보고 가지라는 말은 부모님이 한 말 같지 않다. 또 알겠다고 말한 사람은 여원이 일 것이다. 여원이하고 이야기 해보니 역시 그렇단다. 그럼, 이 문장을 몇 개로 나누어 보자. 하고 싶은 말을 나누어서 한 문장에 한 가지씩 들어가게 해보자. 이야기 하면서 입으로 읊어본 뒤에 여원이가 고쳐쓴 문장이다.
⇨ 엄마아빠는 동생과 같이 써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동생이 나에게 닌텐도 게임을 시켜주면 자전거를 나보고 가져라고 했다. 알겠다는 말과 함께 자전거가 내것이 되었다.
띄어쓰기나 다른 부분도 이야기할 것이 많다. 한 번에 너무 여러 가지하면 질릴 것 같아서 문장 고치기만 하나 더 해보기로 했다.
2) 산지 얼마 안된 날이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친한친구였지만 왕따를 시켜 이때까지 왕따가 되고 있다.
이 문장도 앞뒤가 맞지 않고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역시 여러 가지 떠오르는 말을 한 번에 써놓았다. 산 지 얼마 안 된 것은 자전거를 두고 한 말일 것이고, 은혜라는 동무가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던 동무라는 것, 자전거 때문에 왕따를 시켜서 아직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여원이 한테 이 부분을 말로 해보라고 했더니 역시나 내가 애써 읽은 대로 말한다. 방금 말한 것처럼 문장을 하나하나 써 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고쳤다.
⇨ 산지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더 화가 났다. 은혜는 그럭저럭 친한 친구였지만 화가나서 다른 친구들과 왕따를 시켰다. 지금까지도 은혜는 왕따가 되고 있다.
그 다음은 여원이의 생각과 태도다. 사실 처음 글을 읽을 때 이 부분이 더 마음에 걸렸다. 보통 때 한 주 동안 지낸 이야기를 나눌 때도 들어보면 이런 태도가 걱정스러워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다른 아이도 있고 해서 글공부 다하고 따로 앉아 이야기 할 생각으로 이 부분은 뒤로 미뤘다가 나중에 이야기 했다.
은혜라는 아이하고는 그럭저럭 친했다며. 그럭저럭 친하다는 말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데? 학교 마치고 같이 놀러 다니고요, 학원에도 같이 가고, 점심때도 맨날 같이 놀아요. 그럼 제법 친한 거 아이가? 좀 친해요. 그런 동무인데 어쩌다가 자전거 좀 넘어뜨렸다고 왕따를 시키나? 예. 여원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예’ 한다. 이게 숨기지 않고 바르게 말해서 아이가 밝다고 보아야할지, 다른 사람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 기분만 아는 아이라고 봐야할지. 여원이하고 이야기하면 판단이 안 될 때가 많다.
여원이가 말하는 왕따는 어느 수준인데? 정말로 소문에서 듣는 것처럼 아주 따돌리고 괴롭히는 수준은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여원이한테 물어 보았다. 같이 안 놀고요, 앞에 서 있으면 어깨 확 밀치면서 지나가고요. 또? 앉아있을 때 책상 확 밀어뿌고요. 밥 먹을 때 먹기 싫은 거 나오면 은혜한테 다 올려주고요. 숙제 해 놓은 거 있으면 낙서해 버리고요. 그런데 이런 말을 환하게 웃으면서 한다.
여원아, 나는 니 말 들으니까 웃음이 안 나오는데. 너거반 동무를 어째 그렇게 하지? 괜찮아요. 은혜는 그래도 따질 줄도 몰라요. 안 따지면? 안 따지면 그래도 되나? 재미있잖아요. 재미있다는 말에 그만 말이 턱 막힌다. 은혜야, 그래도 그건 정말 아닌 거 같다. 마음이 여러서 따지지 못하는 거지. 너거는 여러 명이니까 은혜 혼자서 따지지도 못하는 거지. 은혜가 학교 올 맛이 나겠나? 그래도 걔는 잘 와요. 오긴 오겠지. 얼마나 힘들겠노? 니가 은혜처럼 되면, 니는 아무렇지도 않겠나? 나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요.
글쓰기 공부 마치고 삽십 분 가까이 이야기를 하는데 하다보면 또 그 자리에 가 있다. 내 이야기 좀 들었다고 금방 생각이 바뀌겠나. 다음에 또 보자. 하고 보내놓고 참 생각이 복잡하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게 해 줄 수 있지? 미안한 마음이라는 것이 들게 하려면? 자꾸 그런 생각에서 뱅뱅 돈다. 그런 이야기를 잘 써 놓은 재미있는 이야기책이나 찾아보아야겠다, 생각하면서 아직도 다른 방법은 못 찾고 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공부가 참 쉽지 않다. (2008.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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