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아니 갑자기라 해야 하나?
“박선미 니가 도와줘야할 일이 있으니 꼭 좀 만나자”하는 전화가 왔어요.
옛날에 같은 학교에서 서너해 지내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감기 뒤끝에 몸도 별 좋지 않고 망설여졌지만 내가 처음 학교에서 교장교감한테 당할 때 옆에서 힘을 주던 분이라 그냥 반갑게 만나기로 했지요.
곧 정년퇴직을 하는데, <퇴임기념문집>을 낸다고 글을 좀 보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같이 일할 그 때, 제가 아이들하고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문집도 내고 그러는 걸 보고 저를 더 챙겨주셨던 것 같아요. 글쓰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더라는 둥, 나도 한때 문학청년소리 좀 들었지 하면서 제 편이 되어 주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걸 생각하니 <퇴임기념문집> 낸다는 말도 영 생뚱맞지는 않았어요. 그동안 학교에서 아이들 만나면서 이런저런 글을 써 놓았겠구나 싶었지요.
제가 그때 함께 했던 한 해 선배도 왔더랬는데, 우리 둘은 또 만나고 또 만나고 하기도 그러니 오늘 만난 김에 다 보자하고 밥도 대충 먹고 글을 보기 시작했지요.
옛날에 가난하게 자라던 시절 이야기, 너무나 가난해서 교육대학도 겨우겨우 다녔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처음 발령받아 어려웠던 학교생활, 그리고 지금까지 학교에서 지낸 일들을 써 놓았더군요.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거예요. 이런 글을 밤늦도록 보아야 되나 싶어 한마디 안할 수가 없었어요.
“교장 선생님, 옛날에 글하고 많이 다르네예. 칼날이 너무 무뎌진 것 아입니꺼? 옛날에 싫어하던 <교장선생님>들의 그 눈하고 똑같은 눈이 된 것 같은데. 이거이거 문체도 너무 느끼한 것이, 아 진짜로 너무 기름진 것 같은데예. 교장 쌤 글은 정신이 번뜩 들게 해주는 예리함이랄까 깨달음이랄까 있었는데. 언제부터 글이 이래 되었나? 교장선생님이 언제부터 관리직이 되셨지요? 그때부터 이래 생각이 달라지셨을까? 이거이거 연구대상이네.”
할배 상처받을까봐 칼날이니 예리함이니 하는 말까지 끌어다 말은 했지만 당장에 덮어버리고 일어서고 싶었답니다.
사실 그 교장선생님 글을 많이 본 것도 아니고, 부산일보던가 국제신문이던가 독자문예란에 두어번 투고한 걸 읽은 적이 있어요. 옛날 그때. 그 글이 그나마 좋았던 기억이 나서 말을 그리했지요.
얼굴빛이 조금 달라지는 듯 하더만 금방 수습을 하고 그러시네요.
“그래, 니가 잘 봤다. 사실은 글도 이거 여름방학 때 모두 다 쓴 거다. 부장들이 하도 책 만들어준다고 그래서 한꺼번에 다 몰아 썼거든. 사실은 나도 이거 시작은 해 놓고 보이 이거 수준이 되나마나 싶더라. 그래서 너거들 안 불렀나.”
“몰아 쓴 거 딱 표 나네예. 글마다 그때그때의 치열함이 없어요. 그냥 옛날에는 이러이러했다는 식으로 그저 회상으로 그치는 글 같은데예. 교장선생님의 문체가 살아나야 될 낀데, 우짜지요?”
너무 심하게 말한다 싶어서, 옛날에 그분이 좋아하던 “치열함”이란 말도 일부러 기억해내서 썼어요.
사실은 고마 접으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 말은 차마 못하고, 우짜지요? 했는데. 교장선생님은 잠깐 회상에 잠기는 듯하더니 그래요.
“그래서 너거들 불렀다 아이가. 우예 너거가 쪼매 손보면 안되까? 사실 안 할라고 하다가 시작은 했는데, 이까지 왔는데 안 할라카이 그것도 또 그러네.”
한자말이나 쓸데없는 외래어 몇 개, 우리말법이 아닌 것 몇 군데 고쳐서 될 일이면 밤 늦게까지라도 보겠는데. 그런데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어요.
고생스러웠던 옛날 일을 쓰긴 썼는데 마음을 울리는 것도 없고, 처음 학교 발령받았을 때 일을 썼는데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그 무엇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아아 정말 고민되데요.
그런데 아닌 걸 억지로 붙잡고 다 고쳐 쓸 수도 없는 일이고, 안 된다 말하고 일어나는 것이 맞는데 또 딱 부러지게 일어서지도 못하고. 참 고민스러운 자리였어요.
“교장 선생님, 옛날부터 써 놓은 글이 몇 편쯤 됩니꺼?”
“그거는 한 몇 편될라나?”
“틈틈이 썼던 글 가운데서 좋은 글을 뽑아 책을 만드는 것이 안 좋겠습니꺼? 책을 만든다 생각하고 글을 쓰니까 글이 글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은데예. 책이란 건 글 읽을 사람을 염두에 둔다는 말 아입니꺼? 글 읽을 사람을 먼저 생각하니 글이 웅변처럼 되고, 교훈처럼 되고, 어떨 때는 넋두리가 되고. 교장선생님이 옛날에 썼던 글에서 느껴지던 그런 울림이 없어져서 안타깝습니더. 시간이 좀 걸려도 교장선생님의 색깔을 찾아서 다시 쓰는 것이 좋겠는데예.
나이든 양반 상처받지 않게 말한다고 내 참 욕봤다. 그래도 일단 그 자리는 마무리를 하고 일어서야겠다 싶어서 그래 말하고, 늦게까지 술 한 잔 사드리고 집에 왔어.
집에 오는 차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나던데, 그 가운데서 우리 글쓰기 회원들 책 낸다고 살아온 이야기 써라는 문제. 이게 오늘 교장선생님 글 보면서 자꾸 사라지지 않는 거야.
우리 회원들이 어떻게 삶을 바르게 세워서 살아갈까, 한 인간으로 바르게 살아가려는 고민도 함께 하고, 그런 공부를 먼저 하고, 또 그런 것을 글로 써서 회원들이 나눠보며 생각을 나누는 것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다음에 좋은 글이 모여서 다른 사람들하고 나누고 싶다면 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맞지. 어떻게 책 만들겠다고 글부터 써서 내라고 하는가 말이야.
그런 삶을 가꾸는 공부는 회원 스스로 모두모두 제자리에서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물론 회원 모두 제자리에서 바르게 살아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꾸준히 공부하면서 삶을 돌아보고 노력을 하겠지만, 올곧게 살아가려해도 흔들리기도 하고, 생각이 조금 빗나가기도 하는 것이 사람 아니던가. 그래서 지역모임도 소중하고 함께 실천하며 서로를 깨우쳐주고 이끌어줄 동무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도 거치지 않고 책을 만들기 위해서 글을 써 내라고, 그 글을 모아 책 만들었다는 실적하나 올리려는 생각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지.
물론 책 만들 계획부터 세우고 글 쓰는 일도 있긴 있겠지. 도감이나 뭐어 그런 지식이나 정보를 앍려주는 책들은 때로 그렇겠지. 전문 작가들도 그렇게 하겠지. 그렇지만 우리는 전문 글쓰기 작가가 아니지 않느냐 말이지.
처음에 회보 광고를 보고, 글쓰기회에서 보낸 메일을 보고 참 기가 막히더라. 그런데 이런 말 하면 함께 하지도 않으면서 딴죽이나 건다고 할까봐서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어. 이사회에서도 아무도 그런 말이 없었던지 회보 광고에는 자꾸 나오네. 글 모으는 날짜를 미뤄가면서 더 모을 모양이다.
지금 비록 술 한 잔 하고 쓰는 글이긴 하지만 이게, 지금 내가 하는 이 생각이 영 잘못 됐을까? 일기에나 써놓을까 하다가 그냥 답답해서 여기라도 올린다. 참, 답답한 일이야. 글고, 동무들. 이 문제 어떻게 생각하는데? 내만 그런겨? (2007. 10. 19. 부산글쓰기회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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