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새 학기는 마음을 아주 다잡으며 시작했다. 한 해를 온전히 한 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한 해만 이 학교에서 일한다는 것, 그것들이 시작하는 내 마음을 다잡게 했다. 학교를 그만 두기 전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기분.
학교를 그만 두고 벌써 세 해째. 그동안 겨우 20일쯤 되는 시간제 강사로서, 때로는 두어 달짜리 기간제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났다. 지난해 2학기에는 여섯 달짜리 기간제 교사로 제법 길게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어떤 목마름 같은 것이 날 괴롭혔다.
그 반 담임이 한 해를 계획하고 학습 훈련이라는 걸 시켜놓았는데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가장 컸다. 내 마음에 걸린다고 싹 뜯어고치고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 한 두 달 만에 담임이 돌아와 다시 처음처럼 시작할 때 아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그런 것들 때문에 담임이 하던 대로 지켜보려고 맘에도 없는 애를 써야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아닌 것 같고 남이 하던 일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늘 목이 마르고 속이 타는 듯 했다. 차츰 정신이 황폐해져가는 듯 했다. 사람들은 그걸 조울증이라고 할까? 기분은 미친년 널뛰듯 종잡을 수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올해는 다시 출발선에 선 자세로 마음을 다잡았다. 한해를 고스란히 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내 마음먹은 대로 공부할 수 있겠구나. 한 해 동안만 일할 테니 눈치도 보지말자. 내 계획에 방해받지 말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아이들과 함께 하자.
내 ‘신분’은 지난해와 똑같다. ‘조건’도 똑같다. 담임이 55일 동안 병가를 내었으니 55일 동안은 기간제 교사, 바로 다음날부터 20일 동안 연가를 내어 쉬니 그 20일 동안은 시간제 강사, 그리고 바로 이어서 휴직에 들어가니 또 기간제교사가 된다. 14호봉 월급을 받다가 한 시간에 1,7000원 시급을 받다가 방학에는 월급이 안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그 따위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한 해 동안 내 계획대로 할 수 있다는 것, 그걸로 만족하자고 마음먹는다. 저거가 그렇게 ‘예산의 효율성’을 따지면 나도 그만큼만 일하면 되지. 학교일에 미치지 않으면 되고 공문에 마음 덜 쓰면 되고 상 받는 일에 정신 팔지 않으면 되고. 오로지 아이들만 보자. 그렇게 다잡으면서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서글퍼진다. 왜 이렇게 ‘다잡아야’하는지.
어쨌든 새 학기는 시작되고 아이들도 만났다. 학교 그만 두기 전 서너 해를 내리 낮은 학년만 해서 그런가, 4학년 아이들인데도 너무나 거칠고 억세다. 그러나 나를 다잡게 하는 건 역시 학교다. 그렇게 깐깐하게 ‘예산의 효율성’을 따지며 조각 조각내어 계약을 하라더니 일을 맡길 때는 그렇지 않다. 한 해 동안 일하니까 한 해 업무를 맡으라는 것이다. 성깔을 제대로 부리자면 시간제 강사로 일하는 동안은 수업 마치자마자 퇴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쯤은 참기로 한다.
교장선생님이 조용히 불러 예능대회를 대비해서 ‘글짓기’지도를 하란다. “예”하고 나온다. 그까짓 것 하든 안하든 이제 내 마음이니까. 예전에 학교 있을 때는 듣도 보도 못한 돌봄교실이라는 것도 맡으란다. 이건 남들이 엄청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는데. 그러더니 공문에 ‘글’자만 붙으면 은근 슬쩍 내게로 다 보낸다. “꼭 참여하기를 희망합니다”하고 진하게 써서 보내는 것도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피이~”하고 그냥 쑤셔 넣는다. 이럴 때는 ‘꿋꿋하게 나를 지키자’고 다잡아야 한다. 보고할 날이 오면 불러서 챙길 테니까. 학력증진이다, 무슨 무슨 시험이다, 행사야, 특색사업이야 ‘우리 반 한 해 농사’를 방해 하는 건 셀 수도 없다.
오늘도 나는 ‘꿋꿋하게’ ‘꿋꿋하게’를 중얼거리며 교무실에 불려갔다 왔다. 양성평등인가 하는 글짓기대회 마감인데 작품을 안 내냐고. 등 뒤에 쏟아지는 뜨거운 눈길을 이겨내고 운동장에 있을 아이들한테로 간다. 아이들은 온 데로 흩어져 펄쩍거리고 돌아다닌다. 어서 오라고 불러 모으다 눈이 번쩍 뜨인다. 아, 정말로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땅가시 나무!하수구를 덮은 철망을 비집고 야들야들한 새 잎을 뾰족이 내밀고 있다. 아이들이 수없이 밟고 다녔을 터인데, 이 메마르고 딱딱한 운동장 어디로 비집고 들었다가 저 하수구 철망 사이로 자리 잡고 나왔을까.
그래, 오늘 바깥공부는 ‘꿋꿋한 생명’이다. 나올 때는 학교 숲을 살펴보고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새잎들도 살펴보리라 했지만 당장에 이걸로 바꾼다. 한바탕 나대고 뛰어다녀 숨을 몰아쉬는 아이들. 겨우 끌어다 앉히긴 했지만 눈길까지 나한테로 데리고 오는 데는 한참 걸린다. 노래 두어 자리 부르고 김밥장수, 춘향이 손뼉, 지글 짝 보글 짝 생각나는 손뼉놀이를 대여섯 가지나 하고서야 겨우 조용해진다.
“방금 궁금해진 게 있는데,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뜬금없다 싶은지 얼굴만 멀뚱거린다.
“좀 생각해 보세요.”
“지지 않는다는 뜻?”
또랑또랑한 바다가 자신이 없는지 끝을 흐린다.
“힘들어도 잘 이겨내는 거요.”
재훈이다.
“으음, 그래. 꿋꿋하다 하면 생각나는 것, 또 없어요?”
“자기 생각대로 하는 거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채연이가 말한다.
“와, 내가 생각했던 거 보다 더 훌륭한 답들이에요. 세 사람 말을 모두 종합해 보면 어떤 뜻이 될까?”
“지지 않고오 힘들어도 잘 이겨내고오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
아이들이 띄엄띄엄 말을 잇는다.
“오늘 바깥공부는 숲과 나무들을 살펴보고 내 동무 하나 정해보려고 했거든. 그런데 조금 전에 내가 어느 나무동무를 딱 봤는데 보자마자 ‘아, 꿋꿋하다. 진짜 장하다.’는 말이 떠올랐어. 여러분들도 오늘 학교 구석구석 다니면서 ‘와 꿋꿋하게 잘 자라네, 어떻게 이렇게 장하게 자랄까’ 그런 생각이 드는 동무를 하나 찾아보기로 합시다. 어때 할 수 있을까?”
“숲에서 찾아야 돼요?”
“꼭 숲에서만은 아니고, 우리 둘레 어느 것이나 다.”
모두 다 알아들었을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달아난다. 학교 과수원길 쪽에서, 저거들이 즐겨 노는 꿈동산 쪽에서 무리지어 다니는데 몇몇은 도대체 무얼 살필 건지 미끄럼틀 위로 올라간다. 두엇은 이순신동상 앞에서 소곤거리고 있다. 저 동상이 꿋꿋해 보이는 걸까? 얼굴을 촉촉하게 해주던 는개가 이제 제법 보슬보슬 내린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교실로 들어왔다. 몰려다니느라 무얼 봤을까 싶지만 비를 오래 맞혀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그림 그려요?”
“글쓰기공책에 해요?”
“숲공부에 해요?”
“발표도 할 거에요?”
들어오자마자 시끄럽다.
“숲공부에 합시다. 어차피 숲공부도 좀 해야 하는데 오늘은 거기다 하지 뭐. 숲공부 꺼내 보세요.”
올해 이 학교는 숲 가꾸긴지 뭔지를 지정 받았다고 숲 공부한 흔적을 만들라고 성화다. <숲공부>라고 학습지도 만들어주고 작은 스케치북도 전교생한테 나눠 주었다. 이왕 하는 글쓰기 공부 여기도 몇 장 ‘해 주는’ 거지 뭐. 이런 데다 힘을 빼고 싶지는 않다. 어디다 하든지 내 뜻한 공부를 하면 되지. 그러나 솔직히 배알이 뒤틀리긴 한다. 억지스런 특색사업이니 뭐니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서. 하긴 학교 그만 두기 전에도 이런 부분에서 심란할 때가 많았지. 나는 내 뜻대로 하느라 했는데, 그것이 용납할 수 없는 ‘학교 업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될 때. 오늘 이 정도는 용납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꿋꿋한 동무 찾아봤어요? 있긴 있었어요?”
“예!”
놀랍다. 몰려다니면서 노는 것 같더니.
“그럼 자기가 찾은 꿋꿋한 동무를 그려보고, 어디에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그 귀한 이야기도 소개해 주세요. 못 본 사람도 잘 알 수 있게 좀 자세히 써 주세요.”
아부하듯이 살살 달래듯이 말하고 아이들을 돌아본다. 벌써 쓱쓱 그리는 아이, 연필 뒷꽁다리만 물고 망설이는 아이, 글 먼저 쓰는 아이. 제법 그리고 있는 모습이 진지해 보이기도 한다. 갑자기 정한 주제인데다가 보기글도, 보기 그림도, 자세한 설명도 없이 그저 ‘감’만으로 시작한 공부라 제대로 할까 싶었다. 순전히 울컥했던 나 때문에 시작한 공부인데 아이들은 제법 빨려들었던 것 같다. 이럴 때 참 고맙고 고맙다. 연필로만 그린 서툰 그림 아래로 꾹꾹 눌러쓴 글도 좋다.
이순신 동상 밑에서 갈라진데가 있는데 거기 아주 빼빼한 풀이 자라고 있어요. 이름은 찾아보아야되요. 흙도 한 개도 없고요 시멘트만 있는데 어떻게 자라는지 참 신기해요. 이제 내가 자주 보면서 물을 부어줄거예요. (정효촌)
아까 선생님이 보고 있던거요. 밑에 더러운 물도 흐르고 철로 된 뚜껑이 있는데 거기서 살고 있는거요. 이름은 조사해 봐야되요. 나는 그게 제일 꿋꿋하다고 생각해요. 냄새도 나고 위에는 꼭 막혀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살잖아요. 손을 내밀었는 것 같았어요. (서주연)
나는 과수원길에서 꾹꾹한 친구를 찾았습니다. 도서실에서 내려오는 시멘트담에 사는데요. 눈꼽만한 꽃도 피었습니다. 아주 작고요 보라색입니다. 선생님한테 물어보겠습니다. 어떻게 거기서 피었습니까? 꽃이름은 무업니까 나는 그 꽃을 꾹꾹한 동무로 정하겠습니다 (이민한)
나는 식물은 못 봐습니다. 그런데 우리반 OO이가 꾿꾿한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OO이는 엄마가 없는데도 슬프다고 안하고 할머니하고 잘 살기 때문입니다. 나는 식물은 아니지만 우리반 OO이를 꾿꾿한 친구로 정해서 사이좋게 잘 놀겠습니다. (구지선)
아이들이 사이로 다니면서 ‘다음 글쓰기 공부는 꿋꿋한 우리 동무로 해야지.’하고 마음먹었는데 지선이가 먼저 해줬다. 준비도 않고 얼렁뚱땅 시작했지만 아이들이 아주 훌륭하게 해 주었다. 화닥화닥하던 내 마음도 잔잔해졌다. (4. 28 는개가 얼굴을 살살 어루만지듯 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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