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꾸는 글쓰기

≪까만 손≫을 읽고 (보리, 탁동철 엮음, 2002년)

야야선미 2010. 12. 2. 02:35

자기를 사랑하고 동무를 사랑하고, 자기들 둘레에 눈길을 주는 아이들이 쓴

≪까만 손≫    보리, 탁동철 엮음, 2002년


아이들과 같이 밭 갈아 곡식을 심고 채소를 가꾸고, 조그만 논에 벼도 심고. 애써 가꾸어 가을에  타작도 같이 하고, 그 벼를 찧어 쌀밥을 지어먹으면서 함께 사는 공부.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일하며 노래 부르며.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바르게 사는 공부를 하면서 지낸 이야기가 그대로 아이들 시에 녹아 있다.

온몸과 마음으로 부딪쳐 겪어 낸 시들. 흔히 말하는 운율도 은유도 없지만 그 어떤 시보다 가슴을 울리고 그림처럼 또렷하게 드러난다. 아이들 시를 보면 너나들이로 사는 온 동네가 보이고, 오색 초등학교 아이들이 환히 보인다.


1. 참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시 쓰기

탁 선생님은 눈으로 귀로 몸으로 그 모습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 참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시 쓰기라고 했다. 제비꽃 다르고, 싸리꽃 다르고, 콩꽃이 다르다. 물 흐르는 소리도 다 다르다. 봄에 눈 녹아 흐르는 소리 다르고, 봇도랑 물소리 다르고, 개울물이 돌에 부딪혀 비껴 흐르는 소리가 다르다. (엮은이의 말 중에서, 223쪽)

그래서일까? 아이들의 시에는 저절로 자연이 담기고 사람들이 담겼다. 참 따뜻하게. 어느 쪽을 펴고 읽어도 모두 다 마음이 머무른다. 어느 어느 것을 골라서 쓰기가 어렵다.



버들강아지는 보들보들하다.

강아지 털같이 너무 보들보들하다.

어우 진짜 보들보들해.

야, 연실아! 이거 만져 봐.

진짜 이뻐.

보들보들해.

강아지 만지는 거 같애.

눈 감고 만지면 진짜 좋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 5학년 이수연 <버들강아지> 2000년 3월 3일, 18쪽

도랑가에 피어나는 버들강아지에 눈길이 머물고, 동무한테 종알종알 얘기하는 아이. 우리 둘레에 눈길을 주는 것부터 시작이다. 아주 작은 것에 눈길을 주고 ‘아, 요것 봐라.’ ‘ 아, 정말!’ 하는 이야깃거리가 터지고 동무에게 어서 얘기해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그대로 시가 되었다.



선생님, 

오늘밤에

창문 열어놓으세요.

어젯밤에

개구리가 막 울었어요.

  - 5학년 최광복 <개구리 소리>2000년 3월 16일, 23쪽

꼭 자연 속에서 살아야만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다. 귀도 열고 마음도 열고 눈도 열어 아주 작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 새 눈으로 볼 때 시가 온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라고 하지 않나. 쫑알쫑알거리는 말 귀 기울여 들어보면 모두가 다 시가 된다. 아이들 시를 읽으면서 내가 먼저 귀를 열고 눈을 뜨고 마음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 꽃이 피었네.

도랑 옆에서 오줌을 누고 있다가

민들레가 꽃 핀 걸 보았다.

저번에 내가 승준이랑 팅팅 볼 가지고 놀다가 그만

꽉 밟은 민들레

잎이 끊어져서 하얀 물이 나왔는데

반이 푹 접혔는데

오늘 오줌 누면서 보니

대궁이 꼬부라지면서 나와

허연 꽃이 피었다.

  - 4학년 양승찬 <민들레> 2000년 4월 17일, 42쪽

오줌 누다가 내려다 본 발밑에 나즈막히 피어있는 민들레. 이렇게 키 작은 앉은뱅이 꽃에도 눈길을 주고, 꽃을 피운 것에 놀라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대견하다. 놀다가 민들레를 밟아 그만 꺾였을 때 얼마나 마음이 짠했을까. 시를 읽으면 그 마음이 곧바로 느껴진다. 우리 둘레 작은 풀꽃 하나 다치게 해놓고 마음을 쓰다가, 대궁이 꼬부라진 채 꽃을 피워낸 걸 고마워하고 있는 마음. 우리 마음밭을 보드랍게 일궈주는 첫 걸음이지 싶다. 하얀 민들레는 찾아보기 어렵던데, 승찬이가 본 민들레는 하얀 민들레였을까?



빨딱고개 가는데

아카시아꽃 냄새가

코로 슝 들어온다.

나는 벚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얼굴에 때가 끼고 방긋 웃는 할아버지가

아카시아 나무를 가리키며

저기도 꽃밭이구만 하셨다.

입을 벌리고

숨을 자꾸만 들여마셨다.

이 냄새를 우리 학교 아이들이

다 마셨으면 좋겠다.

  -5학년 이명준 <아카시아꽃 냄새> 2000년 5월 29일, 65쪽

입을 벌리고 숨을 자꾸만 들이마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젖히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고개를 넘어가다 싱그러운 꽃 냄새를 맡고 동무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도 참 곱다. 늘 지나다니는 길에서 만난 아카시아꽃. 우리 둘레에 그냥 지나칠 것은 하나도 없다.


내일 아침 햇빛 나면

먼저 일어나

창문을 열어 놓을 거다.

  - 5학년 최아름 <장마> 1999년 8월 3일, 103쪽

지루한 장마, 손을 대면 물기가 그대로 묻어 날 것 같은 눅눅함. 그런 말 한 마디 없는데도 그대로 다 묻어난다.



2. 일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아이들


손이 까맣다.

밭일 하고 왔는데

손톱에 흙이 끼어 있네.

온통 흙물이 들었다.

부끄럽지 않은 내 손

나중에 쭈글쭈글하겠지.

할머니가 되면 말이야.

어른이 되어도

부끄럽지 않은 손 될 거야.

  - 4학년 김효정 <까만 손> 2001년 7월 3일, 95쪽


손톱이 퍼렇다.

손도 퍼렇고

손톱이 갈라진 것이 있다.

마디마다 쭈굴쭈굴하고

쭈굴쭈굴한 속에는 퍼렇다.

손톱을 긁으니까

끄르륵끄르륵한다.

나는 내 손이 자랑스럽다.

옥수수밭 매거라 그랬으니까

옥수수는 덕분에 잘 자라지.

나는 그리고

옥수수 먹지

  - 5학년 박명호 <물든 손> 2000년 7월 5일, 96쪽

일하는 아이들. 일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아이들. 시골에서 자랐다고 모두가 이런 마음을 지니지는 않는다. 밭일을 해서 손톱 밑에 흙이 끼이고 온통 흙물이 든 손. 옥수수 밭을 매고 손톱 밑이며 쭈굴쭈굴한 살갗에 퍼런 풀물이 든 손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마음이 참 귀하다. 제 손으로 밭을 매고 키운 옥수수를 먹으면 더 달겠지?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뿌듯하게 여기는 마음을 지니게 하는 교육, 그것이 가장 귀한 교육인데.


화악하고 덮치는 줄 알았다.

불나는 줄 알았잖아.

흩어지고 하나는 합치고

또 흩어지고

와, 뿔처럼 되었다.

깨를 다 털고 불에 집어 넣으니

따다닥 닥닥 따닥

아이고 시끄러워.

강아지 두 마리는 뜨거워서

웍웍웍 운다.

잘 탄다! 하며

아저씨는 옆에서 나무를 팬다.

냄새가 참 구시다.

이런 냄새가 좋다.

불을 한참 보고 있으니

조용하게 작아진다.

  - 5학년 최광복 <깻단 태우기> 2000년 10월 24일, 157쪽

대단하다. 앞뒤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는 글 한 줄 없이도 이렇게 그려낼 수 있다니. ‘그 냄새 참 구시네.’ 하면서 불이 사그라질 때까지 가만히 보고 있는 것. 광복이의 그런 것들이 이런 시를 쓰게 했을 거 같다. 요즘 아이들이 어디 무엇 하나라도 한참동안 잠잠하게 지켜보는 일이 있어야 말이지. 그리고 어른들이야 아무리 바쁘고 고달파도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척만 하면 모든 것이 면제된다는 요즘. 이렇게 어른들을 도와 함께 일하고, 마음을 줄 줄 아는 아이가 어디 흔하냐고. 집안일이고 둘레 자연이고 이웃이고 한 걸음 물러나서 구경꾼 노릇만 해서는 결코 이런 빛나는 시가 찾아오지 않는다.



3. 작은 목숨 하나도 귀하게, 동물도 식물도 모두 내 동무


연못 옆에

산비둘기

한 마리는 나무 위에 앉았고

또 한 마리는 땅바닥에 앉았다.

땅바닥에 앉은 산비둘기가

두리번두리번거렸다.

저거 쫓아야지.

신발 신고 나가서 쫒았다.

아래 밭에 약이 있다.

서울 사람이 콩을 심어 놓고는

비둘기 먹는 약을 놓았다.

  - 3학년 하지연 <산비둘기> 2001년 6월 11일, 80쪽

제 콩 아까운 것만 알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한다. 아니 제 콩 아까운 것 보다, 콩 하나 달랑 심어 놓고 일은 어쩌든지 적게 하려는 도둑놈 심보 가득한 어른들이다. 밭일 같은 건 귀찮고 그저 알곡만 쏙 빼먹자니 가장 손쉬운 방법, 약 놓아서 산짐승들 잡을 궁리나 하지. 그런 도둑놈 심보를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고 신발 신고 달려 나가 산비둘기를 쫓는 아이 앞에 우리 어른이 부끄럽다. 작은 목숨 하나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웅변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준다. 아니 보여주는 게 아니라 바로 그렇게 살고 있는 아이들.


비 오는 공부 시간

창 밖을 보니

두 해바라기 중에

하나가 쓰러졌다.

운동장에 나란히 서 있던 해바라기

바람에 쓰러져

하나밖에 안 남았다.

내가 “해바라기가 쓰러졌다!”

소리치자마자

광복이가 뛰어갔다.

그렇게 연실이와 싸우고

마음이 서투른 광복이가

해바라기로

흙이 튀든 말든 빨리 뛰어간다.

다 가서

쭈그려 앉아 흙으로 덮어 준다.

광복이는 쓰러지지 말라고 했다.

그 뒤 버드나무 위쪽에서

무지개가 잠시 폈다 없어졌다.

  - 5학년 차상훈 <해바라기 세우는 광복이> 2000년 9월 1일, 114쪽

까닭이야 뭐든, 누가 잘못했든 동무랑 싸우고 나면 기분은 영 엉망일 테다. 그런데 운동장에 해바라기가 쓰러졌다는 말에 흙이 튀어 옷을 버리든 말든 단숨에 달려가 해바라기를 잡아 세우는 광복이. 입으로야 둘레 작은 목숨 하나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소중하다 말하기는 쉽겠지. 광복이도 훌륭하지만 그런 동무를 알아보는 상훈이의 마음도 귀하다. 끝에 ‘무지개가 잠시 폈다 없어졌다.’에서 상훈이가 멋을 부렸을까 싶었는데, 다시 보니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인 걸 이 짧은 말로 그렸나 싶기도 하다.


닭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났다.

똥구멍을 벌렁벌렁거리다가

알을

똑!

낳았다.

나뭇잎이 붙었다.

상훈이는 닭이 알 낳는 걸 여섯 번 봤다 그러고

다른 아이들은 닭이 알 낳는 걸 처음 본다고 했다.

닭이 또다시 똥구멍을 벌렁벌렁거린다.

  - 5학년 이명준 <알 낳는 닭> 2000년 9월 5일, 118쪽

아무리 시골에 사는 아이들이라도 알 낳는 모습을 이렇게 자세히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가 직접 보살피고 길러본 식구, 애정이 깃든 식구니까 이렇게 눈여겨보게 된다.


우리 수탉이 장선이네 강아지랑 싸운다.

막 쪼달리다가

번쩍거리던 꽁지털 하나 빠졌다.

벼슬이 더 빨개 보인다.

우리 늙은 암탉도

갈색 벼슬이 축 늘어졌다가 화나면

벼슬이 빨개지면서 선다.

나는 어떨 때 닭이 화났는지 안다.

저 개,

이제 죽었다.


수탉이 쫓아간다.

개가 튄다.

닭은 날면서 쫓아간다.

진짜 높이 날아서

머리 위에 올랐다.

이마도 쪼고 막 쪼니까

깨갱 끼끼웅 하며 도망갔다.

감나무 밑까지 도망갔는데

마을 사람들이 닭 잡은 줄 알고

강아지가 오니까

몽둥이 들고 두들겨 팼다.

개 눈이 풀렸다.


전에는 아궁이에서 자다가 털이 다 타고

또 한 번은 개울물에 휩쓸렸다가 살아서 왔다.

처음 보는 사람은 깨물려고 하는데

‘미니’하고 부르면 안 깨문다.

지 이름은 지가 안다.

  - 4학년 양승찬 <미니> 2000년 9월 8일, 121쪽

미니, 지금 여기 옮겨 쓰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장선이네 강아지 미니를 생각하면 웃지 못 할 일인데도 자꾸 웃게 된다. 우리 집 수탉도 이웃집 강아지도 모두 이렇게 한 동네 사는 이웃이고 동무다. 한 식구처럼 동무처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이런 것도 생생하게 눈에 잡힌다. 어렸을 때 닭과 개가 싸우는 모습은 종종 보았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놓은 시는 본 적이 없다. 좀 어설퍼 보이는 미니지만 지 이름은 지가 아니 기특하지.


돈이 뭘까.

소의 목숨이 이렇게 하찮을 줄이야.

무게를 더 많이 나가게 하려고

소에게 물을 먹인다.

소는 쓰러졌다.

소는 괴로워한다.

아저씨는 꾸역꾸역 먹인다.

사람이 이럴 줄이야

죽이려면 한 번에 끝내지.

배는 뚱뚱하게 부어오른다.

배가 나오니까

마구 때린다.

살이 부풀어오른다.

돈만 중요하다니.

사람이 없다면

동물도 행복할 텐데

동물들아 미안해.

  - 4학년 최초록 <죄 없는 소> 2001년 9월 10일, 124쪽

정말 동물들한테 미안하다. ‘사람들이 이럴 줄이야.’ 이 안타까운 외침을 세상 사람들이 좀 들었으면 좋겠다. 너도나도 맛있게 먹어대는 고기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이런 무지막지한 짓을 해대고,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맛있게 먹는다. 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않고 자기의 눈으로, 생각을 가지고 본 초록이의 마음. 이런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는 것이 바르게 살아가는 교육,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교육이 아닐까.


비가 철철 내린다.

개구리 시체 세상이 되었다.

찻길엔 개구리 시체

조각조각 널려 있다.

나는 찻길로 지나가는데

비린내가 나서 손으로 막고 간다.

작은 생명이 차 때문에 죽다니.

  - 3하년 하지연 <개구리 시체> 2001년 10워 9일, 146쪽

여남은 살짜리 지연이 눈에 얼마나 끔찍해 보일까. 어른인 나도 비 오는 날 즐비하게 흩어진 개구리 시체를 보고 몸이 부르르 떨렸는데. 코를 막아야할 만큼 비린내가 나는 세상. 이 세상이 그렇게 썪은 내가 흘러넘치는 걸 지연이가 알아버린 것 같다면 지나친 감상이겠지. 그러나 바로 내 옆에서 내 발 밑에서 일어나는 일 한 번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는 미친 듯한 세상. 그 미친 발길에, 미친 바퀴에 깔려 죽어가는 수많은 목숨들. 이 시를 보면서 문득 비린내 나고 썪은 내 나는 세상이 더욱 걱정스럽다.


파란 하늘에 검은 매

구름 없는 하늘

어찌나 좋은지

파란 하늘에 온몸을 맡긴다.

쉴 틈 없이

하늘을 빙글빙글

동그라미를 그린다.

나도 좋아서

하늘만 올려다봤다.

매는

단풍든 참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 5학년 차상훈 <매> 2000년 10월 27일, 158쪽

파란 하늘에 온몸을 맡긴 건 매뿐 아니라 상훈이도 그랬던 것 같다. 내게는 좋아서 하늘을 우러러 보는 날이 얼마나 있었을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빙글빙글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단풍든 참나무 숲으로 사라질 때까지 매를 올려다보는 여유. 관심과 사랑. 그것들이 마음밭을 보드랍게 일궈주고 살찌게 만들 텐데. 시골에 산다고 다 이렇게 하늘을 보게 될까? 이것 또한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야할 일일 거다.


아침에 얼음 있나 보러 나왔는데

마당에 닭이 서 있다.

그래서 허리를 만져 주었다.

닭은 멍하니 서 있다.

홍시를 주었다

그냥 쪼아서 먹는다.

배고픈가 보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다.

닭이 내가 안 때리는 걸 알고 있다.

닭은 나를 이해한다.

  - 3학년 최광복 <옆집 닭> 1998년 10월 28일, 161쪽

‘닭은 나를 이해한다.’ 이 말에 입가에 웃음이 번지면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배고파 보이는 옆집 닭에게 홍시를 가져다준다. 닭이 겁먹고 도망가지 않고 홍시를 맛있게 받아먹는 걸 보면서 늘 만나는 동무처럼 마음이 통했다는. 그런 흐뭇한 마음이 읽혀지는 것 같다. 마당에 나온 옆집 닭 한 마리도 이렇게 이웃으로 동무로 만나는 아이들. 부처가 따로 없는 것 같다. 바로 이 아이들이 부처고 하느님이다.


별이 뜬 밤하늘

우리 외갓집 앞길에 쌓여 있는

가랑잎이 반짝입니다.

서리 맞고 쌓여 있던 가랑잎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입니다.

나는 

그냥 메말라 있던 가랑잎도

이렇게 예쁠 수가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 5학년 김유정 <반짝이는 가랑잎> 1999년 11월 26일, 186쪽

바싹 말라서 바스슥 부서지고 쪼그라져 있을 가랑잎. 길모퉁이에 쌓인 마른 가랑잎에서 이렇게 아름다움을 찾을 수도 있다. 시는 특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말을 걸 때 내게로 다가온다는 말이 맞다.



4.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교실에서 자라는 사람다운 마음

  - 전학 오고 가는 모습들; 기웃기웃, 가는 아이 붙들고 우는 모습에서 사람 반가워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아이들 모습이 보인다.

  - 아이들이 싸웠을 때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 따지지 않았고, 서로 사과하라는 말도 않고 벌어진 일을 되짚어 보고, 이야기 나누고, 연극으로 꾸며 보면서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 끝없이 부딪치고, 의논하고, 그러면서 우리들 마음이 부쩍 자라기도 했습니다.

  - 탁 선생이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란다.

     '서로 큰 소리 안 내고 말하자,

     아침에 만나면 반가운 얼굴로 맞아 주자,

     남의 속 긁는 말은 하지 말자,

     서로서로 힘을 북돋아 주는 일을 찾아보자.'



현관에 들어올 때

아름이 누나가 세라 누나보고

“너, 장려상 받는다.” 했다.

상을 받아서 무엇을 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상을 못 받았던 미경이는 손뼉만 치다가

눈물을 찌끔찌끔 흘렸지.

상은 우리를 외롭게 한다.

   - 5학년 차상훈 <상장> 2000년 3월 31일, 30쪽

상 받는 아이를 부러워하거나, 무관심한 척 하면서 시샘하거나. 보통 생각하는 아이들 모습은 그렇다. 상훈이 시를 보면 상을 주는 것도 참 조심해야할 일이라 싶다. 상 받는 서넛을 위해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외로워지고 상처를 받는다면, 안될 말이다. 다른 아이들이 상 받을 때 부러워하거나 시샘하지 않고 눈물 흘리는 동무를 보았다는 것이, 그 마음이 참 귀하다.


나는 천천히 걸어간다.

학교를 지나고 개나리 울타리를 지났다.

예쁜 벚꽃이 있다.

와, 향기가 참 좋다.

화단에 벚꽃보다 더 예쁜 수선화가 피었다.

노란 게 찡그리고 있다.

땄으면 좋겠다.

따서 집에 엄마 주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기운 좀 차렸으면 좋겠다.

또 걷는다.

앞으로 걷는다.

쓸쓸하다.

  - 4학년 박연선 <학교 가는 길> 2001년 4월 17일, 43쪽

다른 시에도 썼는데, 연선이 어머니는 많이 아픈 것 같다. 학교 가면서 곱게 핀 꽃들을 보면서 아픈 엄마를 생각하고, 어서 엄마가 기운 차리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그 마음이 짠하게 다가온다. 휙휙 달려서 오고 가는 길이었다면 이런 예쁜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다. 눈을 들어 둘레도 살피는 그 눈길에, 그 마음에 엄마를 걱정하는 사랑이 닿아있다.


엄마야!

엄마, 왜 안 깨워.

늦었잖아.

어떡해, 미쳤나 봐.

엄마, 밥 두 숟갈밖에 못 먹어.

아, 진짜.

엄마는 어쩔 줄 몰라 돌아다닌다.

아이쿠, 하마터면

버스 놓칠 뻔 했네.


문을 나서는데

뒤를 보니

엄마가 자다 일어나 뻗친 머리를 하고

서 있다.

내 차비 꺼낼 때 같이 나온

만 원짜리 돈을 쥐고

문 밖에 서 있었다.

  - 4학년 김효정 <아침> 2000년 9월 10일, 123쪽

늦잠 잔 아침의 모습을 정말 잘 그려놓았다. 밥 두어 숟갈 밖에 못 먹고 달려나가야 하는 아이, 애가 쓰여서 허둥대는 엄마. 그리고 뻗친 머리를 하고 문 밖에 서서 달려가는 아이를 안쓰럽게 보고 서 있는 엄마. 효정이네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집의 일이다. 어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참 잘 그려놓았다. 제목도 엄마나 늦잠이 아니고 아침이다. 바쁜 아침이 확 다가온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 효정이의 마음이 엄마한테 가 있어 더 이쁘다, 그 마음이.


비가 내린다.

가난한 사람들이 엉엉 우는 것처럼.

  - 6학년 차혜진 <날씨> 1999년 9월 19일, 127쪽

아, 혜진이는 이렇게 비오는 날 어떻게 가난한 이웃을 떠올렸을까? 가까이 있다면 꼬옥 안아주고 싶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은 느낌. 식구들의 아픔이나 이웃들의 상처에 마음이 가 있지 않으면 결코 쓸 수 없을 것이다. 비가 쏟아지듯 엉엉 울고 싶은 이웃들을 보는 그 눈길이 고맙다.


어제 인천에서 손님이 왔는데요.

손님이 장님이에요.

자고 일어나니

그 손님이 이불을

앞을 보는 사람보다 더 잘 개 놨어요.

일 년 전에도 왔는데

설거지를 하더래요.

앞이 보여 기계에 휘말려 사는 사람보다

마음으로 보는 눈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 5학년 최아름 <손님> 1999년 9월 20일, 129쪽

그래, 몸만 멀쩡했지 정신이 병들고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름이는 이 손님한테서 참 귀한 마음을 본 것이다. 기계에 휘둘리지 않고 제 온몸을 부려서 사는 귀한 삶을 깨우치고 있다. 이것이 함께 바르게 살아가려는 교육의 힘이 아닐까? 그런데 아름이네는 무슨 일을 하는 집일까?


양호 선생님 오셨다.

우리는 장기를 했다.

양호 선생님이 온 걸 알고도

우리는 계속 장기 했다.

책상을 보니

시험지가 어지럽게 있다.


1학기 때

내가 쓴 시를 종이에 옮겨

아이들한테 주었다.

광복이 형은 둘둘 말아서 버렸다.

얼마나 기분이 나쁘던지

패 버리고 싶었다.


오늘 두 번째로 느꼈다.

양호 선생님도 공부할 거를 준비해서 오셨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반갑게 맞지 못했다.

인간이 그러는 거 아니다.

  - 4학년 양승찬 < 양호 선생님> 2000년 12월 5일. 193쪽

‘인간이 그러는 거 아니다’ 나는 이 외침이 참 좋다. 인간성 회복, 뭐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승찬이의 이 깨우침이 와 닿는다.


이 시집은 읽을 때마다 접어놓는 자리가 달라진다. 지난번에 접었던 것 펴고 오늘 다시 접고, 또 다음에 읽을 때는 다른 시가 마음에 남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쪽 접히지 않은 데가 없다. 어떻게 이 아이들은 모두 다 시를 잘 쓸까? 어떻게 탁 선생이 만나 아이들은 모두 다 시를 잘 쓸까? 오색 아이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지, 탁 선생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지.

마음에 들어오는 것 모두 다 입을 대자니 끝이 없겠다. 먼저 이렇게 몇 편만 골라 쓰고 보니 부끄럽다. 가만 두면 그것으로 더 없이 좋은 시인 것을. 괜히 입을 대어서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쓰잘 데 없는 소리를.

그러나 이 한 권을 깨씹어 읽으면 읽을 수록 한 가지 남는 게 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동무를 사랑하고, 자기들 둘레에 눈길을 주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탁 선생의 노력!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바르게 사는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은 이렇게 잘 자라고 시도 아름답게 피워낸 것이다.

아, 내게도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