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꾸는 글쓰기

그러나 스스로 훌륭히 자라는 아이들(1)

야야선미 2010. 12. 26. 20:29

  

2. 그러나 스스로 훌륭히 자라는 아이들

 

<하루하루 만나는 것들에 마음을 주면서>

 

날마다 만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잠깐이라도 마음을 주는 아이들이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일부터 가슴을 쓸어내릴만한 일, 아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 날마다 되풀이 되는 듯한 일 따위. 길 가다가 언뜻 본 강아지나 꽃망울, 쉬는 시간에 동무들과 뛰어놀다가 설핏설핏 드는 생각까지. 글을 쓰려고, 아니 둘레에 조그만 관심을 가지고 그때그때 마음을 모아 본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우리들 눈에 들어올 것이고 보일 것이고 마음을 건드릴 것입니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마음을 주고 차츰 더 깊고 넓게 자라 주었습니다.

가끔 글쓰기 동무들이 준 문집을 읽다가 또래 아이들의 글을 골라 읽어주고, 제 동무들이 쓴 글 하루 두 편씩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도록 자리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인 내가 말로 종알거리고 끌어당기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꽃잎이 주루루루 너찌다가요

바라미 부니까요

다시 이로이로 오라가요

쭉 보고 이선는대 엄서져서요

분명히 이섯거든요 (미진. 2007. 5)


버꽃이 한참 올라가다가 저 먼대 가서 널쪄요.

근데요 살살 돌아요 (상현 2007. 5)


나겹이 떨어지면서 바람에 나라간다.

나겹이 하늘을 나는 것 같다.

나는 새인줄 알았는데 땅에 떨어지니까 나겹맞네.

“얘들아 진짜 예쁘제?”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바람에 나라가고 바람에 나라가면서

하늘을 뱅뱅돌고 참 멋지다.

나도 마냑 나겹이라면 예쁜색깔이 되서 새처럼 날고 싶다. (박민영 2007. 11. 5)


나무에서 단풍잎이 비처럼내렸다. 날아다니는 단풍잎은 꼭 새처럼 보였다. 교실에 올 때 발에서 스스슥 소리가 났따. 발을 보니 단풍잎이었다. 오늘은 단풍잎잔치를 햇는거 같다.(황민석 2007. 11. 5)


교장선생님이 말하실대 노란 나옆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노란 낙옆이 뒤에도 오고 오른쪽도 오고 왼쪽동왔습니다. 노란 낙옆이모래바닥에서 돌고 있었습니다. 노란색 한 낙옆은 높이 날아있었습니다. 오늘은 낙옆들이 훌륭했습니다. 교장선생님말이 끝이 났습니다. 머라하는지 몰랐습니다. (신승하 2007. 11. 5)


운동장 조회때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천사가 하늘로 올라갈 때 날개의 깃털이 떨어지는 것 같다. 친구들 모두 소리응 크게 냈다. 선생님이 쉿 쉿해도 그냥 했다. 오늘은 친구들이 상을 많이 받아서 나뭇잎도 기분좋게 날았다. 높은데까지 날아갔다가 충계에 내려왔다. 조로로록 굴불러갔다.(김주난 2007. 11. 5)


<삶을 나누면서 자기 삶을 들여다보고 동무들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아이들>

글을 쓰고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과 나, 또 동무들끼리 삶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눈에 마음에 들어온 것들을 살펴 글로 풀어내면서 동무의 마음도 헤아리고, 어른들한테 서운하고 속상했던 마음도 풀어내겠지요. 동무들이 쓴 글을 함께 읽고 삶을 나누면서 늘 함께 비비고 사는 동무에게 따뜻한 눈길도 한번쯤 더 줄 수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그러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과 문득 밀려오는 감동, 그것들도 느끼게 하고 싶었고요.

교실에서 만나 주고받는 말에서 보다 아이들이 풀어놓은 글을 읽다 보면 아이들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지요. 아이들은 서로의 글을 함께 읽으면서 동무를 더욱 깊이 알게 되고 서로 이해하고 믿음이 쌓여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차츰차츰 아주 조금씩 식구처럼 형제자매처럼 서로 마음을 나누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선하는 엄마가 급식당번 오고 아빠도 급식 당번 오니까 나는 부러웠습니다. 또 성훈이가 엄마하고 아빠하고 시장 보러 갈 때도 성훈이는 좋겠다 했어요. 나도 우리 엄마하고 아빠하고 이혼 안하고 같이 살면 좋겠습니다. 또 비 올 때 엄마하고 아빠가 데리러 오면 참 좋겠습니다.”

또박또박 들리는 재윤이 말이 그대로 내 가슴을 쿡쿡 찌릅니다. 급식을 시작할 때 어머니들이 급식당번 오게 하는 것이 영 마뜩찮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반만 반대할 수 없다는 핑계로 그냥 순순히 따라한 내가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눈물이 핑 돌아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는데 누가 일어나서 말을 합니다.

“재윤아, 우리는 엄마하고 아빠가 이혼 안 해도 맨날맨날 싸워서 안 좋다.”

희진입니다. 제 딴에는 재윤이를 위로하고 싶은 게지요. 희진이 마음이 예뻐서 또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엄마 아빠가 싸워서 밥도 못 먹고 왔다던 희진이입니다. 그런 녀석이 재윤이를 토닥토닥 위로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하고 이혼 안 했는데도 같이 안 산다. 돈 마이 벌 때까지 외할머니 집에서 살아야 된다.”

오현이는 형아랑 같이 외할머니 댁에서 삽니다.

“나는 우리 아빠가 하늘 나라로 가서 가짜 아빠하고 산다. 나도 친 아빠하고 살고 싶을 때가 한 번씩 있다.”

현애는 어머니가 재혼을 해서 새아버지랑 동갑내기 배 다른 오빠랑 넷이 삽니다. 그런데 오빠랑 둘이서 싸우면 엄마한테 저만 혼난다고 학교에 오면 자주 일러줍니다. 지난 주말 지낸 이야기에는 현애가 <오빠하고 싸웠다고 엄마가 화가 나서 둘이 한 구멍에 파 너어뿐다 했다. 나는 무서워서 도망쳤다.>하고 써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녀석입니다.

“우리 아빠는 맨날 술 먹고 와서 싸우자캐서 엄마가 싫다칸다. 나는 아빠가 술을 너무 마이 먹어서 싫다.”

“우리 아빠도 술 먹고 오면 맨날 우리만 혼내는데.”

여기저기서 봇물 터진 듯이 이야기가 터져 나옵니다. 재윤이는 동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앉았습니다. 아직 어린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훌쩍 커 보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 이 아이들은 이렇게 철이 다 들었습니다.

저 녀석들은 재윤이 들으라고 얘기를 쏟아 놓지만, 저는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담임인 저는 아무 것도 주지도 못하고 위로도 되지 못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제 아픈 곳을 다 드러내 놓고 동무를 위로하고 또 위로를 받으면서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요런 예쁜 녀석들을 만난 저는 참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는 다음 시간에 해야겠습니다. 이번 시간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플래시 노래나 실컷 부르다가 그냥 마쳐야겠습니다. (2006년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엄마, 내 입학해서 조와요. 또 부산에 전학와서 조와요. 엄마 그러데 인자 안아프면 조케서요. 인자 투석 안하고 안아프면 조은데. 그래도 걱정하지마세요. 엄마 투석하러가면 내가 오빠 말도 듣고 아빠말도 드르께요. 내가 여자니까 설거지도 배우께요. 엄마 아파서 이모가 집 빌려조서 고맙습니다. 이모 우리 엄마 병원비 다내서 집없다고 집을 빌려줘서 특히 고맙습니다. 우리가 잘커서 이모한테 감사드리께요. 집빌리조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민영 2007. 6)


우리 아빠는 배관설비를 하시는데 늦게오시고 일찍 출근합니다. 그리고 나의 소원은 아플 때나 가고싶을 때 다들어 주십니다. 엄마한테는 안된다고 하셔도 나의 소원은 모든지 들어주십니다. 날씨가 추워서일하는 것이 힘들겠습니다 그래도 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합니다. 나는 산타가 되면 아빠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정민 2007. 12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는 아기 낳았을 때부터 많이 아팠습니다. 또 엄마는 병원에 자주 갑니다. 나는 우리엄마가 안아팠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나를 나두고 죽어버리면 내동생과 아빠 박에 없어요.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을 볼수 없어요. 나는 다친적이 많아요 그래서 멍들었어요 엄마는 약먹고 튼튼해져야 되요 엄마는 워낙바쁘셔요. 왜냐면 아기도 봐야되잖아요. 나는 엄마한테 한번만에 아기 낳는 약을 선물하고 싶어요.(기원 2007. 12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우리 엄마는 몸이 안조으셔서 병원에도 다니고 입원도 해 봤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밥도 해주시고 머리고 묵꺼주시고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엄마가 없으면 전 정말 아무껏도 못합니다. 우리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정말 심심했습니다. 또 시계는 알아도 학권에 언재 가야하는지도 모르는데. 또 엄마가 없으면 계속 나혼자 있어야 합니다. 오빠야는 학원가고 아빠는 회사를 가서 밥도 몬 먹습니다. 엄마는 내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태원을 자꾸 빨리 합니다 나는 우리엄마 신장을 선물로 주겠습니다 병원에 신물나는 우리엄마한테 신장을 선물로 주면 됩니다. 병원에 안가면 엄마도 안아프고 나도 참 좋습니다. (민영 2007. 12 1학년 아이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