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박선미 동화 《욕시험》, 보리, 2009
가슴교육의 첫걸음
‘바보! 왜 초등학교 시절에 나한테 욕 시험을 보게 안 했지, 우리 선생은? 아유 멍청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욕을 해댔다. 책 표지에 그려진, 주인공 ‘야야’와 다를 것 없이 내 얼굴도 뿔이 나서 불그뎅뎅했다.
그러면서 야야의 선생께 박수를 쳤다. ‘정말 용하십니다!’ 그렇게 큰절도 했다. 초등학교 꼬맹이 녀석들에게 주어진 시험문제가 하필 ‘욕을 써라’라니! 그건 현실적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비교육적인 짓거리’일지도 모른다. 묵고 낡아빠진, 그래서 굳어빠진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이라면 ‘반교육적’이라고 푸르락누르락할지도 모른다. 그런 종류의 교장이나 교육감이라면 선생에게 사표 내라고 오두방정을 떨게 뻔하다.
그야말로 기상천외고 천만뜻밖이 아닐 수 없다. 한데도 그럴듯하다. 지당하다. 초등학교나 중학교까지만 해도 명색이 교육이란 게 아이들 ‘머리 가꾸기’(대갈통 가꾸기?)에만 홀려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비교육적이고 반교육적이다.
그맘때, 그만한 나이의 피교육자에게는 ‘가슴 가꾸기’에 겹쳐서 ‘가슴 풀기’가 큰 몫을 다해야 한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교육자가 혹 있다면 그야말로 반풍수다. 소녀소년들로서는 가슴 가축하기가 학교 다니면서 자라는 데서 누릴 가장 으뜸가는 보람이기 때문이다. 한데도 오늘날은 학교도 학부모도 다들 ‘머리 가꾸기’에만 악을 쓰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나마 이미 정해진 정답을 달달 외워서 사진 찍듯이 베끼기를 위주로 하니, 아이들 머리는 복사기로 꼬라박히고 만다. 그런 식으로 흉측한 ‘머리 교육’을 해서는 고등학교는 대학에 학생 밀어넣기, 중학교는 고등학교에 쑤셔넣기로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다.
한데 초등학교 과정에서 중학교만이 아니라 고등학교와 대학 가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하면 내가 눈이 먼 걸까? 학교보다는 학부모들이 그렇게 악을 쓰고 용을 쓰고 있다고 하면 무슨 당치도 않는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그 틈을 타서는 학교 저리 비키라고 학원이 노닥거리고, 활개치고 있다고 하면 악담이 지나친 걸까?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미 그 꼬락서니를 하고도, 하필이면 우기는 소리가 먼 미래를 내다보는 ‘백년대계’라니 억장이 무너진다.
그렇게 삐뚤어진 ‘머리 교육’이 학생들 가슴을 짓눌러서는 멍들고 멍에가 끼게 한 것이다. 정서, 감정, 그리고 가슴이 응어리지게 강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소년소녀들을 위한 교육을 ‘욕 시험’의 주인공, 야야의 입을 빌려서 퉁을 준다고 하면 ‘거름에도 못 쓸 놈’ 꼬락서니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들 응어리진 가슴들을 풀기 위해서 야야의 담임선생께서는 ‘욕 시험’을 치게 한 것이다. 그것은 이 땅의 일그러진 ‘머리 교육’에 한 방 먹이는 게 된다. 가슴 교육 제대로 해서 인성 교육 올바르게 하자는 것이 된다. 욕은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다. (金烈圭, 국어학자)
창비어린이 26 (2009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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