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야야선미 2011. 1. 12. 02:30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로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거리에 유난히 작고 가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뒹구는 것은

새들로 하여금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작고 가늘게 부러지지 않고

마냥 크고 굵게만 부러진다면

어찌 어린 새들이 부리로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하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인간의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겠는가    --- <포옹> 정호승 시집, 창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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