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의 즐거움 / 김중철
1. 소리의 울림과 읽어주기
어찌해야 어린이에게 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할까요? 누구나 이런 문제에 고민하지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자는 몰라도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이야기를 들려 주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란 어렵다는 생각, 여기서 우리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글자를 아이들에게 빨리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요. 이런 욕심이 앞서다 보니 막상 아이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기 전에 책이 지겹게 느껴지겠지요.
책을 즐기기 전에 말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이 의성어나 의태어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지요. 생활에서 어린 아이들과 말을 할 때 자주 쓰는 말들입니다. 소리의 울림을 즐기게끔 의성어나 의태어는 말로 들려 주어야 그 맛이 더 살아납니다. <딸랑귀신>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좀 길지만 읽어 보겠습니다.
하얀 토끼는 잠자는 호랑이 꼬리에 아기 방울을 달았어요. 호랑이는 꼬리가 간질간질해서 살짝 움직였어요. 아기 방울이 딸랑 소리를 냈어요. 꼬리를 또 살랑 움직이니 방울이 딸랑 소리를 냈어요. 호랑이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어요. 딸랑 호랑이가 살그머니 뒤로 돌아보니 따알랑 호랑이가 재빨리 앞으로 돌아보니 딸랑딸랑 딸랑딸랑 호랑이가 겁이 나서 돌아보고 돌아보고 돌아보니 아기 방울이 신이 나서 소리쳤어요. 딸랑딸랑 딸랑딸랑 딸랑딸랑 “아이고 호랑이 살려, 딸랑귀신이다!“ 겁먹은 호랑이가 쌩 도망가고 아기 방울은 더 신이 나서 무서운 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딸랑딸랑 딸랑딸랑 누구 창자 빼 먹을까 딸랑딸랑 딸랑딸랑 누구 창자 빼먹을까. “아이고 무서워, 딸랑귀신이 내 창자 빼 먹는다!”(<딸랑귀신>, <<호랭이 꼬랭이 말놀이>>, 오호선 글)
이 글에는 ‘딸랑’이란 소리말이 15번이나 나옵니다. ‘살랑’이니 ‘쌩’이니 하는 말들이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아주 일관되게 ‘딸랑’이란 말이 되풀이되면서 방울 소리의 느낌을 즐기게 되겠지요. 이렇게 그냥 말이 즐겁게 귀에 울리면 되겠지요. 하지만 아무렇게나 의성어나 의태어를 마구 쓰면 되는 건가요? ‘까꿍’이란 말을 즐기는 시기가 있듯이, 어떤 말도 이야기 내용과 결합해야 그 맛을 더 즐기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호랑이 처지에서 보면 그야말로 아기방울이 귀신이 될 정도로 징그러워야 합니다. 아기에게는 아기 방울 소리가 재미있지만, 꼬리에 달려 떨어지지 않고 소리내는 아기 방울은 호랑이에게는 지겨운 소리지요. 아니 귀신이 달라붙었다고 생각할 정도지요. 그러니 그 소리가 귀신이 달라붙었다고 느낄 정도로 자꾸 되풀이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징그럽다고 느끼겠지요. 호랑이의 공포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이야기를 즐깁니다. ‘딸랑’ 소리에 취해.
이런 즐거움을 주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의성어나 의태어를 쓴 책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말이 이야기와 연관되어 재미를 주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상투화된 말, 아무런 재미도 주지는 못하는 말이란 그 울림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앞서 ‘까꿍’이란 말에 그 시기가 있다고 했는데, ‘시냇물이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갔다’ 하는 노래말이 즐거움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시냇물은 ‘졸졸졸졸’이란 말은 이미 상투화된 말이겠지요.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한번 들어보세요. 얕은 개울물, 돌이 많은 개울물, 어디에든 아이들과 함께 그 소리를 직접 들어보세요. 들을 때마다 그 소리는 다를 겁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쓴 글을 한번 보지요. ‘방에서 공부 하고 있으면/ 개구리들이/ 자기 목소리를 서로 뽐내려고/ 괴괴괴괴괴괴괴괴/ 뽀르르르 뽀르르르 뽀르르르 뽀르르르/ 가가가가가 가가가가가 가가가가가/ 노래를 불러요.// 곽곽곽곽 우는 개구리는/ 내가 낮에 개구리 알을 가져갔다고/ 욕하는 것 같아요’(<개구리>, 3학년 최기석 글, <<요놈의 감홍시>>에서)
좋은 글이란 우리가 듣는 소리를 딱 집어낼 때 공감하게 되고 그 즐거움을 느끼게 되겠지요. 좋은 동시에는 이런 말이 많이 있지요. 백창우의 동시 노래집이 우리에게 소중한 까닭은 이런 말의 감각을 노래로 살려냈다는 점일 테고, 아이들은 먼저 이런 말의 즐거움을 노래로 익히면 좋겠지요. 동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억지로 외우는 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자연스레 노래로 익히면 저절로 외워지는 거지요. 그런 훈련이 있은 다음에야 글로 읽는 재미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이런 말의 즐거움은 옛이야기에서 먼저 쉽게 만나게 되고, 그 다음에는 현덕이나 백석의 글에서 만납니다. 이런 글들은 무엇보다 먼저 읽어 주어야 그 맛을 한결 더 느끼게 됩니다.
물론 현덕의 글은 눈으로 읽어도 그 맛을 느낍니다.
골목 안에 펄펄 눈이 내립니다. 펄펄 눈이 내려 지붕도 나뭇가지도 길바닥도 모두 하얗게 되었습니다. 아주 하얗게 더 하얗게 만들려고 눈은 펄펄 자꾸만 내립니다. (<토끼와 자동차>, <<너하고 안 놀아>>, 현덕 글)
‘펄펄’이란 말이 문장 속에서 위치를 바꾸어 그 맛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맛은 현덕의 글에 아주 많습니다. 백석의 <개구리네 한솥밥>은 한 편의 시를 되풀이 형식으로 구성해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아이들은 한 편의 시를 되풀이해서 들으면서 의성어나 의태어의 변화를 즐기고, 이야기에 빠집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책에 앞서 말로 이야기를 즐기는 단계가 먼저입니다. 물론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이런 말의 즐거움을 먼저 느끼게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2. 움직임과 공간의 확대
글자를 읽으면 그 글자가 나타내는 그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 이런 맛 때문에 글을 읽는 거겠지요. 내가 아는 사실이든, 내가 처음 보는 풍경이든 말이에요.
그런 암탉들이 가끔 야야를 웃겨. 탱자나무 울타리 밑에서 흙을 파헤치고 놀거나, 담장 아래서 햇살을 쬐고 졸다가 알 낳을 때가 되잖아. 그러면 살찐 궁뎅이를 실룩거리면서 알 자리로 바쁘게 달려가. 그런데 너무 급한 나머지 마당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추거든. 궁뎅이에 힘을 한번 준다 싶어. 그러면 하얀 알이 쑤욱 빠져 나와. 그래 놓고는 지 알을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놀던 자리로 돌아가 버려. 야야는 요리 씰룩 조리 씰룩거리고 바쁘게 가는 암탉 살찐 궁뎅이가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어.(<<달걀 한 개>>, 박선미 글)
이렇게 암탉의 움직임을 쓴 글을 읽으며 아이들은 그 모습을 떠올립니다. 아이들은 하루하루 지내면서 여러 사물을 봅니다. 그런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글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낍니다.
어린이문학에서 좋은 작품은 1) 재미있어야 합니다. 2) 글이 쉬워야 합니다. 3) 느낌을 주는 (감동을 주는) 글이어야 합니다. 글의 재미는 말의 울림이 좋거나, 이야기 자체의 힘에 달려 있습니다. 책마다 주는 재미가 다 다르니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여기서는 글이 쉬워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쉬운 글이란 단순히 아이들이 아는 말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연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표현이 담긴 글을 말합니다. 오감, 즉 먹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는 것을 표현한 글을 말합니다. 이런 글이 담겨야 아이들에게 더 다가섭니다. 어른들은 행복이니 우정이니 평화니 하는 말만 늘여놓은 글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아직 그런 관념을 알지 못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런 관념을 하나하나 익혀 나갑니다.
우리는 책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을 합니다. 상상력이란 무엇일까요? 상상하는 힘. 상상이란 공상과 다릅니다. 어찌 보면 모든 일은 자기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지고 맛보는 일에서부터 나옵니다. 자기가 보지 않은 일을 어찌 생각해 낼 수 있을까요? 아이가 책을 읽고 그 장면을 그림으로 머리 속에서 그려낼 수 있는 힘이 상상입니다. 그래서 상상은 즐거움입니다. 책을 읽고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그 때마다의 장면 속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사물을 보고 어떤 모습인지 잘 표현한 글이야말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어린이문학을 보여주는 까닭은 아이들이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나 장소를 만나게 해준다는 점일 겁니다. 자기가 가보지 못한 곳을 책 속에서 가본다는 즐거움. 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백석 글은 공간의 이동을 알기쉽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아이들이 즐겨 이야기를 받아들입니다. <개구리네 한솥밥>에서 개구리는 형 집으로 쌀을 얻으러 갑니다. 길가 도랑(소시랑게)을 지나 논두렁(방아깨비)-길 복판 땅구멍(쇠똥구리)- 길섶 풀숲(하늘소)-웅덩이(개똥벌레)를 지나 형 집으로 간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 여행으로 여러 인물을 만나고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를 잘 해결해 갑니다. 인물들과 공존해 가는 삶의 모습을, ‘길’이라는 공간에서 보여 줍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겠지요. 이렇게 공간이 바뀌면서 아이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손쉽게 따라갑니다. ‘움직임’이 드러난 구성. 이런 빠른 움직임이야말로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몸을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 말입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 또한 움직임이 잘 드러난 이야기입니다. 양계장에서 버려진 암탉이 닭장을 나와 마당(헛간)으로 갔다가 그곳에서도 쫓겨나 들판-저수지로 돌아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개구리네 한솥밥>이 공존의 삶을 그렸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자유를 그린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는 모두 ‘길’을 떠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삶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갑니다. 생활 공간이 아주 좁은 어린 아이들에게 세상은 넓은 곳이고, 다양한 삶이 펼쳐지는 공간이란 점을 일깨워줍니다.
3. 어린이에게 힘이 되어 주는 문학
어린이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꽤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 책을 골라줘야 하는 부모와 책을 평가해야 하는 비평가나 연구자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하나의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어려움이 있지요.
타운젠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 작가들은 늘 스스로를 4개의 특성 가운데 하나 이상과 관계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 특성들은 1) 적합 2) 인기 3) 관련 4) 장점입니다.” 앞의 3개는 어린이-중심이고, 책을 사 주어야 하는 부모에게 필요한 물음입니다. 4)는 책-중심이고, 문학 기준의 본질입니다.
문학 기준의 전통적인 방식은 구성, 인물묘사, 배경, 주제, 문체 들입니다. 그 가운데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요.
우리가 책을 읽고 책 속의 주인공이 머리 속에 남으면 그 책은 좋은 책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만큼 매력이 있었을 테니까요. 어떤 인물이 기억이 나지요?
자, 나이별로 대충 이런 인물상이면 좋은 책의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옛이야기의 인물을 볼까요? 이름이 있나요? 이름이 기억나는 이야기는 별로 없어요. 오히려 인물은 아주 단순하지요. 마음씨 착한 혹부리 영감과 마음씨 나쁜 혹부리 영감. 흥부와 놀부 식이라고 할까요? 인물이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 있지요. 어린 아이들은 이런 인물을 좋아하지요. 아직 현실을 잘 볼 수 있는 눈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명해야 되지요. 이야기가 단순한 까닭은 그만큼 인물이 이렇게 쉽게 구분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러다 아이는 개성이 뚜렷한 인물을 좋아하지요. 특히 동물의 특성을 살려 하나의 개성을 지닌 인물을 하나하나 익히게 되지요. 돼지 한 인물만 보더라도, 꿀돼지나 욕심꾸러기로 상징되다가 점차 돼지가 <우정의 거미줄>에서처럼 사랑스런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익히게 되지요. 그러면서 현실의 사물이나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측면이 있지요. 그러다 고학년이 되면 인물은 아주 복잡한 성격을 지닙니다. 현실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각기듯이. <보물섬>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주인공 짐일까요? 아니지요. 더 기억에 남는 건 해적 애꾸눈 존 실버지요. 왜 해적이 기억에 남을까요? 나쁜 놈인데. 나쁜 놈을 우상시해서는 안 되지요. 그런데 글을 보면 실버는 나쁜 점만 있는 게 아니지요. 착한 면이 있고 그런 점에서 기억에 남는 거지요. 짐 역시 착한 점만 있는 게 아니라 짐이 보물을 보는 순간 욕망이 일어나는 나쁜 측면도 있지요. 이렇듯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인물도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흔히 구분하기 쉽지만, 현실의 사람은 이런 두 가지 점이 모두 들어있지요. 이렇듯 문학을 통해 아이는 다양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 속에서 아이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나쁜 측면을 어떻게 없애고 좋은 면을 드러낼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배웁니다.
특히 어린이문학이 소중한 까닭은 이런 인물들이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준다는 점에 있을 겁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와 늘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행복을 늘 지켜주지도 못합니다.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움에 부딪칠 겁니다. 연애 문제에 부딪칠 때도, 입시에 떨어져 좌절할 때도, 집이 가난해 사고 싶은 걸 사지 못할 때도 있지요. 이 하나하나의 어려움을 부모가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문학은 아이 스스로 그 해답을 찾는 겁니다. 가난하다고 좌절하는 어린이에게 <몽실언니>는 큰 힘이 됩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아이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해줍니다. 앞서 말한 <푸른 돌고래섬>은 아이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가는 힘을 길러 줍니다. <호비트의 모험>은 자기가 약하고 재주 없고 능력없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네 마음 속에 강하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알아가도록 도와 줍니다. 이런 문학을 성장 소설이라고 하는데, 아이에게 성장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이가 올바로 성장하는 비결을 어린이문학은 드러냅니다.
말괄량이 삐삐. 우리 어른들이 어릴 때 좋아하던 아이입니다. 어른이 되어 이 책을 보면 아이에게 권해주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많지요. 왜 그럴까요? 이 삐삐라는 아이는 제멋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버릇없다고 생각하는 아이입니다. 어린이는 삐삐처럼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자유로움 속에 세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고, 자신있게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특히 우리 문학에는 여자 아이 주인공이 적습니다. 옛이야기에도 여자 주인공은 별로 없습니다. 외국문학이 우리에게 더 소중한 까닭은 이런 여자 주인공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산적의 딸 로냐>도 그렇고, 인디언 소녀 칼라안도 그렇습니다. 21세기에는 여자도 자기 일에 전념할 수 있고 남자보다도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겁니다. 남자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여자아이에 대한 차별도 이런 책을 통해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권의 책이 자기 능력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킨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아주 밝을 겁니다. 책을 보는 까닭은 입시에 도움이 된다든지 지식을 잘 알 수 있게 도와준다든지 하는 좁은 목적이 아닙니다. 어린이가 살아가는데 자기에 대한 자신감, 흔히 정체성을 찾는다든가 다른 사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무너뜨리는데 도움이 되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양한 책을 다양한 나라의 책을 보여주는 까닭은 이 때문입니다. 19세기의 세계명작에서 벗어나 이런 새로운 인물을 만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보림)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 새겨두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쿠슐라가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쿠슐라가 고통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책 속에 나오는 등장 인물과 따뜻함과 멋진 색채가 쿠슐라 옆에 있었다. 혼자 힘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쿠슐라에게 세상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쿠슐라를 사랑했던 어른들도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쿠슐라만이 아는 어둡고 외로운 곳으로 쿠슐라와 함께 갔던 것은 책 속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뿐이었는지도 모른다. ..... 쿠슐라가 만 3년 8개월이 되었을 때 한 말에는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말을 할 때 쿠슐라는 두 팔로 인형을 안고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소파 옆에 앉아 있었다. ‘이제 루비 루에게 책을 읽어 주어야 해. 그 애는 지쳤고 슬프거든. 루비 루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고, 책을 읽어 주어야 해.’ 이러한 처방은 어떤 아이에게나 필요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든 없는 아이든.”(136-137쪽에서)
'책 읽다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야기할 거리 - [어린이책은 사기다] 전성희의 <거짓말 학교> / 이계삼 (0) | 2012.05.11 |
---|---|
카르페 디엠의 계절(모셔온글) (0) | 2011.05.20 |
마음을 울리는 글 -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1854년) (0) | 2011.03.10 |
탁 선생 교실 엿보기 - 새 눈 (동시마중 창간호에서) (0) | 2010.11.09 |
책 읽지 마세요 (모셔온 글) (0) | 2010.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