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내 동무 해 줘서 고마워 <학교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보리/박선미)>에서

야야선미 2006. 4. 24. 09:09

“남생아 놀아라.”

“촐래촐래가 잘 논다.”

첫 시간에 노래를 배운다. 내가 앞소리를 하면 아이들이 뒷소리를 한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앞소리 지어내면 그거 받아서 내가 뒷소리를 이어간다. 노래는 그렇게 다 익혔다.

다음날, 둘째 시간. 내가 북 치면서 소리하면 저거는 그 소리 듣고 나와서 춤을 춘다. 다같이 손을 잡고 둥글게 섰다. 하은이는 짝지 소맷자락만 두 손가락으로 겨우 잡았다. 동그라미 끊어지지 않게 꼭 잡으라고 해도 소맷자락을 잡은 두 손가락만 꼬물거리고 만다.

“노란색 나와라.”

“촐래촐래가 잘 논다.”

처음에는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옆에 동무를 흘깃거리며 망설이더니 한 아이가 먼저 나서니 여기저기서 뒤따라서 나온다.

“빨간 양말 나와라.”

“촐래촐래가 잘 논다.”

“파란 바지 나와라.”

“촐래촐래가 잘 논다.”

그런데 웬걸, 서너 번 하고나니 양말에 빨간 점만 있어도 나오고 바지에 파란 줄 한 줄만 있어도 뛰어나와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몇 번 부르다가 살짝 바꿨다.

“지렁이 나와라.”

동그라미 한 가운데로 뛰쳐나와 맘껏 흔드는 재미에 맛들인 아이들이 서로서로 얼굴을 보며 머뭇거린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다.

“꿈트을 꿈틀 잘 논다.”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서 꿈틀댄다. 지렁이 흉내가 정말 기가 막힌다.

“고양이 나와라.”

“냐오옹 냐옹 잘 논다.”

고양이 스무 마리를 풀어놓은 듯하다.

“콩벌레 나와라.”

“똥그을 똥글 잘 논다.”

머리를 집어넣고 온몸을 콩처럼 동그랗게 만든 아이들이 교실 바닥을 굴러다닌다. 콩 한 줌을 굴려놓은 것 같다.

“파리 나와라, 캥거루 나와라, …….”

내가 그만 밑천이 떨어졌다. 북 치랴, 아이들 보고 웃으랴, 앞소리 지어낼 박자를 자꾸 놓치는 거다.

“안 되겠어. 인자부터 돌아가면서 앞소리 지어내는 거다.”

내 앞에 선 하은이부터 시작한다.

“머리띠 나와라.”

“촐래촐래가 잘 논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목이 쉬도록 외친다.

“청바지 나와라.”

“고양이 좋아하면 나와라.”

“지우개 있으면 나와라.”

엉덩이를 삐죽빼죽, 어깨를 들썩들썩, 머리를 뱅글뱅글. 쉴 새 없이 달려 나와 흔들어댄다.

“……”

“실내화 나와라.”

“촐래촐래가 잘 논다.”

“까만색 나와라.”

“촐래촐래가 잘 논다.”

신이 난 아이들은 머리 흔들고 궁둥이 흔들고, 인제 무엇이든 다 나가 흔든다. 그런데 승민이가 갑자기

“한빛이, 니이 까만색 없다 아이가?”

한빛이한테 머라칸다. 앞소리 끝나기 무섭게 달려 나가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승민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한빛이가 당당하게 말한다.

“내 머리 까만색 맞다 아이가?”

“맞네, 까만색 맞네.”

옆에서 다른 아이들도 다들 제 머리를 만져보면서 한빛이 편을 들어준다. 승민이도 한빛이도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북장단만 자꾸 친다. 내가 별 말이 없자, 한번 탄력 받은 아이들은 오만데 다 나가서 흔든다.

“…….”

아이들도 앞소리가 바닥이 났는지 멈췄다. 북장단을 치면서 내가 하나 부른다.

“김씨는 나와라.”

“촐래촐래가 잘 논다.”

다음 아이부터 줄줄이

“박씨는 나와라.”

“이씨는 나와라.”

“권씨도 나와라.”

보빈이 혼자 나와 콩콩콩 뛰고 들어간다. 인자 성씨도 끝이 났다.

“…….”

“밥 잘 묵으면 나와라.”

“김치 잘 먹으면 나와라.”

김치를 입에 넣고 삼키지 않고 웩웩거리는 동기도 나와서 춤을 춘다. 아마 나중에 점심시간에는 김치 한 조각이라도 먹겠지.

“…….”

앞소리가 바닥이 났는지 한 아이씩 간당간당 이어나간다. 아아, 그래도 "촐래촐래가 잘 논다"는 힘차게 신나게 잘 논다. 간당간당 겨우 이어가던 앞소리가 인제 정말 바닥이 났는가. 상훈이한테서 멈추어서 “덩 쿵 쿵더쿵” 북장단을 몇 번이나 칠 때까지 안 나온다.

“자아 한 번 더.”

“덩 쿵 쿵더쿵” 장단를 한 번 더 치는데, 입을 달싹거리고 있던 상훈이가

“대한민국 나와라.” 한다.

상훈이 입만 보고 기다리던 아이들이 교실이 떠나갈듯이 “촐래촐래가 잘 논다”를 외치며 모두 동그라미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춤을 추어댄다. 북을 치면서 깜짝 놀랬다. 놀랍고 흥도 난다.

나도 상훈이를 따라서 "대한민국 나와라"를 서너 번이나 되풀이해서 앞소리를 한다. 짝지 소맷자락만 겨우 잡았던 하은이도 언제부턴지 짝지 손을 꼭 잡고 돈다.

“촐래촐래가 잘 논다.”

아이들은 인제 신들린 듯하다.

“신평초등 나와라.”

“1학년 나와라.”

“4반 나와라.”

모두들 한꺼번에 다 나가 흔들어댄다. 이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대경이 동무 나와라.”

우리 4반이 모두 다 뛰어 나온다. 모두 다 대경이 동무 맞다.

“홍대 동무 나와라.”

또 모두 다 나와서 춤춘다. 또 앞소리를 조금 바꾼다.

“귀현이 좋아하면 나와라.”

주먹이 세어서 늘 주먹부터 나가는 귀현이지만, 이 시간에는 귀현이도, 맞은 아이들도 함께  서로 좋아 신나게 춤을 춘다.

“연희 좋아하면 나와라.”

연희가 맨날맨날 놀린다고 일러주던 아이들도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연희랑 춤을 춘다.

“지원이 좋아하면 나와라.”

또 아이들이 우르르 나와서 춤을 춘다. 동무를 잘 못 사귀고 늘 혼자서 책만 펴들고 앉아 있던 지원이다. “지원이 좋아하면 나와라.” 내가 앞소리를 매기자 지원이는 춤도 추다말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모두 다 달려 나와 춤을 추자 그제야 활짝 웃는다. 입이 귀에 걸렸다.

모두 돌아가면서 한 아이씩 이름 불러주랴, 한데 어우러져 춤에 빠진 아이들보고 배가 아프게 웃으랴, 나도 춤추고 싶지, 장단도 놓쳐버렸다. “덩 쿵 쿵더쿵” 이거는 머하로, 그냥 마구잽이로 내 맘대로 치면서 아이들 속에 묻혀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북장단을 치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올라가는 목소리를 어찌하지도 못하고 소리질러댔더니 목이 칼칼해서 점심시간에는 밥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실실 자꾸 웃음이 나온다. 오랜만에 땀까지 흘리며 어울어지던 춤마당이었거든. 뜬금없이 정말 이대로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고 한 이불 덮고 자고 싶다.

아아, 그런데 열흘이 좀 더 지났을까. 지원이가 편지를 준다. 그 전날 내가 카드를 만들어줬더니 답장인가 보다. 알림장 세 줄만 보고 적는데도 오래오래 걸리는 지원이가 이 편지를 쓰자면 얼마나 힘들게 오랫동안 썼을까 싶으니 편지를 읽기도 전에 울컥한다.

<선생님 나는 대한민국이 조와요. 신평초등도 조코요. 또 지원이 동무도 조와요. 지원이 조아하면 나와라도 조와요. 나는 그전때 지원이 조아하면 나오라할 때 아이들이 다 와서 춤쳐서 기분이 엄청 조아서요. 아이들이 내 안 조타고 춤 안출줄 아라써요. 그런데 아이들이 춤 추니까 나도 아이들 사랑하게 돼써요. 나는 우리 4반 조와요. 박선미 선생님도 좋아요. 나는 날마다날마다 남생아 놀아라 하면 좋겠어요. 나도 동무들 다 좋아하게서요. 나도 다 나가서 춤출 거에요. 나도 동무 다 조아할 거에요. 사랑해요 선생님. 동무들아 내동무 해줘서 고마워요.>

지원이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닦으니까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든다.

“선생님, 왜 울어요?”

“너무 좋아서.”

“편지 읽어 주세요.”

“지원아, 읽어도 돼나?”

지원이가 아무 말도 안 한다. 아이들을 조용히 앉히고 편지를 읽는다. 지원이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외로 꼬고 앉았다. 아이들은 지원이를 보면서 빙긋이 웃는다. 교실이 잔잔해지는 것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편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는데 정민이가 한 마디 한다.

“나도 글 쓸 줄 알면 편지 쓸건 데.”

“...”

“우리 남생아 놀아라 한 번 더 하까?”

“예에!”

수학 시간이면 뭐 어때? 큰 북은 없고 소고를 꺼내 들었다. 춤추는 아이들이 더욱 사랑스럽다. 몇 판 놀고 자리에 앉으면서 아이들이 소곤거린다.

“진짜 재미있제?”

“응.”

“날마다 하고 싶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