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밑줄긋기

[스크랩] 아아 오늘 아침 이 글에 홀딱 빠졌다 - 농가월령가(유월령)

야야선미 2009. 9. 14. 23:44

유월이라 계하(季夏)되니 소서 대서 절기로다.

대우(大雨)도 시행(時行)하고1) 더위도 극심하다.

초목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평지에 물이 괴니 악마구리2) 소리 난다.

봄보리 밀 귀리를 차례로 베어내고

늦은 콩팥 조 기장은 베기 전에 대우 들여3)

지력(地力)을 쉬지 말고 극진히 다스리소.

젊은이 하는 일이 기음매기 뿐이로다.

논밭을 갈마들어 삼사차 돌려 맬 제

그 중에 면화밭은 인공(人功)이 더 드나니

틈틈이 나물밭도 북돋아 매어 가꾸소.

집터 울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

날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막혀 기진할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좌차(坐次)4)를 정한 후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단술 먹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없고 주린 창자 메운 후에

청풍에 취포(醉飽)하니5) 잠시간 낙이로다.

농부야 근심 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오조 이삭 청태콩이6) 어느 사이 익었구나.

일로 보아 짐작하면 양식 걱정 오랠소냐.

해진 후 돌아올 제 노래 끝에 웃음이라.

애애한 저녁 내는 산촌에 잠겨 있고

월색은 몽롱하여 발길에 비취는구나.

늙은이 하는 일도 바이야 없을소냐.

이슬 아침 외 따기와 뙤약볕에 보리 널기

그늘 곁에 누역 치기, 창문 앞에 노꼬기라7)

하다가 고달프면 목침 베고 허리 쉬움

북창풍에 잠이 드니 희황씨(羲皇氏) 적 백성이라.

잠깨어 바라보니 급한 비 지나가고

먼 나무에 쓰르라미 석양을 재촉한다.


노파의 하는 일은 여러 가지 못하여도

묵은 솜 들고 앉아 알뜰히 피워내니

장마의 소일이요 낮잠자기 잊었도다.

삼복(三伏)은 속절(俗節)이요 유두(流頭)는 가일(佳日)이라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 갈아 국수하여

가묘(家廟)에 천신(薦新)하고8) 한때 음식 즐겨 보세.

부녀는 헤피 마라 밀기울 한데 모아

누룩을 드리어라 유두국(流頭 )9)을 켜느니라.

호박나물 가지김치 풋고추 양념하고

옥수수 새맛으로 일없는 이 먹여 보소.

장독을 살펴보아 제맛을 잃지 말고

맑은 장 따로 모아 익는 족족 떠내어라.

비오면 덮어 두고 독 전을 정히 하소.10)

남북촌 합력하여 삼구덩이 하여 보세.

삼대를 베어 묶어 익게 쪄 벗기리라.

고운 삼 길삼하고 굵은 삼 바 드리소.

농가에 요긴키로 곡식과 같이 치네.

산전(山田) 메밀 먼저 갈고 포전은 나중 갈소.


1) 大雨도 時行하고 : 큰 비도 때때로 오고

2) 악마구리 : 참개구리는 울기를 잘 한다

3) 간작(間作)을 해서

4) 坐次 : 앉는 순서(長幼有序는 언제 어디서나)

5) 醉飽하니 : 보리술에 얼근히 취하고, 밥을 배부르게 먹으니

6) 오조는 '올조' 즉 일찍 익은 조, 청태공은 아직도 깍지가 푸른 콩

7) 젊은이는 해뜨기 전에 논밭에 나가서 부지런히 일하고 달빛을 밟고 돌아오며, 늙은이는 가까운 텃밭에서 오이따기·보리널기·누에치기 아니면 집안에서 노를 꼬는 등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한다는 뜻

8) 家廟에 薦新하고 : 사당에 새로 나온 곡식이나 과일, 새 나물 반찬을 곁들인 음식을 바치는 일

9) 流頭 (유둣날 마시는 술) : 밀기울도 버리지 말고 모아서 누룩을 빚으면 이 유두국을 만들 수 있다(근검절약의 기풍을 특히 부녀자들에게 강조한 것)

10) 부녀자에게 있어서는 장을 담그고 정갈하게 관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대목

출처 : 부산글쓰기회
글쓴이 : 야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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