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올거라
이번엔 사라호만치 셀거라
그러면서 불어닥친 바람 앞에
아무 힘도 못 써보고 주저 앉은 들판을 보고
무어라 입을 떼지 못합니다.
"이라다가 여엉 죽지는 않겠제?"
아직도 푸른 감을 달고
이파리만 꺼멓게 말라버린 감나무를 만지는
엄마만 봐도 가슴이 아리는데
아버지는
"그래도 이기 더 크지는 안해도 익기는 익겠제?"
도저히 돌아설 수 없는 감밭입니다.
"반타작이라도 할란강?"
쭉정이가 된 나락 이삭을 잡고
애를 태우는 아버지를 봐도 속이 상하고,
"하늘이 하는 일인데 우리겉은 인간이 우야겠능교?"
어쩔 수 없는 일
맘이라도 크게 묵자는 엄마말은 못 들은 척
아버지는
차마 논을 나서질 못하고
옆에 논 나락을 떼어 씹어보고
우리 나락도 하나 떼어 씹어봅니다.
"아아, 가입시더, 고마."
버럭 큰소리를 내고야마는,
떨어지지도 않는 발길을 애써 돌리는
엄마를 봐도
울컥 눈물이 치받습니다.
둑머너 강물이 넘실거리니
들에 찬 물은 아직도 빠질 생각을 않고
억장이 무너지는 어른들 같을까마는
엄마 아버지 생각하니
또 울컥 한 마디 쏟아집니다.
"아버지 고마 내년부터는 농사 짓지 마이소."
"농사를 안 짓다이?"
불같이 화를 내시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 이기 뭔 위로라고 하는 말이냐?
평생 밭고랑에서, 논바닥에서
엄마 허리 한번 펼 새 없이 지은
그 나락 농사로
내 뼈가 굵고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그 나락으로 또 내 새끼까지 키우면서도
그 농사 제대로 지키겠다고
먼 남의 나라땅까지 가서
목숨을 내 놓고 싸우는 사람을 보면서도
인자 고마 농사 짓지 말아라는 말이 나오던가.
참 부끄러워서
암말도 더 못하고 왔습니다.
오늘도 엄마 아버지는
뜨거운 가을 볕 아래서,
며칠째 빠질 생각을 않는 물을 빼느라
물꼬를 만들고
나락 묶어 세워 골을 타다
점심 한 숟가락 들고
"쪼께 앉았다가 또 나가봐야지."
하십니다.
여기 멀지도 않은 부산에서 전화밖에 못하는 나는
고작 한다는 말이
"고마 농사 짓지 마이소." 라니
며칠이 지난 지금도 또 부끄럽습니다. (2003. 9. 16. 부산글쓰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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