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억울한 일, 굉장히 속상한 일, 크게 야단맞은 일 쓰기
아침에 도서실 문을 열어놓고 교실로 왔더니, 대연이가 큰소리로 떠들고 있다.
“대연아!”
나도 모르게 소리부터 지른다. 대연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다른 아이들한테 방해되는 걸 생각을 해야지. 니 혼자 그래 떠들고 있으면 우야란 말이고?”
대연이는 몇 번 입을 달싹거리다가 그만 책상에 엎드려서 훌쩍거리고 운다. 그걸 보니 소리부터 지른 내가 미안하다. 마침 아침 이야기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내가 먼저 이야기해도 되겠나?”
“예에”
오늘 이야기 차례라 부담스러웠던지 덕원이가 제일 큰 소리로 대답한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이야기야. 내가 미안했던 일.”
조금전 이야기에다 내가 미안했던 일이라니 관심이 사뭇 다르다.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본다.
“도서실에 갔다 오니까, 대연이가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더라고. 다른 사람들 조용히 주말 지낸 이야기 쓰고 있는데 대연이가 일어나서 크게 떠들고 있으니까 나는 그만 화가 났어. 지만 저래 떠들면 다른 아이들한테 얼마나 방해가 되겠노 싶어서. 그래 나는 까닭도 물어보지 않고 야단부터 쳤지. 그런데 대연이가 아주 할 말이 많은 듯한 얼굴로 앉더니 지금까지 울고 있거든. 내가 대연이 말도 들어보지 않고 소리부터 지르면서 야단치니까 대연이가 많이 속상했나봐. 그건 내가 잘못했어. 그래서 지금 내가 대연이 한테 아주 미안하거든. 대연이가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대연아, 맞나?”
대연이는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사과할게. 대연이가 오늘 아침에 아주 속이 상했겠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야단부터 들었으니.”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연이를 돌아다본다. 어떤 녀석은 대연이 한테 달려가서 등을 두드려주며 달래기도 한다.
“마침 오늘 국어 시간이 쓰기인데, 오늘은 고마 자기가 정말 속상하고 억울해서 아직도 마음에 맺혀있는 일을 한번 글로 써 볼까?”
“예에”
칠판 한 쪽에 붙여놓은 오늘 시간표에서 국어 옆에다가 <아주 억울한 일, 굉장히 속상한 일, 괜히 야단맞은 일 쓰기>라고 적었다.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맺힌 이야기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아주, 굉장히, 괜히‘ 이런 말을 앞에 달았다.
두 시간이 지나고 셋째 시간. 아침에 미리 말해 두면서 좀 생각해 보라고 해서 따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약속대로 쓰기로 했다. 오늘은 별로 망설이지 않고 써 내려간다. 지 동무들 이야기를 쓰는 건지 동무를 힐끗거리고 보기도 한다. 아이들이 내 이야기도 쓸 것 같아 마음 쓰이지 않게 나는 한 구석에 조용히 앉았다. 그냥 보기만 본다. 머리를 쳐박고 쓰는 모습을 보니 그저 빙그레 웃음만 나온다. 글을 쓰는 저 모습들이 참 예쁘다. 대연이는 한 숨에 써내려 간다.
아이들 글을 보니 속상한 이야기를 많이 플어 놓았다. 그런데 오늘 대연이 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써서 그런지 많은 아이들이 나한테 섭섭했던 일, 짝지한테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썼다.
아이들 앞에 읽어 주어도 괜찮겠다고 하는 글을 몇 편 읽어주었다. 동무한테 잘 못한 것이 있는 녀석들은 머리를 긁적여 대기도 하고, 가끔 내 이야기 나모면 “선생님 심했다.” 면서 나한테 곱지 않은 눈길을 쏘아 보내기도 한다. 모처럼 동무들한테 미안해하는 얼굴, 씨익 웃으면서 마음이 풀린 듯한 얼굴을 한참 보았다. 나도 사과할 일이 참 많다.
글을 좀 읽고 나서 함께 글 고치기를 해보자고 했다. 오래 된 이야기 보다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을 같이 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 대연이 글을 고쳐보기로 했다. 대연이도 그러겠다고 한다.
< 처음 쓴 글 > 아침부터 야단맞은 일 (3년, 김대연)
외삼촌이 지난번에 지리산 청학동에 갔다오면서 어디 미술관에 가서 조각품을 하나 사 주었다. 대추나무에 쥐를 새긴 것이다. 팔찌도 되는 것인데 내 호신용이다. 나는 이 쥐조각품을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목욕탕에 갈 때는 할 수 없이 뺀다.
그런데 그저께 체육하고 손을 씻는다고 조금 빼놓았는데 용빈이가 들고 갔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 집에도 못가고 찾았다. 선생님도 집에 가고 우리반 아이들이 다 갈때까지 찾았는데도 없었다. 나는 정말 속이 상했다.
그런데 오늘 학교에 왔다. 그런데 조용빈이 가 이거 니꺼제? 하고 주는 것이다. 나는 토요일에 내 혼자서 해질때가지 찾은 것이 너무 화가나서 야, 조용빈!하고 소리를 질렀다. 용빈이는 그냥 웃으면서 줬다 아이가?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까 더 화가 났다. 야, 그냥 주면 다가? 나는 진짜로 크게 소리만 질렀다. 싸움으로 하면 용빈이한테 지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내보고 소리지른다고 야단을 쳤다. 정말 억울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해서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렇지만 용빈이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린다. 사과를 하지 않으면 나는 오래까지 내 마음속에 맺혀있을 것이다.
대연이는 이 글을 단숨에 써내려 갔다. 내가 가끔 절 보는 것도 모르고 옆에 눈길도 한번 주지 않고 쓴 글이다. 아이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짜로 해질 때가지 찾았나?
“아니, 그래도 억수로 오래까지 찾았다.”
“그라면 그래 고쳐야지.”
“따옴표가 있으면 더 잘 볼 수 있겠어요.”
실물화상기에 비추면서 아이들이 말하는 부분에 줄을 그으면서 이야기를 듣는다.
“호신용이 문지 모르겠어요.”
“호신용이라면 몸을 지켜준다는 뜻인 것 같은데 어떻게 지켜주는 거지?” 내가 물었다.
“그게 아니고요, 그걸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그냥 들은대로 쓰면 안 될까?”
“또 있어요.”
한 아이가 말을 하려는데 대연이가 지가 먼저 찾았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그떡이더니
“내가 인자 고쳐볼께요.” 한다.
몇 아이가 더 말해 주었다.
“조각품이 어떻게 팔찌도 되지?”
“진짜로 맨날 몸에서 떼지 않나?”
“그런데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그 팔찌가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있게 쓰면 좋겠다.”
“어떻게 아끼는 건지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금 빼 놓았는 데는 안맞는 것 같아요.”
“용빈이가 들고 갔다고 적었는데, 그러면 용빈이한테 전화해서 달라고 하지.”
“그때는 몰랐거든.”
글고치기 공부를 몇 번 했더니 제법 잘 찾아서 이야기 해준다.
< 대연이가 고친 글 >
외삼촌이 지난 겨울에 지리산 청학동에 갔다오면서 어디 미술관에 가서 조각품을 하나 사 주었다. 대추나무에 쥐를 새긴 것이다. 고동색실로 매듭 만들어서 조각품을 끼워서 팔찌도 된다. 대추나무로 만든 것이고, 내 하고 맞는 동물이라서 몸에 지니고 있으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쥐 조각품을 아주 좋아했다. 맨날 팔에 끼고 다니면서 만져본다. 잘 때도 절대로 안 뺀다. 우리 외삼촌이 고마웠다. 한번은 목욕할 때도 끼고 들어갔는데, 엄마가 나무하고 실로 된 것이라서 물에 자꾸 넣으면 안 좋다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목욕탕에 갈 때는 할 수 없이 뺀다.
그런데 그저께 체육하고 손을 씻는다고 잠깐 빼놓았는데 없어졌다. 나는 그것도 모고 혼자서 집에도 못 가고 찾았다. 선생님도 집에 가고 우리반 아이들이 다 갈 때까지 찾았는데도 없었다. 나는 정말 속이 상했다.
그런데 오늘 학교에 왔다. 그런데 조용빈이가 “이거 니꺼제?”하고 주는 것이다. 나는 토요일에 내 혼자서 늦게까지 남아서 찾은 것이 너무 화가 나서 “야, 조용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용빈이는 그냥 웃으면서 “줬다 아이가?”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까 더 화가 났다. “야, 그냥 주면 다가?” 나는 진짜로 크게 소리만 질렀다. 싸움으로 하면 용빈이한테 지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내보고 소리지른다고 야단을 쳤다. 정말 억울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해서 선생님한테는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렇지만 용빈이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린다. 사과를 하지 않으면 나는 오래까지 내 마음속에 맺혀있을 것이다.
2. 부모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 부모님에 대한 생각 쓰기
5월 8일이 어버이날이다. 꽃 하나 사고, 교실에서 편지 한 장 써서 부모님께 갖다 드리고 말기 일쑤인 날이기는 하지만 바쁘게 살면서도 아이들에게 온갖 뒷바라지를 다 해 주시는 부모님의 정성과 사랑을 깊이 생각해 보게 하고 싶다. 또 부모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마음 속에 담아두었거나 다 하지 못하고 지낸 이야기를 털어놓을 자리를 만들어 주자.
<쓰기 전에>
사나흘 전에 부모님을 생각나게 하는 물건이나 사진을 한번 챙겨보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하시는 이야기나 요즘 부모님들은 어떤 걱정거리가 있는지, 부모님께 정말 고맙다고 느꼈거나 참 미안하다고 느낀 일은 없는지, 오랜만에 부모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간으로 하자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거나 활동을 할 때 늘 마음이 쓰이는 일이 있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아이, 부모님 다 안 계시고 외할머니하고만 사는 아이, 아버지가 안 계시는 아이도 둘이나 있으니.
“부모님이 너무 바쁘시거나 직장이 멀어서 할머니나 할아버지 댁에서 자란 사람은 할머니나 할아버지하고 지낸 날이 더 많겠지요? 그런 사람은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오세요. 지금 자기 마음이 가는 사람 이야기면 다 돼요.”
아침 이야기 시간에 부모님에 대해 생각해 본 것들을 이야기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게 하고 3학년 아이들의 편지글 두 편을 읽어 주었다.
(보기글 빼먹음)
“여러분 또래인 3학년 아이들이 쓴 편지인데, 들어보니 어떤 생각이 들어요?”
“하고 싶은 말을 잘 썼어요”
“이야기하듯이 썼어요.”
“여러분도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쓸 수 있을 거예요.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쑥스러워서 못했던 이야기를 오늘 한 번 써 보세요.”
<아이들 글>
어머니께 (이수진)
어머니. 이젠 추운 겨울은 지나가고 따뜻한 여름(?)봄(?)이 찾아왔어요. 어머니는 덥지 않으세요? 나는 벌써 반팔을 입는데. 저는 우리 가게에 가면 아주 더워요. 그렇게 더운 가게에서 힘들게 닭을 튀기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 저는 날마다 투정만 부렸던 일들이 부끄러워요.
난 어머니가 차라리 집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면 어머니가 안계셔서 너무 쓸쓸해요. 창고 열쇠만 가지고 진호 간식을 꺼내주고 어머니를 기다릴 때는 어머니가 계시는 곳까지 가고 싶어요.
또 어떤 날은 나도 현관 열쇠를 가지고 싶었어요. 그래도 우리만 집에 있으면 안된다고 열쇠를 안 주셨지요? 그럴 대는 어머니가 장사를 하시는 것이 정말 속상했어요.
어머니가 호랑이 같이 무서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웃으시면 매발톱 꽃송이가 활짝 피어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화내지 마시고 날마다 웃으세요.
난 우리 아빠가 참 자랑스러워요. 나는 무엇이 잘 안되면 그냥 넘어가 버리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고치시고 하니 기술자 같아요.
난 어머니가 소리만 지르고 잔소리만 하는 분인줄 알았는데 지난번에 아버지랑 싸우고 우시는 모습을 보고 난 어머니가 너무 불쌍했어요. 아버지도 사업을 하다가 빚이 너무 많아지니까 어머니한테 짜증을 부리는 것 같아요. 어머니 아버지 한테 섭섭했던 것이 남았는데, 걱정하시는 소리를 들으니까 제가 부끄러워졌어요.
다음부터는 제가 어머니 대신 진호를 잘 보살필게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해요. 수진 올림
할머니께 (김성현)
할머니, 나는 오늘 카네이션을 두 개나 만들었어요. 한 개만 만들어도 되는데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두 개를 만들고 싶었어요. 할머니는 어머니도 되고, 아버지도 되니까 두 개 다 달아 드릴께요.
할머니 전에 할머니 글도 모른다고 소리지르고 욕한 것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가 글도 모르지만 내를 이렇게 잘 키워주신다고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인제는 제가 할머니 글 모르는 것 다 읽어줄게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컴퓨터 인터넷이 안된다고 옆집 아저씨한테 고쳐 달라고 다니는 거 이제 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다른 사람한테 막 부탁하는 거 보니까 내가 슬펐어요. 할머니 인제 없으면 없는대로 할게요. 그 대신 학교에서 다 할 수 있어요. 할머니 저를 이렇게 키워주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어요. 할머니 제가 잘 자랄게요. 할머니 사랑해요.
아버지께(최진성)
아버지 어버이 날이라고 편지를 씁니다. 할아버지께도 같이 씁니다. 나는 남자들하고 목욕탕을 가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나도 여탕에 갈 거라고 막 울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울었다. 나는 그것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인제는 그래도 내 혼자 여탕에 갈 수 있어서 괜찮다.
할아버지, 내 분홍색 원피스 사 주셔서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신경통 약도 사야되는데 내 원피스부터 먼저 샀습니다. 나는 그 때 좀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원피스를 입고 오니까 선녀가 된 것 같습니다.
아버지, 배타고 고기 잡으러 다니면 힘들지요? 전에 우리 반에서 비디오를 봤는데 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아이들이 오징어를 맛있게 잘 먹지만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잡지요. 나는 오징어 튀김 먹을 때 한 번씩 아버지 생각이 나요.
아버지, 할아버지. 내가 크면 맛있는 요리는 내가 다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진성이 올림.
3. 그림을 그리듯이 (명노철쌤 지도 부분)
아이들과 글쓰기를 해 보면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는 잘 쓰는데, 본 것을 그려내는 걸 아주 어려워한다. 가끔 그림을 그리듯이 쓰는 공부도 해 본다.
<현복이의 일기>에서 <저 모습을 사진 찍는다면>을 읽었다. 읽어 주면서 그림 같은 글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같이 이야기하면서 그림 같은 글을 알게 한다.
"내가 지금부터 읽을 글은 신현복이란 아이가 쓴 일기글이예요, 글 제목은 ‘저 모습을 사진에 찍는다면'이라는 글입니다. 잘 들어 보세요. 현복이가 어떤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하는지"
(현복이의 일기글 '저 모습을 사진에 찍는다면'을 읽어 준다.)
"현복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한 사람은 누구지?"
"자기 어머니예요."
"그럼 현복이는 어머니의 어떤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하나요? 아까 읽었던 글에서 찾아 말해 볼까요?"
"밤을 먹고 있는 모습."
"그런데 밤을 먹는 모습을 현복이는 어떻게 글로 썼지?"
"익히지도 않는 날밤을 먹고 있어요."
"아랫목에 누워서 밤을 먹고 있어요."
"현복이 어머니 얼굴 모습은 어땠지? 어디 잘 들어 본 사람이 한번 말해 보세요."
"예. 볼은 얼음장 같고 눈은 왕눈이같이 크다고 했어요."
“또?”
"밤을 깨물 때마다 볼이 위아래로 움직인다고 했어요."
"예. 그래요. 현복이 일기글은 읽다 보면 어떤 장면이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르지요. 자기가 본 내용을 아주 꼼꼼히 보고 자세하게 써 주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모습을 마치 그림 그리듯 나타내는 글을 그림 같은 글 또는 어려운 말로 사생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 쉬운 말로 그림 같은 글이라고 하면 되겠지. 그럼 다시 다른 글을 읽어 줄 테니까, 여러분은 글을 들으면서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지는지 잘 들어 보세요."
살아 있는 글쓰기에서 <아빠가 텔레비전 보는 모습>을 읽어 준다.
"아빠가 어떻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지가 잘 나타나 있어요?"
"예. 알 수 있어요."
같은 책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를 읽어 준다.
"할머니 얼굴 모습을 글로 나타내었는데 어떻다고 했나요?"
"주름살이 아주 많으며, 살도 안 붙어 있어 빼빼하고, 머리가 아주 하얗고, 하얀 수건을 쓰고 있다고 했어요."
"예. 이처럼 그림 같은 글을 쓸 때는 자기가 본 것을 다른 사람도 눈에 훤히 보이듯이 쓰는 것이 좋겠어요."
"오늘 집에 가면 내가 자세히 볼 사람을 자세히 보도록 해요. 시장에 가 보거나, 집에서 엄마가 설거지하는 모습이나, 언니가 공부하는 모습도 좋아요.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식물이나 동물을 잘 보고 써도 괜찮아요.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글 쓰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해요. 왜냐하면 누군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글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색해질 수 있거든요. 마치 여러분은 몰래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를 찍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단지 비디오로 찍는 것이 아니라, 글로 쓰는 것만 다를 뿐이에요."
<아이들이 쓴 글>
야채 가게 (신평초 6년, 김지영)
하남초등학교 옆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골목시장에 장유상회란 곳이 있었다. 동네 골목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야채가게이다. 40대 중반쯤 되는 주인아저씨께서 한 아주머니께 야채를 팔고 계셨다.
“이건 120그람에 1000원입니더.”
“그럼 1000원어치 줘요.”
천원을 낸 아주머니께서 가고 또 다른 아주머니가 오셨다.
“뭘 사실 건데요?”
아저씨께서 묻자 아주머니는 종이를 꺼내들고 하나씩하나씩 천천히 부르기 시작했다.
“시금치 두 단, 당근 두어 개, 상추 한 박스, 버섯, 콩나물”
그러자 아저씨께서 “상추는 3000원 올랐습니다.” 하신다
아주머니께서 “이게 다예요. 이 종이 보고 챙겨줘요. 총 얼맙니까?”
아저씨는 “35000입니다.” 하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손을 들어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잠깐만요요! 이거 땡초 아니지요? 땡초 말고 천원어치 더 줘요.”
아저씨께서 “그럼 36000입니다.” 말씀하신다.
아주머니는 주인 아저씨께 돈을 드리고 난 후에 장유상회를 나섰다.
아저씨는 또 다른 손님을 기다리시는지 뒷짐을 지고 가게 문 쪽을 서성거리셨다.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이 오지 않자 아저씨께서는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는 탁자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셨다.
그 때 어떤 언니가 전단지를 들고 찾아왔다. 삼결살 등의 고기류를 선전하는 것이었다. 그 언니가 가고 나서 아저씨는 그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들고 계셨다. 그러고는 또 문 쪽을 서성이며 세 번째 손님을 기다리셨다. 2번째 손님은 아저씨께 아주 고마운 분일 것이다. 아주 많은 양의 야채를 그 곳에서 사 주었으니깐.
생닭 손질 (신평초 6년 송지은)
사생글 공부를 한다고 친구들과 함께 시장에 갔다. 왠지 시장이라고 하면 시끌벅적 할 줄 알았지만 조용했다.
어떤 장면을 찾을까, 걸어가는데 ‘탁탁탁’ 소리가 나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생닭을 손질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아주머니는 검은 생머리에 검은 목티와 청바지를 입고 계셨다. 검은 슬리퍼도 신고 계셨고 아무런 무늬가 없는 빨간 앞치마를 입고 계셨다.
아기를 업고 있는 아주머니가 사 가시는 듯 했다. 처음에는 칼소리가 그 소리가 섬찟하였지만 듣다보니 리듬이 흥겹게 들렸다.
계란을 사시려는 아주머니가 지갑을 보고 돈이 없다며
“어머나, 어쩌나 돈이 없네.” 라고 하셨다.
하지만 생닭을 손질하는 아주머니는
“하하하.”
그저 웃음만 내 실 뿐이었다.
계란을 파시면서 다른 손님과 이야기도 하셨다. 파는 것보다 아주머니는 손님들과 친해지고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듯하다. 종종 아기 엄마가 업고 있는 아기도 보시며 웃으시기도 한다
손님의 말도 잘 들어주시며, 친해지시려고 노력하신다. 종이에 열심히 적고 있는 나를 쳐다보시기도 하셨다.
그런데 왠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어서 나에게 물어 볼까봐 급히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호기심이 많으신 듯 나와 눈도 많이 마주 쳤다.
아주머니는 아기를 보며 즐거워하시고 옆집 아주머니와도 많이 이야기를 했다. 아주머니를 보면서 물건을 파는 것보다도 손님과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다.
엄마의 휴식 (신평초 김정현)
저녁 식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우리 엄마가 설거지도 모두 끝내신 시간입니다.
엄마는 내 동생 장현이와 함께 책들을 쌓아 놓은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문법책을 읽고 계십니다. 우리 엄마의 얼굴은 약간 창백합니다. 머리는 약간 긴 단발의 갈색 퍼머를 하셨습니다. 식탁의 오른쪽 옆에는 책꽂이가 있고 식탁의 왼쪽 옆에는 냉장고가 있습니다. 엄마는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놓습니다. 오른쪽 발에 신겨진 슬리퍼가 약간 흔들립니다. 파란색에 분홍색 물방울 무늬가 있는 슬리퍼입니다. 왼손은 문법책을 누르고 있습니다. 엄지를 뺀 나머지 네 손가락은 모두 모아져 있습니다. 가끔 집게손가락이 들려졌다가 내려졌다가 합니다. 오른손은 커피잔을 들고 계십니다.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은 커피잔의 손잡이를 잡고 있고, 세 손가락은 손잡이를 받치고 있습니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오른 쪽 뺨 있는 곳으로 내려 왔습니다. 엄마가 커피잔을 잠시 내려놓고 머리를 만지십니다. 장현이가 건너편에 있는 엄마한테 와서 엄마의 윗도리를 장난으로 잡아 당깁니다. 엄마가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개수대에 커피잔을 가져다 놓으러 가셨습니다.
엄마의 저녁시간 (신평초 6년, 김유정)
우리엄마께서는 회색 티셔츠와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회색 반바지를 입고 계신다.
또, 갈색으로 염색한 컷트머리가 반짝거리고 있다.
엄마께서는 지금 커피를 끓여 모처럼 만의 휴식을 만끽하고 계신다.
기다란 침대 위에 앉아서 다리를 쭉 펴고 커피를 후루룩하고 맛있게 드신다.
항상 맞추어 놓은 라디오 주파수를 트니 클래식 음악이 아주 느리게 들리고, 엄마는 그 음악 소리에 맞추어 발가락을 움직이신다. 발톱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시다가 손톱깎이를 꺼내 드셔서 발톱을 정리하신다.
엄지발톱에는 자주빛이 나는 매니큐어를 예쁘게 그림 그리듯이 색칠하신다.
동생 동영이가 자기도 매니큐어를 바르겠다고 하자 엄지발톱에만 조그맣게 발라주신다.
동영이가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하자, 신문지위에 있는 발톱들을 화장실 변기통속에 넣어시고는 물을 한번 내리셨다.
그리고는 손을 깨끗이 씻으셨다. 냉장고 속에 머리를 넣고는 과일을 잘라 담아놓은 밀폐용기를 꺼내시더니, 포크와 같이 쟁반에 담으셨다. 잠시후, 과일을 먹다가, 과일 물이 흘러서 엄마께서는 “아이구 이걸 어쩌나”하시면서 걸레를 가지고 오셔서 빨리 닦으셨다.
동영이가 텔레비전이 보고싶다고 조르니 엄마께서는 리모콘으로 8번을 트셨다.
마침, 일요일에 하는 일요일은 즐거워가 방송되고 있었다.
엄마께서는 지금 “일요일은 즐거워”의 “위험한 초대”를 보시면서 유재석이 물 속으로 빠지는 것을 보고 하하하하 웃고계신다.
유재석이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하게 빠졌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텔레비전을 보시고 손으로는 뭔가 팔뚝을 물었는지 연신 긁고 계신다.
손으로 팔뚝을 딱딱치다가 일명 우리집 모기약인 호랑이 기름약을 살살 바르셨다.
그리고는 모기가 있다하시면서 에프킬라를 막 뿌리시고는 모기향 한 개를 꺼내서 플러그를 꽂으셨다.
화장실에 갔다오시더니 아랫배를 만지작 거리시면서 내가 선물해준 매직 훌라후프를 해야겠다며 창고에서 꺼내오셔서 거실에서 열심히 돌리시고 계신다. 사실 우리엄마는 똥배도 없는데 호들갑이시다. 큰 훌라후프를 잘도 돌리다가 한 순간의 방심으로 “뚝” 떨어뜨렸다. 엄마는 발등에 맞으셨는지 “아” 하면서 발등을 손으로 어루만지셨다.
엄마께서는 너무 고통스러워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엉덩이를 리듬있게 살살 돌리신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우리 엄마가 참 예쁘다.
그리고 또 자랑스럽다.
(2005. 6. 22. 부산글쓰기회 연수자료)
'삶을 가꾸는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동시론> 공부를 마치고 / 김숙미 (0) | 2007.05.06 |
---|---|
잊고 있었던 말 하나- 살사리꽃 (0) | 2006.05.24 |
선생 심부름과 종이컵 (0) | 2005.03.22 |
탈퇴는 참 쉽다 (0) | 2004.04.26 |
농사를 안 짓다이 (0) | 2003.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