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시험>
박선미 글·장경혜 그림/보리·8500원
아는 사람 중에, 사춘기 아들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안달하던 이가 있는데, 우연히 욕설로 도배된 아들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넋을 잃었단다. 영화에서 욕하는 걸 보는 것과 직접 내 귀로 얻어먹는 욕이 다르듯이 “초등학생 95%가 평소 욕을 한다”는 통계와 내 아이가 뱉는 욕은 하늘과 땅 차이겠다. 그래도 우리는 욕쟁이 할머니까지 욕보인 대통령을 모시고, 초등학교 4학년만 되어도 욕을 못하면 소통이 안 된다는 교실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꿋꿋이 살고 있지 않은가.
욕시험>은 “하고 싶은 욕 있으면 다 적어보라”는 선생님 말씀대로 시험지 한바닥에 욕을 가득 적은 주인공 야야의 이야기다. 그동안 “동무들이 놀려대도 오빠가 애먼 소리로 시비를 걸어도” 선생 딸이라서, 착한 아이라서, 입을 꾹 다물고 참았던 욕이 야야의 연필 끝을 타고 줄줄이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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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써내는 ‘욕시험’ 본 아이들
마음의 짐 훌훌 털고 화사해져
작가 어린시절 체험 녹여 담아
욕을 하면 후련하다던데 야야는 온통 후회뿐이다. 걱정되고, 부끄러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울었다. 이런 야야가 욕에 중독된 요즘 아이들과는 영 딴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책에는 아이들은 모두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믿음이 실려 있다.
<욕시험>은 전작 <달걀 한 개> <산나리>처럼 박선미 작가의 어린 시절 체험을 고스란히 담은 동화다. 작가가 다니던 경남 밀양의 초등학교에서 실제로 치렀던 욕시험을 떠올리며 3~4일 만에 책 한 권을 써버렸다니 작가야말로 ‘진짜 욕쟁이’인 것 같아 부럽고 “너거들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게 뭔지 알고 싶어하는” 선생님을 가져서 더욱 부럽다. 선생님이 도닥거린 덕에 마음의 짐을 덜고 꽃처럼 화사해진 야야는 또 어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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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안하는 5% 아이들마저 물들일까 겁난다고? 독설을 집중적으로 들은 식물이 자라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더라는 어떤 과학자의 실험이 있긴 하지만 만날 “이 거름에도 못쓸 놈아 쌔가 만발이 빠질 놈아”(<욕시험>) 하는 소리를 푸짐하게 듣는 논의 벼는 잘만 자라지 않는가. 욕도 욕 나름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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