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처음 체육이 들었던 날.
다섯째 시간이 체육인데도 아침부터 옆에 달라붙어 체육 언제하냐고 물어서 귀찮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자꾸 그러니 나도 애 좀 먹였다.
"체육? 시간표에는 그래 돼 있지만 몰라~"
또 물으면
"체육 해야지."
그러다 또 물으면
"뭘 추운데 교실에서 그냥 대강 하지."
이 아이들은 "체육"이라고 적힌 시간표, 그것이 처음이다.
지난해 까지는 "즐거운 생활"이었고, 체육이란 이름은 처음이지.
점심 먹고 옷갈아 입고 나가면서, 뒤에 옆에 졸졸 따라 나오는 녀석들한테
"너거들 그래 기다리는 체육, 어디 함 보자. 억수로 지겹게 해 주가 다시는 체육 안 기다리게 해 줘야지."
"에이~"
"쌔앰, 재미있게 해 줘야지요."
"그라지 마세요오"
한 놈이 매달리며 조르니까 따라나오던 녀석들이 다 달라붙는다.
"몰라." 나도 잘난 척을 좀 해 보이면서 운동화를 갈아신다가 나는 깜짝 놀랬다.
'절마들이 우리반 맞나?'
'우예 저래 줄을 잘 서 있노?'
그 녀석들은 그것도 모자라 뒤늦게 내 뒤에 따라 나오는 아이들한테 얼른 나와 줄 서라고
눈치를 주고 난리다.
"빨리 온나."
"빠알리 온나"
제자리서 팔딱거리면서도 큰소리는 내지 않는다. 손만 들고 흔들어 댄다.
우습기도 하고 내가 오히려 얼떨떨하기도 하다.
"너거 우얀 일인데?"
"너거 아까 삼반에 있던 아그들 맞나?"
"에이 알면서"
"뭘 알아?"
"너거들이 진정 삼반 그 아그들 맞단 말이가?"
"예에!" 합창을 한다.
"그런데 너거들 점심 시간 동안 새로 태어났나? 와 이라는데?"
"줄 안 섰다고 체육 안할라꼬!"
'아하, 그거였구나. 내가 아까 애를 좀 먹였더니 임마들 쫄았구나.'
순진한 녀석들. 참 귀엽다.
그런데 어디서
"전에도 안 서 있으면 체육 안하고 교실에 들어갔어요." 한다.
그 말을 듣자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체육에 목 말라하는데, 아까 장난으로 한 말이지만 체육 안할지도 모른다고 애 태우게 한 것이 미안했다.
'그래, 그냥 좀 귀찮다고 체육 안하고, 바쁘다고 체육 안하고 그런 일은 절대로 안할게.'
그렇게 마음 속으로 혼자서 다짐을 했다.
첫 시간이라서 아이들하고 밖에서 모일 때 주고받을 약속 몇가지를 정하고 재미있게 놀기로 했다.
신발 멀리 날려보내기, 짝짓기, 김장담그기 모두 재미있게 했지만 모두 힘을 합쳐서 하늘로 날려 보내주는 비행기 타기를 제일 좋아했다.
처음 만나 별로 친해지지 않을 때 나는 이 놀이가 참 좋더라.
서로 손에 손 잡고 줄 이쪽에서 저쪽까지 땅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보내려면 한 사람이라도 팔 아프다고 손을 빼거나 놓아버리면 낭패다.
아이들은 처음 시작할 때는 놓치거나 줄 가운데 쯤에서 떨어뜨리다가 여남은 번 쯤 하면 저거들끼리 요령이 생겨서 아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신나게 비행기를 태워준다.
그렇게 땀흘려 놀다보면 숨을 헐떡이면서도
"담에 또 하지요?"
"또 해요, 또 해요" 하고 매달린다.
마치면서
"에이 체육 억수로 지겹게 해서 다음에 절대로 체육 안하고 싶게 해줄라했는데"했더니
"체육은 아무거나 다아 재미있어요"한다.
오늘, 오후 한 시 까지 영도에 있는 학교로 출장을 가려면 오후 한 시간은 다른 선생님이 보결을 해야하는데, 보결하는 샘이 체육을 하고 싶어하겠나 싶다.
내 있을 때 체육을 당겨서 하자 싶어 네째 시간에 체육한다고 말하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소리를 지르고 좋아하던지 유리창이 다 깨지는 줄 알았다.
신발 날리기 챔피언을 뽑아야된다고 우겨서 신발 날리기 좀 했더니, 오늘 진짜로 해야하는 훌라우프 가지고 운동 하는 거는 제대로 못했다.
마치고 빨리 밥 먹이고 출장을 가야하는데, 이 녀석들 마칠 때가 되니 비행기 타기 한 번만 하자고 우겨댄다.
빨리 들어가 밥 먹여야 시간이 바쁘지 않는데, 녀석들은 남 속도 모르고 비행기 태우기에 빠졌다.
재미들인 이 녀석들 좀 보시게. 반쯤가다가 밑으로 쑥 빠져버리니까 마음에 들 때까지 해야된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다아 마치니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십 분이나 지났다.
올라와서 부랴부랴 밥 퍼주고 나니 열 두시 사십분. 헬기를 타고 가도 영도 까지 못 가겠다.
밥만 퍼 주고 나는 밥도 못 먹고 교실을 뛰쳐나와 교문으로 달리는데
"쌤, 잘 가세요."
"쌤 짱이예요"
"쌤, 내일 또 체육 하지요?"
"쌤, 안녕?"
삼 층 우리 교실 창밖에 조롱조롱 매달려서 소리쳐 댄다. 뒤도 못 돌아보고 손만 들어 흔들며 교문을 나서는데 밥 안 먹어도 좋다.
절마들이 짱이라 안하나. (200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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