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영우가 일학년에 들어갔을 때 이야기예요.
삼육초등학교라고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는 작은 학교였지요. 시댁 어른들은 안식교 학교라 걱정했지만 나는 그 학교가 작아서 참 좋았어요.
입학하고 한 열흘쯤 되었나? 오후에 짬을 내어서 학교에 잠깐 들렀는데 영우가 아이들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어요. 운동장이래야 어느 부잣집 마당보다 작은데, 그 귀퉁이에 아주 작은 놀이터가 있었어요.
‘짜슥, 벌써 아이들하고 저렇게 친해졌나?’
하도 재미나게 보여서 멀찌감치 서서 한참 훔쳐보고 있었어요. 미끄럼틀을 쭉 타고 내려왔다가, 둘러앉아서 모래를 푹푹 파다가. 무슨 일인지 여럿이 까르륵 대고 우르르 달려가면 그 뒤로 한 아이가 뒤쫓고. 돌아와서 철봉에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시소를 탔다가. 놀이기구래야 그게 모두였지만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아주 재미나게 놀더라고요. 얼굴에는 땟국이 쫄쫄 흘렀지만 웃는 낯빛이 봄 햇살처럼 환해서 보고 있는 나도 저절로 웃음이 번지더라고요.
늙수구레한 아저씨 한 분이 아이들 옆으로 가요. 무심코 보고 있다가 난 깜짝 놀랐어요. 두 팔을 활짝 벌려 영우를 안으면서 그 분이 그러는 거예요.
“영우! 함 보자. 니 이빠졌던데 인자 좀 나왔나?”
‘아니, 누군데 우리 영우를 알고? 영우 이 빠진 거 까지 알지?’
나중에 보니 교장 선생님이었어요. 난 그 장면만 딱 보고도 그 학교가 너무너무 좋아졌지요.
그리 좋은 학교에 다닐 때 일이에요.
하루는 찍찍이 운동화 말고 줄 꿰는 운동화를 신고 가야한대요. 운동화 줄 자꾸 풀어져서 불편하다고 찍찍이만 사 줬는데 아침에 갑자기 줄 묶는 운동화가 있어야 말이지요.
“없으면 아버지 것도 된다던데요.”
커다란 아버지 운동화를 가방에 넣어 갔지요. 운동화 줄을 풀어서 다 뺐다가, 다시 꿰어서 묶었다가, 짝지 운동화 줄 묶어주기도 하고. 운동화 하나로 한참 놀았나 봐요.
“이제부터 아버지 운동화 빨면 줄은 내가 묶어 주께요.”
“일자로 묶을 수 있고요, 엑스자로 묶을 수도 있어요.”
“운동화가 좀 크면요 줄을 꼭꼭 잡아 땡겨서 묶으면 잘 안 벗겨져요. 아버지 알았지요?”
그날은 저녁 먹고도 한참동안 운동화 가지고 놀더라고요.
또 다음날은 자기 옷 가운데 단추가 가장 많은 셔츠를 입고 간다는 거예요. 셔츠를 벗었다가 입었다가, 단추를 끼웠다가 뺐었다가. 또 짝지에게 옷을 입혀 주고 단추도 잠가주고. 셔츠 하나로 참 잘 놀았다 싶더라고요.
어느 날은 아침에 양말 벗어 빨아서 철봉에 널어놨다가 집에 올 때 걷어서 다시 신고 오기도 하고, 옷을 벗어서 개어 놓는 공부도 하고. 그런 날은 양말을 어찌나 얌전하게 벗어 놓던지요. 자기 전에 머리맡에 제 옷을 반듯하게 개어 놓고 눕기도 하고요. 이불을 턱 아래까지 끌어다 덮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누운 얼굴을 보면 뭔가 뿌듯함 같은 것이 묻어나기도 했어요. 저도 제 손으로 뭔가 할 수 있다는 그런.
그렇게 몇 안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생활 습관 공부를 정말 오랫동안 하더라고요. 책에 있어서 그냥 진도 맞춰 한 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정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해 보는 거예요. 집에 오면 그날 학교에서 했던 활동을 놀이 삼아 어찌나 재미나게 하던지요.
영우가 그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내가 더 많은 걸 배웠어요. 그 뒤로 일학년 담임하면 그런 거 억수로 마음 써서 열심히 했잖아요. (부산글쓰기회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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