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맘 속에만 꼭꼭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내 가슴에 깊이 담아두었다가 가끔 꺼내서 곱씹어 보고 또 나를 추슬러보던 보물 같은 이야기야. 내 마음 속의 보물, 궁금하지?
내가 어렸을 때는 단맛을 내는 것들이 참 귀했어. 잘 익은 과일을 먹을 때나 엿질금을 길러서 단술을 만들어 주면 단맛을 볼 수 있었지. 꿀이 있긴 했지만 하도 귀한 것이라 아플 때나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만 겨우 구경할 뿐이야. 설탕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흔하지도 않았고, 값도 비싸서 손쉬운 것이 아니었어. 단맛이 꼭 필요할 때는 조청을 고아서 두고두고 썼는데 그 조청 고우는 일이 보통 손 많이 가는 일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그때, 사카린이라는 것이 나왔어. 반짝반짝 납작한 알갱이가 마름모꼴이야. 깨알만한 것이 유리조각처럼 투명해. 어찌나 단지 알갱이 하나만 혓바닥위에 올려놓아도 입안이 한참동안 달달했어. 욕심스럽게 서너 알을 넣으면 너무 달아서 오히려 쓸 정도였어. 깨알처럼 고렇게 작은 것이 꿀보다 달다고 이름도 꿀아재비라 했어. 우리 동네 아이들은 꿀아재비, 꿀아재비, 꿀아재비 그러다가 나중에는 꼬라재비라고, 그래서 이름이 꼬라재비가 되어버렸어.
이 꼬라재비 맛을 본 사람들이 아주 신이 났어. 밥숟가락에서 손으로 잡는 자루 쪽 있지? 그 자루를 숟가락총이라 하거든. 잴쪽한 숟가락총으로 한번 폭 떠서 종이에 싸서 파는데, 2원인가 5원인가 했어. 그렇게 사다 두면 제법 한참을 먹을 수 있으니 온 동네 사람들이 꼬라재비, 꼬라재비 하게 된 거야. 설탕 편하고 맛있는 줄이야 알지만 너무 비싸고 귀했거든. 비싼 설탕 가까이도 가지 못하던 사람들이 아주 값싸면서 설탕보다 꿀보다 더 단 것이 나왔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어.
옆집에 동아 아버지는 들에서 일하고 오면
“야아야 동아야, 저어 골각단 참새미 가서 물 한 바가지 퍼 온나. 꼬라재비 단물 한 바가지 시원하이 마셔 보자.”
그러시거든. 꼬라재비 단물, 담 너머 우리 집에서 그 말만 들어도 입에서 도리깨침이 절로 고이는 거야.
우리 동네 저기 한 옆에 작은 교회가 있었거든. 여름방학이면 여름성경학교를 열었는데, 그 여름성경학교에 가면 꼬라재비 단물을 주는 거야. 우물에서 길어온 시원한 찬물을 양동이째 떠 놓고 아이들을 불러. 꼬라재비를 엄지검지로 한번 콕 집어서 넣고 휘휘 저어서 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한테 한 컵씩 주었거든. 시원하고 달달한 그 단물을 얻어먹으려고 나도 옆집 동무랑 여름성경학교에 며칠 나가기도 했지. 할매들이 “예수를 믿느니 너거집 닭똥구멍을 믿어라.”고 야단을 치는데도 단물을 마시려고 줄 서 있는 아이들을 보면 자꾸 발걸음이 그 쪽으로 가는 거야.
그 단물 맛이 그리워서 우리는 학교 우물을 들여다보면서
“이 새미에 꼬라재비를 한 숟가락만 넣으면 전부다 단물이 되겠제? 와아 우리 학교 아아들 다 먹어도 남을 건데, 그쟈?”
그러고 놀았다니까.
아이들만 그 단물에 빠진 게 아니었어. 나중에는 온 동네가 꼬라재비 맛에 빠져버린 듯 했어. 어른들은 들에 나가 일을 하다가 목이 마르면 나무 그늘로 가 앉으면서 그러셔.
“어여 가서 막걸리 좀 걸러 오너라. 막걸리 거를 때 꼬라재비 좀 낫게 넣어라 캐라. 아따 그넘을 묵으마 곱새겉은 허리도 펴진다카데.”
그러다보니 더러는 꼬라재비를 무슨 약 내어 놓듯이 하더라고. 어른들이 비지땀 흘리며 일하고 들어오면 먼저 꼬라재비 단물을 한 사발 타서 가져다 드리는 거지.
바깥어른들이 일하다가 막걸리에 타서 마시고, 숨 좀 돌리면서 시원한 물에 타서 마시는 거 하고는 달리 엄마들은 온갖 먹을거리에 꼬라재비를 넣었어. 감자 삶고 옥수수를 삶을 때도 꼬라재비를 녹여서 넣는 거야. 그전에는 굵은 소금 몇 알만 집어넣고 삶아도 간간하게 맛있었던 감자가 날이 갈수록 이 꼬라재비를 넣지 않으면 싱거워서 못 먹겠다는 거야. 엄마들은 막걸리를 거르고 나면 술찌개미에도 꼬라재비를 몇 알 넣고 쓱쓱 비벼서 둘러앉아 퍼먹었어.
박산을 튀기는 아제들도 꼬라재비 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꼭 넣어주었어. 그걸 안 넣으면 박상이 싱거워서 못 먹는다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났거든. 미숫가루에도 타 먹고, 아이들 주전부리로 보리나 콩을 볶아 줄 때도 꼭 꼬라재비를 넣게 된 거야. 보릿가루로 죽을 끓일 때도 꼬라재비가 빠지지 않았어.
아아참, 밀자반이라고 들어봤어?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든 주전부리지만 말야. 밀을 물에 잘 불려서 팥도 한줌 집어넣고 소금 조금 집어넣고 폭 삶아주면 더 없이 맛있는 주전부리였거든. 입에 한 숟가락 떠 넣고 꼭꼭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생겨. 토실토실한 밀알이 입안에서 톡톡 씹히는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그런데 그 밀자반에도 어느새 꼬라재비가 들어가지 않으면 “무슨 맛으로 먹어?” 하는 거야.
큰 맘 먹고 해 먹는 여름별미 중에 빵떡이라는 것도 있어. 밀가루에 부풀기 술약을 넣고 반죽해 두었다가 솥에다 겅그레를 놓고 베보자기 깔고 반죽 펴서 찌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빵떡이 돼. 그거 한 덩이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 김이 폴폴 나는 빵떡을 받아 들면 후끈한 김이 얼굴에 확 퍼지는데 무더운 여름날인데도 그 김이 싫지가 않았어. 조금 시큼한 듯 번지는 술약 냄새도 오히려 입안 가득 침이 돌게 만들었거든. 양대콩이라도 한줌 삶아 넣고 쪘다면 고소하게 씹히는 콩 맛까지 더해서 정말 맛있는 여름별미였지. 그런데 그 빵떡도 꼬라재비를 넣지 않으면 “ 에이, 싱거워!” 하는 거야.
그렇게 꼬라재비를 넣는 데가 자꾸자꾸 많아지더니 나중에는 팥죽에도 꼬라재비를 넣고, 나박김치에도 넣고, 미숫가루에 쓸 쌀, 보리, 콩은 아예 볶을 때부터 꼬라재비 녹인 물을 넣고 볶는다는 거야. 그래야 달콤한 미숫가루가 된다는 거지.
우리 앞집 아지매는
“보리 미숫가루에다가 꼬라재비 쪼깨이 집어넣고 한 양재기 타서 훌훌 마시 봐라. 아무리 땡볕에서 땀 흘리고 들어와도 등에 붙었던 배가 벌떡 일어난다카이. 내사 어지러블 때도 꼬라재비 물 한 양재기 마시면 어지름증도 싹 없어지더라.”
“몸이 찌붓할 때도 꼬라재비 물 한 사발 마시고 한숨 푹 자고 나이 고마 툭툭 털고 일어나겠더라.”
그러더니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해도 꼬라제비 탄 물을 먹이는 거야. 어느 날 우리동네에 나타난 꼬라재비가 감자맛도 옥수수맛도 빵떡 맛도 모두 달달한 한 가지 맛으로 바꿔갔지.
언제부턴가 동무 몇몇이 조그만 박카스 병에다가 꼬라재비 탄 물을 넣고 뚜껑에 구멍을 조금 내어서 빨고 다녀. 나도 동생이랑 그게 해 보고 싶었어. 그런데 박카스병도 그렇게 흔한 게 아니지. 요즘처럼 음료수 같은 것이 흔하지 않았으니 그런 빈병도 참 귀했거든. 병 좀 얻어달라고 엄마를 졸랐더니 엄마가 우리한테 그러시는 거야.
“꼬라재비 그거 자꾸 묵어쌓는 기 아이지 싶다.”
우리는 꼬라재비가 없어서 그러는 줄 알았어. 얼마 전에 모심기하고 타작할 때 조금 쓰고 남은 게 있거든. 엄마가 그 때 쓰고 남은 걸 잊었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엄마가 또 그러셔.
“넘들이 하도 꼬라재비, 꼬라재비 해서 그거 사기는 샀는데, 술에 넣어도 들큼하기만 하고, 미숫가리에 타도 들큼하고 그 맛이 그 맛이고 안 좋더마는.”
우리는 그래도 엄마 말을 잘 못 알아듣겠어.
“다른 아아들은 억수로 마이 묵는데. 우리도 좀 먹으면 안 되예?”
“아무래도 그거 자꾸 먹으면 어데가 안 좋아도 안 좋을끼다. 넘들 묵어도 우리는 묵지 말자.”“어데가 안 좋은데예?”
“나도 그거는 모르겠다. 설탕은 에북 한 숟가락이나 넣어야 단데 꼬라재비는 쪼깬한 거 하나만 넣어도 억수로 달제? 나는 그기 못 미덥다. 아무래도 거기에 무슨 사가 끼인 기라.”
쪼깨만 넣어도 억수로 달고, 그게 좋기만 한 것 같은데 엄마는 그게 못미덥다고 하니 어린 동생이나 나나 알 턱이 없어. 엄마가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할 수 밖에.
우리 엄마는 원래 엄마 손으로 가꾸고 길러서 엄마 손으로 만들어 먹는 것 말고는 장에서 뭘 사와서 우리한테 먹이는 일이 드물어. 그런 우리 엄마가 돈 주고 꼬라재비 사서 주전부리하는 걸 좋아할 리 없지.
“사람이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카제? 쉬운 거를 찾으면 한없이 쉽고 편해질라 카고, 단맛을 알고 나면 자꾸자꾸 더 단 것만 찾기 된다. 꼬라재비 그거 자꾸 먹어봐라. 나중에는 꼬라재비 저거 할배가 나와도 입에서는 더 단 거를 찾을 끼다.”
이렇게 까지 말하고 나면 우리가 아무리 떼를 써도 안 된다는 걸 알거든.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엄마 말을 어길 수도 없고 우리는 다른 아이들이 꼬라재비 단물을 만들어 마실 때 늘 침만 꼴깍꼴깍 삼켰어.
어쩌다 다른 집에 놀러 가면 옥수수를 삶아주는데 얼마나 단지, 아무것도 안 넣고 밀가루 반죽만 해서 구운 밀지짐도 꼬라재비만 한 꼽재기 들어갔다 하면 얼매나 맛있던지. 꼬라재비만 있으면 무엇이든 달게 먹을 수 있는데, 엄마는 왜 그걸 못미덥다고 먹지마라 할까? 그래도 나는 엄마한테 그걸 사 먹자는 말을 못했어. 문득 엄마한테 꼬라재비 살 돈이 없어 그래 말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거든.
겨울도 깊어, 설이 다가올 때였어. 해마다 설이 다가오면 엄마는 또 바빠져. 집안 청소부터 할머니 아버지 옷을 짓느라 밤마다 바빴거든. 그 중에서 설이 다가오면 우리가 기다리는 일이 있어. 조청을 고와서 엿도 만들고 강정도 만드는 일이야. 그때는 우리가 거들 일도 있지만 달콤한 조청을 찍어먹는 재미에 그날을 기다렸어.
조청 고는 일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야. 쌀을 담가 불리고, 엿질금을 바락바락 문대 빨아서 가라앉히고, 그동안에 꼬두밥을 쪄. 나는 엄마 옆에서 섰다가, “겅그레” 하면 정지 벽에 걸어놓은 겅그레 떼어 오고, “삼베 보자기” 하면 삼베 보자기 찾아오고, “불 지펴라.” 하면 아궁이에 불 지피면서 싫다 않고 엄마 옆을 졸졸 따라다녔어.
꼬두밥을 찌면 그때부터는 가라앉힌 엿기름물을 부어 삭히거든. 한나절을 삭혀서 끓이면 단술이 돼. 단술로 쓸 때는 맑은 단물에 쌀알이 동동 뜨도록 아주 단정하게 끓여. 조청을 할 때는 이 단술을 아주 곤죽이 되도록 고는 거야. 단술을 끓이고 끓여 아주 곤죽이 될 때쯤이면 엄마가 “베자루” 하거든. 그러면 또 베자루를 찾아 들고 달려가지.
자루 입을 벌리고 솥에서 펄펄 끓는 단술을 퍼 담아. 자루가 가득차서 배가 불러지면 입을 꽁꽁 틀어 묶고는 고모랑 엄마가 자루 긴 주걱을 가져다가 뜨거운 자루를 이리 저리 눌러가면서 짜는 거야. 뜨거우니 손을 함부로 댈 수도 없는 자루를 땀 뻘뻘 흘리면서 짜는 걸 보면 진지하기도 하고 조금 겁도 나기도 했어. 조금만 까딱하는 날에는 솥에 절절 끓는 엿물이 튀어 얼굴이고 손등에 올라붙을 판이거든.
고모랑 엄마가 엿을 짤 동안에도 아궁이에 불은 꺼지지 않게 계속 대야해. 한번 식었다가 끓이려면 또 불을 한참을 더 때어야하니 불을 끄지 않고 자꾸 대놓거든. 그렇게 다 짜고 나면 물은 지르르르 조청이 될 때까지 고우지.
이제 자루에 남은 밥알찌꺼기는 우리 차례야. 양푼에 떠내주면 우리는 맛나게 먹지. 그걸 엿밥이라고 해. 어쩌다 엄마가, “아이고 팔 아프다. 고만 짜자.” 하고 조금 덜 짠 날은 엿밥이 촉촉해서 먹기가 좋아. 단맛도 좀 더 나고. 그런데 있는 힘을 다해서 짜고 나면 물기도 없이 파들파들한 엿밥이 참 먹기가 안됐어. 그래도 우린 그 긴 겨울밤에 아주 맛있게 먹었어. 장독대에 내 놓았다가 다음날 차게 식은 엿밥을 먹어도 맛있어. 식으면 어쩐지 더 단 것 같거든.
베자루야, 겅그레야, 엿질금 양푼이야 뭐야 설거지거리가 밀려나오면 고모는 그걸 씻으러 나가고, 엄마는 부뚜막에 올라앉아 눋지 않게 주걱으로 자꾸 저어. 그럴 때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는 일은 내 몫이야. 불을 때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야. 불땀이 너무 세면 조려지지 않고 눌어붙어 타거든. 아니 불땀이 세면 눌어서 타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야. 엿물이 부그르르 끓어 넘치면 엄마도 감당을 못해. 한번 솥전을 타고 넘어 나오기 시작하면 찬물을 가져다 붓고, 아궁이 불을 다 꺼내서 밟아 끄고 한바탕 난리가 나. 겨우 가라앉히고 보면 그 아까운 엿물이 반치나 솥전으로 넘어 나와 끈적거리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또 불이 너무 약해도 일이 너무 더디잖아.
엄마는 젓다가 주걱으로 엿물을 한번 떠 올려보면서 또 젓고 또 저어. 처음에는 주걱으로 떠 올리면 납작한 주걱에 엿물이 떠지겠어? 그냥 주르륵 흘러내리지. 아주 잊은 듯이 불을 때고 또 때어. 한참동안 불을 때다보면 엿물이 줄고 조금씩 끈기가 생겨. 처음에는 좋아라 불을 때기 시작하지만 그때쯤이면 지겹거든.
“엄마 한번만 더 해보이소?”
“아직 멀었다.”
“그래도 한번 떠 보이소”
엄마는 자꾸 치근대는 내 앞에다 대고 주걱을 들어올려 봐 줘.
“아까보다 쪼금 더 졸았지예?”
“아직아직 멀었다. 잊은 듯이 더 때야 되겠다.”
나는 그렇게 보채면서 밤이 깊도록 불을 때고, 엄마는 팔을 바꿔가며 쉬지 않고 저어. 보얗던 엿물이 끈적해지면서 빤질빤질 밤색이 되어가거든. 주걱으로 떠서 실처럼 가늘게 지르르 오래오래 흘러내리면 거의 다 된 거야.
어느덧 조청이 다 되어 빛고운 실처럼 반질반질 하게 지르르 해지면 이제 작은 항아리에 따로 떠 둬. 가래떡을 찍어먹을 때는 요 정도가 딱 알맞거든. 유과에 옷을 입힐 때는 여기서 조금 더 곤 것이 좋아. 마지막으로 좀 더 진하게 고아서 엿가락도 뽑고, 굳혀서 강엿으로 만들어 두었다가 이담에 고추장 담글 때도 쓰고, 오랫동안 보관하기도 하고 그래. 조청은 그렇게 쓰임에 따라 좀 덜 고우기도 하고, 더 고아서 오래 두었다 쓰기도 하고 그랬어. 한 솥에서 서너 가지 쓰임새로 만들어 낸 거지. 겨울철에 조청을 달여 놓으면 단 것이 필요할 때 언제든 조금조금 꺼내서 썼어.
엄마가 엿물을 젓다가 주걱으로 떠올려서 흘려내려 보고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그러셔.
“야야, 봐라. 조청 한 솥 고는데 손이 얼매나 가고 사람 품이 얼매나 드노?”
엄마가 힘이 들어서 그러신가 하고 잠자코 듣고 있는데 또 말을 하셔.
“이래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 놓으면 또 얼매나 귀하게 쓰이노? 우예 꼬라재비에 대겠노?”
갑자기 꼬라재비 말을 꺼내서 고개 들고 엄마를 보는데 엄마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어.
“나는 꼬라재비가 아무래도 못 미덥다. 손가락 하나 얄랑 안하고 단맛이 그래 진하게 나는 그기 이상시러븐 기라. 내가 몰라서 그렇지 나중에는 세상이 다 알끼구마는. 꼬라재비에 분명히 뭣이 들어있을 끼다. 아무래도 사람들한테 기시는 기 있지럴.”
엄마 말을 듣다 보니 나도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도 엄마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듯 했어. 우리 엄마는 보통 때도 ‘손가락 하나 얄랑 안하고’ 덕 보려고 하는 것을 제일 크게 나무랐거든.
“내가 다른 거는 잘 몰라도 그거는 안다. 사람이 힘 안들이고 공으로 먹을라카면 사기도 당하고 넘들한테 못할 짓도 하게 되는 기라. 지 몸 움직거린 만큼 얻고, 지 노력한 만큼 벌라카면 손해 볼 일도 없고 넘한테 폐 끼치는 일도 없다. 나는 그기 정직하게 사는 기라 생각한다.”
주걱을 저으면서 엄마는 나한테 꼭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듯이 또박또박 이야기 하셨어. 좀 알듯 하면서도 무슨 말인지 완전히 알지는 못하겠고, 나는 잠자코 불이나 때고 있었어.
“너거 외조부가 우리 가르칠 때도 늘 그카시더라. 자고로 넘으 공것을 탐하면 배탈이 나고 재물을 부정하기 모으면 고방에 사가 생긴다꼬. 지 몸띵이 움직거려 그만큼 먹는 기 정직하이 사는 기라. 손가락 하나 얄랑 안하고 잘 사는 법은 이 세상에 없다.”
그 다음해 봄에 나는 중학교를 가고 또 고등학교를 가면서 엄마 곁을 떠나서 공부를 하게 되었거든. 그런데 그 날 알듯말듯하던 그 말이 엄마 곁을 떠난 한참 뒤에 자꾸 되살아나는 거야.
‘신나게 놀고도 뭐 공부 잘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꾀를 부리고 싶은 날도 그 말이 생각나고, 누가 와서 “좀 더 쉽게, 빨리 돈 많이 버는 방법이 있다더라.” 하면서 이런 저런 데 가입하라고 하면 꼭 그때 우리 엄마 말이 생각나거든. 반질반질 조청이 고아지던 가마솥도 떠오르고 말이지. “손가락 하나 얄랑 안하고 달달한 맛 나는 그기 이상시러븐 기라.” 하는 그 말도 꼭 생각나지.
그 때 그 꼬라재비, 그러니까 사카린이 우리 몸을 갉아먹는 인공감미료라는 건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들었어.
(2008.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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