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이게 촌놈만의 생각일까요?

야야선미 2008. 11. 27. 11:21

이게 촌놈만의 생각일까요?


저를 돌아보면 부산이라는 큰 도시에 와서 산 지 참 오래 되었어요. 햇수를 따져보니 시골에서 자라던 때보다 여기 부산에서 산 세월이 더 깁니다. 여기 와서 대학을 다니고, 아이들 앞에서 뭘 가르친다고 떠들기도 하고, 시집가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아둥바둥 산 세월이 참 아득하네요.

그렇게 긴 세월 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리면서, 그것들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동안에 저도 어지간히 반들반들 닳았지 싶습니다. 닳았지 싶습니다가 아니라 많이 닳았지요. 어릴 때 보던 어른들이나 옛 동무들을 만나면 반들반들 닳아빠진 내 모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혼자 놀래고 부끄러울 때가 많지요.

그렇게 반들반들 닳아빠진 것 같은 저도 아직 적응 안 되는 것들이 있답니다. 요새 제가 다니는 이 학교. 이 학교를 떠난 지 일년 반 만에 다시 왔거든요. 일학년 때 한 반이던 아이들이 삼학년이 되고, 그 앞에 만났던 아이들이 오학년도 되고, 육학년이 되어서 굵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거 빼곤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제가 사년 동안 정성을 기울이던 도서실도 그대로고, 우리 교실에 붙여놓았던 몇몇 게시물들은 아직 그대로 붙어 있어요.

이런 가운데 제가 정말 적응 안 되게 바뀐 게 있어요. 화장실인데, 이게이게 저를 아주 당황하게 만드는 거예요. 우리 학교 화장실은 오래 전에 지은 학교라서 남자 칸 여자 칸 구별이 안 되어 있고, 물 내려가는 곳이나 변기가 자꾸 막혔어요. 몇 해 전부터 화장실 새로 지어야한다고 말들 했지요.

일년 반 만에 오니까 화장실이 싹 달라졌어요. 남자 칸 여자 칸 구별은 물론이고 손 씻는 곳, 걸레 빠는 곳 모두 잘 되어 있어요. 새로 지어 놓으니 들어설 때부터 환하고 반들반들한 타일에 아주 미끄러질 듯 깨끗합니다. 더구나 화장실 청소를 해 주는 아주머니도 날마다 오셔서 청소해 주시니 화장실은 언제나 깨끗해요. 제가 있을 때 우리 반 옆이 화장실이라 바람만 조금 불어도 지린내가 교실로 들이닥치던 걸 생각하면 참 환상 속의 화장실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아주머니가 청소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참 불편해요. 화장실을 쓰는 사람은 우리들인데 우리들은 화장실 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잖아요. 그걸 아주머니가 오셔서 청소를 하고요. 물론 아주머니는 그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일자리가 생겨서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어쩔 수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 화장실 청소를 어떻게 하느냐고, 아이들에게 화장실 청소 같은 짐을 지울 수 없다고들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밝게 자라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도 하고요. 자기가 쓴 화장실도 더럽다고 손도 안 대고 남에게 맡기는 것, 저는 그게 좀 마음에 걸리거든요.

선생님들 말을 들어보면 이래요.

“아이들이 화장실 청소할 때는 교장 교감선생님한테 듣기 싫은 말을 참 많이도 들었지. 화장실 청소 지도를 좀 철저히 해라, 사제동행해서 함께 해라, 화장실 사용법을 잘 지도해서 막히지 않게 해라. 어디어디 화장실 청소가 제일 안 되더라 담당 학반에서 신경을 좀 써라.”

그렇긴 해요. 선생님들 회의 시간마다 들어야 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지요. 좀 바지런한 선생님은 아이들하고 함께 청소를 하기도 했지만 선생님들 일이 좀 많아요? 아이들 돌아가면 그 순간부터 일거리 붙잡고 앉아 퇴근할 때까지 고개 처박고 있어야 한다는데요. 그러니 아이들하고 화장실 청소할 여유가 없다는 거예요. 함께 하지도 못하면서 아이들만 화장실 청소 하라고 말하기도 참 마음 편치 않았는데 이제 아주머니가 와서 다 해주니 참 좋다는 거지요.

‘화장실 사용 지도’라는 것도 그래요. 아이들한테 입이 닳도록 이야기해도 잘 안 듣는다는 거예요. 휴지를 아무데나 버리고, 변기에 버리면 안 된다는 것도 그냥 생각 없이 버려서 변기가 막히고, 수돗물을 아끼자고 해도 고무호스를 있는 대로 다 틀어서 물바다처럼 만들고, 입을 대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거지요.

마침 청소 아주머니가 와서 청소를 하니 이런 문제가 싹 없어졌다는 겁니다. 화장지를 아무데나 버려도 아주머니가 치우지요, 변기가 막힐까 걱정되는 물건을 버려도 아주머니가 집게로 주워내지요, 어른이 혼자 청소하니 물도 낭비하지 않지요, 물감 버리고 붓 씻으면서 아무데나 얼룩덜룩 묻혀 놓아도 어느새 깔끔하게 닦아놓지요. 다달이 학교 돈은 좀 나가지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화장실 청소에서 해방되었다고들 좋아합니다. 저도 뭐 깨끗한 화장실에서 똥 누고 오줌 누고 나오면 좋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겁니다. 여럿이 함께 쓰는 곳은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깨끗이 쓰는 것, 화장지며 수돗물을 아껴 쓰는 것, 그리고 자기가 쓰는 그 곳이 더러워지면 청소하는 것. 이런 일은 어디서건, 사람이라면 누구건 늘 마음 쓰면서 몸 놀려 해야 하는 일 아닐까요? 일일이 청소하고 치우는 게 귀찮다고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한 건 아닐까요? 깨끗이 하라고 말하는 입만 아프다고 사람답게 살자고 가르치는 걸 포기한 건 아닐까요?

그리고요. 요즘은 이 화장실을 들어서면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찌른 답니다. 차 안에 두는 방향제나 뭐 그런 인공향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는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예요.

몇 분마다 저절로 퐁퐁 뿜어져 나오는 자동 기계를 달아 놓았는데, 한 달에 한번 이 걸 파는 곳에서 사람들이 와서 새것으로 갈아 끼운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은 머리가 안 아픈가 모르겠어요. 어쨌든 사람들은 일 년 내내 플로랄향인지 프루트향인지가 나오는 아로마 화장실이라 지린내 안 나고 좋다는 거예요. 자연향도 아니고 화공약품으로 만들어냈을 이 지독한 냄새를 아로마라니! 다들 그런 거라니 그런가하고 지나가려다가도 생각할수록 자동차 매연이나 이것이나 뭐 다르겠나 싶은 거예요. 저는 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숨을 참게 돼요. 똥 누고 오줌 눌 때마다 될 수 있으면 덜 마시려고 숨을 꾹 참는 거지요.

청소 깨끗이 해서 화장실이 말끔하면 들어서는 사람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거잖아요. 자기 앉은 자리 청소는 마다하고 이런 가짜 향기로 은근슬쩍 깨끗한 척 덮어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아요. 자연향도 아닌 걸 마구 뿜어내어 공기까지 더럽혀 가면서 말예요. 이것도 눈속임이라고 말하면 내가 너무 심한 걸까요?

적응 안 되는 이야기 하나만 더 할게요. 화장실을 들어서면 남자 칸, 여자 칸, 들머리 세수간, 변소 칸 할 것 없이 죄다 불이 켜집니다. 들머리에 붙은 수도꼭지에서 손만 살짝 씻고 나오려고 해도 여기저기 온 데 불이 다 켜지는 겁니다. 화장실 앞을 지나다가 옷매무새라도 잠깐 고치고 싶어 들머리 거울만 살짝 보려고 해도 또 환하게 불이 켜져요. 이것도 자동 센서인지 뭔지를 달아서 한꺼번에 불이 다 켜졌다가 때가 되면 저 알아서 꺼지는 거예요. 아아 이것도 정말 적응이 안 됩니다.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열 개가 넘는 전등이 모두 다 켜지는데 이건 뭐 들어갈 때마다 당황스러운 겁니다. 마음먹고 세어봤더니 전등이 열세 개예요.

처음에는 불이 켜지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내저으면서 “아아, 아입니더. 괜찮아예.” 했다니까요. 그것도 허리까지 굽혀 인사까지 하면서. 누구한테 인사냐고요? 모르지요. 그냥 나도 모르게 허리 굽히고 인사하면서 “아아 아입니더. 괜찮은데예.” 소리가 나오던데요 뭘. 꼭 어떤 사람이 옆에 섰다가 내가 들어서자마자 모든 불을 환하게 밝혀주기라도 하는 것 같아요. 이게 번번이 당황스럽고 황감하고 민망하고 안절부절 못하겠는 거예요. 석 달이나 됐는데도 아직 적응을 못해서 형광등이 켜지느라 ‘버 버 번쩍’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아 아입니..” 하다가 괜히 혼자서 쑥스러워 하거든요.

화장실 불을 왜 이걸로 달았냐고 물었더니 그럽니다. 아이들이 하도 불을 안 꺼서 하는 수 없이 자동기계를 달았다고. 뭔 제어장치인지 하는 걸 해 놓아서 쓸데없이 전기 낭비하는 걸 줄일 수 있다는 거예요.

옆 반 선생님 말이 전기낭비를 줄일 수도 있고, “저거 달고 나니 아이들한테 불 끄라고 잔소리 안 해서 좋고, 교장 교감한테 아이들 지도 잘 하란 잔소리 안 들어서 시원하다.”고 합니다. 하긴 아이들한테 전기를 아끼자, 불은 꼭 필요할 때 켜고 제 때 제 때 잘 끄자, 이런 말을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직원종례 때도 늘 교실 불을 잘 끄고 퇴근하자, 화장실 불 잘 끄게 지도해라, 이런 말도 수없이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전기낭비를 줄이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훤한 대낮에도 전등 열 세 개가 모두 켜지거든요. 한 사람이 들어가면 한 칸만 켜져도 될 걸, 한 사람이 들어가건 두 사람이 들어가건 열 세 개가 모두 켜지니 말이에요. 그리고 사람이 들어가지 않아도 이 기계는 하루 온종일 돌아가고 있을 것이고, 모든 사람이 잠자는 밤에도 밤을 새워 돌아가고 있을 테니 그 전기는 또 뭐예요?

기계 돌아가는 데는 전기가 아주 적게 든다고 변명 하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닌 건 같아요.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불을 끄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맞지 않은가? 전기를 왜 아껴야하는지 스스로 알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나? 한두 번으로 안 된다면 입이 닳도록 말해서라도 깨달아야 하지 않나? 그거 좀 안 된다고, 자꾸 잔소리하기 싫다고 자동기계로 바꿔버리면, 아이들이 잔소리에서 해방되었으니 그걸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게 아이 키우는 걸 제대로 아이 잘 키웠다고 할 수 있나? 그럼 자동기계가 없는 곳에서는? 여기저기 온 데, 가는 곳곳에 모두 자동으로 바꿔놓아야 할까?

화장실에 갈 때마다, 똥 칸에 앉아 똥을 누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사람이 지킬 것은 지키도록 애쓰면서, 귀하게 여길 것은 귀하게 여기면서 살아야하는데 그걸 좀 귀찮다고 안 하고, 잘 안 지켜진다고 포기하고. 우리 사는 일이 그래서야 되겠느냐 말이지요. 이 얘길 해도 선생님들이 웃습니다. 또, 또, 촌놈 같은 이야기 한다고요.

어쨌든 저는 우리 학교에서 촌놈으로 아주 찍혔답니다. 돈 주고 일하는 사람 부리는 것 하나도 속편하게 못 지켜보는 촌놈에, 아로마향에도 적응 못하는 촌놈이라나요? 자동기계에 대고 “아니 괜찮아예!” 하고 절하는 아주 아주 촌스런 사람이랍니다. 처음부터 촌놈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촌놈인 걸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이런 일로 촌놈이라 불리니 좀 따지고 싶어졌어요.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냥 도시 생활에 적응 못하는 촌놈이라니! 이건 말도 안 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