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언제 마음놓고 시험 공부 한 번 해 볼까?

야야선미 2005. 5. 31. 11:24

언제 마음놓고 시험 공부 한 번 해 볼까?


경원아, 덕은아!
고개를 푹 떨구는 너희들을 보니 내 가슴이 또 무너진다. 그 마음을 내가 알지. 
오늘은 내 중학교 다닐 때 얘길 하나 해 줄게. 그러고 보니 벌써 삼십 년이나 되었네. 참 세상에. 삼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렇게 우리들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개를 떨구게 하는 일이 그대로네.
지금 너희들보다 나이도 더 먹었고, 어른들이 보면 철도 다 들었을 것 같은 나이였지만, 나도 여전히 기가 죽고 속이 상하던 일이야.
"마지막 주에 월말고사 있는 거 알제? 공부 열심히 하고. 이번에는 우리 반에서 진보상 열 명은 나와야 된다."
"으이그 지긋지긋한 시험. 한 달이 와 이래 빨리 지나가노?"
"맨날 진보상 받으면 나중에는 200점 받아야겠다. 어째 달마다 평균 10점을 올리노?"
담임 선생님이 시험공부를 잘 하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기저기서 불만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어. 나도 그 말을 듣자마자 큰 걱정이야. 시험공부가 싫은 것이 아니야. 또 서무과에서 공납금 낸 사람만 수험표 찾아가서 시험 보라고 할 텐데, 그 수험표 끊을 일이 꿈만 같은 거야. 그 때 우리 학교에서는 공납금을 낸 사람한테만 시험을 칠 수 있는 "수험표"를 줬거든.
공부를 마치고 십리 길을 걸어 집으로 가면서 동무들은 내내 시험 얘기 뿐이야. 
"이봐라, 너거 선생님은 지난달에 너거들 진보상 많이 받았다고 한 턱 냈다면서? 너거 선생님 진짜로 멋지다."
"아이씨, 이번에 진보상 받으면 자전거 사 준다 캤는데. 평균 10점이 어데 넘으집 강생이 이름이가?"
"맞제? 평균 10점 올리는 기 쉽나 어데?"
"그런데 썩었대이. 바쁘다고 농사일 도우라고 가정실습 하면서 와 맨날 가정실습 마치자 마자 시험 치는데?"
"그래, 농사 안 짓는 수산 아아들은 사흘동안 공부만 하고, 우리는 사흘동안 쌔빠지게 농사일 거들어야 되는데. 진짜 웃기제? 그라이 맨날 수산 아아들만 일이등하지."
"맞다맞다. 가정실습 동안에 시험 공부를 해라는 건지, 농사일을 도우라는 건지."
"맨날 공부 잘하고 잘 사는 수산 아아들 편만 들어준다 아이가."
시험 얘기만 나오면 다들 그렇게 불만이 늘어지고 할 말이 많았어. 그런데 동무들이 그렇게 종알종알 얘기들을 해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수험표" 생각 뿐이야. 
지난 달 시험을 볼 때도 선생님들이 주우욱 앉아 있는 교무실로 찾아가서 떨리는 소리로 담임 선생님하고 약속을 했거든. 아아 교무실은 와 그리 넓던지. 하필이면 우리 선생님 책상은 그 넓은 교무실에서도 한가운데 떠억 있는 거야. 나는 그저 다른 선생님들한테 안 들리게 조용히 빨리 말하고 나오고 싶은데, 우리 선생님 목소리는 또 와 그래 크던지.
"그래? 아버지 월급 받으면 낸다고? 그라마 됐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잘 해라. 공납금 좀 늦게 낼 수도 있지 뭐. 내 싸인 해 주께."
그러면서 쓰쓰쓱 사인을 해 주는데, 우리 선생님 목소리가 원래부터 우렁찬 거야 알았지만, 그 때 그 자리에서는 정말로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어. 좀 살살 말해주면 안되나 싶어서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저쪽 한 구석에 우리 오빠도 담임 선생님 앞에서 뭐라뭐라 얘길 하면서 고개를 푹 떨구고 섰어. 나는 그걸 보는 순간 와 눈물이 왈칵 나왔는지 몰라. 
"야아가 와 이카노? 누가 뭐라카나? 공납금은 늦게 낼 수도 있고, 좀 일찍 낼 수도 있지. 다 안다. 괘안타. 됐다 고마. 눈물 닦고 이거 갖고 가봐라. 공부만 잘하면 됐지. 니는 공부도 잘하고, 또 약속도 잘 지킨다 아이가. 어허이!"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나도 어쩔 수 없어서 그대로 눈물만 흘리고만 섰는데, 선생님도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이 말 저 말 했던 말을 또 하면서 서둘러서 "담임 확인서"를 쥐어 주셔. 나는 그 순간에도 우리 선생님의 우렁찬 그 목소리가 정말 싫었어.
선생님이 쥐어준 "담임 확인서"를 들고 교무실 밖으로 나오는데 정말로 눈물이 앞을 가려 문이고 벽이고 자꾸 부딪히는 거야.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말 들어는 봤지? 난 정말 그 때 그 말이 과장이 아니란 걸 알았어. 그렇게는 도저히 복도를 걸어갈 수가 없어서 교무실 앞에 나와 눈물을 훔치고 안 울은 척 하려고 얼굴을 닦고 또 닦고 있는데, 오빠가 나왔어. 그렇게 무뚝뚝하던 우리 오빠가
"울기는. 울면 넘들이 더 쳐다본다 아이가."
그러면서 어깨에 손을 척 얹는데, 겨우 닦았던 눈물이 또 쏟아지는 거야. 그게 엊그제 같은데 또 벌써 한 달이 지나고 또 시험을 본다니.
모를 심어 놓은 들이 온통 파릇한데, 그 파릇한 사이로 난 들길을 걸어가면서도 그 날은 그것들에 눈길 한 번 줄 수가 없었어. 토끼풀을 뜯어 꽃반지를 만들어 끼고, 목걸이도 만들어 걸고, 동그랗게 엮어 머리에 얹고 여왕 흉내를 내면서 재미나게 걷던 그 십리길이 그 날은 그렇게 싱겁고 팍팍한 거야.
식구들이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는데
'한 번 말이라도 해 보까? 혹시 이 번 달에는 될 지도 모른다 아이가?'
그것도 생각뿐이지 나는 그냥 입도 벙긋 못하고 밥만 폭폭 떠먹고 나왔어. 위로 오빠들이 셋이나 객지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거든. 아버지 월급날만 되면 돈 들어갈 구멍을 뻔히 아는데, 집에서 다니는 우리가 먼저 돈 달라고 할 수가 없어. 집에서 다니는 나나 넷째 오빠는 한 번도 우리 먼저 달라고 했던 적이 없어. 그냥 우리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엄마가 알아서 챙겨 주시면 냈거든. 그러다 보니 우린 뭐든지 돈 내는 건 늘 맨 꼴찌로 내게 돼.
숭늉이나 떠 갈려고 가마솥 뚜껑을 열고 누룽지를 긁고 있는데 방에서 넷째 오빠가 뭐라고 해.
"엄마, 이번 달에는 미야라도 먼저 공납금 주면 안 되까예?"
이기 뭔 말이냐 싶어 누룽지 긁던 주걱도 그냥 든 채로 귀를 기울이는데,
"와?"
"그냥. 나는 좀 늦게 줘도 되는데……."
그냥 그것뿐이었어. 무뚝뚝하게 한 마디 하고는 또 밥만 먹는지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나는 또 눈물이 쏟아져서 숭늉을 들고 들어갈 수가 없었어.  
다음 날 아침에 학교에 갈 시간인데 옆집 귀동이 집에서 또 난리가 났어.
"공부는 시잎빛이도 못 하면서 돈은 꼬박꼬박 갖다 바칠라고?"
"그라마 학교 다니지 말라꼬?"
"누가 학교 못 가구로 카나? 좀 있다가 낸가 카이."
"지금 내야 된다 아이가. 수험표를 안 준다카는데."
"수험푠지 뭔지 받아가 시험 치면 뭐 하노? 맨날 그 장단이 그 장단인데."
"아아 공부 못하면 공납금도 안 줄끼가?"
귀동이도 악을 바락바락 쓰고, 귀동이 엄마도 악을 써 대는데, 나는 차라리 그렇게 엄마한테 바락거리는 귀동이가 좀 부럽기도 하고 그랬어. 난 엄마한테 그럴 수 있다는 걸 한 번도 생각도 못하고 살았거든.
가방을 들고 동네를 나서는데 들머리 담뱃집에서도 시끄러워.
"이 종내기가 점방 문을 닫아야 되겠나?"
'와, 돈이 있으민서 안 주노?"
"이기 담배 들라야 되는 돈인데 이 걸 들고 가면 장사는 우예 하라꼬?"
"몰라. 하이튼 그 돈 있으니까 돈주면 될 거 아이가."
"이놈아, 종잣돈이 있어야 장사를 하고 장사를 해야 입에 풀칠을 하고 살지."
"종잣돈이고 새끼돈이고 몰라몰라. 수험표 안 끊어주면 시험 안 치면 되지 뭐. 조옿겠네. 시험 안 치서. 나는 인자 시험 공부도 안 할거다."
"아아고 에미고 자알한다. 장삿집에 아침부터 그래 쌓아서 장사 잘 되겠다."
농사 짓고 사는 시골에서 다달이 돈이 꼬박꼬박 나오는 것도 아니고, 공납금을 낼 때가 되고, 시험이 다가오면 동네가 꼭 그렇게 시끄러워지곤 했어.
학교에 갔더니 아니나다를까 서무과 직원이 수험표를 들고 교실로 왔어. 공납금을 낸 동무들 이름을 부르면서 수험표를 나눠주는 거야. 수험표를 받는 동무들이야 아무런 생각도 없이 수험표를 받지만 나처럼 돈을 못 낸 아이들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냥 책만 보고 앉아 있어. 아니면 화장실이 급한 척 하고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하고. 서무과 직원은 수험표를 다 나눠주고 나면 꼭 우리들을 휘익 둘러보면서
"이번 주까지는 꼭 내야 시험 칠 수 있다. 너거들 반이 가수험표 받은 기 젤 많다. 이라면 너거 선생님한테도 안 좋다."
하는데 나는 그 눈길이 정말 싫어서 마주 볼 엄두가 나질 않았어.
시험치는 첫날이면 책상 위에다가 수험표나 가수험표를 책상 오른쪽에 펴놓고 시험을 봐. 그러면 서무과 직원들이 모두 나와서 수험표를 보고 얼굴 한 번 보고 시험지에다 자기들 도장을 찍어 줘. 내 앞에 오면 가수험표를 쓰윽 보고는 내 얼굴 한 번 보고, 도장을 찍으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그래.
"약속한 날까지 안내면 너거 선생님 월급에서 뺀대이."
그 말을 들으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괜히 부화가 치밀어서 아는 답도 쓰기 싫어지는 거야. 지금도 나는 괜히 학교 행정실이나 뭐어 그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때 생각이 나서 괜히 싫어져.
시험이 끝나고 동무들이 좀 놀다 가자고 붙잡아도 그럴 신명이 안나. 십리 길을 타달타달 걸어 집으로 가는데,
'언제 마음놓고 시험 공부 한 번 해 볼까?'
그런 생각이 들어. 가만 생각해 보니 중학교 다니는 동안에 시험 때가 돌아오면 늘 그 수험표 때문에 고개 숙이고 다녔던 것밖에 안 떠올라. 크고 작은 돌멩이가 깔린 십리 길을 돌부리를 차 가면서 집으로 가는데 들에 갔다 오던 엄마가 보신 모양이야. 발걸음에 힘이 하나도 없는 날 보시고는 가슴이 아팠던지, 밥솥에 불을 때고 있는 내 옆에 엄마가 앉았어.
"살림 잘못해서 돈이 없는 엄마가 잘못이고, 아버지가 잘못이지. 너거 잘못 하나도 없다. 그래 고개 숙이고 댕길 거 없다. 그라고 아버지가 돈이 좀 많이 없지, 넘들한테 부끄럽은 사람이가 어데? 넘한테 죄짓고 사람 짓 못하고 사는 기 부끄러븐 거지 그런 거는 부끄러븐 기 아이다."
그 때 내한테 엄마의 그 말은 뭐어 이해가 되거나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말도 아니었어. 그런데도 엄마가 내한테 정말 미안해하는 것이 느껴져서, 내가 더 미안한 거야.
지금이야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고 해서 공납금도 안내고 잘 사는 나라가 됐지. 그래서 세상 참 좋아졌다고들 하지. 그렇지만 정말 그런 것 같아? 우리 어른들이 못나서. 학교에서 밥 먹는 것 하나 해결해 주지 못하고 이렇게 너희들 가슴에 천근만근 짐을 지워주고 있어. 이건 너희들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우리 어른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거야. 나라 살림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했고, 너거들 가르치는 선생인 내가 너거들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이 잘못이고.
경원아, 덕은아. 우리가 잘 해서 앞으로는 학교에서 돈 못 내서 이래 고개 떨구고 있어야 하는 일은 만들지 말자. 내가 너거들한테 참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