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의 책

<책을 엮으면서 드는 복잡한 생각들>

야야선미 2010. 3. 2. 01:11

<책을 엮으면서 드는 복잡한 생각들>


<개똥이네 집>에 연재했던 ‘1학년 교실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묶어 내기로 했다. 이야기가 오가고부터 꽤 오래 끈 셈이다. 일 년 조금 넘게 쓰고 나서 연재를 이제 그만 마치겠다고 말한 뒤부터 나온 말이니. 출판사에서 단행본 묶을 계획을 듣고 글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하고도 벌써 서너 해가 넘어간다. 어쩌다 지금까지 끌어오게 되었는지. 그런데 글을 다시 읽고 잘못 쓴 문장들 좀 고쳐서 원고를 넘겨주려는 마지막 단계에서 고만 딱 멈추어버렸다. 글을 읽던 눈과 입과 그 모든 것이 딱 멈추고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 거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면서 정말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다 일어 머릿속이 소 처녑보다 더 어지럽다.

처음에 말이 나왔을 때는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왕 이렇게 다달이 쓰는 글, 한 권으로 묶어놓아도 괜찮겠지?’ 싶어서. 한편으로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난 세월이 얼마냐, 그 긴 세월동안 함께 살아온 이야기 한 권쯤 있는 것도 좋겠네, 뭐.’ 싶기도 했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흘러 벌써 여러 해를 넘기고 보니 글 뭉치를 뒤적일 때 마다 마음이 자꾸 복잡해진다. 분명 우리 교실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던 이야기를 썼는데도 왠지 낯이 뜨겁기도 하고 살짝살짝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때 그 자리에서는 분명 그랬지만 지금 보니 한껏 부풀려 떠벌린 것 같아 낯이 달아오르는 걸 어쩔 수 없다.

그러면서 글을 보면 볼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생각은 한 쪽으로 흘러간다.

‘이걸 꼭 책으로 내야하나?’

‘그때그때 다달이 아이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 연재했으면 됐지, 서너 해나 지난 지금에 단행본으로 다시 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들은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고, 학교도 온 나라도 무섭게 달라지고 있는데. 벌써 몇 해가 지난 이 이야기는 케케묵은 교실 이야기 밖에 되지 않을 텐데.’

‘이 이야기를 읽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괜한 욕심은 아닐까?’

‘이 세상에 쓰레기 뭉치 하나 더 내던져놓는 꼴은 아닌지?’

‘두 해 넘게 이어 실었으면 되었지, 그때 읽을 만한 사람들은 웬만큼 읽었을 텐데 굳이 다시 묶어서 팔아도 되나?’

‘그래, 그만 두는 것이 맞아!’ 글 속의 아이들을 보면 볼수록, 그 속에 한껏 버르집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일 때마다 생각은 그 쪽으로만 흐른다.

학교를 그만두고 아이들 곁을 떠난 지금, 그때 글을 다시 보니 책으로 묶어낸다 마음먹었던 일이 더 부끄럽다. 그때는 분명 1학년 교실이야기를 들려주고, 1학년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가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싶었다. 그래, 그때는 그랬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럽고 장하고 기특했지. 마음이 짠하고 코끝이 찡하기도 하고 답답하고 속이 상하기도 했지. 그런데 한 걸음 물러나와 글을 다시 보니 자꾸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아이들한테 지나치게 빠져있는 건 아닌가. 너무 아름답게 또 잘난 척 한 꺼풀 입혀 내놓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글 재미있다’, ‘아이들이 어찌 그리 살아있느냐’, ‘1학년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는 말에만 빠져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또, 어렵고 힘들었던 이야기보다 너무나 재미있고 아름다웠던 순간만 그린 건 아닌가.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한테 걱정스런 일이 생겼을 때 고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느냐 싶으니까 정말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글뭉치를 멀리 팽개쳐두고 오랫동안 고민을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책으로 묶어 내려는가?’ ‘돈?’ 그래, 돈 생각도 조금은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이제 정해진 벌이가 없으니 이것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이런 책이 밀리언셀러니 스테디셀러니 할 만큼 큰돈을 벌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고작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위해서 이렇게 마음이 끌리지 않는 짓을 해야 할까?

또 다른 까닭이라면? ‘나 이러이러한 책 한권 내었노라는 자랑?’ 아이들과 지낸 이야기는 사실 드러내 놓을 때마다 자신없고 부끄럽다.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너는 그렇게 밖에 풀어나가지 못하느냐?’ 스스로 늘 부끄럽기 때문에. 그런 마당에 책을 엮어 온 세상에 드러내놓고 떠벌리는 건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지 자랑할 일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면 이 책은 여기서 그만 두는 것이 옳은 건 아닐까?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이미 진행을 하고 있고, 그림 작가에게 발주까지 들어가서 멈추기도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결국 돈 문제에서 걸린다.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처음에 글을 쓸 때는 나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던 것도 있다. 우리 교실에서 내가 아이들하고 부대끼며 지내는 동안 고민스러운 것, 사랑스러운 아이들 자랑하고 싶은 마음, 그냥 세상에 외쳐보고 싶은 것들. 그런 것들을 마음껏 얘기하고 소통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책을 다시 묶어낸다고 읽는 이들과 얼마만큼 소통이 될까. 눈곱만큼이라도 공감할 수 있을까? 함께 나누기를 바랬지만 결국은 나 혼자만의 감상에 빠졌던 건 아닐까. 그 부분에 가면 정말 자신이 없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럽지만 기쁜 기억도 많다. 아이들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참 기쁘고 즐거웠다. 누군가 함께 기뻐해주고 응원해 줄 거라 생각하기 전에 글을 쓰는 동안 그저 즐거워지는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다시 돌아와 눈앞에 어른거리고 곧바로 온몸을 감싸는 기분 좋은 나른함. 누군가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여주든지 ‘아니야 그게 아니야’  고개를 가로 저을 것 같은 건 나중 일이었다. 아이들 이야기를 쓰면서 기쁘고 즐겁고 무엇보다 내가 선생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한껏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해결하기 힘든 바깥 일로 마음이 울적하거나 답답할 때도 아이들 이야기를 쓸 때는 온갖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지. 학교에서 크고 작은 온갖 일로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도 교실 문만 열고 들어서면 어느 새 잊어버리고 해닥해닥 놀 수 있었고. 아이들한테는 그런 힘이 있었다. 학교 밖에서 교실 밖에서 그 어떤 머리 아픈 일이 있었더라도 아이들에게 “안녀~엉!” 하는 순간 다 잊게 해 주는 힘.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살아갈 힘이었고, 기쁨이었고, 꿋꿋하게 살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즐겁고 해죽거리며 읽고 또 읽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혼자서 잘 해죽거린다. 글로 써 놓은 우리 아이들이 옆으로 살짝 다가와 온몸을 간질이듯이. 아이들이 쓴 글과 내가 쓴 아이들 이야기. 글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하나둘 걸어 나와 내 어깨에 팔을 척 걸치고 선다든지, 무릎에 척 걸터앉아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쓰고 두고두고 읽고, 그리고 즐거웠다. 세월이 흐른 지금, 아이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직도 즐겁고 기쁘다.

고민고민하다 또 옆길로 샜다. 어쨌든 이제 내 뜻대로 멈출 수도 없이 흘러와 버렸고, 책은 내야한다. 만약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일을 진행하기 전에 정말 깊이 생각하고 가볍게 결정해서는 안 되겠다 싶다. 고민 끝에 내 스스로 위안삼아 최면을 건다. 아이가 밥은 잘 먹는지, 동무들과는 잘 어울리는지, 공부는 잘 따라하는지, 학교는 어떤지, 선생님은 어떨지. 그런 막연한 두려움을 위로해줄 수 있는 책이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