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의 책

<학교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 머리글

야야선미 2010. 9. 7. 01:08

 

<고백>

“어? 선생님도 교통봉사 당번이에요? 우리학교에 또 왔네요.”

석우가 벌써 5학년이 되어서 함께 교통봉사를 합니다.

“어이, 한빛이 기훈이! 박선미 쌤이다. 우리학교 또 왔대이.”

“홍대야, 우리 쌤! 내하고 같이 교통봉사 한대이.”

지나가는 동무들 불러 세우랴, 오랜만에 얘기 좀 하랴 참 바쁩니다. ‘대경이는 잘 지내고요, 예진이랑 윤지는 전학 갔고요, 경철이랑 친해요.’ ‘누구는 자주 싸우는데 와 그리 변했는지 걱정이에요, 누구는 자꾸 못되게 구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닌지 걱정돼요, 누구는 선생님한테 맨날 혼나는데 저러다가 진짜로 찍히는 거 아닌지 고민이에요.’ 문득 말하다 말고 큰숨을 몰아쉽니다.

“아아, 요새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서요…”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데?”

“옛날에는 많이 놀았잖아요? 학교에서도 많이 놀고, 아이들하고도 많이 놀았잖아요.”

“그런데?”

“아, 진짜! 요새는 놀 수가 없어요. 학교에서도 맨날 공부만 하고요, 학원도 가야 되고요, 숙제도 많고요, 문제집도 풀어야 되고요.”

“니가 너무 많이 하는 거 아이가?”

“나도 놀고 싶거든요. 근데요 아 진짜, 학력보충반에 걸리면 방학도 없다잖아요. 아 진짜, 세상이 너무 변했어요.”

“아, 진짜! 세상이 와 그래 변하노? 아 진짜! 걱정이네.”

함께 웃지만 정말 걱정입니다. 5학년짜리 아이들까지 방학도 없이 학교에 나와야한다는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야하는지. 자꾸 못 되게 구는 동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해주고, 자주 싸우는 동무도 걱정해주는 이 장한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성적 올리기에만 마음을 쏟는 이 세상은 또 어떡해야하는지.

“이게 다아 누구누구 때문이잖아요. 아아 진짜! 옛날에는 억수로 재미있었잖아요?”

석우랑 있다 보니, 반갑게 달려들던 기훈이, 경철이, 정민이 그 아이들을 보니 조금 용기가 생깁니다. 서너 달 가까이 망설이던 글을 꺼냅니다.

‘연재했던 걸 서너 해나 지나고 다시 엮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노?’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세상도 무섭게 달라지고 있는데. 이렇게 케케묵은 이야기를 뭐 하러’

그렇게 생각들 때마다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글 뭉치입니다. 오늘은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읽습니다. 즐겁게 해죽거리며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하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늘 또 해죽해죽 실실거립니다. 아이들이 슬며시 다가와 겨드랑이라도 간질이듯이. 아이들이 쓴 글과 내가 쓴 아이들 이야기. 읽고 있으면 어느새 하나둘 걸어 나와 내 어깨에 팔을 척 걸치고 선다든지, 무릎에 척 걸터앉아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듯합니다. 학교에서 크고 작은 일로 속을 부글부글 끓이다가도 교실 문만 열고 들어서면 어느 새 싹 잊어버리고 해닥해닥 놀 수 있게 해주던 동무들. 그 어떤 머리 아픈 일이 있더라도 “얘들아, 안녀어엉!”  “선생니이임!!” 서로 불러주던 그 순간 모든 시름을 다 잊게 해 주던 내 동무들.

그러고 보니 어린 그 동무들이 살아갈 힘을 주고, 즐겁게 웃게 해주고, 비틀거리지 않고 꿋꿋이 살게 해준 버팀목이었습니다. 해결하기 힘든 바깥 일로 마음이 괴롭고 답답하다가도 그 앞에 서면 온갖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고요해졌으니까요. 이 동무들 덕에 오랜 세월 참 행복했습니다.

이제 고만 만지작거리고 귀한 내 동무들에게, 이 동무들을 아끼고 힘을 주었던 많은 분들에게 슬쩍 내밉니다. 그래서 함께 힘도 얻고, 함께 즐겁게 웃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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