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용민이와 재민이 <학교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보리/박선미)>에서

야야선미 2004. 12. 12. 01:16

 

오늘도 이 시간에는 학교 올라가는 길이 “정체”다. 조금 비켜서 먼저 올라가고 싶지만 좁은 오르막길엔 옆으로 비켜설 자리도 없다. 아무리 처언천히 걸어도 그마저 발길이 자꾸 부딪혀서 몇 번이고 멈추어 섰다가 걸어야한다.

“대답 안 할끼가?”

왁자하던 학교길이 조용해진다. 용민이다. 또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한 발 앞서 재민이가 입을 꾹 다물고 올라온다. 형이 아무리 소리 질러도 별 대꾸를 안 하는 재민이다.

“재민이, 니 진짜로 대답 안 할끼가?”

용민이만 소리를 쳐대고 재민이는 아무 말도 없다. 나는 또 속이 상할 재민이만 애처롭다.

“니이 자꾸 그라면 엄마한테 다아 말한다. 엄마가 형님한테는 다아 양보하라 했제?”

재민이는 한숨을 푹 쉬면서

“그래도 우리 반 준비물인데 어째 양보하노?”

한마디하고는 또 입을 다문다. 손에는 반짝이 줄을 꼭 쥐고 있다. 교실을 꾸며보자고 집에 쓰고 남은 것 있는 사람은 좀 가져오라고 했더니. 아마 용민이도 욕심이 난 모양이다.

교문을 들어서고 운동장을 지나 우리 교실까지 용민이는 소리를 지르면서 따라 왔다. 재민이는 늘 그런 것처럼 가방을 열고 필통이랑 일기장, 알림장을 꺼내고, 사물함에다 가방을 넣는다. 교실 앞으로 와서 오늘 공부할 교과서를 뽑아 챙겨다 놓는다. 잠깐 앉았는가 싶더니 학급문고에서 책을 한 권 고르고, 학습지 상자에서 종이도 한 장 꺼내 간다. 반짝이 줄은 아직도 한 손에 꼭 쥐고.

용민이는 그때까지 뒷문을 열어놓고 씩씩 숨을 몰아쉬면서 재민이를 노려보고 있다. 오늘도 쉽게 교실로 올라갈 기세가 아니다. 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바람이 찬지 재민이도, 그 옆에 아이들도 어깨를 한 번 움츠리더니 용민이를 내다본다. 이젠 아이들도 용민이한테 뭐라 말을 붙이지 않는다. 용민이가 제풀에 지쳐 돌아가기 전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아이들도 모두 아니까. 정서장애가 조금 심한 용민이는 자기 화만 긁지 않으면 우리 반 아이들하고도 곧잘 놀았다. 그러다 조금만 자기 욕심대로 안 되면 자기보다 서너 살이나 어린 동생이든 선생님한테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어깃장을 부려대니 우리 반 아이들도 이젠 어디쯤에서 그만 두어야할지 아는 것 같다.

형이 저렇게 눈을 흘기고 섰는데 책을 읽은들 뭐가 들어오겠나 싶어 할 수 없이 또 내가 나선다.

“용민이, 오늘은 뭐 땜에 또 화가 났노?”

말 붙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용민이는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인다.

“재민이가 자꾸 지만 가져간다고 고집 부리잖아요.”

“저거 오늘 우리 반에서 공부 시간에 쓸 거거든. 준비물이니까 가져와야 된다.”

꼭 가져와야 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재민이 편을 들어주고 싶다. 집에서는 용민이 어깃장에 지쳐서 어머니도 아버지도 늘 어린 재민이 더러 양보하라고만 했을 테니까.

“엄마가 형님한테 양보하라했는데. 말도 안 듣고.”

“용민이 반도 저거 준비물이가?”

“우리 반에도 꾸밀 거예요.”

“재민이 알림장에 장식물 가져오기 적어 놨을 건데. 니도 알림장에 적혀 있나?”

“그래도 형님이 한다카면 줘야 되잖아요.”

“니는 준비물도 아니라메? 형님이 달라한다고 다 주고 나면 재민이는 뭐 갖고 공부하노?”

그 말에는 대답도 없다. 늘 지한테 유리한 말만 기억해서 그 말만 되풀이하는 녀석인데, 내가 오늘 또 잘못 시작한 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형님한테 양보하라고 했단 말이예요.”

“저거는 재민이 준비물인데 양보하면 재민이는 우짜라고.”

“재민이가 양보를 안 하잖아요.”

“동생만 양보하는 기 아이고, 형님도 동생한테 양보할 줄 알아야 된다.”

“재민이가 형님한테 양보해야 된단 말이에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말고는 아무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줄 알면서 자꾸 말을 주고받다 보니 내 목소리도 점점 올라간다. 어서 그만 이 말씨름을 끝내야하는데 나는 자꾸 용민이한테 말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엄마가 준비물까지 형님한테 양보하라는 말은 안 했제?”

“재민이는 형님한테 대답도 안하고. 내 오늘 안 참을 거예요.”

“안 참으면? 재민이는 인자 공부 해야 되니까 니는 너거 교실로 올라가라.”

내 말은 들었는지 마는지

“재민이! 니 오늘 함 보자이. 엄마한테 니는 혼난다이.”

“이용민. 어서 올라가라. 우리는 공부 할란다.”

뒷문을 닫고 교실로 들어와 버렸다.

“자아 첫째 시간은 ~”

갑자기 뒷문이 확 열리고, 용민이는 더욱 씩씩 숨을 내쉬면서 재민이를 노려보고 있다.

“용민이 자꾸 그랄래? 문 닫고 어서 올라 가라아.”

재민이가 머리를 감싸 쥐고 책상에 엎드려 버린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그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린 것이 저런 형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애처롭다 못해 나도 모를 화가 난다.

“이용민. 문 닫아. 교실로 올라 가라아!.”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것이 느껴지는지, 눈 꼬리를 조금 움직이는 듯하더니 눈은 그대로 재민이한테 꽂혀있다.

“우리 공부해야 된다. 어서 올라가라. 우리 반에 조금만 쓰고 형님 주라 하께.”

“지금 해야 돼요.”

“그럼 반씩 나눌까?”

“한 개 다 해야 돼요.”

나는 또 화가 난다. 그래도 참아야지. 목소리를 꾹꾹 눌러 앉히며

“다른 아이들은 준비물 있는데 너거 동생만 없으면 되겠나?”

아아, 이래 여러 마디 하면 안 되는데, 또 내가 말려든다. 여기서 잘라야 돼.

“용민이. 한 번 더 문 열면 니 오늘 혼 난다아.”

그러고 나는 문을 닫고 들어왔다. 몇 초나 흘렀을까, 문이 확 열린다.

“대현아, 문 좀 닫을래?”

대현이가 일어나서 문을 닫았다. 또 문이 확 열린다.

“대현아, 좀 닫아라.”

또 열린다.

“정한아, 닫아라.”

또 문이 확 열린다. 이번에는 그냥 열린 채로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탁, 타닥, 툭 뭘 집어 던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또 신발을 다 꺼내서 던지겠지. 소리가 좀 거슬리지만 나는 절대로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냥 우리 할 일만 한다. 신발을 다 던져도 우리 반에서 반응이 없으니 이번에는 문짝을 발로 쾅쾅 찬다. 아이들이 모두 뒷문만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는 도저히 공부가 안 된다. 재민이를 본다. 재민이는 눈물만 흘리지 않지 거의 울고 있다. 일학년짜리 저 조그만 아이를 보니 나는 정말 눈에 보이는 게 없어졌다. 복도로 달려  나갔다.

“신발! 어서 넣어라아!”

용민이는 꼿꼿하게 서 있다.

“신발 주워!”

꼼짝도 않는다. 쉽게 들을 녀석이 아니지. 나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내 성질을 어쩌지를 못하고 용민이 머리를 억지로 눌러 허리를 굽히게 만든다. 용민이도 있는 힘을 다해 버틴다.

“빨리! 주우란 말이다.“

힘이 장사다. 내 힘으로는 허리하나 굽히게도 못한다. 그러다가 재민이, 우리 재민이의 애절한 눈빛을 보는 순간. 손에 다리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나는 지금 이 모자라는 아이를 붙잡고 무슨 짓을 하고 있나’싶다.

집에서는 형한테 다 내어주고 어린 속을 끓일 재민이. 우리 교실에서만은 재민이 대로 살게, 일학년 아이답게 살게 해줘야지 하던 내 욕심이 오늘도 너무 앞섰다. 저 어린 재민이만도 못한 꼴로 나는 용민이한테 내 성질을 다 풀고 있는 게 아닌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용민아, 그래, 미안하다. 어서 니도 교실로 올라가라.”

용민이가 듣든 말든 겨우 한마디하고 자리로 와 앉았지만 재민이를 볼 수가 없다. 내가, 정신도 못 차리고 형이랑 똑같이 싸우는 꼴을 보고 우리 재민이 그 마음이 어떻겠노? 아아 나는 나이 마흔을 넘을 때까지, 아직도 이렇게 밖에 못한단 말이냐. 하루 종일 재민이도 못 보겠고 용민이한테도 미안하다.

다음날 재민이 일기를 보면서 나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나는 우리 형님아가 다른 형님아들하고 똑같이 되면 좋겠다. 그래도 내한테 잘 해 줄 때도 많다. 아빠가 밤에 일 나가고, 엄마도 밤에 늦게 오면 나는 형님하고 있으면 안 무섭다. 그런데 나는 동생이니까 형님을 잘 도우면서 지내야 된다. 그런데 내가 자꾸 양보를 안 해서 형님아가 화가 많이 난다. 나는 오늘 우리 선생님이 참 고마웠다. 우리 형님아를 안 때리고 말로만 혼내고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나는 형님이 우리 교실에 오면 마음이 조마조마한다. 선생님한테 혼나면 형님아가 불쌍하고 형님아가 선생님 화나게 하면 선생님한테 미안하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다 양보할 것이다. 그러면 형님아가 우리 교실에 안 올 것이다.>

아직 어려도 한참 어린 일학년짜리 우리 재민이는 이렇게 정서장애가 있는 형을, 그래서 조금 남다른 형을 제 나름대로 받아들이면서 자라고 있다. 아니 어쩌면 언제까지나 이런 형을 끌어안고 제 속을 끓이면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한 달에 한두 번쯤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한 해를 보냈건만 나는 아직도 용민이를 끌어안고 달랠 줄을 모르고 그냥 똑같이 싸우는 날이 많다. 말만 선생이지 오늘도 나는 일학년 동무, 우리 재민이한테서 고개 숙여 배운다. (200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