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뭘 좀 쓰려고 하면 아직도 마음먹은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일학기 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주영이가 나오더니
"*짜 어떻게 써요?"
"뭐어? 좀 더 크게 말해 봐, 내가 잘 못 들었어."
"태짜요"
종이에 '태'를 써 줬어요.
"이거?" 그러면서 보니까 시원한 얼굴이 아니예요.
"무슨 말을 쓸 건데?"
"나는 머머 모탄다 할 때 모태, 그 태짜요."
"아아 그 때는 못해 하고 쓰고, 읽을 때는 모태하고 소리가 나거든."
그러면서 "못해"를 썼어요.
한참을 보더니 들어가요.
제대로 알았나 싶어 들어가서 쓰는 걸 보는데 연필을 들더니 그냥 연필만 만지작거리고 있어요.
'가다가 잊어버렸군.'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나와서 자세히 보고 들어가요.
이번에는 하나는 쓰는 것 같더니 다시 나와서 또 봐요.
그렇게 서너번을 오더니
"이거 쫌 들고 갈께요." 하고 내가 쓴 종이를 들고 가네요.
주영이는 그 종이와 지 공책을 요래조래 맞춰보더니 만족한 얼굴로 종이를 갖고 나옵니다.
"맞더나?" 글자를 맞춰보는걸 내가 보고있었다는 것이 영 쑥스러운지 씨익 웃더니
"근데요, 우리나라 글자는 두 가지로 해야 되네요. 읽을 때하고 쓸 때하고 똑같으면 좋은데."
그러고 주영이는 내가 뭐라할 새도 없이 자리로 들어가서 열심히 씁니다.
아이들이 오늘 아침에 본 것을 열심히 쓰고 있는 동안 일기를 보고 있는데 급하게 뭘 조사하라면서 회람쪽지가 왔어요. 국정감사 자료 제출이라나 뭐라나.
성욱이가 또 나와요.
"짠짜 어떻게 써요?"
<짠>을 써 놓고
"이거?"
"아닌 것 같은데"
"성욱이는 무슨 말 할건데?"
"이짠아요 할 때 짜요."
"아아 그거는 자에 ㄴ ㅎ받침!"
성욱이는 그렇게만 말하면 들어가서 쓰거든요.
성욱이가 중얼중얼하면서 들어가는데 뒤꼭지에다 대고,
"야아들아, 너거들 글자 물어볼 때, 있잖아요 할 때 잖, 못해요 할 때 해 이렇게 말하면 내가 빨리 알아듣는데."
아이들은 들었는지 마는지 아무 대꾸도 없어요.
주영이만, '나 인제 못해요 쑬 수 아는데." 하면서 빤히 봅니다.
그놈의 국정감사니, 의회자료니는 왜 그리 내라는 곳도 많은지. 이것저것 내라는 곳이 벌써 몇번째다. 투덜투덜하면서 일학기 때 받은 공문뭉치를 들고 뒤적거리고 있는데
동원이가 나왔어요.
"돕짜요"
동원이는 늘 이래요.
"무슨 말 쓸건데"
"독수리"
"독수리할 때 독 이렇게 말하면 내가 빨리 알아듣지. 그리고 그거는 돕이 아니고 독이지, 도 쓰고 받침에 ㄱ"
그러고 다시 공문을 뒤적거리는데
"아이, 나는 그카면 모르는데."
한 대 꽝 맞았어요.
"한개씩 써 주세요."
동원이는 주영이처럼 한 글자 쓸려면 서너번을 나와서 보고 들어가는 아이거든요.
"아, 미안미안 . 자아 봐라 이렇게 ㄷ ㅗ ㄱ 이래 쓴다.바빠서 그랬다. 한번만 봐도."
그러고는 손바닥을 비비며 비는 시늉을 하니까
"됐어요. 그래도 갤차줬으니까. 조금만 해도 돼요."
좀 있는데 이번에는 신혁이가 나왔어요.
"무슨 글자?"
바빠서 신혁이 얼굴도 제대로 안보고 물었더니
"그거 아인데. 내 화장실 간다고요."
"그래, 갔다 온나."
이렇게 아침 첫 시간이 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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