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래전 졸업생 셋을 만났다. 아직도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으니 가끔 이런 반가운 일도 생긴다. 이젠 제법 어른 티를 내는 녀석들과 앉아 사는 얘기들을 듣고 있노라니 내가 아주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벌써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진학 때문에 바쁠 나이이지만 이 녀석들은 일찌감치 대학 대신 다른 길을 찾은 녀석들이다. 선임이는 여전히 덩치가 나보다 크다. 제과제빵을 배운다고 과자를 몇 번 안겨다 주더니 요즘은 좀 뜸했다.
"니 왜 요새는 과자 안 만들어다 주노?"
"자격증 반 하면 시간 없어요. 자격증 따면 많이 갖고 오께요."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난리다.
초등학교 어린 때 만났던 선생이라 그런지 이 녀석들은 도통 내가 선생같지 않게 보이는 건지 저거들 이야기를, 내가 있다는 건 아예 염두에도 없는 듯 하다. 그렇게 한참 재잘대다가 미영이 얘기가 나왔다.
"미영이? 너거들 미영이하고 연락되나? 한번씩 만나나?"
미영이! 이름만 들었는데도 왜 이렇게 가슴이 콩닥거릴까. 아, 아직도 내게 미영이는 이렇게 마음 한 구석에 아프게 자리잡고 있었구나. 자주 만나는 건 아니고 연락 정도는 된다고 한다. 내 전화기에도 전화번호를 저장해 달라며 내 손전화를 건네주는데 손이 자꾸 떨린다. 아이들과 헤어져 몇번이나 전화를 거는데 받지를 않는다. 낯선 번호라서 안 받는 것일까, 전화를 받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것일까? 전화는 안 받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하릴없이 컴퓨터 켜 놓고 오래전에 쓴 일기를 뒤적거린다. 미영이하고 한 반일 때 쓴 일기도 제법 있다. 글쓰기회보에도 내었던 모양이다. 미영이 생각하면서 새삼스레 꼼꼼하게 읽어본다.
<<나는 선생도 아이다.>> (신평초등학교 박선미)
크리스마스라고 지난해 졸업한 아이들이 몰려왔다. 선생님 준다고 케이크 사왔다더니 저거들이 다 먹고 쌀눈차 우려먹자고 찻잔을 있는대로 다 꺼내놓고 물을 끓이고 난리가 났다.
“선임아, 미영이는? 니 하고는 연락 안하나?”
“미영이 학교 안 다닌대요. 그라고 인자는 전화도 안 와서 몰라요.”
지난 해, 전학을 가는 미영이를 붙잡고
“학교는 꼭 가야 된대이. 아무리 안 해도 한 달에 한번은 꼭 전화 해래이. 전화 바뀔 때마다 전화번호도 꼭 알려줘야 된대이.”
“학교는 빼 먹지 마래이.”
다짐을 하고 다짐을 해서 보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학교도 잘 다니고 가끔 전화도 주고받았는데. 같은 초등학교 담임이라 그런지 학교로 전화를 해서 미영이 걱정을 하면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해서 소식은 알고 지냈다. 중학교를 가서는 담임한테 연락도 잘 안되고 옛날 담임이 뭘 그래 자꾸 전화를 하냐는 듯이 달가와하지 않는 것 같아 전화를 못했더니, 차츰 연락이 안되다 이젠 친하게 지내던 동무들한테도 연락이 끊겨 버렸단다.
학교를 안 다니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눈앞에 있을 때도 힘도 되어주지 못하고 애만 끓였으면서, 연락이 끊기고 나니 또 이렇게 불안하고 죄스런 마음이 든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아이를 아무 책임도 못 지고 떠나보낸 것이 두고두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2004년 12월 25일)
요즘은 대열이 선임이만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미영이가 하루종일 우울한 얼굴이다. 공부 시간에도 멍하니 앉았을 때가 더 많다.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고 책상 위에 푹 엎드려만 있다. 처음에는 동무들끼리 다투기라도 했나 싶었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눈물만 그렁그렁한 채 고개만 흔든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를 못한다. 공부 마치고 조용할 때 불러서 이야길 들어보자 하고 오후 공부를 시작했는데도 자꾸 미영이한테로 눈이 간다. 여전히 창 밖만 멍하니 바라다보고 있다. 눈은 아직도 젖은 채로.
“지영아, 오늘은 색종이 오리는 거 좀 도와주고 가라.” 아이들하고 도서실 청소를 하고 오니 교실청소를 마친 아이들은 다 돌아가고 미영이는 색종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마주 앉아서 색종이를 몇 장 오리다가 옆으로 밀쳐두고,
“니이 오늘은 색종이 오리는 거 안 되겠다. 여기저기 이도 안 맞고 능률도 영 안 오르네. 니가 우울하니까 나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그냥 이야기나 하고 놀자.”
“이거 내가 집에서 볶은 거대이. 쌀 방아 찧으면 이런 싸래기가 나오거덩. 이기 이래도 진짜배기 쌀눈은 여기 다 들어 있다 아이가. 그거를 볶았더니 이래 구수한 차가 되는 기라. 이 차 마시고 싶으머 맨날 남아도 된다.”
“인자 다 됐다. 함 마시봐라.” 찻잔을 쥐어주는데 미영이는 또 눈물을 주루룩 쏟는다.
“차 마시고 우리 이야기 좀 해 보자. 이래 울지만 말고. 니 혼자 이래 속끓이면 병난대이.”
“와, 니이 성욱이하고 싸웠나? 글마가 바람 피우나?”
여전히 고개만 설레설레 흔든다.
“아아들이 너거 둘이 사귄다고 또 놀리더나?”
“아입니더.”
“하기는 너거는 공식 커플인데 누가 말하겠노?”
좀 웃겨 보겠다고 한마디했는데도 미영이는 여전히 눈물만 떨군다.
“옷 다 젖겠다. 말 안하고 싶으면 말 안 해도 된다. 어서 차나 마시자. 이기 따뜻할 때 마시야 더 맛있거덩.”
무릎 위로 미영이 손을 끌어다 놓고 쓰다듬어 주는데 마음이 아프다. 6학년짜리 여학생 손이 이렇게 거칠다니. 자고새고 밭을 매는 시골 아낙네들 손보다 더 꺼칠한 선임이 손을 만지면서 속이 꺼지는 것 같더니 오늘 보니 미영이 손도 조금도 덜하지 않다. 늘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니고, 얼굴도 밝아서 미영이네는 그냥저냥 사는 줄 알았다. 오늘 손을 만져보니 그게 아니다. 설거지에 집안 일에 거칠대로 거칠어져 있다.
“우리 미영이 살림 잘 하겠네. 지금부터 이래 신부수업을 매매 해서.....” 말을 채 맺지도 못하고 나도 그만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미영이가 오히려 내 손을 거머잡고 쓰다듬어 주는데 내 손등을 쓰다듬는 손바닥이 꺼칠꺼칠해서 또 눈물이 난다. 둘이서 그렇게 손을 부여잡고 얼마나 울었을까. 한참을 훌쩍거리다가 콧물을 닦으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미영이는 그새 진정이 된 것 같다. 갑자기 미영이가 내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오히려 내가 보호를 받고 있는 것 같아 머쓱한 웃음을 띄우는데 내 손수건을 가져다가 내 눈가며 코밑을 또 닦아준다.
“이래 다 큰 기 와 하루 종일 우노? 니가 내 언니 겉다.”
“쌤, 우리 아버지가요오......”
“우리 아버지가 엄마하고 싸우다가 엄마를 찔렀어예. 엄마는 아버지를 신고해서 경찰서에 있는데 재판 받아야 된데예. 엄마는 우리도 다 보기 싫다고 나가라했는데, 내일 엄마 퇴원하면 우리 짐 싸서 내쫒는다캤는데 우리는 어데로 갈 지 모르겠어예.”
“아버지하고 싸우고 다치고 그래서 화가 나서 그렇지 너거를 와 내 쫒겠노?”
“우리 친 엄마가 아이거든예. 아버지가 자기를 죽일라캤는데 우리를 와 안 내쫒을라카겠습니꺼.”
미영이 4학년 때 새엄마하고 아버지가 재혼을 했는데, 새 엄마는 다른 아줌마하고 같이 횟집을 하고 아버지는 횟집에서 이일저일 거들어 주고 지냈다고 한다. 미영이 표현으로 새엄마한테 저거 식구가 얹혀서 살았단다.
미영이 위로 중학교 다니는 오빠가 있는데 오빠가 학교도 잘 안나가고 문제를 일으키고 다녀서 새엄마는 맨날 새끼들한테 정이 안 붙는다고 했단다. 그래도 미영이는 집안 일을 잘 해 주니 옷도 가끔 사 주고 기분이 좋은 날은 용돈도 좀 주고 그랬단다. 미영이는 그 어린 나이부터 엄마가 장사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니, 집 구석구석 청소며 빨래는 늘 지가 다 해놓고, 엄마 아버지는 아침 늦게까지 자니까 지 손으로 아침밥 해 먹고 밥상을 차려놓고 학교에 다녔다는데, 이 어린 것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아버지는 새 엄마를 찔러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새엄마는 당장 짐 싸서 나가라고 그러지, 하나 있는 오빠는 틈만 나면 집안에 돈을 훔쳐다가 돈 떨어질 때까지 들어오질 않지, 이 어린것이 얼마나 떨고 또 떨었을까? 그 일이 있은 지 스무날이나 되어가는데 지금까지 얼마나 속을 태웠을까. 그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이 또 무너진다.
“새 엄마 퇴원하면 내가 한번 만나 보께. 그래도 엄만데 그냥 대책없이 너거들 나가라고는 안 할끼다. 그라고 영 안되겠다면 내하고 같이 또 생각을 해 보자. 그라면 니이 지금까지 집에 혼자 있었나?”
“오빠가 한 번씩 들어와예.”
“오늘은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밥 묵자.”
집으로 같이 와서 저녁을 하고 청소를 하는데, 아이는 아이다. 어느새 서인이하고 친해져서 이방저방 뛰어다니다가 우리반 카페에 글 좀 남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밥을 먹으면서 “선생님 집에는 식구가 이래 밖에 없어요? 식구는 많이 없는데 방은 많네요.” 한다. 그 말이 참 부끄러웠다.
깜깜한 집에 혼자 들어가 누울 걸 생각하니 미영이를 보낼 수가 없다. 오빠가 올지 몰라서 그냥 가겠다고 나서는 미영이를 데리고 집까지 걸어가는데 내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책 읽어 주고, 같이 교실에서 차 나누어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종이접어 놀면서 아이들이 행복해 한다고 내 혼자 만족하고 지냈던 것이 부끄럽고 부끄럽다. 미영이만 그러랴. 집에서 내팽개쳐져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안에서 뒹구는 대열이도,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는 선임이도 어린 나이에 너무나 무거운 짐들을 지고 있는데, 나는 고작 교실에서, 내 눈앞에서 웃고 행복해한다는 만족감에 살고 있는 것이다. (2003년 5월 29일)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미영이가 다시 돌아왔다. 오늘 새 엄마가 와 있을텐데 짐 싸서 나가라고 하면 어쩔지 모르겠단다. 집에 가서 새엄마가 와 있으면 나한테 전화부터 좀 해달라고 하고 집으로 보냈는데 저녁이 되어도 전화가 없다. 미영이 집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거니 이미 통화정지가 되어있다. (2003년 5월 30일)
공부가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갈 무렵에야 미영이가 왔다. 그때라도 학교에 와 준 게, 아니 나한테 와 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어제,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니 새엄마는 자기 짐을 다 챙겨서 횟집으로 이사를 가고 없더란다. 살던 집은 나중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전세금을 받아가기로 하고 살림붙이며 자기 옷가지는 다 챙겨가고 저희들 책이랑 옷가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더란다. 미영이가, 이제 겨우 열 두 살 된 미영이는 그렇게 텅 빈 방안에 서서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니 또 가슴이 무너진다.
“전화라도 하지, 전화는 와 안 했노?”
“바빠서예.”
“뭐 했는데?”
주인집 아줌마가 다음 주까지만 있으라고 해서 아버지 재혼하기 전에 살던 집으로 가 보았단다. 마침 그 집은 아버지가 달세를 받고 있는 것이 생각이 나더라고.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을 빨리 좀 비워 달라고 말하고 왔단다.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 옷이며 오빠 책이랑 옷을 챙겨서 싸는데도 오래 걸렸단다. 혼자서, 그것도 울면서 울면서 짐을 쌌을 이 아이를 생각하니 숨이 콱 막힌다. 가게에서 라면박스를 얻어다 짐 다 싸놓고 보니 어두워져서 그냥 잤다고. 옛날 집을 달세를 놓고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다 또 마음이 녹아내린다.
새엄마가 자기 짐만 달랑 챙겨간 어지러운 방안에 혼자 서서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그 와중에 살 궁리를 하느라 옛날 집을 찾아가 집을 비워달라 하고 혼자 돌아와 짐을 꾸렸을 이 아이를 생각하니 나는 선생도 아니다. 교실에서 아이들하고 히히득거리고만 있으면 선생이냐? 이사할 때까지 우리집에 같이 있자고 해도 오빠가 언제 올지 몰라서 안 된단다. (2003년 5월 31일)
선임이가 “선생님, 오늘 우리 모둠 오후 모임 안하고 그냥 가면 안돼요?”한다.
“왜? 바쁜 일 있나?”
“그게요오, 미영이가 오늘 이사한다는데요. 우리가 같이 좀 날라다 줄라고요.”
“미영이 좀 오라 캐봐라.”
그런데 미영이는 공부 마치자마자 먼저 가고 없다.
“너거들 미영이하고 집에 있어라. 내 학교 일 빨리 마치고 가서 같이 옮기자.”
그래놓고 종례를 마치고 부랴부랴 교문을 나서는데 전화가 왔다.
“우리끼리 짐 다 옮겼어요. 선생님은 안 와도 돼요.”
“너거끼리 우예 다 했노? 집은 어디쯤이고?”
“미영이가요, 선생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짐 다 정리하고 선생님 오라고요.”
“너거들끼리 못 치운다. 내가 가서 아줌마 실력을 발휘해야지.”
“거의 다 돼가요.”
철없이 덩치만 큰 선임이는 신이 났다. 저희들끼리 이사하고 방 정리하는 것이 재미가 나는 모양이다. 그래도 미영이한테 이런 선임이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힘이 되었겠노. 앞뒤도 맞지 않는 거짓말을 해서 5분도 못 가서 들통이 나버리는 선임이. 그래서 다른 아이들한테, 다른 반 선생님들한테 인정도 못 받고 살지만 이렇게 서로 힘이 되어주며 살고 있다. 내보다 낫다.(2003년 6월 9일)
요 얼마동안 미영이 얼굴에 생기가 돌아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연락도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요즘은 오빠가 꼬박꼬박 집에 들어오고, 새엄마가 합의를 해줘서 아버지도 나왔다고. 그나마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더니. 우리 식구들 저녁부터 챙겨주고 집으로 한 번 가 보자 하고 나오는데 미영이가 교문 앞에 서 있다.
수돗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끊어지고 어제 저녁에는 촛불을 켜 놓고 혼자 잤더니 아침에 너무 늦게 일어나서 못 왔단다.
쌀 한 포대, 라면 한 상자를 사서 들고 문을 여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삼십년이 다 된 오래된 열 세평 짜리 낡은 아파트라니 짐작은 했다. 말이 아파트지 올라가는 계단마다 이 집 저 집에서 내 놓은 낡은 세간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유리창이 깨어진 곳은 비닐을 가져다 막아 놓았다. 어지럽게 붙어있는 스티커들이며 낙서들, 벽에 페인트는 이미 다 벗겨진 모양이 철거하려고 이미 오래 전에 다 비운 듯한 아파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문마다 칠이 벗겨지고 합판이 한 켜 한 켜 일어나서 너덜거리고 장판이며 벽지가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데 방에는 컵 라면 그릇, 담배껍질, 과자봉지, 콜라병, 소주병 온갖 쓰레기가 다 널려있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도 안 들어오고, 오빠는 가끔 오면서 친구들을 몰고 와서는 밤에 자지도 않고 시끄럽게 떠들고 놀다가 아침이 되면 또 몰려나가곤 한단다.
아무 생각도 없는 중학생 선머슴아들이 밤낮도 없이 들락거리고 술을 마시고 떠들어대면서 밤을 새우는 이 생지옥에 여자 아이 혼자, 미영이를 두고 나올 수가 없다.
“책가방 챙겨라. 우리 집에 가자.”
그동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늘 오빠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던 미영이가 오늘은 순순히 따라나선다.
서인이 장난감이랑 안 쓰는 짐들을 넣어 두었던 방을 치우고 이불을 깔아주니 그 자리에 바로 잠이 들어버린다.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시달렸던 모양이다. 자는 아이를 보고 있는데, 참 나는 힘이 없다. 이 어린 나이에 감당하지도 못할 이런 짐을 지고 사는 아이들, 이 아이들한테 나는 무얼 해 줄 수 있을까. 집에서 이렇게 크고 작은 짐에 억눌려 겨우 숨을 쉬고 사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는 거창하게도 이 세상의 평화나 이야기하고, 반전이니 이라크 아이들이 어떠니 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을 그냥 교실에서 보듬고 지내다 그 어렵고 지옥같은 현실, 무거운 돌덩이를 걸머지고 집으로 돌려보내며 “내일 보자, 안녕”만 하고 있어야 하나. (2003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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