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이름만 쓰랬잖아요

야야선미 2001. 11. 28. 13:38

그래 참 좋았겠다.
옛날에 엄마가 무시 채썰면 그 옆에서 파르스름한 꼭대기를 달라고 해서
얻어먹곤 했는데.
고 기 무우청 달린 데는 달고 아삭아삭하거든.

영화 보러 가고 싶다.
근데 해운데까지 갈라면 억수로 바쁘던데. 8시쯤이면 몰라.

들어온 김에 우리반 아이들 시리즈 하나.
1번 곽동규.
야아는 첨부터 글자도 다 알고 하고 싶은 말을 시원시원하게 잘 쓰는 아이예요.
그런데 늘 번호 이름을 쓰는 칸에 "동규"만 쓰는거라.
그래도 지금까지 나는 
'어데서 어른들이나 형아들이 싸인할 때 [선미] 이렇게 쓴 걸 본 모양이지.' 했어요.
동규는 대학생 누나도 있고 고등학생 누나도 있고 그렇거든요.
그런 걸 보고 지도 따라서 그냥 멋으로 그러나 했지요.

어제 동규랑 이야기할게 있어 내가 슬쩍 말을 걸었어요.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기가 그래서
"니는 와 동규만 쓰는데?"
그림 그린 것을 들고 나온 동규는 이번에도 여전히 그림 제목을 쓰고, 그림이야기도 쓰고 그 뒤에 '동규'만 써 놓았어요.
내 말에 대답은 않고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어요.
한번 더

 "니는 와 이렇게만 쓰는데?"
동규, 날 쓱 쳐다보더니
"이름만 쓰랬잖아요."
그래 맞아 학습지고 뭐고 맨날 번호(   ) 이름(     )칸만 있지.
그림을 그려도 이름 꼭 써란 말만 했지.
담 부터는 성과 이름을 써라고 해야돼나?

--------------------- [원본 메세지] ---------------------

-무시를 씻으면서-
"무시를 씻는다.
 빡빡 문질러서 씻는다."
"말간 속살이 드러난다.(?)"
"참, 차원이 다르네요."

반디네집 수돗가에서 소눈과 낭구가 나눈 밀담입니다.
누가 소눈 성님인지 누가 낭구인지 말 안 해도 알겠지요?
갓을 뽑으면서, 무시를 씻으면서, 불을 쬐면서, 옥교봉 달을 치다보면서
제목은 무지무지 잘 떠오르는데 고 다음이 문젭니다.
모조리  .........

토요일, 일요일 볕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볕을 온 몸에 쬐면서 김장을 했습니다.
햇볕에 잘 여문 무시는 어찌 그리 이쁘던지요.
야문게 탱탱하고 아삭 베어무니 시원한 무시향이 그득합니다.
배추랑 갓은 소금물에 절이고 무시는 잘 씻어내고.
어느 새 해가 졌어요.
어둑어둑하니 으슬으슬 춥네요.
마당 한쪽에 소눈 성님이 모닥불을 피웁니다.
타닥타닥, 톡, 톡.
불 냄새가 구수합니다.
"이기, 내가 꿈꾸던 김장이다."
소눈 성님 한말씀.
저녁 밥상 물리고 먼 산 선생님과 저는 무시 썰고
소눈 성님은 불 피운 마당에서 쇠절구로 마늘 빻고.

일요일은 늦으막히 일어났어요.
날씨가 한부조 하더군요.
먼산 선생님은 김치 버무리고 힘쎈 소눈 성님은 김장독으로 나르고
나는 시다바리. 그냥 놀기삼아 쉬엄쉬엄 뒷설거지 했지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
김치 죽죽 찢어서 깨 뜸뿍 치고 젓가락도 필요없이 손으로.
입이 벌개지고 매워서 호호거려도 자꾸만 손이 갑니다.
잠깐 정신을 차리고
"이 맛있는 걸 내 혼자 묵을라카니 미안하네요. 부산 식구들
다 모여서 묵으면 얼마나 좋아할까요?"
"그렇제, 내 마음 알겠제?"

점심 먹고는 방에 불넣고 늘어지게 잤습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잠에 취해서 한참을 잤어요.
자다가 일어나니 네시쯤.
따땃한 초겨울 햇살이 조금씩 먹먹해집니다.

바람처럼 사라진 흰발이 찾으러 구자행 선생님 집에 갔습니다.
먼산 선생님 말씀처럼 흰발이는 저희 집에 있었습니다.
빈 집이라도 저희 집이라고 떡 하니 지키고 있어요.
우리를 보고는 달려나와서 묏등을 구릅니다.
쏜살같이 위로, 아래로 펄펄 나릅니다.
휜발이 앞세우고 다시 집에 왔지요.

고들빼기 김치, 갓김치, 배추김치.
보따리 보따리 싸주셨습니다.
산에서 주워온 모과까지, 그리고 잘 말린 수세미도.
바리바리 싸들고 왔습니다.
친정집 다녀오는 새댁마냥 싸들고 와서 울 오마니께 안기니까
우리 오마니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아이고, 이거 우리 김장택이다."

잔치에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라고 저 혼자 즐기다 와서 미안스럽습니다.

밭에 올라가서 밀이랑 보리 봤어요.
뿌린 대로 난다더니. 참 그 말 꼭 맞습니다.
미친 년 널 뛴 것 마냥 삐뚤빼뚤 합니다.
경해 성님, 신이 나서 신나게 춤추면서 고랑 타더니
밀하고 보리도 같이 춤췄나봐요.
뭐, 그렇다고 회장님이나 이상석 선생님, 은주 성님이나 숙미 성님이
빤듯하게 잘 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아이들하고 뿌린 거는 더 가관이고요.
저 혼자 보기 아깝더군요. 아,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히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하게 올라온 밀하고 보리가 경이롭더군요.
우리 다음부터는 인테리어에 쪼까 더 신경 써서 뿌려아 되겠습니다.

이상은 즐거운 잔치 보고문입니다.
다음은 문화부에서 알립니다.
좋은 영화 한 편.
"마리포사-나비의 혀"
스페인 영화입니다. 마리포사가 나비의 혀라는 뜻이라네요.

'1936년. 스페인의 평화로운 마을.8살짜리 꼬마, 몬초가 드디어 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다는 형의 얘기에 겁을 먹은 몬초는 등교 첫날부터 바지에 오줌을 싸고 학교를 두려워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 선생님, 돈 그레고리오는 몬초를 찾아가 학교에 올 것을 설득하고.
봄이 오자 선생님은 야외수업을 하며 몬초와 그의 친구들에게 참새들이 구애하는 방법과 완벽한 나선형인 나비의 혀에 대하여 설명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랑과 정의, 자유에 대한 선생님의 가르침은 계속되지 못하는데.'

제가 받은 안내문에 나온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뜻있는 분께서는 금요일에 같이 보러 가시지요?
제가 금요일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은 6시나 8시.
저 혼자 가도 좋습니다.

장소는 시네마테크.
시간은 6시나, 8시. (2001. 11. 28. 부산글쓰기회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