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야.
그곳 아이들 사진 잘 봤다. 수줍게 웃는 모습이 오히려 눈이 부신다. 뒤로 보이는 집이며 아이들이 입은 옷차림은 비록 남루하고 소박해보이지만 얼굴에 피어난 웃음은 그 무엇보다 빛나는 것 같아.
서인이가 평범하면서 독특한 거 같다고? 그냥 아주 흔한 아인데^^ 서인이 얘길 들려달라는 네 말 듣고 혼자 좀 웃었다. 이런 아이가 특별하게 보이는 세월이 된 건가 싶어서. 아무튼 이곳 아이들 이야기가 너랑 함께 지내는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라니... 별로 특별한 건 들려줄 거 없고, 요새 서인이 지내는 이야기 두어 가지.
어제부터 서인이는 기말고사가 시작됐어. 한 며칠 책상 앞에 붙어있는 모습이 대견해. 하긴! ‘어, 제법이네.’ 하다보면 어느새 열시 넘었다고 자러 가는 걸. 그럴 때는 도통 시험 치는 아이 같지가 않아.
작년에는 국제고니 뭐니 특목고로 가보겠다고 정보 열렬히 찾아보고 ‘스스로공부’ 시간표 만들고 문제집 사다 나르면서 한 열흘 넘게 애를 애를 썼단다. 뭐어 그것도 금방. 한 달 쯤이나 지났나? 그만 스르르 열이 식더라고. 그러더니 '지금 하고 싶은 거나 열심히 마음껏 하겠다'고 펄펄 나돌아 다니다가, 그야말로 지 맘대로 지 하고 싶은 대로 한 해를 살았지.
3학년 되더니 이제 대안학교로 가겠다면서 한 달 넘게 고등학교과정 대안학교를 찾아 헤매었거든. 날마다 인터넷 열어놓고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더라고. 그러더니 드디어 산청 간디고로 정했대. 지 말이 ‘인가된 고등학교라서 다른 대안학교보다는 공부를 많이 시킨다지만 그래도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나? 여행학교도 가고 싶고 뭐어 어디어디도 가고 싶은데 그런데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엄마한테 미안해서 안 되겠고, 일단 간디고는 다른 대안학교보다 돈이 적게 들면서 설립정신이 딱 지 맘에 든다나?
하여튼 그렇게 정하고 나더니 아주 신이 났어. 누가 그저 넣어준다고 한 것도 아닌데 아주 간디고 들어간 것처럼 방방 들떠 있거든. ‘공부는 지금 정도면 충분하니까’ 다른 거 해도 된다나?
그래 지난번 중간고사 칠 때는 책상 앞에 앉은 꼴을 못 봤거든. 시험 사흘 전에 뭔 연극대회라더라, 그 대회에 나간다고 온통 거기 정신을 팔고 다녔어. 어느 날 뜬금없이 연극 연출을 맡았다나? 공책 하나 들고 다니면서 연습 일정을 짜고 극본을 쓰고 고치고 한 며칠 온통 거기 빠져 살더라. 극본을 몇 차례나 고치고 고치더니 배역을 정하고 연습에 들어가. 지도하는 선생님도 이일저일 힘에 겨웠던지 토요일에는 광안리까지 연극 공부하러 가더라고. ‘무대에서 놀자’라던가? 거기 가서 제법 연극 공부도 하고 연기지도도 받는대.
“니는 뭐하는데?”
“나는 요, 선생님이 연기 지도할 때 하는 말 다 메모했다가, 학교에 와서 우리끼리 연습할 때 아이들한테 그 말 기억해서 다시 챙겨서 연습시키고요, 필요한 소품이나 음악, 음향도 찾아야 되고요. 무대장치에 필요한 거 무대 배경 그런 것도 고민해야 되고요, 배역 성격에 맞게 옷도 챙겨야 되고요, 동선도 그려주고 이것저것 챙기는 게 엄청 많아요. 연출이 해야 되는 거 엄청 많더라고요.”
그러면서 시험공부 하나 안하고 맨날 인터넷 뒤져서 효과음 찾고, 음악 다운받고. 다음날은 음이 안 어울려서 다시 찾아야한다고 또 뒤지고. 무대 꾸민다고 돌아다니고 소품 만든다 늦게 오고 어쨌든 시험 사흘 전에 대회가 끝나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사흘 동안 벼락치기 공부할 시간이라도 남았으니.
하하, 여기서 잠깐 샛길로. 국어 시험을 치고 오더니 풀이 팍 죽었어. 국어 시험이 한 70점 정도 밖에 안 되겠다고. 시험 범위에 맞춤법 단원이 들어있었는데, 그거는 완전 외워야 되는데 그거 외울 시간이 어디 있었냐고. 그래서 완전 망쳐서 한 70점 쯤 될 거라데. 난 웃으면서 ‘자알 했다.’ 하긴 했지만 ‘뭐어, 그 정도까지야 될라고.’ 싶었jd. 그래서 별 말 없이 나도 웃어주고 넘어갔거든. 사나흘 뒤에 시험 점수 들고 왔는데 68점이야. 전교 등수가 아주 주루룩 시원하게 미끄러져 내려갔다나? 하긴 사흘 벼락치기했는데 다른 과목인들 좋았겠어?
나중에 저거 학교 선생님 한 분이 그러더래.
“김서인, 니 등수가 쭉 미끄러져서 안 됐긴 한데 다른 아이들한테 좋은 일했다 생각해라. 니가 미끄러져 내려간 만큼 다른 아이들 등수는 안 올랐겠나? 니 덕에 그 아이들 잠깐이라도 안 웃었겠나?”
서인이가 그 말 듣고 섭섭하다 안 하고, 욕 안하고 ‘듣고 보니 그 말이 쫌 좋던데요.’ 하고 쓱 웃더라고. 그런 모습 보면서 ‘아, 우리 파란보리 많이 컸구나.’ 싶었어.
중간고사는 그렇게 지나갔어. ‘시험 잘 봐서 기타학원 가야지’하던 지 계획이 섭섭하게 되어버렸지만.
다시 연극으로 돌아와서. 어쨌든 그거 하면서 연극을 또 다른 측면에서 보게 된 것 같아. 이야기하면서 그게 느껴졌거든. 교과서에서 극본이나 시나리오 같은 거 배울 때 이론으로만, 연극의 3요소는 무엇이고 지문은 무엇이고 시대적 배경이 어쩌고 그런 것만 외우다가 처음 극본 쓰는 것부터 발표까지 지들끼리 다 해보고 나니 ‘연극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온 거지. 그 뒤로 연극, 뮤지컬, 영화 그런 거에 아주아주 관심이 많아졌어. 전에부터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전에는 막연하게 무한도전 태호피디같은 피디가 되겠다고 하더니 연극해본 뒤로는 더욱 연출이니 피디니 그런 쪽으로 목을 매네.
연극 가르치던 ‘무대에서 놀자’ 선생님이 연기 계속하고 싶으면 자주 놀러오라고 하더래. 지는 연기는 안하고 피디나 연출 같은 거 하고 싶다했더니, 그럼 지금은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러더라나? 그러고 나서 요새는 군말 없이 공부를 좀 하는 거 같아. 물론 시험 기간에만. 지금도 공부한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컴퓨터 앞으로 갔다가 왔다갔다 하고 있어. 요새는 사이버스쿨인지 뭔지 거기서 문제를 풀어본다고 꼭 인터넷이 함께 있어야하니...... 난 저런 것도 참 맘에 걸려. 그 문제는 다음에 하자. 너무 길어질라. 별로 재미없는 얘길텐데 서인이 키우는 얘기가 도움 된다니 오늘은 여기까지. 건강도 보살피면서 아이들과 늘 행복하길...
'영우랑 서인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인이 독후감 "세기의, 조금은 억울하고 조금은 슬픈 재판"(내 목은 아주 짧으니 ~~) (0) | 2010.07.14 |
---|---|
은혜에게 보내는 서인이 이야기 - 서인이랑 함께 욕 해 주기 1 (0) | 2010.07.02 |
서인이와 동무 (0) | 2009.10.21 |
뒤늦게 쓰는 육아일기 - 서인이 (0) | 2008.04.04 |
중학생이 된 서인이 (0) | 2008.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