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우랑 서인이랑

서인이 독후감 "세기의, 조금은 억울하고 조금은 슬픈 재판"(내 목은 아주 짧으니 ~~)

야야선미 2010. 7. 14. 20:48

세기의, 조금은 억울하고 조금은 슬픈 재판

  -  내 목은 아주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를 읽고 (김서인)


중 1 말, 제수현 국어선생님께서 책 몇 권을 추천해 주셨다. 그 중에 이 책도 있었는데, 이 책의 '세기의 재판이야기'라는 부제목에 마음을 뺏겨서 읽게 됐다. 재판을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뭔가 재판을 주제로 한 글이라는 점에서 꽤 흥미를 끌었다. 재판 장면이나 과정은 소설만 보던 나로써는 꽤 새로웠고, 또 보통 재판이 아니라 예수, 잔 다르크, 마녀 재판 등의 재판이라고 보기 어려운 그런 재판에 관한 글들도 있길래 흥미를 놓을 수가 없었다. '세기의 재판이라면서 웬 예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에는 모두 열 편의 재판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소크라테스, 예수, 잔 다르크, 마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을 재밌게 보았다. 물론 내가 토머스 모어나, 드레퓌스. 필리페 페탱, 로젠버그 부부, D. H. 로렌스를 몰라서 그들의 재판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 수 없었겠지만, 사실 이 글들이 말이 재판 이야기지 재판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들의 생활과 환경 등 전기문같은 글들이라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에서 내가 재밌게 본 부분은, 그의 재판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에 관한 생김새와 그의 생활이였다. 항상 도덕책에 나오는 이름. 한 번도 그의 생김새나 생활에 대하여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내가 소크라테스에게 관심이 없어서 별로 모르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의 생김새와 생활은 내가 생각하던 것 과는 다르게 조금 색달랐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발을 넓게 벌린 채 걸으며, 눈은 툭 불거져 나왔으며, 늘 맨발로 걷는다'고 묘사했다. 튀어나온 눈에 두툼한 입술, 뭉툭한 코를 가진 그는 하도 못생겨 희랍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 사티로스나 가오리에 비유될 정도였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철학자라고 하면 항상 집에서 생각만 하는 여리여리한 작은 사내일 것 같았는데, 이 책을 보면서 생각 속의 소크라테스와 실제 소크라테스의 이미지가 잘 겹쳐지지 않아서 조금 어색했다. 그리고 내가 또 한 가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그의 처 크산티페에 관한 내용이였다. 크산티페는 악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생활을 보면 그녀는 악처가 아닌 여장부라고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소크라테스는 직업 없이 돈 한푼 못 벌어 주면서 맨날 시장 바닥에서 젊은이들과 공론만 벌이는 대책없는 남편이였다고 한다. 크산티페가 함께 살아준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항상 철학자로써 멋진 모습만 생각 하다가 이런 무책임한 면을 보니 참 놀라웠다.


 예수의 재판은 그의 죄목이 매우 재밌었다. '면허도 없이 의사로서, 포도주 제조업자로서, 빵 배급업자로서 활동하고, 성전에 있는 상인들과 싸움을 벌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과격분자들, 전복자들, 매춘부들, 거리의 부랑아들과 교제함. 믿음을 갖고 인간들이 신의 자녀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함.' 그의 죄목이다. 나는 여기서, 그냥 물을 한 마디 말로 포도주로 만들어 내는 그가, 포도주 제조업자로 탈바꿈한 것이 너무 웃겼다. 기독교에서, 그 예수님의 찬란한 신력을 한 순간에 무면허 의사에 포도주 제조업자로 바꾸어 버리다니. 하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 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성경에서 보던 그 예수님과 너무 안 어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그 해석에 몇 번이고  킬킬대며 웃었다.


 마녀 재판을 읽으면서 '세상에... 어떻게 사람들이 이럴수가 있지?' 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연 재해, 전염병 등으로 힘들었다지만, 무고한 여성들에게 '이웃의 암소를 죽인 죄', '우박을 불러온 죄', '아이들을 유괴하여 잡아먹은 죄' 등의 말도 안되는 죄명을 갖다 붙이면서 그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런 미신을 믿던 중세 시대라도, 자신의 엄마, 동생과 같은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가며 화형 시키다니.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안타깝다 못해 인간에 대해 짜증이 날 정도였다. 정말이지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마녀로 오해받더라도 '마녀의 망치'를 쓴 사람과 마녀 화형을 인정하고 허락한 교황의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떻게, 사랑과 평등을 주장하는 크리스트교 교황이 학살을 인정한단 말인가.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마녀를 화형하면서 화형료, 고문료 등 까지 받아 냈는데 그 돈을 받으려고 일부러 마녀 사냥을 해댔다니 정말 울컥했다. 돈 몇 푼에 소중한 생명이 날아가다니,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의 제목은 토머스 모어, 그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의 작가라는 것 밖에 몰랐는데, 그는 되게 차분하고 재치있는 성격이라고 한다. 어찌나 침착한 지 처형대 앞에 올라가 죽기 직전에도 집행관에게 "힘을 내게. 자네 일을 하는 데 두려워 하지 말게.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라며 집행관을 격려하였다. 그리고 수염을 잘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며,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까" 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죽기 직전의 그 상황에서 그런 유머가 나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잘은 모르지만 참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생각이 정말 많았다. 그 중에서도 마녀 재판에서 완전 욱! 했는데, 마녀 화형이 횡행했던 이유 중 하나가 화형료를 받아 돈을 모으려고 였다는 점이 씁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에 눈이 멀어 남의 생명 귀한 줄 모르고 자신 혼자 잘 되려고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문제인 것 같다. 문득 든 생각인데, 물론 마녀 재판도 그 당시 미신으로 인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만약 일부 영주나 재판관들이 단지 돈을 모으려고 한 것이라고 한정 짓는다면, 요새도 이 마녀 재판과 다를 바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돈과 명예, 성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과연 마녀 재판을 보며 영주나 재판관들을 욕할 수 있을까. 꼭 이 책 전체는 아니지만, 마녀 재판 부분이라도 읽게 시키면서 주변 사람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