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에 나온, 현대의 여성상? (낭군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 김서인
이 시리즈의 책은 지난 번에도 읽어보았는데 수채화 분위기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림의 분위기를 생각하며 이 책을 골라 읽게 됐는데, 역시나 느낌있는 수채화가 아름다웠다.
박씨전의 줄거리를 간단히 얘기하자면, 신선(박처사)을 만난 이득춘이 그의 딸을 자신의 아들 시백과 결혼시키잔 말에 좋아하며 승락한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딸, 자신의 며느리 박씨는 매우 못생겼다. 시백은 그런 자신의 부인을 보며 외면하고, 이득춘이 말려 보지만 그래도 차마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녀는 남편과 가족 친척들의 외면에 못이겨 집 뒤에 후원 피화당을 지어 따로 살게 된다.
그러나 언제 부턴가 박씨 부인은 점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며칠 걸려 지을 옷을 하루만에 만들어 내고, 시백의 급제 꿈을 꾸어 시백을 급제하도록 도와주는 등 점점 그녀가 대단한 인물임이 차츰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대단한 인물임을 알면서도 가족들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액운이 다했다며 그녀의 허물을 벗게 해 주고 그녀는 절세 가인이 된다. 그러자 그제서야 그의 남편과 가족들은 그녀를 반기며 좋아한다. 그 뒤로도 그녀는 기홍대를 쫒아내고 청의 침입을 예견하고 용울대를 죽이는 등 여러 업적을 남긴다.
이 <박씨전>이란 이야기는, 보통의 영웅 이야기와는 다르게 여성 영웅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게다가 그 여성 영웅 박씨는 자신을 신의 딸로 여겨 거의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편인 시아버지 이득춘마저도 차마 마주보고 있지 못할 정도로 못생긴 여자이다.
처음 시작할 때 그 점이 매우 신선했다. 꼭 영웅 이야기여서가 아니라도, 보통 옛 이야기에 보면 항상 '착하다, 지혜롭다 = 예쁘다' 일 정도로 주인공은 항상 예쁘고, 착하고, 지혜로운데 이 글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느낌이라고 할까? '주인공은 이럴거야...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주인공은 매우 당돌하기까지해서 자신의 가군 남편에게 '당신 같은 사람은 되기 싫소!' 라고 말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옛날 이야기는 예쁘고 착한 주인공이 남편에게 잘 하는 현모양처다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깼다는 점에서 매우 참신했다. 박씨전은 남성 우월 사상이 옳지 않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그 것을 알려주려던, 이 글 속의 박씨 처럼 당당하고 지혜로운 여성이 지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당당하고 멋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남성 우월 사상이 강하던 그 시절, 매우 현명한 여성이 아니고서야 과연 그 시절의 사상의 틀을 깨고 이런 생각이 나올 수 있었을까? 싶다.
박씨는 옛 여성 답지 않게 당당하고 멋있게 살아간다. 남편이 자신을 외면한다고 하여 슬퍼하며 괴로움에 잠겨있지도 않고, 남편의 잘못을 꾸짖으며 충고도 하고, 자신 스스로 집을 지키고, 키우고,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그들을 혼내어 돌려보낸다.
게다가 그녀는 능력까지 있다. 그 옛날 조선시대, 남편에게 순종하며 조용히 지내던 현모양처상이 아니라 당당하고 능력있는 현대 캐리어우먼, 요즘 여자들이 바라는 여성상에 가까운 박씨의 모습에 조금은 놀랐다. 그 시대 그런 사상이 널리 퍼져있던 시절, 남녀 평등한 지금 현대 사회에서의 여자들의 모습이 그 때도 그런 모습을 생각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여성의 모습이 영웅 이야기에 거의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한 편, 나와있다는 것이 씁쓸했다. 아무리 조선시대의 모습이 그랬다고 하지만, 당당한 여인의 모습을 영웅 처럼, 아니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는 생각이 들자 씁쓸해졌다. 옛날에, 박씨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고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세상에 나가보지 못한 채 그저 어느 집 부인, 누구 며느리로서의 삶 밖에 살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 사람들 또한 똑똑한 머리와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와 빛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얼마나 억울했을까?싶다.
그리고, 항상 옛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현대사회에 그런 사상이 없어져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이렇게 발전된 사상 속에서 살기까지 그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겠지만, 이렇게 남성 여성 구분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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