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알은 삭혀야 된다지만
“어머이!”
해가 넘어가고 벌써 어스레해졌는데 엄마가 숨을 몰아쉬면서 들어왔다. ‘엄마다!’ 야야는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다가 엄마 목소리에 튕기듯이 부엌문을 뛰어넘었다. 서너 개 있는 층계를 건너뛰어 내려딛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걸 엄마가 붙잡아 주었다.
“많이 늦었네예?”
“물 좀 떠 온나.”
엄마는 야야 말에는 대꾸도 않고 할매가 누워있는 큰방으로 들어갔다.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옷매무새도 바로 잡아 매만지더니 손을 잡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꼭 며칠 만에 할매를 보는 것처럼.
“작은댁 형님이 와 있을끼라 캤는데…, 좀 어떻습니꺼?”
어둑한 집이 너무 고즈넉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엄마는 작은집 아지매를 찾았다.
“이때까지 있다가 아제 저녁 챙긴다고 가셨어예. 아지매가 밥도 앉혀주고 국도 봐 주고 갔어예.”
그러면서도 엄마가 들고 온 보퉁이에 자꾸 눈이 간다. 오리알이 든 보퉁이 치고 꽤 커 보였다. 얼기설기 묶어놓은 보퉁이에서 오리가 목을 쭈욱 빼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오리알을 구하러 간다더니 아예 살아있는 오리를 사 온 모양이다. 물을 떠가자 엄마는 할매한테 몇 숟가락 떠 넣어 드리고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입도 떼지 않고 단숨에 물 한 사발을 다 들이켰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하루 온종일 낯선 동네를 헤더듬고 다니느라 힘은 얼마나 들었으며 목은 또 얼마나 말랐을까.
“할매 시장하시겠다. 어서 상 펴서 닦아라.”
“벌써 하고 있었어예.”
야야 말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꾸도 없이 엄마는 아래채 광으로 들어갔다. 칭찬들을 마음까지야 없었지만 야야는 어쩐지 좀 섭섭했다.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그쯤은 스스로 할 수 있으니 걱정마라는 뜻이었는데.
엄마는 안 쓰고 걸어놓은 대나무 어리를 들고 나오더니 그때까지 꼼지락거리고 있는 보퉁이를 풀었다. 오리가 엄마한테 날개 죽지를 잡힌 채로 목을 쭈욱 빼고 ‘꾸에엑 괘애액’ 소리를 쳤다. 그동안 답답했다고 아우성이라도 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오리를 마당에 놓고 어리를 덮어씌웠다. 돌도 하나 주워 얹었다. 그때까지 엄마는 입도 떼지 않았다.
‘하루종일 얼마나 피곤하고 허기졌을까?’
그제서야 야야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다. 어쩌면 점심을 굶었을지도 모른다. 낯선 동네 어디에 점심밥 한 끼 얻어먹을 곳도 없었을 테고, 조그만 시골 마을에 밥을 파는 식당이 있을 리 없다. 식당이 있다고 해도 엄마 혼자서 밥을 사먹고 앉아있을 사람이 아니다. 비록 혼자서만 잠깐 서운해 했지만 야야는 엄마한테 많이 부끄러웠다. 하루 온종일 굶고 다녔을 엄마한테 그깟 칭찬 한 마디 듣지 못해 섭섭해 하는 꼴이라니.
작은 보퉁이에서 오리알 다섯 개가 나왔다. 야야가 수저를 놓고 반찬을 덜어 담을 동안 엄마는 오리알 두 개를 작은 냄비에 앉혀서 삶기 시작했다.
“오리알은 삭히면 더 좋다는데 언제 기다리겠노. 삭을 때 까지 이거 두 개는 삶아서라도 먼저 드리구로.”
야야는 깜짝 놀랐다. 보통 때 엄마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오빠들이 무슨 일을 서두를 때마다 엄마가 꾸짖었다. 어떤 일이든지 알맞은 때가 있고 필요한 시간이 있다고 했다. 모 심어서 턱 받치고 앉아 물 대고 김매고 피 뽑고 거름 준다고, 석 달 열흘 동안 할 일을 열흘에 다 했다고 나락이 피고 익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락도 피고 익으려면 꼭 그만치 필요한 시간이 흘러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할 일이 있고 시간이 하는 일도 있다고, 제 할 일 힘껏 해놓고 그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고 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사람이 아무리 용을 쓰고 재주를 부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하던 엄마였다. 아무리 바빠도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수 없고, 우물에서는 숭늉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엄마가 오리알을 물에 삶고 있었다. 분명히 삭힌 오리알이 약 된다고 했으면서.
야야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짠해왔다. 이것저것 할매 병에 좋다는 걸 해대면서도 엄마는 별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리알을 삶는 냄비 곁을 떠나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엄마의 등에 그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어둑한 새밋가에서 아버지는 오리피를 정성껏 받았다. 식기 전에 할매한테 드려야한다고 엄마는 종지를 들고 옆에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할매 입으로 들어가는 건 반 숟갈도 되지 않았다. 조그만 약숟가락으로 한 방울씩 흘려 넣었건만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죄다 나와 버렸다. 몇 번을 더 떠 넣어드렸지만 할매 입으로 들어가는 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물하고는 달라서 오리피는 금세 식어 엉기면서 이와 잇몸에 들러붙었다.
“어어, 어어어”
할매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이리저리 쑤셔댔다.
“어머이, 너무 비립니꺼? 생피라서 그럴 겁니더”
엄마도 아버지도 안타까워 할매를 말렸지만 할매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약이라카이 조금만 더 삼켜 보이소.”
할매 몸부림에 오리피가 담긴 종지가 나가떨어지고 방바닥이야 할매 옷이야 이불에 빨간 피가 뚝뚝 튀었다. 물수건을 따뜻하게 적셔서 할매 입 안을 닦아내면서 엄마는 슬쩍슬쩍 눈가를 훔쳤다. 야야는 재빨리 걸레를 빨아 와서 말없이 방바닥을 닦았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피 묻은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새 이불을 꺼내 펴드리자 빨랫감이 두어 아름은 되게 쌓였다. 빨랫감을 새밋가에 던져놓고 엄마는 작은방 아궁이에 옹솥을 걸어 장작불을 피웠다. 밤이 깊도록 오래오래 오리를 고았다.
안타깝게도 밤새 고운 오리국물은 할매 입에 몇 방울 들어가지도 못했다. 엄마는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할매 입에 떠 넣고 입가로 흘러내리는 국물을 수건으로 닦았다. 또 국물을 떠 넣고 수건으로 닦고 다시 국물 떠 넣고 수건을 가져다 꼭꼭 눌러 닦고. 지칠 줄 모를 것 같던 엄마는 그만 숟가락을 놓고 울기 시작했다. 좀처럼 낯빛에 드러내지 않는 엄마가 한참동안 소리내어 울었다. 할매는 엄마한테 손을 맡긴 채 ‘꺼억 꺽, 하아 하아’ 소리도 나지 않는 울음을 힘겹게 토해내었다.
아침밥을 먹을 때 엄마는 옹솥 째로 들고 와서 오리를 뜯어 주었다. 아버지는 별 말도 않고 야야랑 동생 쪽으로 슬며시 밀어 주었다.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동생도 덥석 달려들지 않았다.
“시오리 밖에까지 가서 사온 기다. 너거라도 묵어라.”
엄마가 야야 밥그릇에도 고기를 뜯어 올려줬지만 입 안에서 뱅뱅 돌고 넘어가지 않았다. 오리고기는 아침밥을 다 먹을 때까지 이 사람 앞으로 저 사람 앞으로 슬쩍슬쩍 밀려다니기만 했다. 엄마도 굳이 더 먹어라 말하지 않고 밥상을 들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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