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
“야야, 아침밥 할 동안 이거 깨끗하게 좀 씻어라.”
엄마가 감 이파리를 한 소쿠리 따왔다.
“물 잘 빠지구로 소쿠리에 잘 널어놓고.”
야야는 눈곱을 비비며 소쿠리를 받아 들었다. 햇살도 퍼지지 않은 이른 아침인데 언제 나갔던지. 이슬도 가시지 않아 아직까지 촉촉하다. 엄마는 아침밥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절구통에다 감 이파리를 넣고 찧기 시작했다.
“저 건너 들말에 갔더마는 감물을 짜 드리라카데. 감물이 굳은 혀를 푸는 데는 젤이라카네.”
“어서 할매 혀가 풀려서 하고픈 말이라도 하면 좀 좋겠나. 먹을 거라도 수월하게 넘어가면, 그거라도 좀 나아지면 좋겠구만.”
엄마는 누가 듣기라도 하듯 콩콩콩 절굿공이를 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야야는 나도 그쯤은 할 수 있겠다 싶어 당장에 나섰다.
“이기 참말로 그래 좋으면 동네 감나무 이파리 다 따서라도 해 드리지. 진작에 알았으면 좋았을 거로.”
할매가 아파도 뭐하나 해 드릴게 없어서 애만 태웠는데 그깟 감이파리 따서 물 짜는 것쯤이야. 그게 도움이 된다면 학교를 안 가더라도 하지. 야야는 갑자기 힘이 솟는 듯 했다.
부지런히 감잎을 따고 감똑도 주우러 다녔다. 아직 철이 일러 풋감 구경하기도 어려웠다. 절로 떨어진 감똑을 모으고 여린 감잎을 따면서 아직도 자잘한 풋감이 원망스러웠다. 절구통에 찧는 것도 야야가 했다. 할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났다. 감 이파리는 다른 이파리들처럼 물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한 소쿠리 그득 모아 찧으면 감물이 한 종지쯤은 모였다.
혀가 꼬인 할매는 감물을 시원스레 들이킬 수도 없다. 떫뜨리한 맛 때문에 목넘김이 나쁘기도 했지만 물 한 숟가락도 한 번에 못 넘기는 할매한테는 아무리 약이 좋다 해도 꿀꺽꿀꺽 삼켜지지 않았다. 젖먹이한테 약 먹이듯이 약숟가락에 아주 조금씩 떠서 입에 흘려 넣어야만 했다. 떫고 풋내 나는 감물을 입에 흘려 넣을 때마다 할매는 찡그리면서 받아 삼키는데 반 숟가락을 떠 넣으면 절반은 도로 흘러나왔다. 할매는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억지로 받아먹었다. 그러나 다물어지지 않는 입술 사이로 또 주르륵 흘러 나왔다. 옷이야 이불이야 요야 죄다 감물이 들어 거무튀튀해졌다. 감물은 아무리 삶아 빨아도 빠지지 않았다.
“기팔댁이 아프다는데 뭐 해 줄끼 있어야지. 미음이라도 한 번 끓여드리소.”
달련이네 할매가 찹쌀을 반 되나 되게 싸 들고 왔다. 달련이네 할매가 걸어들어 오는 모습을 보자 야야는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핑 돌았다.
‘다른 할매들은 이렇게 건강해서 병문안도 다니는데 우리 할매는 왜 일어나지도 못하노?’
달련이네 할매를 방으로 모시고 들어가면서도 발밑이 뿌옇게 흐려졌다.
“영천에 가면 중풍에 용한 의원이 있다 카네. 어찌나 용한지 어지간하면 그 집 약 먹고 다 일어난다 카데.”
엄마는 할매 베갯잇을 시치다 밀어놓고 달련이네 할매 곁으로 당겨 앉았다.
“영천 가서 물으면 다 안다 카더라.”
엄마는 다음날 아침을 서둘러 먹고 집을 나섰다.
“차 떨어지면 내일 올지도 모른다. 니 학교가면 작은댁 아지매가 와 있을끼다.”
그 다음 말은 야야도 안다. 학교 마치면 곧바로 달려와서 할매 시중을 들어야 한다. 영천이라는 곳이 얼마나 멀었으면 다음날 야야가 학교에 갈 때까지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 마치기 무섭게 화살처럼 달려왔더니 엄마가 할매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때부터 온 집안에 탕약 냄새가 흘렀다. 그러나 그 영험하다는 약도 할매를 일어나게 하지는 못했다.
할매의 왼쪽 팔은 여전히 힘없이 추욱 늘어지고 다리는 다리대로 옆으로 아무렇게나 늘어져 나동그라졌다. 손아귀도 힘을 쓰지 못해 무엇 하나 잡지 못했다. 할매는 핏기 없이 축 늘어진 손을 내려다보다가 ‘하아 하아’ 기운을 쏟아내는 일이 날이 갈수록 잦아졌다. 자리에 앉혀드리기만 하면 그나마 조금 성한 오른손으로 왼손을 무릎위에 끌어다놓고 꽉꽉 잡았다 폈다 애를 썼다. 오그라져서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억지로 당기고 펴고 또 잡아서 당기고. 그러나 끝끝내 손가락하나 제대로 펴지지 않는 왼손을 동댕이치며 할매는 번번이 “파하아아아.” 울음을 터뜨렸다.
왼쪽 다리도 할매 마음대로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할매는 제맘대로 아무렇게나 축 늘어진 왼쪽 다리를 앞으로 힘겹게 끌어다 놓다가 결국은 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성한 팔을 써서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데 얼굴에 온갖 핏줄이 다 불거지도록 힘을 써야 겨우 한 뼘쯤 당겨졌다.
야야는 할매를 볼 때마다 된장국에 든 뜨거운 두부 덩어리를 어쩌지 못하고 훌떡 삼켜 버렸을 때처럼 온몸이 화끈 더워졌다. 그 뜨거운 두부 덩어리가 목구멍을 훑고 내려가는 것처럼 가슴 한가운데가 쩌릿하게 아프고 눈물이 왈칵왈칵 솟구쳤다. 할매 옆에 달라붙어 추욱 늘어져있는 손을 당겨 꽉꽉 쥐었다가 제자리로 도로 돌려놓았다가, 다리를 주물러드렸다가 발바닥을 꾹꾹 눌렀다가. 무슨 병이 사람을 하루아침에 이렇게 만들어 버리는지.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병도 있었던지. 그 병이란 놈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엉겨 붙어 싸우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할매한테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차가워진 할매 손을 꾸욱 잡고 할매 눈을 피하면서 고개를 외로 꼬고 앉아있으면 할매가 벌써 눈치 채고 먼저 울었다. 소리를 크게 내어 한바탕 울고 나면 속이라도 후련하련만 할매는 우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파하아아아”
처음에 할매가 입을 크게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혀 울 때는 얼핏 보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잘 몰랐다. 그러다가 할매는 번번이 숨을 ‘하아악 하아아’ 몰아쉬다가 답답하고 안타까운 속을 어쩌지 못하고 성한 손으로 가슴팍만 퍽퍽 쳤다. 이 몹쓸 병은 어떻게 눈물도 한 방울 나오지 않고, 우는 소리조차 시원하게 내지 못하게 하는지.
“할매예, 그라머 안돼예. 할매예, 예에? 참으이소.”
할매한테 매달려서 말리다가 야야는 더럭 겁을 먹고 떨어져 앉았다. 우는 소리도 잘 못 내는 할매는 좀 더 북받치면 목줄기 힘줄이 뚝 불거져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목만 그런 게 아니고 온 얼굴에 핏줄이란 핏줄은 다 팽팽하게 불거져서 옆에서 보고 있으면 할매가 곧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럴 때는 아예 밖으로 물러나와 있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할매를 달랜다고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할매는 더 북받쳐 올라 어쩌지를 못했다. 할매 스스로 고즈넉이 추스를 때 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아악 하아아 하아”
한참동안 기운을 쏟아내고 나면 할매는 손수건을 끌어다가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닦고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야야는 그럴 때까지 문 밖에서 안절부절 서성이며 기다려야 했다. 마루 끝에서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물매암이처럼 뱅뱅 돌고 있으면 엄마는 눈을 부라리면서 야단을 쳤다.
“그러이 할매 앞에서 우지마라 안 카더나. 그라다가 할매 혈압 더 오르면 안 된다 안 카더나?”
그렇지만 할매 손을 만지다가도 불쑥 눈물이 솟았다. 혼자서는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하는 할매 등을 밀어 울퉁불퉁 밀린 요를 편편하게 펴드리다가도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그 곱단하던 할매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는지. 눈가가 벌개지거나 훌쩍이는 소리가 나면 할매가 “파하아아아” 울고, 할매가 울면 야야가 따라 울었다. 그러다가 할매가 가슴을 퍽퍽 치면서 ‘하아악 하아아’ 숨을 몰아쉬고 목에 무섭게 핏대가 서면 야야는 또다시 안절부절 못하고 마루로 뛰쳐나왔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무서운 병을 없지 싶다. 먹을 것을 마음껏 입에 넣을 수가 있나, 물 한 방울 시원하게 넘길 수가 있나. 우는 것도 맘대로 못 울지 거기다가 말도 시원하게 하질 못해.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말 한마디 입 밖으로 후련하게 내뱉을 수가 있나.
할매는 밥상을 앞에 놓고도 종종 울었다. 이가 멀쩡했지만 할매는 씹지도 못하고 꿀꺽 삼키지도 못했다. 야야는 혀가 꼬이고 굳으면 밥도 맘대로 씹지 못하고 삼키지도 못한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밥을 물에 말아 떠 넣어도 물만 넘어가고, 밥알은 그냥 입안에 남아있었다. 물이라도 쉬이 넘어가면 좋으련만. 물도 반은 밖으로 흘렀다.
할매 밥상에는 생선살을 아기들 입에 들어가듯이 자디잘게 부스러뜨려 놓았다. 배추김치도 물에 흔들어 씻어 아주아주 잘게 찢어서 올려놓았다. 마치 이제 막 밥을 먹기 시작한 아기밥숟가락에 올려주는 것처럼. 아무리 잘게 찢은 김치조각도 양껏 먹을 수가 없었다. 성할 때처럼 김치를 입에 넣었다가는 끝내 목에 걸려 캑캑하고 다 내 놓았다. 할매는 구운 김도 먹을 수 없었다. 어쩌다 한 조각 입에 넣고 나면 입천장에 달라붙어서 손가락으로 후벼 떼는데 더 힘을 빼야했다.
밥 먹을 때만 되면 할매는 식구들한테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질 않으니 손사래만 내젓고 결국에는 또 가슴을 퍽퍽 쳤다.
“할매, 와예? 뭐 드리까예?”
식구들이 얼른 달려가서 들으려고 하지만 말이 되어 나오질 못하니 할매는 또 손수건을 가져다가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속이 상한 할매는 밥 때마다 밥상을 밀어내고, 식구들은 할매 앞에서 밥을 맛나게 먹는 것조차 죄스러워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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