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비녀는 벽장 속으로
“야아야, 아아아야”
할매가 손을 내저어며 또 야야를 부른다. 비녀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머리칼은 어수선하게 풀려 귀 뒤며 목둘레로 헝클어져 내려왔다. 할매는 한손으로 손가락을 세워 빗쓸어 올린다.
‘어서 머리 좀 쓸어 올려, 다시 빗어 달란 말이다.’
구석에 놓인 경대를 끌어다 할매 앞에 놓았다. 할매는 뚜껑을 세워 거울을 보더니 금세 “파아아아하아아악” 운다. 야야는 놀랜 듯이 경대를 옆으로 치우고 얼레빗만 꺼낸다.
아침에 곱게 땋아 끝댕기까지 단단히 드렸건만 하루 종일 누워 비비니 그대로 있을 턱이 없다. 야야는 좁다란 끝댕기를 풀고 어수선하게 엉킨 할매 머리를 풀었다. 머릿속에 숨었던 비녀가 댕그랑 떨어진다. 얼레빗으로 머리칼을 빗어 내리는데 가슴이 저릿하다. 서리서리 풀어져 내리는 할매 머리카락. 할매는 지금까지 흰머리도 나지 않고 반들반들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참 고왔다.
머리를 빗어 다시 땋고 끝댕기를 드리고 틀어 올렸다. 이번에는 아예 정수리 쪽으로 한껏 치켜 올려서 틀었다. 뒤꼭지에다 틀어놓으니 베개 베고 눕기도 불편하고 자꾸 헝클어지고 비녀에 찔리는 것이다. 할매는 쪽찐 머리를 더듬더듬 만져보더니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입을 옴지락거려 무슨 말인지 하려다 만다.
“할매, 거울 한번 보실랍니꺼? 잘 됐어예.”
경대를 다시 끌어다 할매 앞에 놓았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얼핏 보더니 경대를 획 밀쳐낸다. 입은 살짝 돌아가 삐뚤해지고, 입술은 제대로 다물어지지도 않지. 할매는 그런 모습이 보기 싫은 거지. 경대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야야가 말했다.
“할매예, 인자 저도 머리 잘 만지지예? 할매 머리는 날마다 제가 다 해드릴 테니까 걱정 마이소. 거울 안 봐도 제가 다 할 수 있어예.”
그러나 할매는 정수리 꼭대기까지 치켜서 틀어 올린 머리가 영 마뜩찮은지 자꾸 뒤꼭지로 끌어내린다.
“아, 할매예! 그거 베개 베고 누우면 배긴다고 좀 올려서 그래예. 자꾸 그래 끌어내리면 베개에 또 배길 건데.”
할매도 그만 단념했는지 담뱃대로 베개를 끌어다 털썩 눕는다. 몸을 옴찔거려 옆으로 고개를 돌려 눕더니 소리 죽여 운다. 단정하게 쪽쪄 비녀를 꽂은 할매의 고운 머릿결을 떠올리니 야야도 울컥 눈물이 솟는다. 야야는 경대를 치워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얼레빗만 꺼내놓고 경대는 벽장 저 안쪽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할매 머리는 두어 시간이 멀다하고 매만져도 사자갈기처럼 흉하게 헝클어져 내린다. 수세미처럼 엉킨 머리카락을 살살 달래가며 풀고 빗다보면 손가락이며 빗살에 머리카락이 꺼멓게 빠져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까지 쓸어 모아 돌돌 뭉치면 제법 한 움큼은 돼 보였다. 할매는 빠져나온 머리카락을 보며 또 입을 크게 벌리고 “하아아악 하악” 울었다. 거의 날마다 머리카락은 그만큼씩 빠져 나가고 할매는 그때마다 울고.
날이 저물어 가는데 강 건너 시집간 막내고모가 왔다.
“할매가 아프니 니도 욕본다. 그래도 니가 내보다 낫다.”
막내 고모는 병구완을 하지도 못하는 자기 처지가 미안한지 야야 손을 붙잡고 울먹거렸다.
“올케 언니도 고생 많지요. 바깥일 하랴 환자 돌보랴. 우짜노? 하루 이틀에 끝날 일도 아닌데 마음 눅게 묵고 살살 대강 하소.”
고모는 앉지도 않고 헐렁한 일바지를 꺼내 갈아입고 나섰다.
“야야, 오늘 하루는 고모가 하께. 니는 좀 나가 놀아라. 한창 놀 땐데 할매 옆에서 니가 생고생이다.”
고모는 수건을 적셔 겨드랑이며 등이며 구석구석 닦아드렸다. 다음에는 물빗질을 해 가며 머리도 곱게 빗겨 비녀까지 단정하게 찔렀다. 오랜만에 참 곱단한 모습이다. 할매는 역시나 손을 더듬어 쪽진 머리를 만지더니 살짝 웃는다. 마음에 드는가보다. 그러나 눕자마자 이리저리 꼼지락꼼지락 비비더니 결국은 비녀를 빼서 던져버리고 “하아아악 하악” 운다. 고모는 영문을 모르고 “오매요, 오매요.” 불러댄다.
“고모예, 머리가 배기고 불편해서 그라는 거 같은데예. 요렇게 밑에 묶으면 불편합니더.”
금세 와자자 헝클어진 할매 머리를 쓸어 만지면서 고모도 따라 운다.
“오매요, 그리 곱던 우리 오매가 그래, 이기 무슨 일인교?”
다음날 아침을 먹고 막내고모는 큰 결심이나 한 듯이 야야를 불렀다.
“야야, 가위 찾아 온나. 보재기는 어데 있노?”
고모는 보자기를 넓게 펴놓고 할매를 일으켜 앉혔다. 비녀를 뽑고 끝댕기도 풀어 던지고 땋은 머리를 풀어 내리더니 가위를 가져다 댔다.
“오매요, 환자가 꼴보고 미보고 우째 사노? 편한 기 제일이지. 하루에 몇 번씩 쪽질 수도 없고, 천날만날 누워 살낀데 뒤꼭지가 편해야지. 올케 손으로는 이거 못 한다. 내가 해야지.”
누가 쫒아 오는 것도 아닌데 고모는 혼잣말을 재빨리 하면서 가위질도 재깍재깍 아주 빨리 해치웠다. 머리카락이 쑹덩 잘려 보자기 위로 “투두둑” 떨어졌다. 옆에서 보고만 있던 야야는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아, 할매예” 한숨처럼 할매를 불렀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모으면서 고모가 울고, 뎅그랗게 잘려 나간 머리를 만지면서 할매도 울고. 할매 손을 잡고 야야가 울고, 부엌에 있던 엄마도 울고. 집안에 있던 여자 넷이 모두 한참동안 울었다.
보자기에 머리를 다 쓸어 담아 똘똘 뭉쳐 들고 일어나면서 고모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아이구 내 속이 다 시원하네. 오매요, 시원하고 가볍고 좋지요? 젊은 사람들 같네. 머리카락은 밥만 묵으면 길어 나오는데 뭐. 인자 한번 누워 보소, 얼매나 편할낀데.”
할매는 고모가 나가고도 한참동안 더 울었다. 기운이 다 빠질 때까지 울다가 잠이 들었다.
야야는 방바닥에 빼어놓은 백통 비녀를 주워들었다. 비녀머리에는 무궁화 꽃인지 목단인지 꽃잎 같은 것을 새겨놓았다. 할매는 이 비녀를 다시 꽂을 수 있으려나. 끝댕기도 주워 벽장 안에 밀쳐둔 경대 서랍에 넣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할매 머리를 묶고 있었을까. 끝댕기는 기름기에 절어 반닥반닥해져서 천으로 만든 건지 가죽으로 만든 건지 잘 알아볼 수도 없다.
서랍에는 할매가 아끼고 아끼던 비취옥 비녀도 있었다. 푸른빛이 나는 비취옥 비녀로 쪽을 눌러 꽂고 손거울을 들어 경대에 뒷모습을 비춰 보던 할매. 그 고운 모습을 언제 또 볼 수나 있을까 싶으니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아, 할매예.” 소리가 또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우리 할매, 머리 곱게 빗어 옥비녀 찌르고, 까슬까슬 풀 먹인 모시적삼 입고 나설 날이 돌아오기나 할까?’
막내고모가 돌아가고 야야는 할매 옆에 꼭 붙어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보고 뒹굴뒹굴 놀다가 할매 오줌 뉘어드리다가 숙제하다가. 오후 내내 할매도 야야도 말을 잊은 사람처럼 지냈다. 하품을 하다가 마당에 닭을 쫒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할매 혼자 뎅그런 머리를 쓸어 붙이면서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어머이, 머리...”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다가 멈칫 놀라는 것 같더니 금방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도 저녁밥 먹을 때까지 할매 옆에 앉아 묵묵히 신문만 뒤적거렸다. 들일 갔던 엄마가 들어와 저녁을 먹고, 온 식구가 다 잘 때까지 누가 먼저 크게 말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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