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할매를 불러보세요 9 - 학예회 연습도 나 혼자

야야선미 2010. 9. 30. 17:17

학예회 연습도 나 혼자

“야야!”

알림장 검사를 맡자마자 가방을 메고 나서는데 야야를 행자랑 순석이가 불러 세웠다.

“학예회 때도 우리 응원 모둠은 춤 출건데, 니도 할래?”

“춤? 무슨 춤 출건데?”

“아직 정한 거는 아니다. 아이들 정해지면 그때 다시 춤하고 노래 정하지 뭐. 니이 할건지 말건지 부터 생각해라. 내일까지 모둠 짜야 되니까 내일 말해 줘.”

벌써 가을 학예회 연습을 한다고 그런다. 참 대단한 아이들이다. 아직 석 달 가까이나 남았는데. 하긴 1학기 체육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놓치고 응원상도 놓치고 나서 벼르긴 많이 별렀다. 초등학교 마지막 학예회니까 학예회 때는 제대로 보여주자고. 그러더니 2학기 개학하자마자 춤 출 계획을 짜는 모양이다.

야야는 집에 오면서 내내 생각해봐도 마음을 정할 수가 없다. 체육대회 때도 연습 한 번 함께 하지 못했다. 체육대회 날은 결국 야야만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할매가 몸져눕고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야야는 학교만 마치면 곧장 집으로 와야 했다. 낮 동안에 할매 시중드는 것은 아예 야야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퇴근해서 돌아오시면 잠깐 자유시간이 생기지만 그땐 다른 아이들이 춤 연습할 시간이 아니다. 하긴 자유시간이래야 할매 시중드는 것만 조금 쉬는 것이지, 엄마 오기 전에 저녁상이라도 조금 준비해두려면 그 시간도 온전히 야야만의 시간은 아니다.

여름 끝나갈 무렵부터 들일이 더 많아지고 엄마는 더욱더 바빠졌다. 고추는 익는 대로 따다 늘어야지, 깻대 쪄다 말리면서 틈틈이 깨 털어야지. 고구마 줄기며 호박이며 가지며 따다 말려두어야 내년 봄까지 반찬해 먹지. 몸이 열둘이라도 모자란다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는 점심상을 좀 일찍 봐드리고 야야를 기다리지 못하고 들로 나가갔다. 할매는 그때부터 야야 오기만 목을 빼고 기다린다. 할매는 대문간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우리 강생이 왔나!” 하고 반겼다. 그나마 다행하게도 할매가 조금조금 나아져서 이제는 혼자 힘으로 엉덩이를 밀고 마루 끝에까지 나올 수도 있게 되었다.

“야아야, 요강 좀. 오줌 싸겠다.”

대문간에 야야 얼굴이 비치기 무섭게 할매는 요강부터 찾았다. 야야는 집에 들어서면 언제나 가방도 내팽개치고 납작 요강부터 찾아들고 마루로 뛰어올랐다. “야야, 요강.” 말하지 않아도 한참동안 기다렸을 할매다.

‘이런 할매를 두고 동무들이랑 춤 연습한다고?’

야야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함께 모여서 춤을 추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텐데. 1학기 때도 따로 해 본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끼이지 못했다.

‘어떻게 할까? 나는 그냥 나 혼자 하는 걸 한다고 하나? 혼자 하는 거 뭐?’

꼭 집어서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데 혼자 하는 걸 하자니 그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여럿이 모여서 하는 게 제일 좋은데. 조금 못해도 표 안나, 덜 부끄러워. 아이 씨, 춤 모둠이 딱인데.’

‘아이씨, 할매만 아니면’

요즘 들어 야야는 저만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할매가 자꾸만 거추장스럽다.

‘왜 이렇게 몇 달씩이나 아프냐고오 아아, 정말. 언제까지…’

동네 어른들이 원래대로 낫지 않을 거라고, 영영 그렇게 지낼지도 모른다고는 했지만. 그래서 야야는 할매만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팠는데, 요즘 들어서 오래 앓아누운 할매한테 짜증낼 일이 잦아진다. 동무들하고 어울리지도 못하고 야야 혼자만 홀로 떨어져 동동 떠있는 것 같을 때마다 자꾸 할매탓을 하게 된다.

‘아, 이러다가 진짜 외톨이가 되는 거 아니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려고 해도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니 빈 것처럼 점점 허전하고 쓸쓸해졌다.

다음날 야야는 학교에 가자마자 행자를 찾았다.

“아무래도 연습할 시간이 안 맞아서 안 되겠다. 나는 곧바로 집에 가야 되거든.”

“아아참, 야야 니도 꼭 같이 하면 좋은데. 집에서 혼자 하다가 나중에 다 같이 맞춰보면 안 되겠나.”

“그러까?”

야야는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엉거주춤 걸쳐놓기로 했다.

‘그래, 연습 다하고 나서 다른 곳 몇 군데 맞춰보는 건 되겠지 뭐. 그리고 그때는 할매가 좀더 나아지겠지.’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꼭 함께 하자고 말해준 동무도 더없이 고마웠다. 모처럼 기분이 좋아져 하루 종일 공부도 잘 되는 것 같다. 집에 오는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할매예에, 야야 왔어예. 할매 강생이 왔어예.”

아주 오랜만이다. 이렇게 반가이 할매를 부르면서 집에 들어온 것이. 야야 목소리가 환하니 할매 얼굴도 환해진다.

“아이구 우리 강생이, 어여 와. 덥제? 공부하니라 힘들제?”

야야한테 안기기라도 할 듯이 마루 끝까지 엉덩이를 밀고 나와 손을 내젓는다.

“할매, 오줌 누고 싶지예? 빨리 요강 가져올 게예.”

새밋가에 씻어둔 납작 요강을 들고 오면서도 야야는 모처럼 걸음이 팔랑팔랑 가볍다. 안아서 요강에 앉히는 것도 별로 힘들지 않게 살짝 올려 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