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까지 다 미워
“오매요!”
고모다. 할매를 “오매요”하고 부를 사람은 고모들밖에 없다. 마당을 내다보고 앉았던 할매가 목을 길게 빼고 대문간을 본다. 할매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 엉덩이를 끌면서 마루 끝으로 나가는데 고모들은 벌써 축담을 올라섰다. 부산에 사는 큰고모랑 작은고모다.
“아이구우 추석에 온다고 마음먹었는데 그것도 뜻대로 안되네.”
“점심 때 된 것 보고 나섰는데 벌써 저무네.”
할매는 추석 지나면서 내내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이제야 왔다.
늘 누워만 있는 할매는 고모들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작은집 큰집에 드는 제사며 생신까지 다 외고 앉아서 누구보다 먼저 손꼽아 기다렸다.
“큰집 할배 제사가 내일인데. 너거 종고모들은 왔능가?”
“작은집 할매 생신이 다 돼 가는데 아제들은 다 내려올란가?”
왔다고 해도 잠깐 앉았다 인사만 꾸벅하고 갈 때가 더 많은데도 할매는 때마다 조카들을 기다리고 질부들을 기다렸다. 사람이 얼마나 그리우면 저렇게 누구누구 오는 날만 챙길까 싶어 마음이 짠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이 얼매나 바쁜지 이번에는 아무도 못 왔답니더.”
어쩌다 아제들이 바쁘다고 그냥 가 버린 날은 엄마도 아버지도 거짓말을 했다. 목을 빼고 기다린 할매한테 바쁘다고 그냥 갔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람이 찾아오는 걸 좋아하는 할매에게 딸들이 왔으니. 할매는 어린 아이처럼 입을 벙싯거렸다.
‘참, 고모들도. 할매가 저리 좋아하는 걸. 좀 자주 오지.’
“올케는? 야야, 엄마는 안 보이노?”
벌써 어둑해진 마루로 올라서면서 고모들은 야야 엄마를 찾았다.
“밭에 갔지예. 인자 올 겁니더.”
“그라마 아직 할매 밥도 안 드맀나? 쪼매이만 빨리 오지. 이래 어두운데 뭔 일을 한다고 아픈 사람 밥도 안 챙기고.”
가을에는 공동묘지 귀신도 일어나 움직인다 카는데. 그렇게 바쁜 일철에 엄마 바쁜 건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야야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상을 놓고 반찬들을 챙겼다. 오늘은 아버지만 오시면 바로 상을 들여가야겠다고 서둘렀다. 괜히 늦은 시각까지 덜그럭거리고 있어봐야 고모들한테 엄마만 더 섭섭한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엄마가 해 놓고 간 반찬을 챙기고, 끓여놓은 국도 다시 데워 상을 차리다가 야야는 괜시리 속이 끓는다.
‘아아,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일하는 엄마더러 할매 밥 늦게 준다고 타박하더니. 그러면 고모들이라도 좀 거들어 발리 챙겨 들어가지. 아무리 오랜만에 와서 반갑다고 해도 밥 때 늦었다고 타박해놓고 방에서 나와 보지도 않느냐고.’
야야는 요즘 들어 걸핏하면 화가 나고 볼멘소리가 툭툭 튀어나와 스스로도 걱정스럽다.
“어머이.”
“아이고, 오빠 오시네예.”
고모들은 반달음으로 달려 나가 아버지를 끌어안다시피 방으로 들어갔다. 또 한 차례 인사말이 오가고 따르르 웃음소리가 들린다.
‘흥!’
야야는 코웃음을 쳤다. 그냥 그랬다.
“고모, 고모예. 상 좀 들어 주이소.”
고모들 밥까지 놓으려니 늘 쓰던 상은 좀 작아 부엌 한 옆에 세워두었던 큰 두레상을 꺼내다 밥을 차렸더니 두 팔이 좍 벌어져서 힘을 줄 수가 없다. 그제야 쪽문을 열어보면서 한마디 한다.
“벌써 다 차렸나? 너거 엄마가 없으니 니가 욕본다.”
‘아아 끝까지 엄마를 머라카네.’
이렇게 바쁜 일철에 할매 시중에 들일에 이리 동동 저리 동동거리는 엄마를 고모가 자꾸 타박하는 것 같아 고모가 참 야박해 보인다.
“엄마가예, 그냥 늦는 기 아니고예. 들에 일이 억수로 많습니더.”
“그러이 너거 엄마가 미련하지. 일이 많으면 일꾼을 좀 쓰면 되지. 무슨 일을 혼자서 다 한다고 이리 늦도록 그러는지.”
‘참, 뭘 몰라서 그러는지. 알면서 어거지를 쓰는 건지. 농사 조금 지어서 가실하면 장릿쌀 갚아야지, 우리 식구 한해 먹을 것 겨우 남을낀데 품삯 주고 일꾼 쓸 형편이 되느냐고.’
‘어째 한참 어린 막내고모보다 철이 없는지.’
어린 야야도 아는 것을 고모들이 모를 리가 없고, 엄마 험담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바깥일에 할매 병구완에 참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고모들이 밉기까지 하다. 고모들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 말 않고 넘어가는 아버지나 할매도 참 이해할 수 없다. 밥상을 막 들고 들어가려는데 엄마가 바쁘게 들어왔다.
“기별이라도 하고 왔으면 간갈치라도 한 토막 지질 건데.”
엄마는 야야속도 모르고 고모들 상에 생선 한 토막 없는 것을 미안해했다.
‘치이, 간갈치는 무슨! 아나, 간갈치.’
좀 얄미운 고모들이지만 그래도 고모들 덕에 엄마가 정말 오랜만에 작은 방에 건너가서 달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벌써 몇 달 동안 할매 옆에서 자면서 하룻밤에도 몇 번씩 일어나 오줌 누이고 물을 떠다 드렸다. 오죽하면 어느 날은 아침밥을 하다가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하룻밤이라도 등 붙인 그대로 아침까지 죽은 듯이 한번 자봤으면”
하루 종일 할매 시중에 들일에 발자죽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면서 질질 끌듯이 들어와도 밤에는 밤대로 그렇게 깊은 잠 한번 못 잤으니.
‘엄마가 그렇게 사는 줄도 모르고.’
밤이 늦은 줄도 모르고 할매 옆에서 “따그르르” 웃어대는 고모들을 흘겨본다.
“그런데 오매 머리가 와 이렇소? 빗기기 수월하라고 이래 잘랐는가베?”
“강 건너 막내이가 잘랐다. 시원하라꼬.”
“아이구우 가시나. 우리 오매는 머리 쪽지고 비녀 드렸을 때가 고운데.”
‘치이 진짜로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듣고 있자니 고모들도 참 철이 없다. 날마다 누워 꿈지럭거리는 환자가 머리 쪽지고 비녀 찌르고 누워서 불편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나 싶다. 문득 할매가 그런다.
“내일은 뜨신 물에 목욕 좀 시켜주고 시원하이 머리도 감겨 주고 가거라.”
“와? 올케가 목욕도 자주 못 시켜주는 갑네? 머리를 이래 싹둑 잘라놔서 머리 감기기도 수월하겠구먼.”
“알았소, 걱정 마소. 우리가 시원하게 씻겨 드리께.”
야야는 정말 기가 찼다. 할매가 다른 사람들한테 흉한 꼴 보이기 싫어한다고 틈만 나면 씻기고 머리 감기고 얼마나 애를 쓰는데. 등창이라도 나면 큰일이라고 목욕은 또 얼마나 자주 시켜드리는데. 고모들 말을 듣고 있자니 할매까지 점점 미워진다.
‘아니, 할마씨. 그기 아니라고, 늘 깨끗하게 해준다고 왜 말은 못하고. 다른 말은 잘도 하더만.’
야야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외롭고 쓸쓸한 할매를 보면서 고모들이라도 자주 와서 말벗이라도 해 주고 가지 그랬는데. 그렇게 기다린 고모들이 별로 반갑지가 않다. 오랜만에 이러쿵저러쿵 다 들어주는 딸들이 있어 어리광이라도 부리는 건지 할매는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배가 고파서 몬 견디겠다. 언제 배부르게 한번 먹어 봤으면.”
‘그렇구나! 아프고 나서부터 배부르게 한번 못 드셨지.’
할매 말을 들으니 야야는 마음이 아프다. 생각해보면 아프고 나서부터 할매는 양껏 먹어본 적이 없다. 아니 못 먹었지. 굳었던 혀가 조금이나마 풀려서 말은 제법 알아들을 만큼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씹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고 물 마시는 것도 마땅찮아 밥은 마음껏 먹지 못 한다. 할매 말을 듣고 찡한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야야는 또 가슴이 콱 막혔다.
“아이구우, 우리 올케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긴병에 효자없다 카더마는. 하기는 똥오줌 받아내는 기 힘이야 들지. 오매 우리 있을 동안은 마이 잡숴요. 우리가 다 치워줄게.”
입이 떡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니, 똥오줌 치우기 귀찮아서 먹을 것도 잘 안 주는 사람 취급하네.’
고모들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 할매까지 미워지려고 해서 야야는 그만 작은방으로 건너와 누웠다.
‘그래, 밤새도록 할매 옆에서 고생 좀 해봐라.’
그러나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작은 고모가 와서 야야를 흔들어 깨웠다.
“야야, 할매 오줌 눈단다.”
정말 몰라서 야야를 깨운 건지, 안아 올려서 납작 요강에 앉히는 게 힘들어 그러는 건지. 야야는 눈을 비비며 큰방으로 가면서도 고모들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고모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야야, 물 앉혀서 불 좀 때라.”
“야야, 할매 갈아입을 옷 좀 꺼내 놔라.”
“야야, 할매 요홑청 좀 갈자. 빨아놓은 거 찾아 놔라.”
사실은 입만 분주했다. 엄마 혼자 해도 하는 듯 마는 듯 조용히 한나절에 끝낼 일을 고모들은 둘이나 있으면서 내내 “야야” “야야”하고 불러댔다.
새밋가 큰통에 더운 물을 해놓고 고모들은 할매를 업고 나간다고 애를 썼다. 야야는 가만히 두고만 보자고 다짐했지만 하는 수없이 나섰다. 잘못해서 할매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고모, 거기까지 못 갑니더. 그리고 거기는 인자 추워서 안 되예.”
추석이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마당가 새미에서 목욕하기에는 이제 너무 춥다. 야야는 할매 이불이랑 요를 모두 걷어서 한쪽으로 밀고, 할매 목욕통을 큰방에다 가져다 놓았다. 물도 따뜻하게 맞춰 놓고 할매를 끌어안아 목욕통 안으로 앉혔다. 그제서야 고모들이 수건을 적셔 씻겼다.
“이이구우, 여기 때 좀 봐라. 얼매나 안 씻으면 이렇노?”
고모들은 자기 공치사를 하는 건지, 엄마 흉을 보는 건지 내내 얄미운 입을 놀렸다. 야야는 고모들이 하는 말은 귀에 담아두고 싶지도 않지만 들을 때마다 거슬려서 속으로 대꾸를 했다.
머리 감길 때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허리를 구부리지도 못하는 할매를 앉혀놓고 머리에 대고 비누칠을 해 놓으니 온 얼굴에 거품이 흘러내린다. 할매는 따갑다고 손을 허우적거리고. 결국 방바닥은 온데 물이 튀고 거품이 튀어 물바다가 다 되었다.
저러다가 할매만 힘들겠다 싶어 하는 수 없이 야야가 나섰다. 엄마가 하던 것처럼 수건을 길게 접어 이마 위를 감쌌다. 먼저 그렇게 해야 머리에서 물거품이 흘러내리지 않고 수건에 빨려든다. 머리를 헹굴 때도 수건을 대고 헹구고 닦고 헹구고 닦고 손이 많이 가긴 해도 그렇게 여러 번 나누어서 해야 할매 눈 따갑지 않게 끝낼 수 있다. 고모가 둘이나 있어도 야야는 엄마 혼자서 할 때보다 훨씬 힘들고 바쁘게 움직였다.
“오매, 인자 시원하지요. 한숨 푹 자소. 한동안 개운할끼다.”
고모들은 끝까지 올케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않고 갔다. 할매는 고모들을 보내면서 “하아악 하아아” 한참 울었다. 누가 왔다가 갈 때마다 할매는 그렇게 울고, 야야는 할매가 얼마나 사람이 그리울까 싶어 마음이 짠하게 아팠다. 그런데 오늘 고모들이 갈 때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속을 다 뒤집어놓고 갈 거면 차라리 오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고모들이 야박하게 구니까 괜시리 할매까지 미워지려고 해서 그것도 싫었다.
고모들이 가고 나서 한참동안 심통이 가라앉지 않아서 야야는 할매를 요강에 다가 아무렇게나 털썩 놓아버렸다.
“아이구, 야야! 할매 궁뎅이 다 깨지겠다.”
마당이 꺼뭇하게 어두워지자 엄마가 머릿수건을 벗어 흙먼지를 털면서 바쁘게 마당을 들어섰다.
“어머이, 시장하시지예? 하던 거 쪼매이만 더 하고 마무리한다는 기 고마 어둡도록 있었네예.”
엄마는 저물도록 일을 하고 오면서도 할매한테 늘 미안해했다.
‘치이, 미안하기는 뭐가 미안하노?’
야야는 엄마가 그러는 것도 오늘은 참 한심하고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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