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산마을고등학교와 함께 한 인권연대 12주년 "난쏘공, 조세희 선생님 강연을 듣고"

야야선미 2011. 7. 5. 00:28

 

산마을고등학교와 함께 한 인권연대 12주년 - <난쏘공, 조세희 선생님 강연을 듣고>


산마을 카페에서 지역과 세계 일정을 보는 순간, 아니 표 일곱 장 있다는 글을 보는 순간,

“30년 전 난쏘공 때보다 더 잔인해.”

“폭력은 군대, 경찰만 하는 게 아니야. 폭력 그것만이 나쁜 게 아니라 우리 시대 배고파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달래지 못하면 그게 바로 폭력이야. 우리가 직접 철거민에게 물을 뿌리고 죽이진 않았지만 미리 막지 못한 죄가 있어. 나도 똑같은 죄인이야.”

용산 살인진압 앞에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이 꽉 막혀버린 이 답답한 세상을 향해 분노하던 인터뷰, 그 말을 듣고 고개 들지 못할 만큼 부끄러웠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내뱉었습니다.

“저요, 저요, 저 그때 서울에 있어요.”

목요일 하루에 바쁘게 일마치고 돌아가려고 했던 일정이었지만, 일단 소리부터 질러놓고, 서울에 있어야할 일들을 더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서너 번 더 왔다갔다 할 일을 이틀 동안 아주 많이 하긴 했습니다.

7월 1일, 마포아트센터 앞마당, 산마을 식구들이 여기저기 앉아 기다리는 걸 보니 반가움에 소리까지 질렀습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달려가 폴짝폴짝 뛰면서 반가워했지요. 또 그렇게 받아주시던 분들이 참 정겨웠습니다.


거기다가, 더구나! 맨 앞줄 표를 챙겨놓았다는 말에 떨리고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기다렸습니다.

전에 인터뷰에서 난쏘공은 “벼랑 끝이라는 ‘주의’ 푯말 같은 거”라고 했지요.

앞으로는 그런 슬픔이나 불공평, 분배의 어리석음, 이런 정치, 경제적 상황이 없기를 바라며 쓴 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 푯말을 무시한 채 ‘가난뱅이들만 더 두들겨 패며 유지된 한국사회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래, 벼랑 끝이라고, 그것마저 넘어가면 떨어진다는 경고를 했던 그 난쏘공의 조세희 선생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예쁜 학생들이 연주하던 사계와 사계, ‘목엣 가시’의 노래가 지겹진 않았지만 흥겹지도 않았습니다. 어서 빨리 보고 싶은, 오늘은 무슨 얘길 하실까, 제 마음이 지나치게 앞섰던 탓이겠지요.

그러나 선생님이 나오고, 자리에 앉고, 말씀을 시작하자말자 가슴이 아파오더군요.

‘저렇게 편찮으신데......’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

“이건 학살이다, 언론이 무덤 같아.”

그렇게 비통해 하고 분노하던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라, 손이 떨리고, 앉은 모습마저 안타까워 보여서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몇 번이나 되풀이하던 '엉망진창'인 대한민국이 부끄러웠습니다.
독재에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자식들 일자리도 만들어주지 못한 부모라서, 그저 비겁자라고 몰아부쳐도 할 말이 없어서 부끄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아픈 몸 이끌고 기어코 우리들 앞에 앉아야 하는 이 현실이 마음 아팠고,
그리고 그 분을 그렇게 만드는 세월이 짠하고
그 몸 이끌고 와 주셔서 고맙고 고마웠지요.


백구 이야기를 우스개처럼 하셨지요. 배가 고파 ‘멍멍’ 하는 것 같은데 '가난한 식당 주인'이 그 '배고픈 개'를 모른 체하고 밥을 주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왜 이 장면에서 웃지 않느냐고 했지만 가슴 한 쪽이 아파왔습니다.

약자들끼리 조차 서로 연대하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 부산<한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조합원들의 동의나 연대 다 무시하고 도장 꾹 눌러 찍었다는 지도부가 생각났습니다. 너무 ‘쿨’하게 자기 앞가림만 하고 사는 우리를 나무라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요즘에는 자다가 눈물이 나온다. 한국 현실에도 울고, 이루지 못한 일이 많아서 운다.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 그 백구를 보면서 슬펐다. 우리의 동학 할아버지들은 싸우고 피해 다니면서도 그 땅 민중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끼니를 얻어먹으면 일이라도 해 주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지나가는 개 한 마리도 잡아먹지 않았다. 지금 국민을 위한다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민중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또 어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조용히 꾸짖던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합니다.


“우리 세대가 제대로 싸우지 못했고 혁명이 필요할 때 혁명도 못했다. 그러니 그 범죄자들이 감옥에도 안 가고 부정으로 쌓은 것들 하나도 내놓지도 않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혀 얻은 것들로 그들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를 그저 비겁자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독재자에게 저항도 잘 못하고 항복도 받아내지 못하고 여러분 일자리도 만들지 못했다. 제3세계의 아버지들이다. 여러분은 그 아버지들의 자식이다. 아버지 세대의 잘못을 기억하고 냉소주의자가 되지 말고 싸워라.”

요즘 사람들 너무 ‘쿨’하다는 말이 또 생각납니다. 너무 ‘쿨’해서 이웃의 아픔을 너무 쉽게 잊고 지나치고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지, “나만 아니면 돼!”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나무라는 것 같았습니다.


야스퍼스 얘기를 하면서 또 그러셨지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한다. 잘못된 일과 불의, 그 앞에서 저질러진 범죄에 함께 책임져야 한다. 악을 저지하는 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래서 나빠진 현실이 되었다면 그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엉망진창이다, 현재의 문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랬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분노하라. 요즘 ‘분노하라’는 말이 유행하더라. 그런데 나는 분노할 수가 없다. 내가 힘이 하나도 없어. 힘을 다 잃어버렸어. 분노하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 공부가 필요하다. 아버지 세대가 무얼 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분이 미래의 이 땅의 희망이고 주인이고, 세계 역사에 함께 참여해야 할 미래이다. 비관주의자가 되지 말자. 냉소주의자는 더욱 더 안 된다. 냉소주의는 나쁜 정치인이나 무식한 정치인이 가장 좋아한다. 20대가 엉망진창이 되면 안 된다.”

한국 사회가 엉망진창이라고 자꾸 꾸짖었습니다.

예, 엉망진창 맞습니다.

오늘 <한진>에서는 모두 22명이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이 분들은 인도위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연행된 사람 중에는 며칠 동안 노숙하면서 매일 85크레인을 보고 108배 하신 분도 있다고 합니다. 가장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행위를 하는 시민도 잡아가는 것이 대한민국 경찰입니다.


난쏘공이 출간된 지 27년이 지나고 200쇄 기념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죽어가는 농민들, 비정규직들, 하루하루의 삶이 불안한 현실입니다. 이 시대의 난쟁이들은 여전히 지옥 같은 세상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엉망진창인 대한민국이지요.
200쇄 기념 강연 기록에서 읽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제일 어려운 일은 좋은 글을 쓰는 것, 두 번째로 어려운 일은 안 쓰는 것, 세 번째로 어려운 일은 침묵이다.”

원고를 든 손이 떨리는 걸 가슴 졸이며 보다가 잠깐 고개를 돌렸는데 선생님의 말이 끊어지고, 이 말 저 말 섞일 때마다 산마을고등학교 동무들이 숨죽여 다음 말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편으론 든든했습니다.

우리의 미래, 저 아이들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흐뭇한 이야기 하나도 전해 들었습니다.

2차 희망버스를 앞두고, 걸어서 부산까지 가는 소금꽃, 그 쌍용차 동지들 밥 먹으라고 어느 시민이 아주 자기 멋대로 한 일이 가슴 따뜻하게 합니다.

추풍령역에 있는 어느 갈비집에 자기 멋대로 그 동지들 음식 값이라고, ‘제멋대로’ 계좌로 결제하고 통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진 윤밴의 공연, 모처럼 땀 흘리며 한껏 뛰었습니다. 딸아이도 뛰고, 딸아이 남자친구도 열광하고, 그 자리에 끼어 저도 함께 뛰고.

온몸을 내던지듯 노래하고 뛰고 머리 돌리던 산마을고등학교 동무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기성세대의 굳어버린 틀에 당당하게 맞서는 생명의 힘!

지금 당장 끓어오르는 욕망과 열정을 맘껏 도전할 수 있는 힘!

잘 닦여진 길이 아니라도 거침없이 덤불을 헤치고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생명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엉망진창 대한민국에서 희망도 찾은 것 같아 좋았습니다.

땀에 흠뻑 젖어 자꾸 달라붙는 웃옷을 떼어내면서도 자꾸 실실 웃음이 나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아이들에게서 전해오는 열정과 생명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