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잘했다! / 이현주

야야선미 2011. 8. 31. 19:43

 

잘했다! / 이현주


길섶에 버려진 과자 껍질을 보고서

지나쳐 몇 발짝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돌아가서 주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싫다.

그러고 싶지 않다.

머뭇거리던 발걸음 옮겨, 가던 길 계속 간다.


잘했다!

이 지구 위에서 한 인간이

제가 만든 감옥에 저를 가두는 것보다

버려진 과자 껍질이 바람에 굴러다니는 게

덜 해롭겠기 때문이다.


교토의 어느 선원(禪院)에 이런 글이 걸려 있단다.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은 없다.”

“당신이 꼭 어떤 사람으로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두 마디를 진리라고 믿는다.


오늘, 가던 길 돌아내려가

버려진 과자 껍질을 줍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버려진 과자 껍질을

줍고 싶으면 얼마든지 주울 것이다.

'시 한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국화 기차역 / 이안  (0) 2011.09.27
돌 하나, 꽃 한 송이 / 신경림  (0) 2011.08.31
엄마와 딸 / 랭스턴 휴즈  (0) 2011.08.31
노 숙 / 김사인  (0) 2011.08.31
빈 집 / 황지우   (0) 2011.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