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다! / 이현주
길섶에 버려진 과자 껍질을 보고서
지나쳐 몇 발짝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돌아가서 주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싫다.
그러고 싶지 않다.
머뭇거리던 발걸음 옮겨, 가던 길 계속 간다.
잘했다!
이 지구 위에서 한 인간이
제가 만든 감옥에 저를 가두는 것보다
버려진 과자 껍질이 바람에 굴러다니는 게
덜 해롭겠기 때문이다.
교토의 어느 선원(禪院)에 이런 글이 걸려 있단다.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은 없다.”
“당신이 꼭 어떤 사람으로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두 마디를 진리라고 믿는다.
오늘, 가던 길 돌아내려가
버려진 과자 껍질을 줍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버려진 과자 껍질을
줍고 싶으면 얼마든지 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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