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산마을고등학교 이야기 "서인이가 왔다"

야야선미 2011. 12. 24. 19:07

드디어 겨울방학. 서인이가 왔다. 이번에 종업식 마치고 바로 왔다. 예쁜 것. 봄방학 여름 가을방학까지 해 보더니 이번에는 모두 택배로 보내고, 기타 메고 작은 가방 하나 달랑. 아주 가배얍게 나타나셨다.

짐이 가벼운 것도 가벼운 것이지만. 손뜨개 모자를 가볍게 눌러쓰고 기타를 메고 스윽 나타나시는데, 어찌나 어여쁜지. 누가 딸 자랑질이나 하는 바보 아니랄까봐, 볼 때마다 점점 더 참하게 자란다. 이런 말은 남들 앞에선 못하지만. 흐흐.

다음날 택배로 뒤따라온 짐이 엄청나다.

제 말로 짐 싸기의 달인이 되어간다더니, 부피 큰 겨울이불까지 잘 쌌다. 종이 상자 두 개를 붙여서 이불을 잘도 구겨 넣었다. 현관 앞에 내려놓은 짐 보따리들이 무슨 이삿짐 수준이다. 그 좁은 방에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두고 썼는지.

 

 그. 리. 고.

아악, 저 빨래, 빨래들.

“야아, 김서인. 이거 너무 한 거 아이가?”

“흐흐 엄마 미안. 겨울옷은 물빨래 안 되는 것도 많잖아요. 그리고 올 때 다 되어 가니깐 안 빨았어요. 안 마르잖아요.”

“뭐시라?”

“아아, 그건 핑계고요. 미안해요.”

당장 꽁지를 내리고 살살 눈웃음을 친다. 아, 또 흐물흐물 스러지는 내 성질. 가쓰나, 클수록 살살 나를 꼬셔먹는다니까.

 

 

어찌 되었던. 서인이가 왔다는 말은 엄청난 짐이 온다는 말이고, 빨랫감도 엄청 쏟아진다는 말이다. 우리 집 위키백과 사전에는 그렇게 기록이 되는 거다.

“내일부터 제가 천천히 풀게요. 그리고 안 풀고 그냥 쓰다가 방학 마치고 그대로 가져가도 되는 건 그대로 둘 거에요.”

“이 공주 좀 봐라, 이젠 잔머리까지 굴리셔?”

“아아, 짐 한번 싸는데 얼마나 귀찮은지 알아요?”

“구석에 짐 보따리 놔 두면 지저분하고 찝찝하지. 찾아 쓰기도 불편하고.”

“괜찮아요. 나중에 다시 싸는 것 보다 나아요.”

아아가 짐 싸는 일에 아주 진저리가 난 모양이다. 하긴 저 많은 걸 챙겨 넣고 풀고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리고 언제 저런 일을 해 보기나 했더냐.

큰 상자 두 개를 풀어놓으니 빨래가 산처럼 쌓이고. 그 다음 묵직한 놈은 책일 테고. 그 다음 상자를 풀어보니 뜨개실이 몇 뭉치 나온다. 뜨개실 뜨개바늘을 꺼내니 맨 아래에 목도리가 나온다.

“이건 누구꺼? 니가 짰나?”

“흐흐 아버지 생신 선물인데. 너무 빠른가? 그냥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릴까 고민 중이에요.”

“잘 짰는데? 색깔도 예쁘고.”

“아버지 덩치에 좀 좁을지 짧을지. 실이 요것 밖에 안 돼서요.”

“아니, 이뻐. 따뜻하겠다.”

산마을 다니면서 솜씨가 점점 늘고 있다. 언제 뜨개질은 이렇게 늘었는지.

“이거 짤려면 꽤 오래 걸렸겠다.”

“별로요. 요새 산마을은 온통 뜨개질 열풍이에요.”

“하긴 페이스북 보니까 창현오빠? 그 오빠도 뜨개질 한다데.”

“남학생도 해요.”

산마을. 참 다니고 싶은 학교다. 고등학생들이,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군데군데 모여 뜨개질을 하고. 생각만 해도 털실만큼이나 따뜻하다. 시험공부에 지나치게 쫒기지 않고, 기타 치다가 춤추다가 모여서 뜨개질도 하다가.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읽다가. 그림 그리다가. 야학에서 듣고 싶은 것 골라 듣다가. 촛불들고 나가서 외치기도 하고.

아이들 처지에서야 왜 고민이 없고 힘든 부분이 없겠냐만. 그런 것들 가운데 일부분은 겪고 지나야할 성장통일 수도 있지. 고민 없는 인생이 인생인가. 아픔도 겪으면서 어려운 일도 이겨내면서 삶이 깊어지고 눈길도 넓어지고, 남의 아픔과 슬픔도 돌아볼 줄 알고. 그렇게 단단하게 여물고 성숙해지는 것이지.

아무튼 영혼이 여물어야할 시기에 저렇게 지치지 않고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는 청춘. 저 청춘들이 온전하게 자라고 여물어서 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길. 무지막지한 짐 보따리를 정리하다가 또 한 번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