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하면서 힘도 얻고 염려도 덜 수 있어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참 고마운 일이다.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한 자리에 앉아 밤새워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들이 나 혼자만의 걱정이 아니라 여러 어머니 아버지들도 함께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위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아이들마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도 다 다르고, 심각하게 느끼는 정도도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내가 모르고 있던 이야기도 많이 듣고. 이야기 하다 보니 똑같은 일이라도 서인이는 별 분제라고 여기지 않고 넘어갔던 것도 있고, 다른 아이들이 속상해하지 않는 것을 서인이는 크게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것도 있다. 물론 다함께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들도 있고.
아이들의 그런저런 고민과 힘들어하는 일들을 말하다 보니 더 걱정스러워진 것이 아니라, 서인이 혼자 속으로만 파고들어 앓고 있는 게 아니고 여러 동무들이 함께 혼란스러워하고 아파하고 있는 문제라 싶으니 사실 걱정이 많이 덜어졌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 그건 절대로 아니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도 혼자 앓으면 그것이 병이 될 수도 있다. 혼자 속을 끓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걱정거리나 심란한 것들은 꺼내놓고 동무들이랑 함께 투덜거리고, 함께 화내고 함께 아파한다는 것은 일단은 마음이 놓인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서로 위로하고 토닥거리면서 이겨낼 거니까. 그러다보면 아주 극단적인 일은 만들지 않을 거라 싶다. 또 무엇보다 동무의 고민과 방황을 강 건너 불보듯하지 않고, 내 일처럼 함께 아프고 고민하면서 그만큼 자랄 거니까.
학부모 모임에서 결론은 학교에서 모두 한 자리에 앉아 산마을 일 년을 돌아보는 간담회를 열자는 거였다. 갈등많은 아이들, 아이들 데리고 함께 부대끼는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 학부모들. 모두 한 자리에 앉아 마음 열고 이야기하다보면 서로의 가슴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열어 보일 수 있고, 이야기 하는 중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염려하는 것은 무엇인지, 학교에서 힘든 점은 또 무엇인지.
아이들은 자기들 처지에서만 바라보니까 학교 공부며, 선생님들에게, 또 교장선생님께, 동무들에게 섭섭하고 화나는 일도 있을 거다. 그러나 처지를 바꾸어보면 선생님들은 나름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부분도 있을 거다.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생각도 같지 않을 것이다. 다 제각각의 처지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있을 테니까.
한 자리에서 이야기 하다 보면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겠지.서인이 만나 둘이 손 꼭잡고 강화읍 골목골목을 걸었다. 돌아다니다가 불량식품도 사 먹고 골목안 어느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밥도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그동안 전화로 했지만 늘 시원하지 않게 끝내고 마음에 찜찜하게 담아두었던 이야기며, 한번 시작하면 수십번씩 왔다갔다 하던 카카오톡. 그 카카오톡으로도 다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손잡고 돌아다니면서 참 잘 풀렸다.
저거들의 걱정거리를 두고 부모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밤새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염려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굴도 조금씩 밝아졌다. 우리 부모들이 나서서 뭘 크게 해결해 줄 것이라기보다는 저거들의 속을 알아주고 공감해 준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는 듯. 손 꼭 쥐고 돌아다닌 그 몇 시간이 지금도 참 훈훈하고 푸근하다.
그런데 서인이와 헤어져, 잠을 자기도 하고 혼자 생각에 빠지기도 하면서 다섯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그 날 헤어질 때까지 이야기하고 결정했던 것들에 대해 슬며시 다른 생각이 일어난다. 우리가 저거들 문제로 밤새워 이야기하고 걱정했다는 말을 듣고 풀어지던 얼굴을 보면서, '우리가 힘이 되어줄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거리를 두고 다시 생각하니까 또 다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거다.
"이러다 이 아이들이 어른들한테 기대는 건 아닐까?"
"어떤 불합리한 일이건 소통의 벽을 느끼는 문제건 저희들 스스로 헤쳐나가도록, 그러면서 자랄 수 있도록 두어야하지 않을까?"
"우리 어른들은 그냥 믿고 기다리면서 조금씩의 힌트와 무한한 격려만 해 주어야하지 않을까?"
잠깐, 학교를 떠나고 싶어했던 서인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 해 주었던 말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혼란스럽다고, 문제가 있어보인다고 버리고 떠나는 것보다 네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라면 그 속에서 문제를 고쳐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기서 떠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거나 완벽한 곳을 만날 수도 없을 거다."
"못 이겨서, 문제를 못 풀어서 떠난다면 늘 그 찝찝함이 남아 있을 것 같다.
부딪쳐서 노력하고 고민했던 과정이 훗날 나를 더 뿌듯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다."
혼자 내려오면서 어지럽게 만들었던 여러 생각들, 어제 저녁까지 곰곰히 정리해보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정리가 명확하게 되지 않는다.
우리 학부모가 적극 나서서 풀기보다 학교와 아이들에게 시간을 좀 주는 건 어떨까? 우리의 고민과 아이들이 부딪쳐 아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내용들은 일단 학교측에 알려드리기는 하고, 그래서 학교와 아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앉아 토론하고 머리맞대고 풀어갈 시간을 먼저 주는 건 어떨까?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갔다는 뿌듯한 기억을 가지게 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른들은 저희들 아픔과 혼란을 헤아리고, 믿고 기다려주더라는 기억을 갖게 하는 것도 좋겠지.
아이들,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가 다함께 모여 대안교육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것도 생각만 많은 내 염려일 뿐일까? 이것마저도 의논해 봐야겠다. 에구우우 머리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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