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또 처음이다

야야선미 2012. 4. 13. 21:30

다대포라 몰운대.

바다를 끼고 이렇게 좋은 숲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참 축복받은 일이라 싶다.

봄볕도 참 좋고, 뾰족뾰족 올라오는 여린 새 잎도

둘레에 활짝 펴서 사람들 눈길을 끄는 진달래꽃 개나리꽃에 지지 않는다.

1학년 아이들하고 봄에 피는 꽃, 봄에 막 터져나오는 새순들 새잎들을 보러 간다.

도시락 가방 달랑달랑 등에 메고 몰운대 숲길을 걷는다.

아이들은 지칠 줄도 모른다.

우르르 앞서 달리다가, 뒤에서 내 등을 밀다가 저희들끼리 까르륵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쫒고 쫒기면서.

벌써 꽃잎이 반너머 떨어진 진달래도 들여다보고,

바람결에 꽃잎을 날려보내기 시작한 벚나무도 올려다보면서.

하얀 털이 보송보송한 갯머위 새잎도 살살 어루만져 보고, 두 팔 좍 벌려 소나무도 한번 안아보고,

제비꽃 앞에 쪼그리고 종알대기도 하고,

아기 씀바귀꽃 보면서 "노란거 보니까 냉이꽃이네" 잘난 척도 하면서.

겨우 조금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출렁다리'라고 아주 신나게 굴러보기도 하고.

마음도 발길도 가배얍게 몰운대 한바퀴 돈다.

봄바다도 빛이 다르다.

짙푸른 잉크빛 바닷물에 고운 연둣빛이 녹아들어 내가 본 그 어떤 보석보다 곱게 부서진다.

발치에 일렁이는 봄바다도 내려다보고, 동백나무 아래 앉아 밥도 먹고 보물찾기 한 판 하고 놀자 했는데.

그러고 우리 마음에 들어온 꽃이랑  나무도 동무 삼아 말도 걸어보고 꼭 닮게 그림도 그릴 참이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보슬보슬 또 봄비가 내린다.

"야들아, 이러다가 밥도 못 먹겠다."

아이들은 보슬비 따윈 아랑곳없다. 이미 여기저기 흩어진 아이들을 불러모으기도 어렵다.

가까이 있는 아이들부터 밥 먹이자. 그러노라면 멀리 달려간 녀석들도 김밥 냄새 맡고 오겠지.

"야아들아 어서 밥부터 먹고, 놀다가 비 많이온다 싶으면 내려가야 돼."

얼굴에 앏게 퍼져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도시락을 꺼내 너도나도 김밥도 먹고 과자도 꺼내먹는다.

학교를 벗어나 봄빛 고운 숲에 앉으니 다들 마음도 넓게 쓴다.

옆에 앉은 동무 입에 김밥도 넣어주고, 초콜렛도 뚝 분질러 건네주면서 무에 그리 우스운지 깔깔깔.

대여섯 개밖에 없는 커다란 유부초밥을 덜렁 가져가도 그저 웃기만 한다.

입에 먹을 걸 울룩불룩 잔뜩 물고 과자봉지 뜯어달라, 음료수병 열어달라, 물병 뚜껑이 안 열린다 들고와서 보채던 녀석들도 돌아설 때는  하나씩 쥐어 주고 간다.

"샘도 드세요"

아, 그런데 너댓 녀석이 소나무 아래 큰 무덤 앞에서 무얼하는지, 허리를 굽히고 오종종하니 모였다.

"밥 안 먹고 뭐 하는데?"  

"여기 음식 차리는 거에요"

무덤 앞 상석을 가리킨다. 

"뭔 음식을 차려?"

가까이 가보니 무덤 앞에 김밥이랑 과자들을 하나둘 꺼내놓았다.

자기들 도시락에서 너도나도 내놓은 김밥 둘, 유부초밥 둘, 감자칩, 맛동산, 꼬깔콘까지.

방울 토마토 두 개는 저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가버리고.

"절하기 전에 음식 차리는 거예요." 

"절? 아는 무덤이야? 누구 무덤인데?"

이 동네 사는 녀석들이니 혹시나 싶어 물었지.

"아뇨, 몰라요." 

"산소에 오면 원래 음식놓고 절하는 거예요."

어느새 두어 녀석은 털썩 절까지 하고 쫄랑쫄랑 내려간다.

아이고오, 이런 녀석들은 또 처음일세.

30년 가까이 선생노릇하면서 봄이고 가을이고 벌써 몇십 차례나 다녔건만,

낯선 무덤에 저희들 먹을 것 꺼내놓고 절까지 하는 녀석들은 없었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사진도 하나 찍었다.

아ㅡ 이뿐 놈들, 역시 사랑스런 1학년들. 그리고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펄펄 살아있는 녀석들.

선거 땜에 우울했던 내 마음을 이 아이들이 이렇게 살살 어루만져 준다.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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