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꾸는 글쓰기

내 말 좀 써 주세요 그 뒤- 낙인찍다

야야선미 2012. 12. 6. 16:30

<낙인찍다>

 

국어시간. 2월에 공부할 것 조금씩 남겨 놓으니 제법 시간 여유가 있다. 이럴 때 아쉬웠던 글쓰기 공부도 좀 더 하고, 재미있는 마무리 활동들도 이것저것 해 보고. 이제야 아이들하고 사는 맛이 좀 난다.

“이번 시간에는 야야가 쓴 일기 하나 읽어 드릴게요.”

“오늘의 일기 시간 지금 하는 거예요?”

“아니아니, 오늘의 일기는 아니고요, 그냥 좀 읽어주고 싶어서요.”

“자랑치는 거예요?”

“그건 아니고. 그럼, 읽지 말라고?”

“그러면 한 번 읽어보세요.”

아주 인심을 써요, 인심을. 말은 그렇게 해도 눈들은 또록또록하다.


2012년 12월 5일 수요일 / 날씨 : 비가 올 것 같더니 잔뜩 흐리기만 하고 바람이 아주 차다. 어찌나 추운지 보건실이랑 복도 정수기에 물이 얼어서 안 나왔다.

<경우가 숙제를 내주고 갔다>

 

여기까지 보더니 술렁댄다.

“경우가 숙제를 내줬다고요 샘한테요?”

“무슨 숙제요?”

“궁금해? 궁금하면 500원!”

“아아아 쫌! 빨리 읽어보세요.”

준호가 못 참겠는지 소리친다. 다시 텔레비전 화면으로 눈이 쏠린다.


공부 마치고 우리 반 다 돌아갔는데 갑자기 경우가 들어왔다.

“샘, 오늘 일기 쓸 거죠?”

하도 엉뚱한 질문이라 제대로 대답을 못했는데 경우가 또 말했다.

“샘, 내 말 듣고 일기에 좀 써 주세요. 샘이 내보다 잘 쓰잖아요.”

경우가 교실에 들어올 때 잘못해서 신발을 널짰다고 한다. 그때 ○○선생님이 나와서 막 혼을 냈단다.

“또 그라네, 전에도 혼나 놓고 또 그라노? 하지 마라 하면 하지 말아야지”

그래서 경우는 안 그랬다고 했는데도 ○○선생님은 막 혼냈다고 한다.

“거짓말 치지 마라 안 봐도 다 안다. 전에도 내한테 걸렸다 아이가”

그리고 ○○선생님은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경우 말을 들어보니까 할 말을 제대로 못해서 속이 좀 답답하긴 하겠다. (야야)


“진짜로 경우가 써 달라고 했어요?”

경우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 두 손가락을 세워 흔든다.

“근데 자세하게 안 썼네요.”

“잘 모르게 썼어요.”

“어디가? 난 들은 대로 다 썼는데에?”

“신발 널짰는데 왜 혼냈는지 이상해요.”

“전에도 혼났는데 왜 혼났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하나씩 찾아낸다.

“흐음, 여러분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나도 이것밖에는 잘 모르겠어요. 경우한테 들은 것을 쓰긴 썼는데 다른 건 잘 모르겠더라고요”

“경우가 그거밖에 안 말해 줬어요?”

“경우가 말 할 때 귀담아 안 들었죠?”

“글쎄, 잘 듣는다고 들었는데. 어제 경우가 이야기할 때는 아주 억울하겠구나 싶었거든요. 요렇게 글로 써 놓으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긴 모르겠네요. 들은 이야기를 잘 떠올리려고 해도 잘 안 됐어요. 경우가 좀더 자세하게 말해 주면 안 될까?”

몸을 뒤로 젖히고 느긋하게 앉아있던 경우가 아주 귀찮다는 듯이 몸을 비튼다. 아이들도 지지 않는다. 어느 새 입을 모아 불러댄다.

“정경우! 정경우!”

“경우야, 글 쓰는 거는 힘들어도 말로는 할 수 있제? 동무들이 궁금하다는 거 말해보자. 야야 일기에서 뭐가 빠진 것 같은 게 있잖아.”

경우가 못 이긴 듯 나오고 아이들은 질문을 쏟아낸다.

“신발 널짰는데 왜 화내는데?”

“전에도 ○○샘한테 걸렸다고? 왜 걸렸는데?”

“4학년 형님아들이 신발을 슬라이딩시키잖아.”

경우가 허리를 구부려 볼링 공 굴리듯이 손을 앞으로 휙 민다.

“아, 그거!”

“전에 전에 형님들 할 때 나도 딱 한 번 했다고. 급식실 엘리베이터에서 세게 밀면 내 신발장까지 한 번 만에 가거든. 근데 ○○샘이 머라카면서 문 열고 나왔는데. 4학년 형님아들은 교실에 다 숨어삐리고 내만 딱 걸려서 혼났다고. 근데 맨날 맨날 신발을 던져서 시끄러워죽겠다고 막 혼내는 거야. 그때는 내만 딱 있었으니까 내만 억수로 혼났거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짝지랑 마주보고 맞장구치기도 한다.

“어제는 진짜 아니라니까. 신발을 들고 오다가 실수로 널짰다고. 그러면 신발을 주워야 되잖아. 신발을 주울라고 하는데 근데 그때 딱 ○○샘이 나와서 혼내잖아. 전에도 그라더마는 또 그라나 하면서. 나는 전에 걸린 다음부터는 한 번도 안 그랬다고오오오.”

“말을 하지?”

“말했거든. 근데 거짓말 치지 마라면서 교장샘한테 델꼬간다고.”

갑자기 북받치는지 고개를 돌리며 “아, 진짜” 하고 한숨을 푹 쉰다.

“근데 내가 말해도 안 듣고 그냥 싹 들어가삐리는데 뭐. 아, 진짜.”

또 “아, 진짜” 하는데 옆에서 보니 작은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경우가 속상했겠다, 그쵸?”

“예, 너무 했어요. 경우가 안 그랬다는데도 막 혼내고.”

“진짜 심했어요.”

“어른들은 진짜 싫어요. 한 번만 걸리면 그 다음에도 맨날 그거 가지고 혼내요. 방과후 샘도 맨날 그래요.”

“말을 들어보지도 안 하고 혼내면 진짜 싫어요.”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볼멘소리들.

“흐음, 경우 이야기 듣고 여러분들도 막 화가 나는가 보네요?”

“네에에에”

“여러분도 경우처럼 이런 일 있었던 갑네?”

“네에에에에, 많아요오오오”

흐흐, 걸려들었다.

“와, 진짜? 이렇게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 많았다고요?”

“네에에에”

“무슨 사연들이 그리 많은지, 다 듣고 싶네. 호오, 근데 우짜노?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에. 한 사람씩 말하려면 너무 오래 걸리겠고오오.”

말을 길게 빼면서 아이들 눈치를 살핀다. 짝이랑, 앞뒤에 동무들이랑 주거니 받거니 아주 시끌시끌 술렁술렁. 할 말들이 많은 게야. 이때다.

“모두모두 나와서 말하기는 어렵겠고, 그럼 자기가 저렇게 억울하게 당했던 일을 쓰면 어떨까?”

“글쓰기 종이 가져 올까요?”

뭐든지 빠른 연서는 말도 마치지 않고 벌써 종이 바구니로 가고 있다. 다른 모둠 심부름꾼들도 종이를 가지러 간다. 그 사이 칠판에 크게 썼다.

<억울하거나 속상했던 일을 써 봅시다>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슥슥 쓰자 경우도 슬그머니 다가온다.

“나도 써도 돼요?”

“응, 쓰고 싶으면!”

아이들 사이를 거닐며 이렇게 열심히 써 내려가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려니 점점 짠해진다.

‘요 어린 녀석들이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 뭐 그리 많아서’

아이들이 하나둘 글을 가져다 내자 종이 울린다. 날마다 종치기 무섭게 달려 나가던 경우도 맨 마지막까지 남아서 다 쓰고 나갔다. 스스로 이렇게 다 하고 나가다니. 9월에 처음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날은 없었다. 학습지마다 반도 안 하고 꽁꽁 뭉쳐서 책상 속에 쑤셔 넣고 나가 버리던 경우가 맞나 싶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는데 가슴이며 얼굴이며 뜨끔뜨끔한다.


엄마는 딱 한 번만 봤으면서 / 이새봄

우리 엄마는 참관수업 할 때 딱 한 번 봤으면서 맨날맨날 발표도 안 한다고 한다. 1학기때 학부모 참관수업할 때였는데 나는 그때 진짜로 발표하기가 좀 싫었다. 가족들이랑 기억에 남는 일을 말하는 거였는데 친구들이 엄마랑 아빠랑 어디 놀러갔던 이야기도 하고 외식핸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빠가 없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할 것도 없고 속이 상했다. 갑자기 발표하기 싫었다. 손 들은 아이들이 다 말하고 나니까 신영옥 선생님이 “그다음에는 새봄이가 말해볼까요” 했다. 하기 싫었는데 시키니까 짜증이 나서 나는 말도 안하고 버텼다. 자꾸 하라고 하니까 나는 신영옥 선생님도 싫었다. 엄마가 창피해 죽겠다면서 밤에 잘 때도 열내고 잤다. 그 다음부터 맨날 발표도 안 한다고 머라 한다. “발표 좀 자주 해래이” “요새는 발표 잘 하나?” “오늘은 몇 번 발표했노?” 정말 지겹고 화난다. 인자 엄마가 절대로 학교에 안 왔으면 좋겠다.


야야샘 꼭 읽어보세요 / 노승환

나는 책이랑 시험지랑 학습지에 이름을 잘 안 썼다. 그래서 뭘 나눠줄 때 선생님이 “이름 안 쓴 사람 나와서 찾아 가세요” 하면 나간다. 그런데 야야샘한테 화날 때가 있다. 뭐냐면 “니 또 이름 안 썼노? 맨날 이름 안 쓰고” 하면 나는 진짜 화난다. 이름 안 쓸 때도 많지만 한 번씩은 쓴다. 솔직히 맨날맨날 안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맨날 안 쓴다고 하니까 속상했다. 그리고 이제 야야샘은 이름 안 써도 글씨보고 누구 껀지 알 수 있으니까 안 머라캤으면 좋겠다. 그저께도 이름 안 쓴 것 잘 찾아주었으면서 이름 안 썼다고 기죽였다. 야야샘, “맨날 이름 안 쓰노” 그런 말 이제 하지 마세요. 알았죠? 그럴 때는 정말 싫었단 말이예요.


맨날 발린다 / 김수영

나는 방과후 샘이 진짜 싫다. 그래서 방과후에 가기 싫다. 근데 아빠가 학원은 돈 내고 해야 되는데 방과후는 돈 안 내니까 가라고 해서 할 수 없이 가야 된다. 그런데 방과후 샘은 너무 깐족거리는 게 싫다. “니 또 숙제 안 해서 남아서 다 하고 온다고 늦게 왔제?” “여기서 하는 거 보니까 교실에서도 맨날 늦게 하고 혼나제?” 한다. 그런 말 할 때 나는 발리는 것 같아서 진짜 싫다. 교실에서 수학학습지 안 하고 놀아서 한 번 남아서 늦게 왔다고 자꾸 발리니까 선생님 같지가 않다. 어제도 반짝이 풀 좀 가지고 놀았다고 발렸다. “김수영, 아니나 다를까 또 니가? 여기 이런 거 칠하면 안 된다고 했제?” 봄이랑 선우도 가지고 놀았는데 내만 또 발렸다. 돈만 있으면 방과후에 안 가고 학원에 가고 싶다.


“낙인찍다!”

“찍히다”

아이들 글을 읽는 동안 내내 떠오르는 말이다. 수영이 말처럼 딱 한 번만으로 이렇게 두고두고 발린다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

그러고 보니 나도 이렇게 잘못하고 있구나. 승환이가 이름을 자주 안 썼지만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건 아니지. 그런데 “맨날 이름 안 쓰고” 했으니. 그러고 보니 ‘맨날’이란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자주 쓰는 내 입버릇이 상처를 주었겠구나. 그리고 그냥 한 말 같은데 아이들은 기가 죽었구나. 아이들 다 있을 때 꼭 사과해야겠다. 경우가 내준 숙제 덕에 오늘 한 시간 재미있게 공부한다 싶었는데, 나한테 아주 귀한 공부가 됐다.

그리고 오늘 얻은 또 하나 귀한 글, 경우 글이다. 이 아이들을 만난 지 벌써 넉 달째, 처음으로 경우가 ‘다 쓴 글’을 내었다.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글 곳곳에 스몄다. 지우고 덧줄 그어가며 힘을 다해 쓴 글.


내 진짜 안 했다 / 정경우

어제 점심시간 마칠 때 방과후에 갈라고 교실로 들어왔는데 2반 교실 지나고 우리 반 교실로 커브를 돌다가 신발을 널짰다. 나는 신발을 주울려고 허리를 굽혔는데 ○○선생님이 나왔다. 근데 갑자기 ○○샘이 막막 소리를 질렀다. “또 니네, 전에도 혼나 놓고 또 그라노? 하지 마라 하면 하지 말아야지” 신발 널짠 거 주울려고 그랬는데 소리 지르고 혼내니까 진짜 어이가 없었다.

근데 전에 내가 혼났던 게 생각났다. 4학년 형님들이 신발을 슬라이딩시켜서 신발장까지 보냈는데 나도 해 봤다. 재미있었다. 한 번 싹 밀면 신발장 앞에까지 딱 갔다. 아 사실은 두 번 했다. 한 번은 잘못 슬라이딩해서 ○○교실까지만 갔고 그 다음에 할 때 성공했다. 근데 그때 ○○샘이 나와서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면서 소리질렀다. 다음에 또 하면 선생님한테 일러줄 거라고 했다. 4학년 형님들은 다 도망가고 내만 걸렸다. 그 다음부터는 안 했다. 진짜로 거짓말 아니다.

어제는 진짜로 안 그랬는데. 안 그랬다고 말해도 막 거짓말 치지 말라고 그랬다. 한 번만 더 하면 교장샘한테 데불고 간다고 했다. 진짜 어이 없었다. 안 그랬다고 했는데도 ○○샘은 화를 내면서 들어가 버렸다. 아, 진짜 그전때 한 번 했다고 맨날 내가 그랬다고 생각하노? 나는 억울하다. 다음에 손바닥문집에 꼭 넣어주세요.


경우가 보통 때 쓴 글을 보면 연필 쥐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글씨가 늘 흐늘흐늘하다. 받침이며 획이 딱 떨어지지 않게 흘리며 그리듯이 써서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아무리 힘을 주어서 반듯하게 써 보자고 해도 한 줄을 다 못 쓰고 던져버리던 경우다. 다 썼다고 내 놓는 글을 보면 서너 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중간에 몸을 비비 꼬며 싫증도 내지 않고, 하다가 꽁꽁 구겨서 던지지도 않고, 그만 써도 되느냐고 들고 나오지도 않았다. 지웠다가 다시 쓰고 줄을 그어버리고 다시 쓰고, 꾹꾹 눌러 온힘을 다해 쓴 듯한 글.

꾹꾹 눌러 쓴 이 글씨에 억울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것 같아 글을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아릿하다. 그리고 ‘손바닥문집에 꼭 넣어주세요’ 이 마지막 한 마디에 남은 억울함을 다 실은 듯 아주 무겁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