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바르는 날
음력 팔월이 되면 도무지 식을 것 같지 않던 뜨거운 햇살도 누그러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거든.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도 무논에서 피를 뽑거나 밭에서 풀을 매면서 하루해를 보내던 어른들도 이렇게 선선하게 바람이 불어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는데도 들에 나가지 않고 집안 일을 하는 때가 많아져.
하나둘 익어 가는 고추를 따다 말리기도 하고, 먼저 익은 콩꼬투리를 따다가 말리기도 하지. 누렁둥이 호박을 따다가 호박 오가리를 만들기도 하고, 고구마 줄기를 삶아 말리기도 하면서 조금씩 여름 농사 갈무리를 하거든. 아, 그런 일이야 가실이 되면 늘 하는 일이지. 그렇지만 해마다 늘 하는 일 가운데서도 나를 참 설레게 하는 일이 있어.
음력 팔월이 되면, 햇살이 좋은 날을 하루 잡아. 그런 날은 아침을 먹고 나면 고모는 밀가루를 풀어 풀을 쑤고, 엄마는 아버지랑 오빠를 채근해서 방방이 다니면서 문짝을 다 떼어내.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문짝을 떼어낼 때마다 참 설레더라고. 괜히 여기저기 따라 다니면서 "이것도 하까예?" "아버지, 저도 들어보께예."하면서 문짝을 들고 나가는 아버지 옆에도 끼였다가, 문고리를 잡고 엉거주춤 따라다니다가 그래. "그라다가 발등 찍힌대이. 저리 멀찌감치 나가 섰거라" 하는 말을 듣고도 졸졸 따라 댕기다가 정말로 문짝에 발등이 찍혀서 눈물을 쏙 빼고 팔딱거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문짝을 떼기 시작하면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온 집을 쑤시고 다녔어.
큰방, 작은 방, 사랑방 문 여덟 짝을 모두 떼어다 축담에다 비스듬히 세워놓으면 물을 떠다가 골고루 물을 뿜거든. 엄마가 바가지로 물을 떠다 한 입 가득 넣고 '푸우' 뿜어내면서 이 문짝 저 문짝 다니면 우리도 그렇게 따라해 보지만 엄마처럼은 절대로 안돼. 엄마처럼 물이 조금씩 고루 안 나오고 한번에 푹 나와서 넓게 적시지를 못한단 말이지. 어째 또 한번 해보면 입에 머금어야 할 물은 그냥 목구멍으로 꼴딱 넘어가 버리고, 그러다 한 바가지 떠 온 물을 그대로 다 먹어버릴 때도 있거든. 나중에는 그만 꾀가 나서 물을 바가지 채로 갖다 들이부으면 나중엔 "야아들아, 너거는 저리 비키라. 그라다가 물 한 새미 다 없애겠다." "그래 물을 갖다 부어 문짝 다 뒤틀리겠다." 하는 지청구를 듣고야 쫒겨 났어.
엄마가 문짝에 물을 뿜어 문에 달라붙은 한지를 불릴 동안 아버지는 길다란 장대 끝에다 빗자루를 묶어. 수건으로 머리를 덮어쓰고 꼭 묶은 다음에 그 긴 빗자루를 들고 위채, 아래채 구석구석 다니면서 그을음을 쓸어내시거든. 아궁이에 불을 때던 때니 처마 끝에 그을음이 이만저만 아니거든. 오빠가 "아버지 이리 주이소, 제가 하끼예."하고 대신 받아들고 조금 하는가 싶다가는 목을 아래위로 이리저리 돌려대면서 그냥 물러나. 나도 한번 해 보겠다고 긴 빗자루를 들고 해 보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냐. 처마 끝을 올려다보면서 빗자루로 싹싹 쓸어야 하는데 고개를 위로 치켜든 채 힘을 쓴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아. 조금만 해도 정말 목이 꺾이듯이 아프더라고. 빗자루를 긴 장대에다 묶어 위에까지 닿긴 하지만 그게 내 맘대로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데다, 그을음이 떨어지면서 얼굴에 눈에 덮쳐서 눈물을 빼기도 하고, 하여튼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런데도 나는 그 일을 하는 그 하루가 늘 재미있고 기분이 좋아서 엄마 물 뿌리는 걸 거들다가, 빗자루를 뺏어 들고 처마 밑을 헤매고 다니다가, 고모 풀 쑤는 데 가서 불을 밀어 넣어주다가 이리저리 종종거리고 다녔어.
문짝에 발랐던 한지가 다 불으면 그때부터 우리들의 일거리가 돌아와. 물에 잘 불린 한지를 떼어내야 하거든. 문살에 붙은 한지를 살살 잡아당기면 솔솔 일어나는 것이 참 재미가 나. 한해동안 바람을 막아주고 햇빛을 막아주느라 어느새 꺼멓게 그을린 종이를 살살 떼어내면 고모랑 엄마는 짚수세미를 만들어 문짝에 때며 미끌거리는 풀을 싹싹 문질러 씻어. 커다란 문짝 여덟 짝을 다 씻고 나면 점심때가 되어버려. 점심을 먹을 동안 문짝을 말리고 풀을 식히는데, 나는 그렇게 문짝을 다 떼어내고 훤한 방에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을 때가 참 기억에 남아.
말끔하게 때를 씻은 문짝이 다 마르면 이젠 한지를 펴놓고 풀칠을 하거든. 넓은 풀비로 풀을 쓱쓱 바르는 엄마 손놀림이 참 대단하게 보일 때였어. 난 참 그런 것이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나도 엄마가 되면 내가 다 해야지.' 그러면서 내한테 한번 안 시켜주는 엄마가 참 섭섭하고 그랬지. 하긴 한지 한 장도 흔할 때가 아니었으니, 그런 일을 우리한테 맡길 리가 없지만 말야.
넓은 한지에 풀을 고르게 다 바르고 나면 아버지하고 고모가 마주 들고 문짝에다 조심조심 갖다 올리는데, 정말 우리는 숨도 안 쉴 정도로 긴장한 채로 구경을 했어. 두 사람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잘못 하면 풀을 먹어 축 늘어진 한지가 여지없이 찢어져 버리거든. 살살 조심스레 그러면서 문짝에 딱 맞추어 올려놓으면 엄마가 마른 수건을 가지고 와서 살살 눌러 바르는데 어른들 손놀림 하나하나가 얼마나 정성스러운지. 옆에 서서 침을 삼키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였어.
한 해는 우리 동네에 한지 대신 하얀 다후다를 사다 바르는 집이 생겼어. 한지처럼 쉬이 찢어지지도 않고 질긴데다 다음 해에 뜯어서 깨끗이 빨아 다시 바르면 돈도 안 든다나. 그래, 그 해는 우리도 그걸로 발랐지. 정말 일이 수월하긴 수월했어. 한지처럼 그렇게 조심하지 않아도 되더라고. 엄마도 풀비로 정성스레 풀칠을 하지 않고 그냥 다후다를 풀 대야에 같이 담아 주물럭주물럭 해서 쭉 펴니까 풀도 다 먹히는 거야. 고모랑 아버지도 두 손 마주 잡고 살살 드는 대신 그냥 문짝 위에 휙 던지듯 펴놓고 가장 자리를 쭈욱쭉 당기니까 다 펴져서 순식간에 일이 끝나. 그렇지만 그 다음해부터 다시는 다후다를 쓰지 않았어. 겨울 찬바람을 하나도 막아주지 못했거든. 다음해에 다후다를 뜯어내면서 엄마가 그러시데. "애 안 쓰고 그저 된다카는 거를 원래가 안 믿는데. 내가 귀가 마이 얇아진 기 탈이다. 너거도 머시든지 한번에, 애 안쓰고 다 된다카는 거는 조심해야 된대이."
여덟 짝 모두 다 한지를 바르고, 문짝을 뺑 돌려 문풍지도 바르고 나면 이젠 유리창을 만들어. 앉아서 잘 보이도록 눈높이에 맞추어 한지를 네모나게 잘라내고 유리조각을 올려놓고 가장자리를 튼튼하게 발라. 그땐 손바닥만한 유리조각 하나도 흔치 않아서, 해마다 조심스레 떼어서 잘 씻어 말렸다가 또 쓰고 또 쓰고 그랬어. 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그 유리창 고마운 줄을 몰랐어. 무슨 소리만 나도 먼저 팔딱거리고 뛰어나가기부터 하던 어린 아이들이야 그 작은 유리 조각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런데 우리 할머니가 아파 누우시고, 그렇게 예닐곱 해를 방안에서 꼼짝도 못하시면서 나는 그 손바닥만한 유리조각을 다시 보게 된 거지. 한쪽 손발을 못 쓰시던 할머니는 찬바람을 유난히 싫어하셔서 겨울을 정말 싫어하셨거든. 문 여는 것조차 싫어하시지만 바깥세상은 또 얼마나 궁금했을까. 잠이 들지 않을 때면 문 앞으로 다리를 끌고 나와 앉아서 그 조그만 창에다 눈을 대고 사시던 우리 할머니. 그렇게 작은 유리조각, 그 창이 우리 할머니한테는 바깥 구경을 시켜주는 커다란 창이었지.
그 다음은 이젠 예술이야. 엄마는 언제 따다 말렸던지 댓잎 말린 것을 꺼내다가 "이거는 하고지비 야야하고, 애기가 한번 해 봐라." 면서 주셔. 드디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걸 맘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온 거야. 문고리 옆에다 댓잎을 동그랗게 꽃 모양으로 놓았다가, 정말 대나무처럼 대 모양을 살려가며 놓았다가 이래저래 꾸며보는 그 시간이 난 참 좋았어. 나중에는 하도 들었다 놓았다해서 마른 댓잎 귀퉁이가 찢겨서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그래. 있는 정성을 다해서 댓잎을 놓고 그 위에 한지를 네모나게 잘라 덮어 바르면 그 많은 문 바르는 일을 나 혼자 다 한 것처럼 가슴이 뿌듯했어.
그 바쁜 들일을 하면서 엄마는 언제 그것들을 따다 말렸는지 참 곱게도 말렸다가 해마다 꺼내 놓으셔. 어느 해는 댓잎을, 어느 해는 쑥부쟁이 꽃을 말렸다가 꺼내 주곤 했어. 한번은 나도 엄마처럼 꽃을 말려서 문에 붙여 보겠다고 학교 꽃밭에 핀 꽃을 서너송이 따다가 말렸어. 엄마 하는 것처럼 두꺼운 책갈피에 잘 넣어 두었지. 그런데 나중에 꺼내 보니 색깔이 꺼멓게 되어서 썩어 있어. 엄마가 꺼멓게 된 꽃잎을 보면서 "그것도 그냥 한번 넣어 놔서 되는 기 아이다. 세상에 한 번에 다 되는 일은 없더라." 하시는데 참 부끄러웠어. 꽃잎 넣은 자리를 몇 번이고 자주 바꾸어서 말려야 한다는 걸 잘 몰랐거든. 그냥 엄마가 두꺼운 책갈피에서 꺼내 주는 것만 봤지. 어쨌든 나는 문을 바르는 일이 끝나면 늘 마지막에는 내게 댓잎이랑 꽃잎을 붙여 꾸미는 일을 시켜주는 엄마가 참 좋았어.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그 날 문짝을 떼어다 씻어서 새 한지를 바르고, 손바닥만한 유리창문을 씻어서 붙이고, 새 꽃잎을 붙여서 예쁘게 단장한 문짝을 달고 난 밤이 난 너무 좋아. 깨끗한 새 한지를 바른 방문, 그냥 보기만 해도 환한 그 방문에 팔월 보름이 되어가면서 통통해지는 달빛이 환하게 정말 환하게 비치면, 내가 온 정성을 다해 붙여놓은 댓잎도 달빛에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눌러 말려서 납작해진 쑥부쟁이 꽃잎이 마치 다시 피어나는 것 같아. 늘 자던 방이 아니야. 내 온몸을 달빛이 환하게 감싸주는 것 같아서, 한 숨 크게 빨아 당겨보기고 하고, 이불을 치켜들어 달빛을 끌어 당겨보기도 하고 그래.
이거는 내가 좀 커서 한 생각인데, 그 때 어른들이 그러더라고. "칠월 달에는 문 안 바른다. 칠월 달에 문 바르면 도둑 든다카더라." 그러면서 문은 꼭 음력 팔월이 되어야 발랐거든. 그런데 내가 보니까, 이거는 그냥 내 생각이다마는, 팔월이 되어 문을 바르니, 팔월 한가위 달빛을 고스란히 그대로 다아 안아 볼 수 있는 거 아이겠나. 방안에 꼼짝없이 누운 우리 할매나, 내 겉이 달빛이 좋아 이불 안으로 끌어댕기는 아아들이나 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우리 엄마가 사는 집도 양옥으로 바뀌었고, 새로 문을 바르는 집도 별로 없겠지만 팔월이 되면 나는 꼭 그 새로 바른 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그립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땐가?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환한 달빛 이 비치는 방에 나란히 누워서 문짝에 붙어있는 쑥부쟁이 꽃 자랑을 해야지 하고는 혼자 부끄러워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신랑하고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그걸 못해봤다. (2004. 9. 21)